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집 밖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도사리고 있다.
수많은 인간들, 그리고 과거엔 인간이었으나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것들, 혹은 날 때부터 인간이 아니었던 것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엮이는 것은 딱 질색이다. 소년은 인간이고 귀신이고 상관없이 양쪽 다 공평하게 싫어했다. 어차피 인간이 있는 곳이면 귀신이 있고, 귀신이 있는 곳엔 인간이 있으므로. 고로 인간들이 바글거리는 곳이야말로 기피 장소 1위였다.
소년, 김재겸은 지독한 집돌이였다.
우선 하루의 절반은 잠으로 보냈다. 그리고 깨어 있을 땐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나머지 하루의 절반을 때웠다. 게임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온라인 게임이 아니라 혼자서 하는 콘솔 게임을 주로 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이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재겸은 오랜 시간 마치 공중을 부유하는 먼지처럼 무의미하게 살았다. 살아 있지만 죽어 있는 것처럼. 재겸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언제까지나 방구석에 틀어박혀 이 영원하고 지긋지긋한 청춘을 낭비하고 싶었다.
“내일부터는 17번 버스 타야 돼. 알겠지? 재겸아, 내 말 듣고 있어?”
정주가 잡고 있던 운전대를 탁탁, 소리 나게 두드렸다. 정주는 현재 재겸을 태우고 학교로 향하는 중이었다. 뒷좌석에 찌그러져 있던 재겸이 그제서야 느리게 대꾸했다.
“아니. 안 듣고 있어.”
정주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학교 갈 준비를 하라고 했을 때부터 재겸은 심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이 내린 결정을 내심 후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낙장불입(落張不入)이야. 무르기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주가 선수를 쳤다.
“누가 뭐래? 아무 말 안 했거든. 너나 약속 지켜.”
“아무튼 버스 번호 17번, 17번이야. 꼭 기억해.”
일정이 바쁜 정주는 재겸을 데려다준 뒤 바로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서울에 사는 정주는 사회 적응도 빨랐고, 만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반면에 재겸은 시골이나 다름없는 지방 소도시에서 산 아래 낡은 주택을 개조해 메산이와 단둘이 생활하고 있었다. 집은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었고, 학교가 있는 시내까지는 차로만 족히 20분은 걸리는 먼 거리였다.
재겸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정주로서는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재겸에게 경호원 겸 운전기사를 붙여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재겸은 그 제안을 싹둑 거절했다. 좁은 공간에 알지도 못하는 인간과 단둘이 있느니 걸어 다니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정주는 하는 수 없이 버스 노선을 알아봤다. 당장 내일부터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야 하는데, 구구절절 설명을 해주어도 재겸은 듣는 둥 마는 둥하여 영 못 미덥기만 했다.
재겸이 밖으로 발을 내디디는 건 정주 자신도 오랫동안 바래 왔던 일이다. 하지만 막상 재겸을 학교에 보내려니 정주는 어쩔 수 없이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바라보는 심정이었다. 평소엔 메산이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메산이는 재겸을 제외한 다른 인간은 무서워했다. 그런 메산이가 학교까지 동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주는 쉬는 날이면 항상 재겸을 만나러 왔다. 집 밖에서 나오지 않는 재겸을 대신해 식재료와 생필품을 갖다 나르거나, 밖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기도 했다. 물론 재겸은 이 모든 것을 한 번도 원한 적이 없었다. 전부 정주가 스스로 자처해서 하는 일이었다.
“안 되겠다. 너 휴대폰 하나 만들어.”
재겸은 정주와 메산이를 제외하면 누구와도 왕래를 하지 않았다. 집밖에 나갈 일도 없고, 연락할 사람도 없으니 당연히 휴대폰도 없었다.
“왜?”
“왜긴 왜야! 걱정되니까 그렇지.”
“그럼 걱정하지를 마.”
정주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백미러 속의 재겸을 노려보았다. 에휴, 말을 말자. 재겸은 고집이 엄청나게 셌고, 한번 결정하면 좀처럼 말릴 수 없었다. 학교까지 데리고 나온 게 용한 일이다.
어느새 차는 목적지 근처에 가까이 도착해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학교 정문이었다. 그러나 정주는 학교 앞이 아니라 얼마 정도 떨어진 사거리 근처에 차를 세웠다.
“알지? 나 사람 많은 곳에 못 가는 거?”
정주가 운전하고 온 차는 누가 봐도 수상하도록 시꺼멓게 선팅이 되어 있었다. 장소가 학교 근처라 여차하면 시선을 끌지도 몰랐다. 정주는 재겸이 그렇게도 기피하는 바깥세상에 완벽하게 정착한 사람이었다. 직업은 유명 연예인. ‘유명’은 정주 본인이 꼭 강조해서 붙이는 수식어였다.
정주가 주차 브레이크를 채우며 백미러를 힐끔거렸다.
“아, 맞다! 재겸아, 나 팔로워 200만 넘었다?”
재겸이 어깨에 가방을 둘러메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게 뭔데.”
정주가 눈을 빛내며 설명을 빙자한 자랑을 늘어놓았으나, 재겸은 듣는 둥 마는 둥했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이 나한테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정주는 마치 비밀을 공유하듯, 조그맣게 속삭였다. 요정님. 정주 요정님이래. 시큰둥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재겸이 단박에 얼굴을 구겼다.
“요정? 요정 같은 소리 하네. 짐승 주제에.”
“야, 넌 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정주가 섭섭하다는 듯이 눈꼬리를 내렸다.
“내가 틀린 말 했어? 여우면 여우답게 살아. 사람들 홀려 먹고 뭐 하는 짓이냐.”
“재겸아. 넌 정말 뭘 모른다. 여우는 원래 사람 홀리는 걸 낙으로 살아. 지금 이런 삶이야말로 여우다운 삶이라구.”
“지랄하네.”
“아, 진짜. 너 말 좀 예쁘게 해.”
정주의 타박에 재겸이 심드렁한 얼굴로 귀를 후비적거렸다.
어렸을 땐 저러지 않았는데. 이젠 머리 좀 굵어졌다고 바가지를 긁고 가르치려고 든다. 예전엔 귀여운 맛이 있었는데…….
정주는 호족(狐族) 출신으로, 인간인 동시에 여우였다. 오랜 세월을 살아 영물이 된 노호(老狐)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가 바로 호족이었다. 재겸은 그런 정주를 짐승이라고 놀려 대곤 했지만. 호족의 존재는 베일에 싸여 있어 귀재들 사이에서도 알고 있는 자가 드물었다. 재겸 역시 정주를 만나기 전까진 소문으로 들은 게 다였으니, 말을 다 한 셈이었다.
정주는 여우로서의 삶 대신에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경우였다.
호족의 여우들은 저들끼리 모여 공동체 생활을 했다. 여우들의 마을이자 성채는 인세(人世)에서 약간 비껴간 공간이었다. 여우들의 신묘한 술수로, 호족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다. 성채에 들어가기 위해선 호문(狐門)을 열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정주가 어린 여우이던 시절, 재겸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 번 호문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보통의 호족은 여우로서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호족들은 인간을 자신보다 아래의 존재라고 생각하여 깔보고 경시했다. 그런데, 그런 하찮은 인간들과 살겠다며 스스로 호화로운 성채를 뛰쳐나갔으니… 고고한 호족들이 뒷목을 잡고 넘어갈 일이었다. 발칵 뒤집어진 성채를 뒤로하고, 정주는 인세로 내려와 현대 사회의 어엿한 시민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무슨 일 생기거나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해. 학교엔 내가 절차 다 밟아 놨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방 안에 지갑 넣어 놨으니까 돈은 거기서 꺼내 써. 자, 이건 카드.”
정주가 유광으로 번쩍거리는 신용 카드 한 장을 건넸다. 재겸이 카드를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어떻게 서류를 만들어 냈는지는 몰라도, 정주는 신상 문제까지 깔끔하게 해결했다. 언젠가 정주가 주민 등록증을 발급받은 날, 신난 정주는 펄쩍펄쩍 뛰면서 재겸에게 입이 닳도록 자랑을 했다. 재겸이 오랫동안 방구석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정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재겸이 메산이와 함께 살고 있는 시골집, 거기다 집에 들어오는 전기며 수도며 하다못해 텔레비전 케이블까지 전부 정주의 이름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이었다. 뭐, 여러모로 든든한 녀석이긴 했다. 가끔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게 흠이긴 했지만….
재겸은 카드를 챙겨 넣은 뒤 책가방을 둘러 멨다.
“나 간다. 잘 가라.”
무뚝뚝한 인사를 남겨 놓고 재겸은 차에서 내렸다. 등교 시간이 지난 학교 인근의 거리엔 행인 몇 명이 전부였다. 정주는 차 안에서 멀어져 가는 재겸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잠시 떨어질 일이 있을 때마다 재겸은 항상 저런 식이었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다시는 안 볼 사이처럼 인사를 한다. 그때마다 정주는 왜인지 마음 한 켠이 쓸쓸해졌다.
여우, 정주는 오랫동안 살아온 저 앳된 얼굴의 인간이 조금 더 열심히 살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린 여우였을 때도 재겸은 저 모습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