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5)화 (5/348)

#05

종이 새 세 마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총알처럼 세 명을 향해 날아들었다. 겁에 질린 부하들이 기겁하며 흡사 날파리를 쫓아내듯 허공에 팔을 휘둘렀다.

“뭐, 뭐야!”

“으으, 저, 저리 가!”

세 마리의 흑망조는 제각기 세 사람의 머리 근처로 흩어져 사정없이 정수리를 헤집었다. 종이로 만들어진 새의 부리인데도, 마치 진짜 새에게 공격을 받는 것처럼 머리칼 사이로 끔찍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혹여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세 사람은 이미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종이 새를 쳐 내기 위해 격렬하게 몸부림치던 부하들의 움직임이 점차 둔해졌다. 점점 시야가 흐릿해지며 다리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얌생이를 시작으로 한 명씩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할 일을 마친 흑망조 세 마리가 나풀거리며 윤태희의 곁으로 날아들었다. 윤태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바닥을 펼쳤다. 손바닥 위에 앉은 흑망조들은 부리를 벌리고 켁켁거렸다.

종이 새들이 토해 낸 것은 좁쌀처럼 작은 크기의 새까만 구슬이었다. 이 구슬은 하루치 밤의 기억을 쪼아 낸 결실이었다. 저들은 날이 밝으면 평소와 다름없이 잠에서 깨어날 것이며, 마치 필름이 끊긴 것처럼, 간밤에 일어난 일은 전부 잊은 채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고생했어.”

윤태희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종이 새들은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윤태희의 손바닥에 톡톡, 부리를 간지럽게 부딪치며 머리통을 비벼 댔다. 흑망조는 단 하룻밤의 기억밖에 도려내지 못한다. 그것도 처음에만 가능한 얘기로, 한 사람에게 두 번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흑망조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한 사람당 딱 한 번뿐이었다.

강력한 효과를 내는 대신 일회용이라는 제약이 따르는 도구였지만, 모든 것엔 장단이 있는 법이었다. 그래도 뜻하지 않는 상황에 휘말린 범인(凡人)들에겐 흑망조처럼 요긴한 게 없었다. 윤태희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주먹 안에서 파삭,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윤태희는 잠든 부하들을 지나쳐 불을 지펴 놓은 드럼통 근처로 향했다. 그리고는 드럼통 안의 장작불 속으로 망설임 없이 흑망조와 구슬을 털어 넣었다. 정체 모를 땔감을,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착실히 잡아먹었다. 얼마 지나면 전부 재가 될 것이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이번에 접은 녀석들은 그 전 녀석들보다 애교가 많았던 것 같은데. 윤태희는 타는 불길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살짝 아쉽네.”

윤태희가 걸음을 옮긴 것은 그로부터 잠시 뒤의 일이었다.

***

김성훈은 어두운 창고 한구석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어느 순간, 감겨 있던 그의 눈꺼풀이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희미한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부하들을 전부 물리고 창고 안에 틀어박힌 지 몇 시간 째.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김성훈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김성훈이 문을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낡은 나무로 된 문이 끼긱,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문 너머에는 탈을 쓴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앞선 부하들과 달리, 김성훈은 그의 외양을 보고도 딱히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뉘시오.”

김성훈이 긴 침묵 끝에 말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묵묵부답이었고, 탈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의미 모를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소.”

“왜 하필 골라도 그런 놈을 골랐어?”

윤태희는 질문에 답은 하지 않고 대뜸 김성훈을 타박했다. 그리고는 김성훈이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곧바로 말을 꺼냈다.

“주경 건설이 요즘 골프 리조트 공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건 유명한 얘기야. 신생 건설사임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의 투자를 받아서 멋지게 사업 유치에 성공했고, 그 결과 산 하나를 깎아 가며 열심히 건물을 짓고 있지. 나무고 바위고 싹 다 밀어 버리면서 말이야. 그런데 이를 어쩌나, 바위 하나를 잘못 건드려 버렸네?”

김성훈은 태연자약하게 말을 늘어놓는 윤태희를 묵묵히 응시했다.

“근데, 하필이면 그게 산중 깊은 곳에서 몇백 년간 자리를 지켜 온 바위였던 모양이야. 어쩌면 옛사람들이 손을 빌던 바위였을 수도 있지. 오래된 자연물에는 정기가 깃들기 마련인데 만약 숭배까지 받았다면, 신령 하나가 몸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고도 남는 상황인 거야. 요즘 사람들은 당연히 미신 취급하며 코웃음 칠 이야기겠지만.”

윤태희가 천천히 팔을 들어 쓰고 있던 탈에 손을 갖다 댔다.

“오래된 나무나 바위에 손을 댈 때는 신령이 노하지 않도록 제사를 지내거나 부적을 써서 달래 줘야 한다는 사실을, 주경 건설의 사장은 무시했을 거야. 어느 정도 연식이 있는 다른 건설사에서는 속는 셈 치고 제사를 지내는데, 젊은 사람 눈에는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겠어? 결국은 그게 화근이 되었던 거고. 주경 건설의 귀한 도련님은 오랫동안 병을 앓아 육신이 약해져 있었는데, 혼백을 붙잡아 놓을 힘이 흐려진 상황이라 화풀이 대상으로 더할 나위 없었지. 그릇을 잃은 신령은 지나가던 인간의 몸에 들어간 뒤, 아이에게 접근해 혼을 빼돌린 거고.”

말을 마친 윤태희가 탈을 벗으며 맨얼굴을 드러냈다.

“자, 여기까지가 내 시나리오야. 어떻게 생각해?”

어스름한 달빛이 윤태희의 얼굴을 찬찬히 비췄다. 탈 속에 숨겨져 있던 그림 같은 외모를 확인한 김성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바로 세웠다. 김성훈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윤태희에게 다가섰다. 윤태희는 가까워진 거리에도 눈 깜짝하지 않았다. 윤태희와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줄곧 침묵하던 김성훈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훌륭하십니다, 태희 님.”

김성훈이 무릎을 굽혀 앉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뭐… 나야 늘 훌륭하지.”

윤태희가 한 손으로 탈에 눌려 있던 앞머리를 흐트러트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다른 손에 들고 있던 탈을 김성훈에게 건넸다. 들고 있으라는 무언의 지시였다. 그리고 김성훈은 무척 익숙한 태도로 그 탈을 받아 들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으셔서 무슨 문제라도 생긴 줄 알았습니다.”

“그랬어? 실랑이가 길어져서 좀 늦었어.”

“해서, 휴가는 잘 받아 내셨습니까?”

“당연하지. 누가 짠 판인데.”

다른 누구도 아닌 수석 윤태희가 나서야만 하는 상황이어야 했다. 거기에 하필이면 윤태희는 자리에 없어야 했으며, 아쉬울 것 없는 윤태희가 부탁을 ‘들어주는’ 입장이 되는 게 중요했다.

그야말로 무언가를 얻어 내기에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석주련 부장은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잘 속아 넘기셨군요.”

“봐 온 세월이 몇 년인데. 석 부장은 부하를 끔찍이 여기는 사람이야. 자칫하면 부하들 밥줄 날아가게 생겼는데 석 부장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그러면서도 남을 잘 못 믿는 성격이라 도박은 하지 않아. 어떻게든 확실히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쓸 거고, 윗선에 들키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입막음해야 하는 아찔한 상황에, 쓸 수 있는 패야 너무 뻔하지 않나?”

“네, 그건 바로 태희 님이시죠.”

기다렸다는 듯 호응해 오는 김성훈의 대답에, 윤태희가 피식거렸다.

“넌 참 잘해.”

“무슨 말씀이신지.”

김성훈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끝까지 완벽하네. 윤태희가 웃음기를 흘리며 친근하게 김성훈의 등을 건드렸다.

“힘들 텐데 이제 나와.”

윤태희가 턱짓을 했다. 거의 이틀 동안 인간의 몸속에 있었으니 말은 안 했어도 꽤나 지쳐 있을 게 분명했다.

“왜 하필 들어가도 그런 델 들어갔어? 죄 없는 사람들한테 주먹질하고 쓰레기 짓이나 하고 다니던 몸이라 기운도 더러울 텐데.”

“마땅한 인간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윤태희의 휴무일에 맞춰 일을 벌여야 했기에 시간을 지체할 상황이 못 되었다. 급한 대로 아무나 붙잡고 들어왔더니, 어디서 시답잖은 졸개들이 나타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그 덕분에 윤태희는 예정에도 없던 인간들을 상대해야 했다. 물론 윤태희는 문제 삼지 않았지만.

김성훈이 몸속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바로 빠져나왔다간 곧장 바닥에 쓰러져 몸이 상할 수도 있었다. 김성훈은 빌린 육체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바닥에 천천히 몸을 눕혔다.

“그냥 나와. 깡패 새끼는 다쳐도 싸.”

윤태희는 반듯한 구둣발로 김성훈의 다리를 무례하게 걷어찼다.

“아, 말 나온 김에 손목 하나 부러뜨릴까.”

“…….”

아무리 그래도 억지로 몸을 빼앗긴 자인데… 김성훈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윤태희는 기본적으로는 상냥한 성정이었지만 가끔 묘할 정도로 싸늘하게 굴 때가 있었다.

“장난이야, 지금 부러뜨리면 너까지 아프니까.”

윤태희가 눈썹 한 쪽을 슥 들어 올리며 바닥에 누운 김성훈을 내려다보았다. 김성훈이 눈을 감았다. 이윽고 김성훈의 명치에서 어두운 연기 같은 것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검은 안개처럼 흩어져 있던 것이 점차 형체를 띄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김성훈에게서 몸을 일으켰다. 불청객이 사라진 김성훈의 몸이 축 늘어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려면 사흘은 걸릴 것이다.

김성훈의 몸속에서 빠져나온 것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사극에서나 볼 법한 옛날 복식을 입은 사내였다. 사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 기척을 따라 고운 비단옷이 펄럭거렸다. 비단옷으로 감싼 육체는 한눈에 보기에도 강건했으나 윤태희와 김성훈, 그리고 바깥에 있던 세 명의 부하들과는 사소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발밑에 그림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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