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이주열의 어머니는 복잡한 병원 복도를 하염없이 서성이는 중이었다.
두 모자는 방사선실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대기하고 있었다. 처음엔 학교 근처에 있는 정형외과에 들렀었다. 그러나 일이 틀어지려면 어떻게든 틀어지는 법이라고, 접수를 하려고 봤더니 하필이면 점심시간에 걸리고 만 것이다.
잠자코 기다리려니 어머니 눈에는 자식이 곧 죽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이주열의 모친은 부랴부랴 병원을 나왔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바로 여기, 학교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종합 병원이었다.
의사는 쓰고 있던 안경을 추슬러 올리며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코가 딱 봐도 한쪽으로 내려앉았네. 뭐, 코뼈 골절은 확실하고요. 그래도 일단은 자세하게 검사를 해 봐야 하니 흉부 쪽도 같이 해서 엑스레이부터 찍어 봅시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두 모자는 사이좋게 휘청거리며 진료실을 빠져 나왔다. 이주열은 아픈 와중에도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분명 내가 더 많이 때렸다고 생각했는데! 코뼈가 부러졌다니 왠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며칠이고 쥐죽은 듯 찌그러져 지내던 녀석이 하루아침에 달려들 줄은 몰랐다. 지금 이주열은 정말로 코뼈가 부러진 게 맞는지, 검사 결과를 한시라도 빨리 알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알고 싶지 않은, 오묘한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던 엑스레이 촬영은 밀린 환자들이 많아 자꾸만 순번이 늦어지고 있었다.
초조하게 방사선실 근처를 맴돌던 이주열의 어머니가 간호사를 채근했다.
“저기요!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던 간호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같은 질문만 몇 번째였다. 재촉한다고 순서가 앞당겨지는 것도 아니고, 차례가 되면 어련히 불러 줄 텐데 눈앞의 보호자는 아까부터 성화를 부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병원은 북새통이었다. ‘금방 불러 드릴게요.’ 간호사가 눈을 흘기며 무미건조하게 대꾸할 때였다.
“저, 주열이 어머님?”
대기 좌석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있던 이주열이 고개를 들었다. 모친 역시 간호사에게 뭐라 짜증을 덧붙이려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서 있는 것은 낯선 남자였다. 정주는 미리 준비한 검은색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일회용 흰색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누구시죠?”
이주열의 모친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재겸이 삼촌입니다.”
두 모자가 멈칫하며 시선을 교환했다. 정주는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 조카 때문에 주열 군이 많이 다쳤다고, 병원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재겸이의 보호자로서 정식으로 사과를 드리고 싶어서요.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이봐요. 지금 장난해요?”
말을 끊은 모친이 잔뜩 성난 표정으로 정주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도대체, 애를 똑바로 관리해야 될 거 아니야!”
날카로운 고성이 울려 퍼졌다. 병원 복도에 있던 사람들이 정주와 두 모자를 힐끔거렸다. 정주가 숨을 들이켜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귀가 쨍쨍 울렸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혹시라도 사람이 많은 병원에서 때아닌 소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왔더니만. 결과만 놓고 보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리 애, 코뼈가 부러졌어. 코뼈가! 어떻게 책임질 거예요? 아니, 부모가 곁에 없으면 삼촌이라도 애를 잘 돌봐야지. 그 나이에 벌써 사람을 이렇게 두들겨 패고, 손버릇이 그렇게 험하면 어쩌자는 얘기예요? 뭐, 커서 깡패 시킬 거야? 조폭이야?”
“…면목 없습니다.”
“지금 엑스레이 찍을 건데, 어? 아주 결과만 나와 봐요. 나 가만히 안 있어. 진단서 뽑아서 바로 절차 밟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이건 도저히 학교 차원에서 끝낼 문제가 아니야. 불안해서 그런 애랑 어떻게 같이 학교를 다니란 말예요?”
“…정말 죄송합니다.”
정주는 마스크로 가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부부는 아주 쌍으로 요란했다. 모친은 펄펄 날뛰며 정신없이 본인 할 말만 쏘아붙이기 바빴다. 정주는 그 와중에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캐치하고는 소리 없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직접 찾아뵙고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원비는 전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차후 수술비뿐만 아니라 정신적 보상….”
그때, 의자에 찌그러져 있던 이주열이 인상을 벅벅 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씨. 진짜.”
“주열아. 왜 그래! 많이 아파?”
“아 쫌.”
때아닌 소란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자 이주열은 신경질이 났다. 거기다가 자식을 위한답시고 큰 목소리로 코뼈가 부러졌니, 두들겨 팼니, 하며 화를 내는 것이 결국엔 온 사방에 자신이 얻어맞았다고 소문을 내는 꼴과 진배없는지라, 본의 아니게 가오 빼면 시체인 이주열의 체면이 뭉개져 버린 셈이다.
“어디 가, 간호사가 금방 부를 거라고 했는데.”
이주열은 저를 붙잡는 모친을 지나쳤다. 그리고는 앞에 선 정주의 어깨를 고의적으로 밀치며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주열 군, 저기….”
“아, 비켜요!”
난데없이 어깨 빵을 당한 정주가 입술을 짓씹었다.
이런 천하의 개잡놈을 봤나.
부모의 성격을 봤을 때부터 대충 짐작은 했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이라. 싹수를 보아하니 얻어맞아도 싼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재겸에게 애꿎은 화풀이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던 정주였다. 이런 녀석도 약한 범인이랍시고, 손을 대면 어떡하냐며 재겸을 꾸짖었던 것이 새삼 후회스러웠다.
이주열은 보란 듯이 발을 쿵쿵 굴려 가며 복도 모퉁이를 돌았다. 못마땅한 발걸음으로 향한 곳은 남자 화장실이었다. 잠시 자리도 피할 겸, 내친김에 피가 말라붙어 끈적끈적한 코를 헹궈 낼 요량이었다. 찬물을 틀어놓고 손부터 빡빡 씻었다. 투덜거리며 대충 세수를 하고 페이퍼 타올을 뽑아 물기를 닦아 냈다.
“저, 저기이요호오오오….”
얼얼한 코끝을 살살 훔쳐 내던 이주열이 고개를 돌렸다. 화장실 입구에 웬 어린아이 하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자그마한 아이는 몸의 몇 배나 되는 커다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이주열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파드득 놀라더니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잠시 아이를 쳐다보던 이주열이 다시 거울을 보며 마저 얼굴을 닦았다.
“저어기…. 요호오, 오….”
뭐야? 또다시 들려온 목소리에 이주열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피하길래 뭔가 했더니 아무래도 저를 부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의 음성은 거의 염소 울음소리 같았다. 어찌나 덜덜 떠는지, 흉내를 내 보라고 해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얜 또 뭐야?
“뭐? 나?”
“네에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주열이 인상을 쓰며 묻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침을 꼴깍 삼키며 눈치를 보았다. 그러더니 까치발을 들고 이주열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성질 뻗쳐 죽겠는데 알지도 못하는 꼬맹이가 근처에서 얼쩡거리니 이주열은 짜증이 났다. 아이는 숫제 거북이처럼 아주 느리게 걸어왔다.
“아. 뭔데!”
“이, 이, 이, 이거… 드, 드시, 오….”
아이는 등 뒤로 감추고 있던 양손을 내밀었다. 손에 든 것은 액체가 담긴 종이컵이었다. 이주열이 이게 뭐냐는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또다시 파드득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허. 이주열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얜 뭐 이렇게 겁이 많아?
“그, 그… 도령, 아, 아니….”
“뭐?”
“형, 형아… 형아네 엄마가, 갖다주라고….”
“우리 엄마가?”
“네에에….”
이주열이 종이컵의 내용물을 한 번, 그리고 아이를 한 번, 번갈아 보았다.
“뭔데, 이거?”
“형아… 목 마를까 봐… 형아네 엄마가, 마시라고….”
금방 갈 건데 뭘 또 얼굴도 모르는 애한테 심부름까지 시켜. 이주열이 못마땅한 시선으로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종이컵에 담겨 있는 것은 투명한 액체였다. 아마도 생수인 듯했다. 안 그래도 목이 마르긴 했던 터라, 이주열은 별다른 의심 없이 종이컵에 담긴 물을 입으로 가져갔다. 절반 정도 담겨 있던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켁, 큭. 쿨럭!”
별생각 없이 물을 삼키던 이주열이 대뜸 거센 기침을 토했다.
“아씨. 쿨럭, 뭐야. 이거 물맛이, 큭. 켁?”
입 속으로 털어 넣은 액체는 뜻밖에도 굉장한 단맛이 나는 음료였다. 꼭 설탕물 같았다. 예상치 못한 당도에 놀란 이주열은 한참 동안 옆구리를 움켜쥐고 쿨럭거렸다. 기침을 할 때마다 찌르르, 울리는 갈비뼈의 통증 때문에 눈앞이 번쩍거렸다. 세면대에 허리를 숙인 채 한참을 낑낑대던 이주열은 통증이 가라앉은 뒤에야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으윽, 야. 이거 물….”
이거 물 맞아? 하고 물어보려던 이주열이 눈썹을 찌푸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서 덜덜 떨고 있던 어린아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주열은 화장실에서 나와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다가올 때는 거북이처럼 느리더니, 아이는 종이컵을 전해 주자마자 아주 쏜살같이 자취를 감췄다. 이주열은 뭐야, 하고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화장실로 향할 때와는 달리, 복도를 걷는 발걸음은 묘하게 가벼워져 있었으나 이주열은 그 사실을 체감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