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공을 피하는 시한부의 삶이란-78화 (78/112)

#78

“절, 절대 혼자 안 죽어. 다 마, 망쳤어! 비겁해!”

몽마가 인상을 사정없이 구겼다. 두 눈에 피눈물이 맺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정신 공격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몽마는 몽마답지 않은 선택을 했다.

우우우웅…….

허공에 무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검이 하나였으나,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검의 개수가 늘어났다. 곧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무기가 허공에 떠올라 두 사람을 조준했다.

두 사람을 벌집처럼 만들어 버리겠다는 몽마의 굳은 의지가 보였다. 마지막 발악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일단 이거부터 해결하고 얘기하자.”

“지금 얘기해.”

“지금 이 상황에서?”

“또 도망칠 거잖아.”

“안 도망가.”

주언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명훤은 여전히 주언을 불신하는지 주언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두 사람의 손가락이 얽어졌다.

“다 진짜 무기는 아닐 거야.”

“그래.”

문제는 다 진짜처럼 보여서 가짜를 분별해낼 수 없다는 것이고, 무기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모든 방향에서 날아오기 때문에 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네 능력을 써서 터트려버리면, 터지는 게 환상이 아니라 진짜 무기겠지.”

“우리가 안에 있고 사방으로 동시에 공격하는 건 안 돼.”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하면 안 된다.

“…내가 짐이 됐네.”

명훤 혼자 있더라면 폭발을 일으켜 무기를 모두 태워버렸을 텐데, 그 능력을 쓰면 능력에 대한 내성이 없는 주언이 휘말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다른 묘안이 필요했다. 아주 잠깐의 시간 끝에 주언이 명훤에게 말했다.

“명훤아 능력을 한 번만 허공으로 쏴 줘.”

“무기를 향해서가 아니라?”

“한 몇 초만 무기에 안 닿게 허공에 쏴주기만 하면 돼. 신호탄처럼.”

“어차피 몽마 영역 안이라 안 보일 텐데.”

“얼른.”

주언의 재촉에 명훤이 능력을 허공에 대고 쏘았다.

슈우우욱.

퍼어엉.

“히, 히힉! 밖에서는 아, 안 보이는데!”

몽마는 두 사람의 곤란한 얼굴에 경기를 일으키는 것처럼 웃었다. 쓸데없는 행동을 보는 것도 이제 질렸는지 몽마는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았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몽마가 광기 어린 목소리로 비명 질렀다. 검이 일제히 두 사람을 향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언은 망설임 없이 명훤의 오른쪽을 막아서며 눈을 질끈 감았다. 명훤은 능력을 신호탄으로 쓴 게 아니었다.

‘유일하게 예리하게 빛나는 검이 명훤이의 능력이 반사된 검.’

그게 진짜 검이다. 주언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고통을 기다렸으나 한참이나 지나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

흘끗 실눈을 뜨자 이미 무기는 사라진 후였다.

타앙.

깔끔한 총성과 함께 몽마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무기는… 어디에….”

그러고 보니 자신은 분명 몽마를 등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눈을 뜨자마자 명훤의 능력에 맞은 몽마가 보였다.

설마 하는 시선으로 고개를 숙이자 명훤의 배에 꽂혀 있는 검이 보였다.

“여명훤… 이게 뭐야.”

주언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려 나왔다.

“내가 너 다치는 꼴 보느니 죽고 말지.”

그럼 너도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테니까.

명훤이 비죽 웃었다.

푸욱.

허공을 가르는 검이 명훤의 몸을 꿰뚫었다.

**

강노훈이 도착했을 때는 던전의 입구가 굳게 닫혀 있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상태였다.

“빨리 들어가서 구조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주변에 깔린 기자 중, 겁 없는 한 명이 출입금지 구역까지 따라 들어와 공격 1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공격 1팀은 현재 던전을 몇 바퀴나 돌고 있었다. 보통 던전과 다르게 들어가는 곳이 나오지 않았다. 호텔을 둘러싸고 있는 연기는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을 모두 튕겨냈다. 그 사이에 틈조차 보이지 않아 공격 1팀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아니. 입구가 없는데 어떻게 들어가요.”

강노훈이 억울한 목소리로 토로했다. 딱 한 번 입구 같은 곳을 발견한 적도 있지만, 안에 들어가는 순간 다른 엉뚱한 곳으로 나오게 만드는 함정이었다.

“그럼 공격 1팀도 감당할 수 없는 던전이 수도 도심에 나타났다는 뜻일까요?”

자극적은 뉴스 기사가 나올 예감을 느꼈는지 기자가 아까보다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져왔다. 강노훈이 살짝 당황한 사이, 서윤진이 강노훈에게 뒤에 있으라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 일반인 출입 금지되어 있는데 여기까지 들어오시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강노훈은 서윤진의 말에 제 잘못을 인지하곤 숨도 조심스럽게 쉬며 그녀의 뒤에 섰다. 강노훈을 보고 눈을 빛내던 기자도 서윤진의 싸늘한 시선에 한발 물러섰다.

“그건….”

“여기서는 저희가 일반인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없거든요. 일반인이 법 어기고 들어온 거라서.”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아뇨. 협박처럼 들렸나요?”

서윤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떻게 그런 무서운 말을 하느냐며 발뺌했다.

“분명 방금…!”

“저희는 바빠서 더 이렇게 있을 시간이 없네요.”

서윤진은 이 이상 대화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대로 다시 길을 나섰다. 기자는 약이 오른 듯 씩씩거렸으나 더 따라오진 않았다.

“팀장님.”

윤진이 굳은 목소리로 부르자, 답답한 마음에 기자의 말에 대답했던 노훈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윤진 씨가 팀장 할래?”

“아니. 저기 금이 간 곳이 있는데요?”

윤진이 가리킨 곳에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금이 보였다.

“연기에 금이 갈 수도 있나?”

“보통 연기가 아니니까 날 수도 있겠죠.”

“그런가?”

“일단 여기 공격을 퍼부어 봐요.”

윤진이 손을 뻗었다. 손안에 전기가 파지직 타올랐다. 생긴 균열 속으로 전기를 쑤셔 넣자 연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물러나!”

위험을 감지한 강노훈이 능력을 이용해 팀원들 모두를 밀어냈다. 갑작스러운 바람에 균형을 잃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이지우가 너무 거친 거 아니냐고 한마디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거대한 굉음 소리가 공기를 찢어발기듯 울렸다.

퍼버버버버벙!

퍼어엉!

퍼퍼퍼펑!

연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공격을 쏟은 윤진에게 연기가 자석처럼 달라붙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오랜 던전 생활로 저걸 없애야 된다는 걸 판단한 공격 1팀은 그 짧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츠츠츠츠츠츳!

“윤진 씨!”

“네!”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몇 년간 함께해왔던 두 사람은 전투에서만큼은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잘 알 정도로 서로의 공격 스타일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찌지지직.

쨍그랑!

연기가 찢기고, 깨지고, 흩어졌다. 순식간에 연기가 흩어지고 L 호텔이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공격 1팀이 가장 먼저 크리스털 홀에 들어갔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목숨에 지장 없어요.”

“다행이네.”

가장 앞서나간 강노훈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안심하며 안쪽에 있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비릿하고,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바닥이 질척했다.

“주언 씨…?”

강노훈이 무언가에라도 홀린 것처럼 멍한 얼굴로 눈앞의 인물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얼룩져 형편없는 몰골이었지만, 몇 년이 지났음에도 한 번에 알아봤다.

“아니. 주언 씨가… 왜 여기에… 아니 어떻게….”

강노훈이 질문도 완성시키지 못한 채 멍청한 질문을 했다.

“팀장님. 나중에 다 설명해드릴게요. 그런데….”

강노훈의 부름에 주언이 애원하듯 말했다.

“진짜 주언 씨야? 명훤이는 왜 누워있어?”

그제야 노훈이 주저앉아 있는 주언의 무릎 위에 명훤이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

“저, 저 대신 칼에 맞았어요. 살려 주세요.”

주언이 비명처럼 소리를 지른 후에야, 명훤의 몸이 피범벅이라는 걸 발견했다. 너무 큰 충격에 이성적인 생각이 마비됐다.

이 와중에도 명훤은 주언의 옷을 절대 놓지 않고 있었다.

“팀장님!”

저 뒤에서 서윤진이 뒤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강노훈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설명은 나중에 들을게.”

“…….”

“윤진 씨. 일단 구급팀부터 급하게 불러줘요!”

**

명훤은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깊은 잠을 잤다기보다는 죽었다 살아난 거에 가까웠지만.

명훤이 눈을 뜬 시간은 동이 트기 시작한 새벽이었다.

왜 병원에 있는 거지, 에서 시작된 생각은 순식간에 명훤이 정신을 놓기 전 순간까지 도달했다.

벌떡.

명훤이 몸을 곧바로 일으켰다. 칼에 깊이 찔려 심한 통증이 느껴졌음에도 명훤은 일어나려 애썼다.

“그때… 네가 각인하자고 할 때 할걸. 가끔 그런 생각해.”

창문을 살짝 열어 놨는지 새벽바람이 병실로 들어왔다.

“주언아.”

주언은 침대맡에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각인?”

그 말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명훤이 아랫입술을 축였다. 희망이 짓밟히는 건 익숙해서 곧바로 그 말을 받아들이는 대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라면….”

명훤의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훈련생 때.”

주언이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거칠게 손등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주언의 말에 명훤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힘들고 괴로웠는데 이 순간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그 나락으로 떨어졌던 일조차 괜찮은 것처럼 느껴졌다.

“우주언.”

아주 작은 몸짓 하나면 됐다. 명훤이 화라도 난 사람처럼 입매를 쓸었다.

“응.”

“내가 아는 우주언이야?”

그의 목소리 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끄덕.

끄덕임 한 번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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