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끼이이익-!
차 한 대가 교문 앞에서 급작스러운 커브를 돌았다. 시꺼멓게 선팅된 차는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타이어가 긴 궤적을 그리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시끄러운 바퀴 소리에, 한창 수업 중이던 선생은 물론이고 대륭 고교 학생들까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놈들아, 자리에 앉아라!”
선생의 일갈에 아이들이 수런거렸다.
“쌤, 누가 운동장에 차 끌고 왔어요.”
“어? 저거 밴이지?”
밴은 본관 건물 코앞에서 멈춰 섰다. 조금이라도 늦게 멈췄으면 건물을 들이받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운전석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색이 된 얼굴로 운전석에서 튀어나온 건 연예인이었다.
“야, 야! 저거 그, 그 정주 아냐?”
“헐! 정주 맞는 것 같은데?”
“나 어제 티비에서 봤어! 존나 똑같이 생겼어!”
우와아아-!
삽시간에 학교 전체에 우렁찬 환호가 울려 퍼졌다. 각 반 창문마다 아이들이 상체를 내밀고 꽥꽥 소리를 질러 댔다. 선생들 역시 아이들을 제지하는 것은 뒷전이요, 입꼬리를 씰룩대며 운동장을 기웃거렸다. 평소 티비만 틀었다 하면 보이는 것이 정주의 얼굴이었다.
형 존나 잘생겼어요! 올라와서 사인해 줘요! 형 팬이에요! 손 한 번만 흔들어 주세요!
지방 소도시에, 그것도 별 볼 일 없는 남고에 연예인이 출현했다. 한눈에 정주를 알아본 아이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인 수준이었다.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열렬한 아우성을 뒤로하고, 정주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부랴부랴 본관 입구로 들어섰다. 정주는 바깥을 돌아다닐 땐 무조건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정주는 흡사 문고리를 뜯어낼 기세로 당장에 교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엄숙하던 교무실 공기가 한순간에 깨졌다. 모니터를 바라보거나, 교과서를 뒤적거리고 있던 선생들이 일제히 문간으로 고개를 돌렸다. 요란하게 난입한 정주가 여유 없는 표정으로 교무실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짧은 순간, 정주를 알아본 교사들 몇몇이 의자를 뒤로 물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어어…!?”
문간 근처에 앉아 있던 최 선생이 입을 틀어막았다. 최 선생은 교무실 내에서도 정주의 진성팬으로 정평이 나 있던 사람이었다. 최 선생은 숨을 헐떡거리며 손가락으로 정주를 가리켰다. 경악의 삿대질이었다. 교무실 내부가 술렁거렸다. 탄성과 놀라움이 넘실거리는 가운데, 대륭 고등학교의 교감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정주에게 다가섰다.
“이, 이게 누구십니까. 여긴 어쩐 일로….”
정주는 일단 땀에 젖은 앞머리부터 정돈하며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허리부터 숙였다. 정주는 거칠어진 숨결을 억누르려 애를 썼다. 진정되지 않은 등짝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정주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2학년 3반 김재겸 학생 삼촌 되는 사람입니다.”
다리 힘이 풀려 버린 최 선생이 결국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교감 역시 무척이나 당황한 눈치였다. 전학생 김재겸이 현직 연예인과 혈연 사이라는 것은 사전에 듣지 못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넋이 나가 있던 교감이 황급히 정신줄을 붙잡고 ‘허허, 미처 몰랐습니다.’ 하며 짐짓 점잖은 반응을 내보였다.
교감은 정주와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은 뒤, 곧바로 교무실 안쪽으로 안내했다. 교무실 안쪽에는 간소한 응접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응접실로 들어선 정주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불퉁한 얼굴로 앉아 있는 재겸의 모습이었다.
“재, 재겸아!”
정주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재겸을 향해 벼락같이 뛰어갔다.
“재겸아, 도대체… 얼마나 맞은 거야!”
재겸이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정주는 양손으로 재겸의 볼부터 감쌌다. 얼굴을 들어 올려 이곳저곳을 살폈다. 치고받고 싸웠다더니 입술에 피딱지가 앉아 있었고, 광대 부근에는 푸르스름한 멍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머리 꼬라지가 왜….
“머리는 또 이게 뭐야, 너 설마 머리채라도 잡힌 거야?”
응접실 안에 기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재겸의 옆에 앉아 있던 서 선생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하지만 지금 정주는 재겸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안중에 없는 듯했다.
“왔, 오셨어요.”
재겸은 정주의 손을 슬그머니 떼어 내며 주변 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얼마나 머리를 잡아 뜯었으면 사람 머리카락이 이렇게 쥐 파먹은 것처럼, 응? 재겸아!”
정주는 거의 눈물이라도 쏟을 기세였다. 어지간히 놀랐는지 손까지 파르르 떨고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재겸이 침착한 낯으로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머리는… 내가. 직쩝. 짤라서 그래요. 쌈촌.”
그렇게 말하는 재겸은 조금 지쳐 보였다.
정주는 한껏 거칠어진 숨결로 재겸의 머리통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금세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주는 끝내 울먹거리며 재겸의 어깨를 움켜쥐고 짤짤 흔들기 시작했다.
“재겸아.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아, 내가 걱정할까 봐 그러는 거지? 그래. 네 맘 다 알아, 응. 그치만 재겸아. 이런 상황일수록 시시비비는 제대로 따져야 해. 쥐어뜯긴 거잖아, 그렇지?”
아니라고….
재겸은 단전서부터 올라오는 쌍욕을 간신히 눌러 참았다. 요즘 영화 찍는다더니 여기서도 아주 그냥 영화를 찍는구나…. 정주의 손길을 따라 재겸의 몸 전체가 종잇장처럼 펄럭펄럭 힘없이 흔들렸다. 참다못한 재겸이 은밀하게 정주의 정강이를 걷어차려던 순간이었다.
“저, 실례지만. 재겸이 삼촌 되시나요?”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서 선생이 뒤늦게 상황 정리에 나섰다. 정주는 그제야 주변을 돌아보며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응접실 안에는 재겸 말고도 세 명이 더 있었다. 담임인 서 선생과 학주, 그리고 험상궂은 인상을 가진 중년의 남자였다. 중년의 남자는 아까부터 부리부리한 눈으로 정주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혹시… 그, 티비에 나오시는.”
“아아. 예, 맞습니다.”
서 선생이 아연한 얼굴을 했다.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혹시 도플갱어 수준으로 비슷하게 생긴 사람은 아닐까? 싶었지만, 역시나 부질없는 질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일단 옷 태부터가 일반인하고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보호자를 호출했더니만 연예인이 달려온 경우는 교사 생활을 시작한 뒤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뒤늦게 자기소개를 마친 정주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 조카와 싸웠다는 그 아이는….”
“댁이 쟤 삼촌이라고?”
그때, 테이블 한쪽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건네는 첫마디치고는 꽤나 공격적이면서도 무례한 태도였다. 남자가 입을 열자마자 분위기는 한순간에 싸늘해졌다. 서 선생이 난감한 기색으로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이보쇼, 선생 양반. 부모 데려오라니까. 지금 장난해?”
“주열이 아버님, 일단 진정하시고….”
중년의 남자는 테이블 위를 탕, 소리가 나도록 강하게 내리쳤다. 그것은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묵직한 신호탄처럼 들렸다. 곁에 앉아 있던 학주가 짐짓 점잖은 태도로 남자를 만류하며 자리에 앉히려고 했다. 하지만 잔뜩 흥분한 남자는 학주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주열이 아버님, 저 학생의 부모님이 지금 사정상 외국에 나가 계셔서… 부득이하게 삼촌분이 대신….”
“아! 비행기 타고 오라고 하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상황을 지켜보던 정주가 막 대화에 끼어들려던 참이었다.
“내 얼마나 대단한 집구석인가 했지! 얼굴 팔아서 먹고사는 주제에 꼴에 유명인이라 이거야? 그럼 더더욱 애새끼 교육을 똑바로 시켜야 할 거 아뇨?”
“주열이 아버님!”
남자의 막말에 학주가 단호하게 언성을 높이며 제지를 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래 봐야 서로의 감정을 긁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정주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뒤였다. 정주가 매서운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정주가 남자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
“애새끼라니요. 지금 누구더러 애새끼라는 겁니까?”
“하! 애새끼를 애새끼라고 하지, 이건 뭐 적반하장이 따로 없구만?”
남자가 고함을 내질렀다. 가만 놔뒀다간 정주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서 선생과 학주가 남자의 양팔을 붙잡고 그만하세요, 하며 말리기 시작했다.
“이래서 분칠한 것들은 믿으면 안 된다더니 아주 가관이 따로 없네. 하! 너, 인생 끝난 줄 알아. 어디 반반한 낯짝 계속 들고 다녀 봐! 어? 인터넷에 확 그냥….”
어른 네 명이 한데 뒤엉켜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있는 와중이었다. 이 공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면서, 또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년은 시큰둥한 낯으로 눈앞에 펼쳐진 험악한 말싸움을 관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애 얼굴 좀 보세요. 저게 사람 얼굴입니까?”
턱을 괸 채 입술에 매달린 피딱지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재겸이 눈을 들었다. 울컥한 정주가 손가락을 펼쳐 저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시에 나머지 셋의 눈동자가 한곳에 꽂혀 들었다.
“…….”
멀뚱멀뚱 시선을 받아 내던 재겸이 슬그머니 딴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렇게 상처가 생길 정도로 싸웠으면 먼저 사과부터 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감정이 북받친 정주가 호소하듯 성을 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애들 싸움이라지만 사람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놓다뇨. 근데 애 앞에서 애새끼니, 교육이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주열 군은 애를 저렇게 때려 놓고 대체 어디 간 겁니까?”
남자는 테이블을 탕탕 내려치며 조소를 터뜨렸다.
“애들 싸움? 애들 싸움! 오오냐, 말 한 번 잘했다.”
웃음기가 사라지고, 이주열의 아버지가 울먹거렸다.
“우리 아들, 그 애들 싸움에 병원 실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