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지은이│톨쥬
펴낸곳│비욘드
투고메일│[email protected]
ⓒ 톨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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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세상은 때때로 이유 없이 악의적이다.
이것은 아이가 최초로 얻은 깨달음이었다.
벌써 이틀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밥을 구걸해 봤지만, 돌아온 것은 냉대뿐이었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낡은 초가집이었다. 마을에서 인정 많기로 소문난 노파가 홀로 사는 곳이었다. 먹다 남은 밥이라도 좋으니 제발요, 아이가 사정하자 노파는 말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노파를 기다렸지만, 노파는 밥그릇 대신 커다란 대야를 들고 나왔다. 구정물을 뒤집어쓴 아이는 싸리 빗자루로 온몸을 두들겨 맞았다.
“이놈! 누구 동티 옮으라고 여길 들어와, 썩 꺼지지 못해?”
아이는 아무것도 몰랐다. 자신의 이름도 몰랐고, 부모의 얼굴도 몰랐으며, 사람들이 왜 자신을 미워하는지도 몰랐다. 유일하게 아는 건 자신의 눈에는 보이는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아이를 ‘저주받은 녀석’, ‘귀신의 씨를 빌려 태어난 요물’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모두 아이가 귀신을 불러들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들이 아이를 미워하는 만큼, 아이도 그들이 미웠다.
아이는 마을 뒷산으로 내달렸다. 작고 마른 몸 곳곳에 생채기가 가득했다. 산등성이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자 커다란 고목이 보였다. 고목나무 아래에선 작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홀로 남은 아이는 쪼그리고 앉아 몸을 떨었다. 서늘한 바람이 물기에 젖은 누더기를 간간이 헤집고 지나갔다.
아이는 언제나 혼자였고, 춥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허락도 없이 침묵을 깨트리는 건 늘 귀신뿐이다.
‘인간은 너를 무서워해.’
‘넌 우리 편이야.’
‘왜 대답이 없어? 응? 응? 응?’
“시끄러워.”
아이는 무릎 사이로 머리를 파묻은 채로 중얼거렸다.
‘인간들은 왜 너를 미워할까?’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지.’
‘너는 어쩌면 인간이 아닐지도 몰라.’
“입 닥쳐. 한마디만 더 해 봐,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거야.”
아이는 진심이었다.
‘…….’
‘…….’
‘…….’
조잘거리던 목소리가 일시에 멈췄다. 산속은 고요했고, 풀벌레조차 숨을 죽인 채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우우, 멀리서 올빼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환청 같았다. 아이는 어깨를 감싸 쥐었다. 인간이고, 귀신이고 다 꼴 보기 싫다. 차라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을 뽑아 버리면 좀 나을까?”
아이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음? 그럼 안 되지.”
어김없이 들려온 음성에, 아이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꾸했다.
“한 번만 더 말 걸면 가만 안 둔다고 했지.”
“이런, 오해를 샀구나.”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서 있는 것은 흑색 장포를 입은 장신의 사내였다. 귀신이 아니었나? 아이가 경계심 어린 눈으로 사내를 노려보았다. 낯선 사내는 달빛을 등지고 서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겁내지 않아도 된단다. 나는 너와 같은 인간이거든.”
사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보아하니, 너는 귀재로구나.”
“……귀재?”
“그래.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부르지. 아,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보이는 사람을 얘기한단다. 너처럼, 그리고 나처럼.”
아이는 말없이 추위에 굳은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흘려듣는 것처럼 보였으나 아이는 사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인간과 제대로 말을 섞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귀재(鬼才)란 무슨 뜻일까?”
난데없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귀신을… 볼 줄 아는, 재주….”
무척이나 작은 목소리였다. 아이가 사내의 눈치를 살폈다. 어둠에 가려 사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아이는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글을 배웠니?” 사내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그것도 말이 되는구나. 본디 귀재라 함은, 흡사 귀신과도 같은 탁월한 재주를 지녔다는 의미로 쓰이나…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네가 말한 의미도 될 수 있겠지. 까막눈치고는 꽤나 그럴싸한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영민한 아이구나.”
사내가 빙그레 웃으며 속삭였다.
“허나, 우리가 말하는 ‘귀재’는 다른 한자를 쓰거든. 때문에 뜻도 살짝 다르단다. 귀신의 귀(鬼)가 아니라, 고귀하다는 말의 귀(貴)를 쓰지.”
사내가 말을 멈추고 허리를 굽혔다. 꿇어앉은 사내가 손을 뻗자 아이는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나 사내는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귀한 재주를 가진, 고귀한 사람이라 하여 귀재(貴才)라 한단다.”
말을 마친 사내는 우물을 들여다보듯 유심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사내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곧고 맑은 눈이었다. 사내는 한참 만에 몸을 일으키더니 입고 있던 흑색 장포를 벗기 시작했다. 서늘한 바람에 옷자락이 펄럭거렸다.
사내는 흑색 장포를 아이의 어깨에 둘러 주고는, 큼지막한 손을 내밀어 보였다.
“귀한 아이야, 나와 함께 가겠니?”
우우우, 또다시 멀리서 올빼미가 울었다.
환청이 아니었다.
#01
1부
옛사람들은 모든 재앙과 질병이 귀신으로부터 비롯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생사를 맴도는 공포가 만들어 낸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귀신이란 불완전하면서도 인간을 초월하는 괴악한 존재였다. 귀신은 구천을 떠돌며 인간들의 틈에 섞여 들어 세상을 어지럽혔다. 육체를 떠난 혼백은 숨결처럼 가볍기 마련이었으나, 앙금처럼 남아 있는 미련의 무게란 육중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허나 범인의 재주로는 항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미신적인 금기 따위를 지키는 것이 고작이요, 무용한 호구지계에 불과하였으니, 유일하게 기댈 곳이라고는 같은 인간 중에서도 귀신을 볼 수 있는 재주를 가진 몇몇의 인간, 귀재(貴才)뿐이었다. 이들은 배척당하면서도 때로는 떠받들어지는 존재였다.
귀재로 태어난 자는 대개 무당이 되거나 속세를 떠나 불법에 귀의했으나, 드물게 나라의 부름을 받는 일도 있었다. 바로 나례를 행하는 나자(儺者)가 되는 경우였다.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민간뿐만 아니라 궁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궁중에서는 섣달 그믐밤마다 악귀를 몰아내기 위한 대대적인 의식을 베풀었는데, 이를 가리켜 ‘나례(儺禮)’라 하였다.
나례청에 소속된 나자들은 나례를 주관하는 동시에 악귀로 인한 변고와 재액으로부터 힘을 다해 궁궐을 수호했다. 이들은 여러 궁중 행사에도 동원되었으며, 임금이 행차하거나 외국 사신을 영접할 적이면 행렬을 따라 악귀를 물리쳤다.
그런가 하면, 행렬의 선두에서 신명나게 춤을 추며 길을 여는 이가 있었으니, 한 나라의 군주로 하여금 마땅히 경외케 할 신령(神靈)의 기백을 지녔음이라.
그는 두 쌍의 눈을 가졌으며, 한 쌍의 눈으로는 이승을 들여다보았고 나머지 한 쌍으로는 저승을 들여다보았다. 손짓 하나면 산천초목의 모든 귀신이 줄행랑을 치고 아둔한 머리를 조아렸다. 인간과 귀신을 아우르는 나자들의 우두머리이자 악귀를 쫓아내는 신(神), 그 이름은 ‘방상시(方相氏)’라 하였다.
구나세전驅儺世傳 발췌
자전거 한 대가 저녁으로 물든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이 자전거 탄 남자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고 지나갔다. 남자는 주차된 순찰차들 사이를 가로질러 한쪽 구석에 마련된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웠다.
“홍 순경 일찍 왔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때마침 김 경장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복 차림인 것을 보니 이제 퇴근하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김 경장은 대답 대신 손을 흔들어 보였다.
“김 경장님, 아직도 퇴근 안 하셨어요?”
“아휴, 말도 마라. 사건 하나 터져서 계속 붙잡혀 있었어.”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남들처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웬만한 일에는 면역이 생겨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늘 무던한 반응을 보이던 김 경장이 간만에 혀를 내둘렀다.
“무슨 일인데요?”
“아까 병원에서 난동 부리는 사람이 있다고 신고 들어와서 출동했었거든. 그래서 신상 받아 봤더니, 아마 홍 순경도 들어 봤을걸? 그 주경 건설이라고 있지? 거기 사장이더라고.”
주경 건설은 자수성가한 젊은 사장 덕분에 유명세를 탄 회사였다. 회사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업체들을 인수 합병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얼마 전에는 지자체가 투자하는 골프장 리조트 입찰에 성공하면서, 주가가 확 뛰어 뉴스를 타기도 했다.
“대박. 그럼 완전 거물 아니에요?”
“어, 거기 사장 아들이 올해 여섯 살인데 폐렴 때문에 병원에 입원 중이었대.”
말을 멈춘 김 경장이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걸쭉하게 빨아들였다.
“어제만 해도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어. 그래서 사장이 병원 탓이라고 쌩난리를 쳤나 봐. 눈이 훼까닥 돌아서 의료 장비고 뭐고 다 때려 부수고 의사까지 두들겨 패더라.”
아이고… 홍 순경이 혀를 차며 물었다.
“병원 측 과실인 건 확실한 거예요?”
“바로 그게 문제인 거지. 약물 기록 확보해서 넘겼는데, 병원 말대로 문제 될 만한 부분은 없다고 결론이 났어. 검사를 해도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으니 원인을 알 수가 없다는 거야.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홍 순경이 덩달아 심각한 얼굴을 했다.
“그러게요. 정말, 그러네요…….”
“병원은 병원대로 난리지, 사장은 사장대로 난리지. 어휴,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저희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더니 뭐, 자기 꿈이 증거라는 둥 이상한 헛소리까지 하더라니까.”
“그건 또 뭔 소리래요?”
“사장이 간밤에 꿈을 꿨단다. 꿈에서 누가 아들을 데리고 가더래. 뒤쫓았는데 중간에 넘어지는 바람에 그대로 놓쳤다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예지몽을 꾼 거라면서, 진작 병원을 옮겼어야 했느니 뭐니, 악다구니를 써 대는데… 어휴,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꿈에서 넘어진 상처라면서 무릎에 난 멍 자국까지 보여 주더라니까.”
김 경장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본인이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에이,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딨어요.”
홍 순경은 별 뚱딴지같은 소릴 다 듣겠다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경찰서는 온갖 인간 군상의 희로애락이 범람하는 장소이자, 매일 새롭게 밀려드는 사건 사고의 최전방이었다. 오늘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펼치며 해결을 바라는 경우도 허다했다.
홍 순경은 구구절절 설움을 토로하는 김 경장을 살갑게 다독거렸다.
“잘 해결되겠죠. 걱정 마세요.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어요, 김 경장님.”
한참이나 넋두리를 늘어놓던 김 경장은 이만 가 봐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김 경장을 배웅한 홍 순경은 곧장 탈의실로 향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했기 때문인지 탈의실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홍 순경은 곧바로 탈의실 문을 걸어 잠갔다.
홍 순경이 문 너머로 감각을 집중했다. 귀를 세우고 발소리를 살폈으나 다행히 별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 든 홍 순경이 액정 화면을 가볍게 터치했다. 120.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귓가에 갖다 대자 익숙한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 안녕하십니까? 서울시 120다산콜센터입니다. 교통은 1번, 수도는 2번, 일반 행정은 3번, 서울시와 구청 전화번호 안내는 4번, 직장맘 고충 상담은 5번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홍 순경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다이얼을 눌렀다.
12345.
누른 숫자는 다섯 개 전부였다.
- 잘못 누르셨습니다. 교통은 1번, 수도는 2번….
안내 멘트가 채 끝나기도 전에 손이 움직였다.
1122334455.
이번엔 처음과 달리, 하나의 숫자를 연달아 두 번씩 눌렀다.
- …….
수화기 너머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방금처럼 잘못 눌렀다는 안내 멘트도 없었다. 그러나 홍 순경은 전화를 끊는 대신 입술 거스러미를 뜯으며 묵묵히 휴대폰을 귓가에 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상태로 몇 분이나 지났을까. 정적을 깨고 안내 멘트가 불쑥 흘러나왔다.
- 상담사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달칵, 소리와 함께 수화기 너머로 현장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상담사는 그 흔한 인사는커녕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제대로 연결이 된 건지 의문이 들 법한 상황이었다. 홍 순경은 주위를 한 번 더 확인한 뒤, 휴대폰을 고쳐 잡았다.
“황금빛 탈을 쓴 바로 그 사람이로다. 구슬 채찍 휘두르며 귀신을 부리네. 빠른 걸음, 조용한 모습으로 운치 있게 춤추니. 너울너울 춤을 추는 봉황새와 같도다.” <대면大面> (신라 말기, 최치원의 《향악잡영鄕樂雜詠》 수록.)
말을 마치자마자 사무적인 음성이 귓가로 꽂혀 들었다.
- 나례청 상황실입니다. 용건을 말씀하세요.
휴대폰을 쥐고 있던 홍 순경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례청 암행부 제3팀 소속, 나자(儺者) 홍민재입니다. 좌표 21에 6, 사건 분류 ‘라’형. 축역부의 지원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 내용 보고 하십시오.
홍 순경, 아니, 나자 홍민재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혼(魂) 납치 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