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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26)화 (26/348)

#26

정주는 이주열이 병원에 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새하얗게 질린 낯으로 재겸을 쳐다봤다. 얼굴에 떠오른 건 어이없음, 그리고 배신감이었다. 정주는 재겸을 본관 구석으로 끌고 나왔다.

“너 미쳤어?”

주변에 보는 눈이 없어지자마자 정주는 응접실에서 했던 것처럼 재겸의 어깨를 붙잡고 짤짤 흔들어 댔다.

“내가 뭐?”

“걔 인간이야. 그것도 평범한 어린 인간이라고!”

“그게 뭐?”

“근데 그렇게 죽사발을 내 놓으면…!”

정주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이마를 짚었다. 평범한 어린 인간을 상대로 치고받고 싸웠을 줄은 몰랐다. 모난 성격 탓에 시비가 걸릴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했지만, 평상시 무기력한 재겸의 모습을 떠올리면 상대하기 귀찮아서라도 몇 대 얻어맞고 끝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너 혹시 뭐 의자라도 집어 던졌어?”

“아니. 주먹만 썼어.”

“재겸아. 내가 진짜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뭐.”

정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주먹 날릴 때… 주먹에 귀기, 실은 건 아니지?”

재겸이 뺨을 긁적이며 시선을 내렸다.

“딱 한 번. 실수로 나도 모르게 살짝 실었어.”

“…….”

이 미친놈아….

정주가 한쪽 벽에 팔을 기댄 채 고개를 묻었다.

오늘 아침, 2학년 3반의 교실 풍경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재겸은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로 이주열에게 주먹을 날렸다. 불시에 얼굴을 맞은 이주열은 책상과 함께 넘어졌고,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새우등이 터지기 전에 복도로 뛰쳐나갔다. 이주열은 얼굴을 감싸 쥐고 바닥을 굴러다녔다. 재겸은 그제서야 손바닥을 탁탁 털며 가방을 내려놨다.

그리고 좀 더 본격적으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 싹수 노란 새끼가! 넌 좀 맞아라, 이 개새끼야.’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디서 못돼 처먹은 것만 배워서.’

‘이 씹새끼가 어디 던질 게 없어서 먹기도 아까운 귀한 우유를 던져?’

악에 받친 이주열 역시 순순히 맞고 있지만은 않았다. 이주열은 코피를 줄줄 흘리는 와중에 재겸에게 주먹을 날렸다. 빈틈을 노린 공격에 재겸 역시 상처를 입었다. 몇 번의 엎치락뒤치락 끝에 둘의 싸움은 거의 개싸움이 되어 버렸다. 안타깝게도 승부는 내지 못했다. 반 아이들의 호출을 받고 달려온 학주에 의해 둘 다 교무실로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학주는 길길이 날뛰며 재겸과 이주열에게 사자후를 내질렀다. 누가 먼저 때렸냐는 말에 재겸과 이주열은 사이좋게 서로를 가리켰다. 재겸은 며칠 전 날아온 축구공에 맞았던 것을, 이주열은 방금 전 주먹에 맞았던 것을 얘기했다. 남고에선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났다. 학주는 그때까지만 해도 둘의 싸움을 별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상황이 제법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 것은 이주열이 코와 가슴팍의 통증을 호소했을 때였다. 시간이 지나도 이주열의 코피는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양호실에서 상처를 소독하고 코에 솜을 박아 넣었지만, 솜은 금세 코피로 축축해졌다. 분위기를 살피던 재겸도 슬그머니 광대뼈가 아프다, 입술이 쓰라리다, 들으란 듯이 중얼거렸다. 우선은 양쪽 학부모에게 연락을 넣었다.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이주열의 어머니였다. 그는 귀한 아들의 쥐어 터진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자세히 보니 이주열의 코가 미세하게 삐뚤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주열의 어머니는 당장에 회사에 있을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그의 남편은 반차를 내고 허둥지둥 학교로 달려왔다. 그는 학교엔 남편을 앉혀 놓고, 차를 운전해 아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사이, 이주열의 아버지는 칼을 가는 심정으로 재겸의 학부모를 기다렸던 것이다.

‘엑스레이 결과만 나와 봐! 우리 아들 코가 삐뚤어졌다고. 코가! 갈비뼈든 코뼈든 금 하나라도 갔다간, 아주 그냥 네놈들 가만 안 둘 거니까. 내가 어? 어디 신문사고 방송국이고 다 연락 돌려서 티비에 나오는 누구누구, 어? 다 폭로할 거요. 당신 그 잘난 조카 때문에 좋은 신세 다 끝장난 줄 알라고.’

격분한 학부모를 향해 정주는 몇 번이고 거듭 허리를 숙여 가며 사죄했다. 그 와중에 재겸은,

‘저기요. 아저씨. 저도 인생 살면서 코뼈 몇 번 부러져 봐서 아는데요. 그거 어차피 금방 붙어요.’

하고 태평하게 말을 얹었다가 정주에게 소리 없이 발을 밟혔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이주열의 아버지는 뒷목을 잡고 실신하기 일보 직전이었고, 정주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조카가 아직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해서, 제가 잘 돌봤어야 하는데, 모든 게 제 불찰입니다….

‘병원비는 제가 책임지고 전부 배상하겠습니다. 실례지만 지금 주열 군이 어느 병원에 있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염치없지만 현재 주열 군의 상태를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지금 바로 병원에 가서 주열 군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겠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재겸이나 이주열이나 비등비등한 꼴이었다. 둘 다 멍 자국이며 피딱지며 사이좋게 매달고 있었기 때문에, 얼핏 보기엔 쌍방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재겸이 주먹에 귀기를 실었다는 데에 있었다. 재겸은 ‘살짝’이라고 얘기했지만, 귀기를 실어서 때리면 그냥 맨주먹으로 때릴 때보다 훨씬 강한 내상이 남기 마련이었다.

귀기를 실어 때린 이상, 학부모가 말한 대로 이주열의 코뼈가 부러지거나 갈비뼈에 금이 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생각보다 일이 훨씬 커질 게 분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정주가 평소 뿌듯해 마지않던 연예인으로서의 유명세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유별난 부모들의 행태를 보아하니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계기야 어찌 됐든 훨씬 큰 피해를 입은 쪽으로 시선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정주가 음울한 낯으로 차 키를 꺼내 들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늦지 않게 수습을 해야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이 많은 조카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난 잘못한 거 없어. 걔가 먼저 그랬어.”

그때, 재겸이 뾰로통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제발 부탁인데, 재겸아. 너 그 성질 좀 죽이면 안 돼?”

“내가 뭘? 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걔가 한 대로 돌려준 거야.”

“네가 걔랑 같아? 걔가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걔는 어리고 약한, 평범한 인간이야!”

“…….”

마침내 재겸의 눈꼬리에 날이 섰다.

“그럼 난?”

“뭐?”

“그럼 난 뭔데.”

“그야 넌….”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정주가 말끝을 흐렸다.

“일단 나중에 얘기해. 나 지금 바로 병원 가 봐야 돼.”

“병원 갔다가 집으로 올 거야?”

“응, 그러니까 재겸이 넌 이따 학교 끝나면 먼저 집에 가 있어. 그리고….”

정주는 잠시 머뭇대며 말하기를 망설이는가 싶더니, 최대한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메산이도 병원에 데려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뭐?”

예상대로 재겸이 대번에 정색을 했다.

“메산이가 거길 왜 가?”

“왜긴 왜야? 진짜 코뼈라도 부러졌으면 큰일이니까 그렇지.”

“병원에 의사 있잖아. 의사한테 고치라고 해.”

골치가 아픈지 정주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재겸아, 나 지금 너랑 말씨름할 상황 아니야. 시간 없다니까!”

“웃기지 마. 네가 뭔데 메산이를 데려가.”

“재겸아.”

“네가 뭔데? 메산이는 신성한 존재야. 왜 메산이가 그딴 새끼 때문에….”

“그걸 몰라서 물어? 다 너 때문이잖아!”

정주가 울컥하며 일갈하자, 재겸이 입을 다물었다.

“…….”

아차. 정주는 제 입으로 스스로 말해 놓고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둘 사이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재겸은 제법 길게 이어지는 정적 내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정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아니. 그러니까. 재겸아, 내 말은….”

재겸은 정주의 말을 더는 듣지 않겠다는 듯이 등을 돌렸다.

“됐다. 가라.”

짧게 대꾸하며 돌아선 어깨는 묘하게 축 처져 있었다.

***

메산이는 간밤에 까치집이 되어 버린 머리를 긁적이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신발을 꿰어 신고 곧장 마당으로 나왔다. 새벽 안개에 휩싸인 고즈넉한 뒷마당에는 잎이 무성한 나무며, 꽃이며, 생기 가득한 식물이 잔뜩 모여 있었다. 남들이 보면 그저 잘 가꿔진 정원으로 보일 테지만, 메산이에겐 소담스러운 한상차림과도 같았다.

메산이는 니나니나, 기분 좋은 콧노래를 불렀다.

“제비꽃? 우음… 각시붓꽃? 아니면 주목나무?”

잠시 고민하던 메산이가 폴짝폴짝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이걸로 해야지. 마음을 정한 메산이는 잎이 동그랗고 커다란 동백나무에 가까이 다가갔다. 작은 손을 뻗어 가까운 잎사귀 하나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넓은 잎사귀에는 투명하고 깨끗한 아침 이슬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메산이는 입술을 오므려 굴러떨어지는 이슬을 냠냠, 받아먹었다.

산의 정기를 받은, 신선하고 향긋한 이슬은 메산이의 소중한 식사였다. 가끔 정주와 재겸을 따라 과자나 밥처럼 인간이 먹는 음식을 입에 댈 때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간식에 가까웠다. 메산이는 산의 정기와 아침 이슬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오랫동안 산으로부터 떨어지면 차츰 기운이 약해져 종국에는 생명력을 완전히 잃고 만다.

그것은 산에서 태어나, 산을 지켜야 하는 존재가 지닌 숙명이었다.

메산이는 부지런히 잎사귀를 뒤적거렸다. 주기적으로 아침 이슬을 취하지 않으면 여러모로 곤란했다. 이슬이 없으면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기 힘들어지고, 온몸에 힘이 빠져 비실비실해지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채 오랜 시간을 보냈더니 이젠 본모습으로 있는 게 어색했다. 언제까지고 저의 나리를 지키기 위해선 언제나 튼튼한 상태여야만 했다.

메산이는 다디단 이슬을 하염없이 받아먹었다. 멀리 산자락 너머에서 깍깍, 까치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나? 메산이가 입을 오물거렸다. 그렇게 얼마간 목을 축이고 나서야 집 안으로 들어왔다. 포근한 이부자리로 돌아온 메산이는 다시 침구 위로 몸을 누였다. 든든한 식사를 끝내고 이어붙인 아침잠은 달콤하기만 했다.

그리고 정오가 되자, 정말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마루에 앉아 산새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메산이는 우당탕,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헐레벌떡 마당을 가로질렀다. 등굣길을 배웅한 지 한나절쯤 지났던가? 처음엔 재겸이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귀가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대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재겸이 아니라 정주였다. 오랜만에 본 정주는 온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정주의 깜짝 등장에, 일단은 신난 메산이가 다다다 달려가며 양팔을 벌렸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정주가 저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반갑게 품에 안아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예상대로 정주는 메산이를 단숨에 안아 올렸다. 그리고…

다짜고짜 대문을 발로 뻥 걷어차더니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어, 어? 정, 정주 님? 지금 어딜 가는 거예요?”

당황한 메산이가 정주의 품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정주는 근처에 주차해 둔 밴에 도착하자마자 조수석 문을 열고 메산이를 앉혔다. 일사불란한 손길로 안전벨트까지 단단히 채워 주었다. 이주열이 진단서를 끊지 못하게 해야 한다. 늦지 않게 병원에 도착하기 위해선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정주가 비장한 얼굴로 엑셀을 밟았다.

“메산아. 천하에서 제일가는 명의가 되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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