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17)화 (17/348)

#17

어제는 멧새를 시켜 소년의 뒤를 쫓았다.

소년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멧새는 알에서 나오던 순간부터 제구부의 관리 감독하에 철저한 훈련을 받아 온 특수한 새였다. 휴직서를 내고 퇴청하는 길에 윤태희는 이영신의 작업실에 들러 온갖 물건을 다 털어 왔는데 멧새도 그중 하나였다. 후에 이영신이 전화를 걸어 야 이 도둑놈아, 빈집털이범아, 하며 울먹거린 것은 덤이었다.

윤태희는 멧새에게 소년이 사는 곳을 알아오라고 명했다.

하지만 재겸이 뜻하지 않게 조영우의 일에 휘말리면서 일이 꼬이고 말았다. 멧새가 골목길 담장에 앉아 재겸을 관찰하는 동안, 시간이 흘러 어둑어둑한 오후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멧새는 소년이 사는 곳을 알아오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그대로 윤태희의 품으로 복귀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멧새는 도청과 엿보는 데 능했다. 대신 그 효용은 속담처럼 해가 떠 있는 낮에만 통하는지라,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면 멧새는 얄짤 없이 칼퇴근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윤태희는 멧새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만족스러운 얼굴로 멧새의 꽁지깃을 쓰다듬어 주었다. 원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확실한 수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태희는 평소 넥타이 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귀찮고 답답해서, 현장에 출동하거나 격식 있는 자리에 참석할 때만 빼면 웬만해선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그러나, ‘사소취대(捨小取大).’ 큰 것을 취하기 위해선 작은 것쯤은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이거 어떻게 매는 건데요.”

이렇게 기회가 온다.

“…….”

윤태희는 가만히 재겸을 내려다보았다.

윤태희가 나례청 안에서 누구보다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찰나의 순간 빛을 발하는 상황 판단 능력과 아주 작은 가능성 하나조차 놓치지 않는 집요함 덕분이었다. 여분의 넥타이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예상하면서도 윤태희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남색 넥타이를 골랐다. 아니면 말고, 잘되면 좋고. 그렇게 윤태희의 ‘혹시나’는 어김없이 적중했다.

“아… 요즘 교복 넥타이는 자동식이지. 깜빡했네….”

윤태희는 미처 생각지 못 했다는 듯이 웃었다. 문득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손에 시선을 던졌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당한 악력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꽤 묘하게 느껴졌다. 시선을 느낀 재겸이 한순간에 손을 털었다. 그러자 윤태희의 한쪽 뺨에 옅은 볼우물이 패였다.

“내가 해 줄게요. 이리 와요.”

윤태희는 사람이 없는 길가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큼지막한 가로수 뒤에 서서 재겸에게 손짓을 하자, 재겸이 마지못해 그 뒤를 따랐다. 윤태희는 들고 있던 드링킹 요거트를 재겸에게 내밀었다.

“잠깐 들고 있어요. 양손으로 매 줘야 되니까.”

재겸이 불퉁한 표정으로 말없이 종이 팩을 받아 들었다. 표정은 시큰둥했지만 귓바퀴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윤태희는 긴 손가락을 뻗어 재겸의 셔츠 깃을 매만졌다.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고개 살짝 들어봐요.”

윤태희는 그대로 셔츠 깃을 반듯하게 세운 뒤, 넥타이를 둘렀다.

“이렇게 한 바퀴 돌려서, 좁은 자락을 위로 넣고, 고리를 만들면….”

가까운 거리에서 윤태희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곱게 뻗은 손가락이 목덜미를 스쳤다가 쇄골 부근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뻣뻣한 자세로 턱을 치켜들고 있던 재겸은 힐끗 시선을 내렸다. 넥타이를 매는 데 집중한 청년의 얼굴이 보였다. 어제도 느낀 거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한 남자였다. 평범한 인간들은 원래 이렇게까지 서로 살갑게 대하는 걸까….

청년이 재겸의 가슴팍을 가볍게 두드렸다.

“다 됐어요.”

먼 산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우던 재겸이 이마를 긁적거렸다. 윤태희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나 고맙죠?”

재겸은 윤태희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고맙냐고? 곰곰이 생각하던 재겸이 진지한 얼굴을 했다.

“따지고 보면 고맙긴 한데, 고맙다고 말할 정도로 고맙진 않은데요.”

“…….”

윤태희가 오묘한 표정으로 재겸을 응시했다. 진짜로 인사를 받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었고, 어디까지나 장난삼아 물어본 거였는데… 덩달아 진지한 얼굴이 된 윤태희가 물었다.

“고맙기는 하지만, 고맙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네.”

재겸은 비꼬거나 심술을 부리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잠시 턱을 매만지고 서 있던 윤태희가 질문했다.

“고마운데 고맙다고 말하기 싫다는 거예요?”

“네.”

“왜요?”

“왜냐뇨. 그냥 제 맘이 그런데요.”

“…….”

윤태희는 눈앞에 선 소년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넥타이를 빌려주고, 손수 매 주기까지 했는데 소년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떠밀리듯 도움을 받은 것이 썩 내키지 않는 듯했다. 소년은 생각보다 훨씬 더 경계심이 강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불순물이 섞인 호의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사람한테 크게 한 번 데였나 본데.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네….

“장난이에요. 어차피 내가 해 주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윤태희가 피식 웃으며 재겸의 손에 들려 있던 드링킹 요거트를 되찾아 왔다.

그러나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계속해서 틈을 파고들다 보면 언젠가 그 틈은 ‘곁’이 될 것이었다. 10대의 귀재는 폐쇄적이고 감정적인 교류에 서투르다는 사실을 윤태희는 잘 알고 있었다.

윤태희가 종이 팩을 흔들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거리가 벌어지자 재겸은 그제서야 자신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로소 숨이 트이며 긴장감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청년이 매고 있던 넥타이 때문인지, 코끝에선 전에 없던 은은한 잔향이 맴돌고 있었다.

“그럼 이따가 수업 끝나고 봐요. 도서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기다린다고? 날?

“왜요?”

재겸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마치 우리가 또 만날 일이 뭐가 있느냐, 하고 묻는 얼굴이었다. 재겸을 응시하던 윤태희가 푸스스 흐트러진 웃음을 내뱉었다.

“왜냐뇨.”

청년이 장난스럽게 재겸의 말을 따라 했다.

“넥타이 내 거니까 돌려주러 와야지.”

“아….”

재겸이 외마디 소리와 함께 시선을 피했다.

***

평범한 인간들은 원래 이렇게까지 서로 살갑게 대하는 걸까? 불과 아까까지만 해도 재겸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재겸은 폐기하기로 했다.

재겸이 뾰로통한 얼굴로 눈앞에 선 중년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나운 인상의 남자는 매일 아침마다 본관 입구를 지키는 선생으로, 건물에 들어서던 아이들은 그를 ‘학주 쌤’이라고 부르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교문에서 바라본 건물 입구 앞에는 선도부원 몇 명과 근엄한 자태의 학주가 서 있었다. 학주는 손에 든 당구대를 맥없이 허공에 휘두르며 현관에 들어선 아이들에게 일일이 참견을 해 댔다. 그때까지만 해도 재겸은 아. 저렇게 걸리면 벌점을 받는구나, 하는 태평한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그저 남의 일이겠거니 했는데.

처음에 학주가 거기 너, 하며 손짓할 때만 해도 재겸은 자신을 부르는 줄 몰랐다. 그대로 입구에 들어서자 선도부원 하나가 달려와 재겸의 진로를 방해했고, 재겸은 그제서야 자신이 표적임을 깨달았다. 그 순간 재겸의 얼굴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어떤 새끼가, 넥타이 빌리는 거 보고 고새 일러바쳤구나….’

였다. 사서의 말이 맞았다. 잠깐 머뭇대는 사이에 누군가 목격한 게 틀림없다. 얍삽하게 생긴 놈이 학주의 귀에 속닥속닥거리는 장면이 눈에 훤했다. 세상 참 정말 각박하다. 너무 치졸한 거 아니냐? 학주 앞에 질질 끌려온 재겸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 임마….”

“누, 누가 그래요!”

“뭐?”

분노한 재겸이 씩씩거렸다.

“사람이,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건데, 한 번 정도야….”

“허, 얘 지금 뭐래는 거냐?”

학주가 황당한 얼굴로 옆에 서 있던 선도부와 시선을 교환했다.

“너 임마, 머리가 왜 그리 길어?”

“…….”

어쩐지 오늘따라 아침부터 삐끗하는 느낌이다.

“조금만 더 길면 묶을 수도 있겠다이? 그치?”

“제 머리요?”

“그래, 임마. 네가 장발장이냐?”

장발장은 그 장발이 아닌데요. 옆에 있던 선도부가 속으로 조용히 말을 삼켰으나, 장발장이 누군지 모르는 재겸은 내가 장발이라고?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넥타이 때문에 붙잡힌 게 아니었구나. 그렇다면 일단은 안심이었다. 재겸은 약간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지나는 아이들의 두발 상태를 확인했다. 뭐 얼마나 차이 난다고… 노련한 교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학생의 눈동자에서 묘한 불만스러움을 읽어 냈다.

“허, 이놈 좀 보게. 두발 규정 같은 건 내 알 바 아니오, 이거냐?”

“두발 규정이 뭔데요?”

“옆머리가 귀를 덮으면 안 돼.”

“왜요?”

재겸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넥타이를 안 하면 왜 벌점인지도 의문이었다. 머리가 길면 왜 안 되는데? 물론, 재겸은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넥타이도 얌전히 맸던 건데.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순수한 궁금증에 이유를 물어봤던 것일 뿐이다. 하지만 재겸이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학주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재겸은 순수한 질문이 교권을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왜요? 왜애요오?”

학주가 험악하게 말을 늘어뜨렸다. 주변에 일렬로 서 있던 선도부원들이 움찔하며 재겸과 학주를 힐끔거렸다.

“허, 이 자식이 아침부터 열 받게 하네.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어? 눈이 달렸으면 다른 애들 머리를 봐 봐라, 넌 옆머리가 이건 뭐, 거의 이불이야. 이불. 귀를 덮고도 남네. 그래, 이걸 봐도 아무런 생각이 안 드냐?”

그간 재겸은 늘상 집에만 있었으니 머리를 자를 일이 없었다. 오래전에야 머리가 길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좀 길었다 싶으면 그냥 가위를 가져다가 싹둑 잘랐다. 귀찮으면 질끈 묶고, 더우면 짧게 깎고. 그뿐이었다. 게다가 사내의 저주를 받고 나서부터 머리가 자라는 속도가 지독하게 느려졌다. 고작 이만큼 기른 것도 햇수로 따지면 몇 년이었다. 지금 재겸의 머리는 귀를 중간쯤 덮으면서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어중간한 길이였다.

“아니… 전 그냥 궁금해서, 안되는 이유나 좀 말해 주… 말씀해 주시면.”

학주가 왜 저렇게 화가 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뭔가 잘못했나. 재겸은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그때, 학주가 손에 들고 있던 당구대로 재겸의 가슴팍을 쿡 찔렀다.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너 지금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야?!”

재겸은 시선을 내려 제 가슴팍을 쳐다보았다.

“…….”

‘재겸아. 혹시라도 학교 가서 선생들이 뭐라고 혼내면 무조건 죄송하다고 해.’

‘왜?’

‘그게 요즘 세상의 처세야. 너보다 얼굴 늙어 보이는 사람한텐 꼭 존댓말 쓰고. 알았지?’

머릿속에서 정주가 당부하던 목소리가 맴돌았다. 요즘 세상의 처세… 재겸은 차분히 감정을 삭였다. 재겸이 또렷하게 눈을 치켜뜨고 자신을 바라보자, 학주는 ‘이것 봐라?’ 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옛 고사 중에서 일보일추(一步一趨)라는 말이 있는데요.”

“뭐?”

“스승이 걸으면 제자도 걷고, 스승이 뛰면 제자도 뜁니다.”

재겸이 손을 들어 당구대가 닿았던 부분을 툴툴 털어 냈다.

“제자는 스승의 발자국을 본보기로 삼고 따라간다고요.”

“허! 너 지금 무슨 말을….”

“선생님 옆머리가 저보다 길어 보이는데요?”

“…….”

“…….”

“…….”

둘을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가던 학생들이 일동 경악하며 재겸을 돌아보았다.

“선생님 옆머리야말로 이불 아니에요? 선생님도 머리 길잖아요.”

탁, 탁….

학주의 손에서 떨어진 당구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학주는 특히 교사들 가운데서 문쌤과 사이가 좋았다. 동년배이기도 했고, 둘 모두 대머리라는 아픔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모두가 내심 짐작하고 있는 이야기였다.

학주는 일단 학생들에게 엄하게 굴면서도 사실은 정이 많아서 꽤나 다정한 편이었다. 대신 자신의 아픔을 건드는 행위만은 용인하지 못했다. 언젠가 한 학생이 학주와 문쌤이 나란히 걸어가는 것을 보고 ‘문어가 쌍으로 다니네, 쌍문동 가요. 쌍문동.’ 하고 조용히 키득거렸다가 교내 봉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만, 그만해… 일렬로 서 있던 선도부원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러한 사정도 모를뿐더러, 선도부의 속마음을 알 길 없는 재겸은 격앙된 심정을 억누르고 정중하게 말을 덧붙였다.

“정수리 덮어 놓은 거 그거 다 옆머리잖아요.”

핏기가 가신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던 학주는 한참 만에 바닥에 떨어진 당구대를 주워 들었다. 모두의 우려와는 달리, 학주는 평온한 얼굴로 재겸에게 물었다.

“너 몇 학년 몇 반이니?”

그리고 넥타이 미착용을 이유로 벌점을 받지 않도록 애써 주었던 청년의 노력이 무색하게, 재겸은 등교 두 번째 날에 벌점 5점을 받는 쾌거를 달성했다.

사유는 태도 불량 및 교사의 지시 불이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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