소설리스트

후회공을 피하는 시한부의 삶이란-61화 (61/112)

#61

“아이템 뭔지 꼭 알려달라고 했는데… 왜 아직도 연락이 없지?”

구영이 1분도 안 되는 간격으로 핸드폰을 확인하자, 수희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아직 한 시간도 안 지났으니까.”

아이템은 수거 팀이 회수해 갔기에 무슨 아이템인지 알 수 없었다. 아이템을 분류할 수 있는 아이템은 수거 팀에게만 보급되었고, 구영은 수거 팀에게 자신들이 획득한 아이템의 정보를 알려 달라고 부탁한 상태였다.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데, 그냥 독점하려고 보급 안 하는 거 아니야?”

아이템을 보고도 아무것도 못 한 게 분했는지 구영이 괜히 괜히 손으로 차창을 두드리며 구시렁거렸다.

옆에 수희도 별다를 바 없는지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었다. 에스퍼에 대한 대우가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능력자는 정부에게 부품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

미래에 아무리 생사를 걸며 던전을 클리어해도 받는 건 별것 없다는 사실이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듯했다.

“이번에 국제연합총회가 1지구에서 열린다던데… 자원봉사자 뽑고 있더라?”

두 사람이 풀 죽어 있자, 주언은 화제를 전환하며 새로운 대화를 시작했다.

“형 하려고?”

구영이 의외라며 주언을 보았다.

“시간 되면. 곧 정기 검진이라서.”

“아아. 형 애인 만나?”

구영이 자연스럽게 내뱉은 말에 주언이 괜히 눈치를 보며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바쁘다고 해서 다른 분. 그냥 간단한 검사만 받는 거야.”

굳이 덧붙인 말이 무색하게 수희와 구영은 어느덧 국제연합총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아, 맞아. 가산점 준다고 하더라고.”

“돈 아끼려고 가산점으로 낚네.”

“그래도 경쟁률 장난 아니래. 너 그래서 안 할 거야?”

“하겠지, 뭐.”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기 힘든 주언은 밀려오는 피곤함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몸놀림에 근육이 익숙해진 듯했지만, 여전히 생각보다는 더뎠다. 예전에 자신은 어떤 팀에서, 어떤 생활을 했던 걸까.

명훤은 알고 있을 것 같아 실눈을 뜨고, 운전하는 명훤을 흘끗 보자 그 시선을 바로 알아차린 명훤이 입을 열었다.

“저한테 뭐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직도 아픈 건 아니죠?”

“아니에요. 그냥 간단한 검사만 받는 거예요.”

“무슨 검사요?”

굳이 대답할 필요 없는 질문이지만, 질문하는 명훤의 안색이 질려 보여 주언이 별거 아니라며 설명했다.

“병에 걸렸었던 건 완치됐는데, 그거 때문에 인공 장기를 달았거든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검진… 앗!”

끼익-!

차가 도로 한복판에서 멈춰 섰다. 안전벨트가 아니었더라면, 앞 유리창에 얼굴을 박았을 정도의 급정거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나가 있다가, 뒤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클랙슨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주언이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브레이크를 세게 밟은 명훤을 바라보았다.

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주언에겐 익숙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명훤은 큰 충격을 받은 듯 안색이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다치면 어쩌려고 갑자기 차를 그렇게 멈춰요!”

핸들 위에 올려진 명훤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치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들은 것처럼.

“인공 장기요?”

“네.”

“…….”

“그렇게 큰일 아니잖아요. 수술도 한참 전에 했던 거고.”

“저는… 지금 알았잖아요.”

“…….”

왜 자신의 말에 이렇게까지 동요를 보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으윽….”

뒤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주언은 뒤늦게 뒤에 있던 두 사람을 살폈다. 널브러져 앉아 있었던 탓에 앞 좌석에 이마를 세게 박은 두 사람이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어… 그냥 세게 부딪힌 거야.”

**

차는 곧장 목적지로 향하는 대신, 근처에 있는 휴게소에 들렀다.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야.”

달칵.

“그럼 우리 먹을 거 사올게요.”

“가자.”

명훤이 던진 카드를 받아 든 두 사람은 신난 얼굴로 마침 배고팠다며 휴게소를 털 기세로 달려 나갔다.

두 사람이 뛰어나가기가 무섭게 적막이 찾아들었다. 주언은 옆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앞만 바라보았다.

“…저도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하지만 어색함을 참지 못한 주언이 차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명훤이 조금 더 빨랐다.

“뭐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뭔데요?”

간절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에 문을 열려던 손이 멈췄다.

“이제 완전히 괜찮아진 거예요?”

“네.”

“그 얘기 왜 안 했어요?”

명훤은 주언을 탓하듯 묻고 있었다. 순간 왜 얘기 안 했지, 하고 스스로를 탓하려던 주언이 멈칫했다.

“그걸 왜 말해요?”

“그거야…!”

“어차피 아무 상관 없잖아요.”

자신의 몸이 멀쩡하지 않다는 건 감점 요인일 뿐이다. 감독관에게 굳이 말할 필요 없는 일이었다.

원래 일하던 곳이 아닌 이상, 전과 지금이 수술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고지할 필요 없었다. 그러니 자기소개서에도 굳이 적지 않았다. 그러니까 모르는 게 당연한 거고, 지금 알았어도 달라질 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당연한 주언의 말에 명훤은 몹시 괴로워 보였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무 상관 없다고 하지 말아줘요.”

핸들에 고개를 파묻은 명훤이 일그러진 목소리로 애원했다. 핸들을 쥔 명훤의 손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명훤도 알았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주언에게 부담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다려야지. 수십 번, 수백 번 되뇌었다.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으니까. 하지만 욕심은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비대해졌다.

망가진 것처럼 좌절에 억눌렸던 감정이 이자가 붙어 명훤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앞에 두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리 없는데.’

이 이기적인 감정은 너무도 비대해서, 그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었다.

우주언에 대해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도, 가장 가까워야 하는 사람도 자신이고 싶었다.

“그렇죠. 말할 필요 없죠.”

스스로 하는 말에 스스로가 상처받았다. 바로 옆자리에 있는데 왜 이토록 멀게 느껴지는지.

“주언 씨 애인… 어떻게 생각해요?”

은연중에 마지막에 아팠던 때보다는 나으니까, 오랫동안 던전에 드나들지 않았으니까 실력이 녹슨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인공 장기.

의학의 발전에 인공 장기의 부작용은 현저히 줄었다. 정, 재계 인물 중 노화된 장기를 버리고 인공 장기를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안정성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주언은 그런 경우가 아니지 않은가.

주언이 옆에서 속이 문드러질 만큼 아플 때까지 몰랐다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에 속이 울렁거렸다. 주언이 내내 고통에 앓는 사이, 자신이 곁에 없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자 토악질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그가 주언을 빼돌렸다고 해도 그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주언의 몸이 경직됐다. 윤재의 이야기는 명훤과 하고 싶지 않은 대화였다. 마치 잘못이라도 저지르는 것처럼 가슴이 쿡쿡 쑤셨다. 하지만 다른 때와 다르게 주언이 불편해하는 기색을 비쳤음에도 명훤은 재차 물어왔다.

“…믿어요?”

좋아하냐는 질문이 아니라, 믿느냐는 질문. 그 뒤에 숨겨진 의도가 있어 보였다. 주언은 굳이 대답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혼자 남았을 때 유일하게 곁에 남아준 사람이에요.”

믿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믿고 싶었다.

“그래서 안 물어본 거예요?”

사실은 곁에 있어야 하는 건 나였다고, 자신은 그 기회를 빼앗겼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명훤에게 당당하게 말할 권리가 없었다.

“그걸 어떻게…….”

놀란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 저 입 안에 자신의 혀를 쑤셔 박고, 주언의 타액을 마시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 얘기보다, 애인 얘기 먼저 듣고 싶어 할 것 같아서.”

“…….”

“내 말 틀렸어요?”

“맞아요.”

명훤은 말을 내뱉을 때마다, 말이 칼이 되어 입 안을 베어냈다.

주언의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주언은 아마 강윤재에게 먼저 물어볼 심산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주언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강윤재니까.

“아직 물어볼 시간이 없어서 못 물어봤어요.”

강윤재가 자신보다 더 나은 애인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포기할 용기도 없는 주제에.

“내가 말해줄까요?”

순간 주언이 숨을 죽였다. 그에게 물어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그가 먼저 나서서 말할 줄은 몰랐다.

“……내가 모르는 게 그쪽한테도 좋은 일 아니에요? 제가 그쪽 싫어할 거라면서요.”

명훤도 처음에는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더 좋을 줄 알았다. 주언의 상처는 주언조차 모를 정도로 깊이 묻어두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움받는 것보다 모르는 사람 되는 게 더 견디기 힘들 거라곤 생각 못 했거든요.”

“…….”

견딜 수 없이 싫었다. 그쪽이라고 불리는 것도, 가까이 붙으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도.

스윽.

명훤이 손을 뻗어 흐트러진 주언의 앞머리를 자연스럽게 정리해주었다. 희고 보드라운 뺨이 손안에 익숙하게 감겨왔다.

“아.”

그러다 명훤은 낮은 탄성을 터트리며 서둘러 손을 떼어냈다. 마치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갑자기 떨어진 온기에 주언이 명훤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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