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15)화 (15/348)

#15

“아, 집에 같이 가자며!”

조영우가 넋이 반쯤 나간 얼굴로 멍하니 재겸을 올려다보았다.

“어? 어, 어어….”

머릿속에선 전후 상황이 온통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었다. 뭐지? 분명히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나는 왜 여기 있지? 재겸이는 먼저 간 거 아니었나? 뒤통수는 왜 이렇게 아픈 거야….

산만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조영우가 식겁해 숨을 들이켰다.

구석진 자리로 물러나 있던 여자가 재겸과 조영우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여자를 발견한 조영우는 하얗게 질린 낯으로 벌벌 떨기 시작했다. 흰자위 없이 새까맣게 물든 기괴한 눈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조영우가 손가락으로 여자를 가리켰다.

“재, 재겸아! 저, 저, 저기….”

기척 하나 없이 접근한 재겸을 보고 당황했던 것도 잠시, 여자는 살기가 흘러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는 누구지?”

멀뚱멀뚱 서 있던 재겸은 여자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조영우에게 시선을 던졌다. 여자가 입을 열자 조영우는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재겸이 대답을 하지 않자 여자가 흉흉한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너는 누구지?”

“누군지 모르면 너, 너, 거리지 말지?”

재겸은 여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로 평이하게 대꾸했다.

“너한테 너, 소리 들을 사람은 아니거든.”

재겸이 허리를 숙여 조영우의 낯빛을 확인했다. 우선은 이쪽이 먼저였다. 맨손도 아니고 귀기를 실은 손으로 뒤통수를 후려갈겼으니 꽤나 아팠을 것이다. 그래도 눈에 초점이 돌아온 것을 보니 일단 의식이 돌아오긴 한 모양이다.

“야, 나 봐 봐.”

“도, 도망쳐야 돼, 도망쳐야 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조영우가 다급하게 재겸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얼씨구.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던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인데 그새 홀려서는…. 이게 다 마음이 약해서 빠져서 그런 거다. 재겸이 속엣말로 투덜거렸다. 만약 옆에 정주가 있었다면 그러는 너도 고작 고기반찬 한 번 나눠 줬다고 마음이 약해져서 여기까지 달려왔잖아, 라고 핀잔을 주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정주는 곁에 없었으며 재겸은 원래부터 자기반성에 서툴렀다.

“도망쳐야 돼, 재겸아…. 저 여자, 눈이 이상해… 그리고 나비, 나비를… 나비를 죽여야 된다고 그러면서, 근데 갑자기 몸이 말을 안 듣고….”

재겸이 다짜고짜 손바닥으로 조영우의 눈가를 덮었다. 재겸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조영우가 버둥거리며 재겸의 손목을 붙잡았다. 손바닥이 조영우의 눈물로 축축해졌다.

“진정해. 됐다고 할 때까지 눈 감고 있어.”

“재겸아! 뭐 하는 거야, 도망쳐야 된다니까….”

“아, 시끄러워! 입도 닫아. 그냥 가만히 있어.”

“그, 그치만….”

재겸이 쓰읍, 소리를 내며 무언의 경고를 했다. 조영우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몇 초가 흘렀을까, 신기하게도 눈가를 덮고 있던 재겸의 손바닥이 점차 시원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미간 정중앙이 간지러우면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손바닥이 닿은 순간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낯선 감각이었다. 조영우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왜인지 재겸의 기세가 험악하여 말을 붙이기가 꺼려졌다.

“아직 안 갔냐?”

대뜸 재겸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서 줄곧 재겸을 관찰하던 여자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되물었다.

“왜 나를 방해하는 거지?”

여자의 말에 재겸이 인상을 쓰며 여자를 노려보았다.

“방해 같은 소리 하네, 방해는 네가 먼저 했잖아.”

“그게 무슨 소리지?”

재겸이 턱짓으로 조영우를 가리켰다.

“애먼 사람 붙잡고 가는 길 방해하고 있잖아.”

조영우는 아까부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왜 갑자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지…? 조영우는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어느새 조영우의 떨림은 완전히 멎어 있었다. 흐리멍덩하던 머릿속 역시 개운했다. 이 모든 것은 재겸의 손이 닿은 순간부터였다.

“말장난도 정도껏 하는 편이 이로울 거야.”

여자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말장난? 내가?”

재겸이 눈동자를 스르륵 굴려 여자를 곁눈질했다. 재겸과 눈이 마주치자, 여자의 표정이 일변했다. 또렷한 눈동자에서 순간적으로 흘러나온 날카로운 귀기가 목을 겨누는 듯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역시 이지(理智)가 점점 흐려지나 봐?”

“…뭐?”

“너도 알고 있지? 아직은 눈뿐이지만, 점점 다른 곳도 형태가 망가지기 시작할 거야.”

“…….”

“아직 원하던 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잡귀가 될까 봐 초조해졌구나. 그치?”

여자의 얼굴에서 점차 표정이 사라졌다.

“이런 별 볼 일 없는 녀석한테 손 뻗치는 거 보면 많이 조급했나 본데. 목적이 뭔지 내 알 바는 아니고. 나비를 없앨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걸 보면 애저녁에 글러 먹은 것 같은데. 그냥 포기하는 게 어때?”

“입 닥쳐.”

여자가 잇새로 뇌까렸다. 새까맣게 물든 눈동자에선 분노가 흘러넘쳤다. 재겸은 저런 눈을 질리도록 봐 왔다. 원한과 증오로 잠식당한 눈. 목소리를 쫓아 골목에 들어서던 순간부터, 굳이 여자의 발밑을 보지 않고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슬프고도 무거운 원념을.

여자는 원귀(寃鬼)였다.

“네까짓 게 뭘 안다고 지껄여. 너만… 너만 없었으면….”

“그래, 그대로 몸을 뺏을 생각이었겠지.”

재겸은 조영우의 뒷모습을 보던 순간, 여자한테 홀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와 동시에 애타게 녀석을 불러 대던 목소리의 출처 역시도.

‘영우야, 영우야….’

애원처럼 들리던 목소리는 조영우의 손아귀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나비였다. 재겸은 그제서야 뒷전으로 미뤄 두었던 나비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투명하고 따스한 기운, 향긋한 냄새, 조영우의 주변을 졸졸 쫓아다니는 그것은 ‘염원’이었다. 재겸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나비를 쫓아낸답시고 잠깐 건드렸을 때, 그 접촉의 영향일 것이었다.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이 세상에 남아 조영우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재겸이 알지 못하는 그는 조영우를 위해 생전에도 무수히 손을 빌어 왔을 것이다.

영우야, 건강해야 해. 영우야, 무탈해야 해, 소중한 우리 영우야. 언제나, 언제나….

“나비가 이 녀석을 지키고 있으니 손을 댈 수 없었겠지. 그렇다고 나비를 없애자니 자칫하면 역으로 당할까 봐 두려웠던 거고. 어떻게든 구슬려서 나비를 떼어 놓을 생각이었겠지만.”

조영우의 손에서 도망쳐 나온 나비는 또다시 녀석의 주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귀인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 낸다. 나비를 응시하던 재겸은 불현듯 생각했다. 그 귀인이라 함은, 재겸 자신이 아니라 어쩌면 저 나비일지도 모른다고. 나비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자신이 여기까지 올 리는 없었을 테니까.

결국 또 점괘에 놀아났네….

재겸이 작게 한숨을 내쉴 때였다. 여자가 이를 악물고 재겸을 노려보았다.

“그래, 네 말이 맞아. 하루하루 생각이 흐려지고, 이러다 나중엔 모든 기억을 잃겠지. 하지만 나는,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어.”

여자의 목소리는 어느새 떨리고 있었다. 사특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는데도, 위협적이라기보단 어딘지 처연하게 느껴졌다. 힘이 약해진 탓이겠지.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잡귀가 될 것이 뻔했다. 여자의 눈에서 먹물처럼 새까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똑같은 간절함이야, 그런데… 왜, 누구는 나비가 되고, 누구는 죽어도 죽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아야 해?”

원귀의 강렬한 감정이 세월에 따라 희석되는 건 어쩌면 잔혹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건 세상이 선사하는, 몇 안 되는 비틀린 친절일지도. 생전의 기억과 과오를 잊는다는 건 그만큼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감한 시선으로 여자를 응시하던 재겸이 조용히 말했다.

“원래 세상은 이유 없이 악의적이야.”

단호함이 묻어나면서도 어딘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렇게 말한 뒤, 재겸은 대뜸 한쪽 손을 들어 넥타이를 주섬주섬 풀기 시작했다. 아침에 정주가 매어 준, 역시나 값비싼 원단으로 만든 넥타이였다. 재겸은 넥타이를 입에 앙, 가볍게 물었다가 놓았다. 그리고는 대충 둘둘 말아 여자를 향해 던졌다. 허공에서 넘실넘실 날아든 넥타이를 받아 든 여자가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눈을 깜빡거렸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

“재, 재겸아….”

한참이나 부동 자세로 있던 조영우가 입술을 달싹였다. 재겸의 말대로, 여지껏 눈도 입도 닫은 채 가만히 있었다. 꼭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암흑 속에 있으니 상황을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왠지, 지금쯤이면 입을 열어도 괜찮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저, 저기. 재겸아…?”

그때, 눈가를 덮고 있던 미지근한 온기가 살며시 떨어져 나갔다. 오랫동안 닿아 있던 손바닥이 사라지자 눈가가 허전했다. 그와 동시에 멍멍하던 귓속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눈 떠도 되나? 잠시 망설이던 조영우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슬그머니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쪼그려 앉은 재겸의 얼굴이었다. 재겸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시선을 먼 곳에 두고 있었다. 단정한 얼굴 옆선이 골똘해 보였다.

조영우는 불안한 기색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여자는… 어디….”

“모르겠는데. 바로 가 버렸어.”

“재, 재겸아, 너도 그 여자 눈 새까만 거 봤지?”

“눈이 새까맣다고? 내가 볼 땐 평범했는데.”

재겸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표정이었다.

“뭐?”

당황한 조영우가 황급히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고 보니 재겸은 여자를 봤을 때부터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같은 것을 봤으면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조영우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이마를 짚을 때였다.

“너 할머니 있냐. 아니, 계시냐?”

재겸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응? 갑, 갑자기 그건 왜….”

경황이 없는 와중에 조영우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대답이나 해. 할머니 계시냐고.”

“어? 아… 친할머니는 계신데 외할머니는 안 계셔.”

“언제 돌아가셨는데?”

남들은 조심스럽게 물어볼 법한 질문인데도 재겸은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당황한 건 조영우였다. 조영우가 더듬더듬 대답을 꺼내놓았다.

“아, 어… 그게, 얼마 안 됐어. 나 고등학교 입학 앞두고 있을 때였나?”

재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얘기해 보라는 것 같았다.

“평소에 내 걱정 엄청 많이 하셨는데, 그때 하필 내가 아파서… 결국 임종을 못 지켜 드렸어. 지금도 사실 실감 안 나. 나 되게 예뻐해 주셨거든…. 근,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잠시 침묵하던 재겸이 몸을 일으키며 건성으로 대꾸했다.

“그냥. 난 할머니 없어서.”

재겸은 한쪽 어깨에 허술하게 메고 있던 가방을 추슬러 올렸다. 조영우의 눈이 완전히 열리면 그땐 다 알겠지만, 지금은 일일이 설명하기에 성가셨다. 일단은 둘러댈 수 있을 때까진 둘러댈 예정이었다. 재겸은 조영우의 눈가를 덮고 있을 때 손을 좀 써 놓은 상태였다.

하나는 홀렸을 때 달라붙어 있던 귀신의 부정한 기운을 빼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겸 자신의 귀기를 대신 흘려 넣어 조영우의 머릿속을 어지럽힌 것이다. 쉽게 말해 귀신에 홀렸다가, 그다음엔 재겸에게 홀린 것이었다. 귀신에 홀리면 보고 듣고, 더 나아가 움직이는 것까지 제약이 따른다. 재겸은 그와 비슷하게 조영우의 귀에 들어갈 소리에 훼방을 놨다.

“재겸아, 혹시 그 여자가 이상한 소리 하지 않았어?”

조영우가 횡설수설하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여자 진짜 이상했어. 내가 뭘 떨어트렸대. 그러면서 갑자기 따라오라고 하더니 막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나비가 흉사를 몰고 온다고….”

말을 늘어놓던 조영우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왜 말을 하다 말아?”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조영우가 풀죽은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소리해서 미안해.”

생각해 보니 나비가 보인다느니, 윷점이 잘 맞는다느니, 오늘 처음 만난 재겸에게 다짜고짜 이상한 소리를 늘어놨던 건 저 자신이었다. 자신에게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재겸에겐 자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 놓고 또다시 나비 얘기를 꺼내다니…. 말을 하는 와중에 재겸이 재겸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할지 덜컥 겁이 났다.

“안 이상해.”

그때, 재겸이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했다.

“너한텐 그게 정상인 거겠지.”

조영우가 멈칫하며 재겸을 쳐다보았다. 재겸이 불퉁한 투로 덧붙였다.

“그러니까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 말고, 네 인생이나 신경 써.”

“어? 어어….”

재겸은 자리에서 일어나 골목 바깥을 향해 걸어 나갔다. 조영우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불현듯 서러움 같은 것이 왈칵 북받쳤다. 역시 조영우는 재겸이 좋았다. 재겸이 하는 말에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만 같았다. 헛것을 본 건지는 몰라도 무서워서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조영우는 재겸이 먼저 가지 않고 자신을 찾아와 준 것이 그저 고마웠다. 제일 다행인 건 어찌 됐든 재겸과 함께 집에 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저를 싫어하거나 밀어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자 왠지 마음이 뭉클해졌다. 갑자기 무엇이든 털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너한텐 그게 정상인 거겠지.

재겸의 뒤를 몇 걸음 쫓아가던 조영우가 돌연 발길을 멈췄다.

“재겸아… 있잖아….”

머뭇거리던 조영우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사실 나한테 나비가 따라다녀.”

재겸이 무심한 얼굴로 조영우를 힐끔 돌아보았다.

“보일 때도 있고 안 보일 때도 있는데….”

“그래.”

재겸이 건성으로 대꾸했다.

“왜 따라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좀 무섭기도 해.”

“…….”

문득, 재겸은 고개를 들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덧 하늘에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반듯한 이마와 곱게 떨어지는 얼굴선이 저물녘의 하늘과 몹시 잘 어울렸다.

“무섭긴 개뿔이.”

하늘을 쳐다보던 재겸이 고개를 돌려 조영우를 돌아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조영우의 어깨에 앉아 있는 투명한 나비를.

“걔 눈엔 네가 꽃으로 보이나 보지.”

재겸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아….”

앞서 걷던 재겸이 조영우에게 턱짓을 했다. “뭐 해, 가자.” 멍한 얼굴로 서 있던 조영우가 부랴부랴 재겸의 옆에 따라붙었다. 교복을 입은 어깨 두 개가 나란히 골목 어귀를 벗어났다. 골목길 담장 위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작은 멧새가 하늘로 푸드덕 날아올랐다.

늦은 오후였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