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4)화 (4/348)

#04

얌생이는 녹슨 철문을 등지고 선 채 밀려오는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런 야심한 시각에, 그것도 이렇게 인적 드문 곳에 당최 누가 찾아온다는 건지 모를 일이다.

얌생이는 폐공장 입구에 서서 보초를 서는 중이었다. 오래전에 버려진 데다 주변에 인가는커녕 가로등 하나 없는 외진 곳이었다. 새까만 어둠을 밝히는 건 희미한 달빛과, 찌그러진 드럼통 안에 엉성하게 지펴 놓은 불길이 전부였다.

그때, 등 뒤에서 육중한 철문이 열리며 털모자를 쓴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얌생아. 교대할래?”

“아냐.”

그는 됐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철문을 닫고 나왔다. 곁에 나란히 선 털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황량한 공터 위에는 여기저기 널브러진 목재 더미와 맞은편에 주차해 놓은 봉고차 한 대뿐이었다. 어둠 속을 응시하던 털모자가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돌려 얌생이를 쳐다보았다.

“하지 마.”

“뭘?”

“방금 휘파람 불었잖아.”

뜬금없는 소리에 얌생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언제? 나 휘파람 불 줄 몰라.”

“어? 잘못 들었나.”

털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얌생이가 말했다.

“바람 소리 아니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늘한 바람이 공터를 휩쓸고 지나갔다. 털모자가 움찔 몸을 떨었다.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갑자기 한기가 드는 느낌이었다. 바람결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얌생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은?”

털모자가 대답 대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얌생이는 착잡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 봤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걸까. 얌생이는 짧지 않은 기간 형님, 김성훈을 곁에서 봐 왔지만 오늘처럼 그가 낯설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제 아침부터였다.

얌생이가 알고 있는 김성훈은 쾌활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물론, 주먹 쓰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렇듯 무식한 게 흠이긴 했다. 말 많고 부하들 놀려먹는 걸 좋아하던 김성훈은 어제부터 완전히 딴 사람 같이 굴었다. 혈색이 돌던 얼굴은 하루아침에 퀭한 안색으로 변해 있었으며, 먹지도 않고 웃지도 않았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모두가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김성훈은 대답 대신 눈만 형형하게 뜰 뿐이었다.

오후가 되자 그는 어딘가 다녀온다는 언질 한 번 없이 자리를 비웠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반나절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사무실에 돌아온 김성훈은 부하 하나를 시켜 차를 대기시켰다. 어디를 가는 것이냐고 물어도 손가락을 들어 방향만 가리킬 뿐이었다. 그가 지시하는 대로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문을 지키라는 명령과 함께 덧붙인 말은 그저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누굴 기다리라는 건지 평소에는 해 줬을 법한 설명도 없었다. 무뚝뚝하게 지시를 내린 그는 건물 안 창고로 향했고, 부하들이 그 뒤를 따르자 홀로 있겠다며 전부 내보내기까지 했다. 전에 없이 험악한 기백에 누구 하나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부하들은 번갈아 교대를 하며 문을 지켰다.

영문도 모른 채로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적잖은 곤욕이었다. 얌생이가 뻐근해진 목을 좌우로 꺾어 가며 긴장을 풀고 있을 때였다. 털모자가 대뜸 얌생이의 어깨를 퍽, 때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아, 이 새끼가 진짜 뒈질라고.”

“왜, 또?”

“어디서 개뻥을 까고. 와, 이 새끼. 연기해도 되겠네.”

털모자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뭐가.”

“뭐긴 뭐야, 새꺄. 그만해라, 이제 안 속는다.”

“뭐라는 거야. 알아듣게 말을 해.”

“방금 또 휘파람 불었잖아.”

얌생이가 대번에 정색을 했다.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이었다. 그에 피식거리던 털모자가 서서히 웃음기를 지워 냈다. 분명히 휘파람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이한 감각이 털모자의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아까부터 웬 휘파람 타령이야?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얌생이가 미간을 구기며 입을 열 때였다.

팟-!

순식간에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갑작스러운 빛에 얌생이와 털모자가 허겁지겁 눈을 가렸다.

“뭐, 뭐야?”

철문 맞은편에 주차해 놓은 봉고차에서 강렬한 헤드라이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얌생이가 질끈 감았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간신히 눈을 뜬 얌생이가 목도한 것은,

차체 위에 서 있는 낯선 인영이었다.

낯선 인영은 헤드라이트 불빛 뒤에 있는 탓에 어둠에 잠겨 잘 보이지 않았다. 희미하게 형체만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형님이 기다리라고 한 사람인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 혼란스러워진 얌생이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낯선 인영은 차체에서 본네트 위로 훌쩍 뛰어내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한 구두 앞코였다.

“누, 누구야!”

뒤늦게 낯선 인영을 발견한 털모자가 고함을 내질렀다. 낯선 인영은 본네트에서 미끄러지듯 가볍게 내려오더니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훤칠한 키에 잘빠진 남색 슈트를 차려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고 있었다. 격식 있는 외양과 어울리지 않는 삐딱한 자세였다. 남자가 팔을 들어 어깨 근처로 큼직한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하이?”

윤태희가 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

***

얌생이와 털모자는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멍하니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근사한 옷차림에 걸맞지 않은 괴상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잔뜩 휘어진 눈썹, 곡선으로 뻗은 눈, 비뚤어진 주먹코, 그리고… 싱글벙글한 표정.

그건 가면이었다. 남자는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전통 탈을 쓰고 있었다. 탈의 하관이 뚫려 있는 탓에 반듯한 턱, 그리고 미소 띤 입술이 보였다. 각 잡힌 슈트에 빛바랜 전통 탈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기괴한 조합이었다. 어딘지 공포스럽기까지 한 모습에 둘은 멍하니 굳어 있었다.

“방금 무슨 소리야? 누구 왔어?”

그때, 얼어붙어 있던 두 사람의 등 뒤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안에서 나오던 사내가 기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정면에서 쏴 대는 헤드라이트 때문이었다.

손으로 빛을 가리던 사내가 윤태희를 발견하고는 앞선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빡빡 민 사내는 털모자에게 상황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으나, 털모자는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만 내저을 뿐이었다. 빡빡이가 잔뜩 경계하며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혹시 형님이 불러서 오셨습니까?"

윤태희는 말없이 부하들의 발밑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셋 모두 발밑에 그림자가 붙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인간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형님, 형님, 하는 꼴을 보아하니…. 눈치 빠르게 상황을 짐작한 윤태희가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현장 조사를 마친 암행부의 보고는 이러했다. 병원에 입원 중이던 아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약을 먹은 뒤 잠에 빠졌다. 아이의 친모는 깊게 잠든 아이를 두고 잠시 병실을 비웠고, 그 잠깐 사이에 아이 홀로 남은 병실에 누군가 찾아왔다는 거다.

병실을 찾은 누군가는 아이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단, 특이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아이가 평소에 아끼던 인형을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인형을 집어 든 누군가는 그대로 병원을 빠져나갔다. 여기까지가 병원 씨씨티비에 녹화된 영상으로 확인한 내용이었다.

암행부는 그 뒤를 은밀히 추적했다. 병실에 찾아온 사내의 이름은 김성훈. 주경 건설과 아무런 연고도 없을뿐더러 부하 몇 명을 거느리며 조폭 흉내나 내고 다니는 동네 건달로, 일개 범인(凡人)에 불과한 작자였다.

김성훈이 병실을 빠져나간 이후로 아이는 의식 불명에 빠졌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윤태희가 입을 열었다.

“응. 너네 형님 어디 계셔요?”

한참 만에 나온 대답치고는 지나치게 가벼운 말투였다.

안 그래도 험상궂은 빡빡이의 인상이 한층 더 볼썽사납게 변했다. 괴상한 탈, 묘하게 불손한 태도. 모든 것이 수상쩍게 느껴지는 남자다. 하지만 섣불리 판단하긴 일렀다. 형님은 아무런 정보도 알려 주지 않은 상황이었고, 형님을 찾아온 상대가 얼굴을 가린 것을 보니 저희 몰래 비밀리에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의심스럽긴 했지만 찾아오기도 힘든 이런 외진 곳에 때맞춰 나타난 것을 보면 형님이 기다리는 상대가 맞는지도 몰랐다. 형님의 의중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한 상황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빡빡이가 눈짓을 했다. 일단은 형님에게 안내해 주겠다는 신호였다. 윤태희가 뚜벅뚜벅 가까이 다가왔다. 훤칠한 장신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잠, 잠깐만요!”

그때, 머뭇거리던 얌생이가 문 너머로 들어서려던 윤태희를 불러 세웠다. 털모자와 빡빡이가 덩달아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그… 헤, 헤드라이트는… 어떻게 한 거죠?”

얌생이는 입고 있던 패딩을 뒤적거리더니 차 키를 꺼내 들었다.

“차 키는 제가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헤드라이트를 켰습니까?”

얌생이를 제외한 모두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얌생이와 함께 있었던 털모자는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했는지 입을 떡하니 벌린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남자를 보자마자 일순 압도된 나머지 모두가 그의 기묘한 등장을 잊었던 것이다.

차 키도 꽂혀 있지 않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켜고, 소리 없이 차체 위에 올라 서 있던 남자.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은 차가 없으면 올 수 없는 위치였다. 그러나 남자는 맨몸으로 나타났다.

“…….”

탈 아래로 드러난 입술이 천천히 호선을 그렸다.

“그러게요. 어떻게 했을까.”

윤태희가 등을 돌려 얌생이를 마주 보았다. 나머지 세 명이 움찔하며 몸을 물렸다. 빡빡이가 허리춤에 꽂아 놓은 단도에 손을 갖다 댔다. 여차하면 튀어 나가 제압할 심산이었다.

“아, 내가 재밌는 거 보여 줄까요?”

잠시 목덜미를 매만지고 서 있던 윤태희가 뜬금없이 슈트 재킷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조그만 철제 케이스였다. 뚜껑을 열자 안에 든 것은 네모난 포스트 잇이었다.

“이거 엄청 귀한 거예요. 제구부에 사정사정해서 받은 물건이라 웬만하면 안 쓰는 편인데, 오늘은 특별히 보여 줄게요. 왜냐면 지금 기분이 좀 좋거든.”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부하들이 시선을 교환할 때였다. 윤태희는 포스트 잇을 한 장씩 떼어 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떼어 낸 메모지는 총 세 장이었다.

“잘 봐요, 막간을 이용한 깜짝 쇼.”

윤태희는 손바닥을 펼쳐 메모지를 올려놓고는 후, 부드럽게 숨을 불었다. 윤태희의 숨결에 종이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팔랑거리더니, 한 장씩 차례대로 두둥실 떠올랐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허공에 일렬로 떠오른 세 장의 종이들이 동시에 착착 접히기 시작했다. 종이는 접히면 접힐수록 작아졌고, 형태 역시 복잡해졌다.

일련의 과정 끝에 완성된 결과물은 바로 ‘새’였다.

손끝 하나 대지 않았음에도 완벽한 형태였다. 평범한 종이학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머리, 날개, 몸통 모든 부분에 섬세하게 각이 잡혀 있었다.

“인사해요, 이름은 흑망조(黑忘鳥). 말 그대로 날이 밝으면 어두울 때 있었던 일을 전부 잊어버리는 새예요. 그래서 누구는 이 새를 두고 어리석고 불쌍한 새라고 하던데….”

윤태희가 친절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지만, 부하들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털모자는 눈을 비볐다가 볼을 꼬집었다가 온갖 난리를 피우고 있었고, 얌생이와 빡빡이는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윤태희의 예고 대로 이것이 깜짝쇼라면 대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윤태희는 부하들의 반응에도 아랑곳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내 생각은 좀 달라요. 밤은 삶의 시궁창이잖아요. 추악한 일은 대부분 밤에 일어나니까. 보아선 안 되는 것을 보게 되는가 하면, 알아선 안 되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뭐, 그런 의미에서 밤을 잊는다는 건 어리석고 불쌍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지 않을까?”

종이 새 세 마리는 한 치의 미동조차 없었다. 마치 밀폐된 진공 안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윤태희가 천천히 팔을 뻗었다. 살며시 손등을 가져다 대자, 놀랍게도 종이 새 세 마리가 팔랑거리며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을 맴돌던 종이 새들이 윤태희의 손등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자, 그럼… 깡패 새끼 여러분, 쇼는 이만 끝낼까요?”

말을 마친 윤태희가 손끝을 까딱거렸다. 손등에 앉아 있던 종이 새들이 발돋움을 준비하는 것처럼 날개를 접고 몸을 움츠렸다. 윤태희가 엄지와 중지를 부딪쳐 딱, 소리를 냈다.

“나자(儺者)의 이름으로 밤을 몰수합니다.”

윤태희가 성의 없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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