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33)화 (33/348)

#33

휘영청 밝은 달빛이 밤하늘을 은은히 비췄다.

깊은 밤, 산 밑에 자리한 이층집은 적막했다. 마루와 연결된 거실의 미닫이창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마루에 귀뚜라미 한 마리가 올라왔다. 귀뚜라미가 뚜르르 울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창 너머로 들려온 희미한 물음에 메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산이는 손을 뻗어 미닫이창을 반쯤 열었다.

“근데, 집 안에선 조금만 작게 울어 줄래? 나리께서 주무시고 계시거든.”

메산이가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소곤소곤 말을 건넸다. ‘금방 구경하고 나가겠습니다.’ 귀뚜라미는 조그맣게 감사를 표하며 거실로 폴짝 뛰어들었다. 메산이는 불 꺼진 거실 한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어스름한 달빛이 무릎에 놓인 휴대폰을 물들였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메산이가 침을 꼴깍 삼켰다. 일전에 정주가 알려준 순서대로 숫자를 눌렀다.

휴대폰을 귓가로 가져갔다. 뚜르르, 뚜르르, 귀뚜라미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메산아!’ 이름을 불린 메산이의 표정이 대번에 환해졌다.

“정, 정주 님!”

왈칵 치솟는 마음에 목소리가 꽤 크게 나왔다. 메산이는 순간 아차 싶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굳게 닫힌 방문 너머까지 들렸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재겸이 있는 방은 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다. 메산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공손하게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여요. 예. 나리께선 아까 전에 잠이 드셨습니다.”

오늘 메산이는 재겸이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정주는 걱정하지 말라고 메산이를 다독였지만 메산이의 마음은 몇 번이고 무너져 내렸다. 하루 종일 마당을 서성거리며 걱정과 상상을 반복했다. 홧김에 한 말이 아니라 만약 진심이라면?

좀 더 확실하게 재겸의 의중을 알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알고 싶지 않다는 양가적인 마음이 들었다. 메산이는 재겸에게 제일 먼저 무슨 말을 꺼낼지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 메산이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재겸을 보는 순간 그대로 굳어 버렸다.

차마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그저 쳐다만 보고 서 있기만 했다. 재겸이 꺼낸 첫마디는 메산이의 마음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잘 놀았어?’ 평소와 같은 인사였다.

재겸은 어제 일에 대해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저의 나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저에게 잔소리를 하고, 밥을 먹고, 일일 드라마를 챙겨 보고, 게임기를 두들기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재겸의 모습에 메산이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혹시 내가 어제 꿈을 꾼 건 아닐까? 혹시나 싶어 부엌으로 가 봤다. 역시나 밥그릇 개수가 하나 모자랐다. 재겸의 동태를 살펴 달라는 정주의 부탁이 민망할 정도로 평범하고도 잔잔한 하루였다.

메산이는 틈틈이 닫힌 방문을 힐끔거리며 정주에게 재겸의 일상을 전했다.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정주는 ‘그래, 그렇구나.’ 하고 말을 흐렸다.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재겸의 의중을 알 수 없으니, 메산이 못지않게 정주 역시 마음이 복잡한 듯했다. 둘은 짧게 안부를 주고받은 뒤, 내일 이 시간을 기약하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오랫동안 꿇어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저렸다. 들고 있던 휴대폰은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메산이는 살금살금 재겸의 방 앞으로 향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거실을 가득 채운 달빛이 새까맣던 방 안을 은은하게 밝혔다.

달빛에 의지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안력을 돋우자 침대 위로 저의 나리가 보였다. 재겸은 배를 훌러덩 내놓고 잠에 빠져 있었다. 메산이는 곤히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시큰둥하던 표정은 멍하니 풀어져 있었다. 메산이가 재겸의 얼굴 위로 손바닥을 펼쳤다.

“나리.”

숨결처럼 조그맣게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저를 거두신 것을 후회하세요?”

메산이의 손바닥에서 희미한 빛무리가 새어 나왔다. 손바닥 근처가 살짝 환해졌다. 하지만 재겸은 한 치의 미동조차 없이 단잠에 빠져 있었다. 어제의 여파로 인해, 아까는 치유를 하겠노라고 차마 말을 꺼낼 용기가 없었다. 빛무리가 재겸의 얼굴 곳곳과 내상이 남은 손에 달라붙었다. 입술에 붙어 있던 피딱지가 떨어지고, 얼룩덜룩하던 멍 자국 또한 차츰 옅어졌다.

“제가 싫어지셨나요?”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 질문을 던지며, 메산이는 그대로 손을 거뒀다. 평범한 자연 치유 정도로 보이게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룻밤 어치였다. 마음만 같아선 지금 당장 전부 낫게 하고 싶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는 저의 나리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선 이게 최선이었다. 하루 만에 모든 상처가 나았다간 평범한 인간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재겸은 원래부터 몸을 험하게 굴렸다. 학교에 다니게 된 이후로도 걸핏하면 몸에 상처를 입었다. 손가락을 깨물고, 손바닥에 칼을 쑤셔 넣고, 코를 다쳐 피를 쏟았다. 그때마다 메산이는 속상해하며 치유를 해 주었고, 재겸은 입버릇처럼 ‘안 죽어.’라는 말을 했다. 메산이는 그렇게 말하는 재겸이 미웠다.

그래도요. 죽지 않아도요. 죽지 않더라도요,

“상처가 나면 아프잖아요.”

불사의 육체라도 아픔을 느끼는 것은 똑같았다. 평범한 사람은 목에 칼을 박아 넣으면 숨이 끊어진다. 숨이 끊어지면 고통도 끝난다. 하지만 저의 나리는 목숨을 잃을 정도의 상처를 입고도 그에 준하는 고통을 온전히 느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저의 나리는 남들에 비해 아주 작은 생채기조차 무척이나 더디게 나았다. 메산이는 재겸이 아파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저는 나리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메산이가 힘없이 속삭였다.

어느새 눈가에 고인 눈물을 슥 닦아 냈다. 메산이는 어둠 속에서 곤히 잠든 얼굴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배를 내놓고 자는 재겸의 티셔츠를 조심조심 내려 주었다. 흐트러진 이불까지 여며 준 뒤에야 메산이는 방에서 나갔다. 소리 없이 방문이 닫히고 달빛이 물러간 방 안에는 무거운 암흑이 들어찼다.

“…….”

꾹 감겨 있던 재겸의 눈꺼풀이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청년은 노트를 건넸다.

“청소는요?”

“아까 내가 다 했어요.”

“왜요? 저한테 하라고 하면 되잖아요.”

“친구가 온다는 걸 깜빡했어요.”

재겸이 청년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청년은 순진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단 청소뿐만이 아니라 일거리야 만들자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청년은 며칠째 똑같은 핑계를 대며 재겸에게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

그러는 와중에 재겸과 청년은 종종 짤막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항상 먼저 말을 건네는 건 청년이었다. 이를테면 ‘점심 맛있었어요?’, ‘오늘 요쿠르트 나와서 너무 좋았어요.’, ‘수업은 들을 만해요?’, ‘점점 날이 더워지네요.’ 같은 시시콜콜하고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 재겸도 제법 편하게 말을 섞을 수 있었다.

처음엔 차라리 몸 쓰는 일이나 시켜 줬으면 했다. 하지만 청년은 대충 휘갈겨 쓴 감상문에도 후한 평가를 내려 주었다. 엄밀히 따지면 벌을 받으러 온 건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벌을 받는 느낌이 아니었다.

어찌 됐든 재겸 입장에서야 손해를 볼 것은 없었다. 재겸은 대충 책 하나를 골라 열람석에 앉았다. 처음엔 시간을 때우는 셈 치고 건성으로 책을 읽었지만, 삼 일째 책을 뒤적거리고 있노라니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물론 낯선 외래어가 속출할 때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긴 했다. 그래도 대충 낱말의 뜻을 유추해 가며 문장을 돌파하다 보면, 나름대로 읽는 재미가 있긴 했다. 무엇보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졌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게 사실인가보다.

재겸은 양손을 포갠 손등 위로 턱을 얹었다. 이젠 어떤 자세로 읽어야 편한지 살짝 감이 왔다. 책을 활짝 펼쳐 놓고 문장을 차근차근 읽어 나갈 때였다.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청년이 의자를 뒤로 물리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재밌어?”

“응.”

무심코 대답하며 페이지를 넘기던 재겸은, 문득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청년이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

잠시 이질적인 정적이 흘렀다. 번뜩, 재겸이 황급히 대답을 수정했다.

“아, 아니. 그, 네.”

청년이 소리 없이 웃었다.

“그게 뭐예요. 그래서 재미있다고, 없다고?”

“…재밌다고요.”

“그래요.”

약간 멋쩍은 재겸이 괜시리 목을 가다듬었다. 잠깐 눈치를 보다가 적당히 책이나 들여다보는 시늉을 하는데, 청년은 마우스를 몇 번 딸깍거리는가 싶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 팔을 쭉 뻗고 기지개를 켜며 열람석 테이블로 다가왔다. 재겸이 스르륵 눈을 들었다.

“나도 책 좀 읽을까 해서요.”

청년이 손에 든 책을 보란 듯이 까딱거렸다. 곳곳에 책갈피가 삐죽빼죽 끼어 있는 것을 보니 원래부터 읽고 있던 책인 듯했다. 열람석 테이블로 다가온 청년이 의자를 꺼냈다. 열람석엔 재겸뿐이라 빈자리가 많았는데도 청년은 굳이 재겸의 맞은편에 앉았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예의 그 향수 냄새가 풍겼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신경이 쏠렸다. 청년은 비스듬히 다리를 꼬고 앉더니, 한 손으로 책날개를 겹쳐 쥐고 조용히 책을 읽었다. 평소엔 몸 선에 딱 맞게 옷을 입던 청년은 오늘따라 품이 넉넉한 카키색 린넨 셔츠를 입었다. 재겸은 책을 읽는 척하며 청년을 훔쳐보았다.

청년이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읊조리듯 물었다.

“왜?”

재겸이 재빨리 눈을 내리깔았다.

“아뇨. 무슨 책 읽나 제목 본 거예요.”

그렇게 대꾸한 재겸은 볼 일 없다는 듯 딴청을 피웠다. 보란 듯이 책을 읽는 시늉을 하며 사라락, 페이지를 넘길 때였다.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쪽만 보여 준다.”(장 그르니에, <섬>)

뜬금없는 말에 재겸이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에 있다.”

청년은 말을 마친 뒤 재겸을 빤히 응시했다.

“지금 읽는 문장인데, 마음에 들어서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재겸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청년을 멀뚱멀뚱 쳐다볼 때였다.

“어떻게 생각해요?”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뭘요.”

“가려진 달의 뒷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나는 너무너무 궁금한데.”

청년이 손끝으로 책상을 건반처럼 톡톡 두드리며 덧붙였다.

“꽁꽁 감춰진 곳에 과연 뭐가 있을지.”

재겸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든가요.”

“아, 직접?”

웃음기 어린 청년의 눈매가 깊어졌다.

“그런 방법이 있었네. 미처 생각을 못 했어.”

달한테 직접 물어보라니.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었지만 청년이 능청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재겸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을 뻔했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청년의 표정이 제법 심각했던 것이다. 턱을 괴고 재겸을 빤히 바라보던 청년이 진지하게 물었다.

“전화번호 알아?”

“누구요?”

“달.”

“…….”

뭐라? 페이지를 넘기던 재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너무 멀어서 전화로 물어봐야겠는데.”

청년이 쐐기를 박았다.

“…….”

“…….”

재겸은 손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기묘한 정적 속에서 둘의 시선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만이 유달리 크게 들렸다. 그리고,

푸흐….

재겸은 결국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재겸의 반응에 태연한 낯을 유지하고 있던 윤태희 역시 턱을 괴고 있던 자세 그대로 조용히 웃었다. 먼저 엉뚱한 소리를 하기에 적당히 응수를 했던 것인데, 저렇게 웃을 줄은 몰랐다.

큭큭거리던 재겸이 고개를 들었다. 약간의 웃음기가 남아 있는 두 얼굴이 서로를 마주했다. 눈이 마주치자 재겸은 괜히 멋쩍어져서, 재빨리 표정 관리를 했다. 서둘러 웃음기를 지워 내긴 했지만 재겸의 귓가엔 그 흔적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하.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절로 나오네.”

웃고 보니 괜히 체면이 망가진 느낌이라 뻘쭘했다. 재겸이 어색하게 시선을 내리며 노트에 글을 끄적거리는 흉내를 냈다. 그사이, 윤태희는 제법 기묘한 심정이 되어 재겸의 귓바퀴를 바라보고 있었다. 늘상 뾰로통하던 소년의 얼굴이 무방비하게 풀리던 순간은 윤태희에게 이상한 감명을 주었다. 청쾌한 웃음소리, 살짝 찌그러지던 콧잔등, 잘게 떨리던 어깨….

윤태희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웃으니까 영락없이…”

홀린 듯이 중얼거리던 윤태희가 도중에 말을 멈췄다. 그에 재겸이 힐끔, 눈을 들었다.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데 윤태희는 고요한 낯으로 재겸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책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가, 문득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감상문 아직이에요?”

한참 만에 이어진 말은 영 생뚱맞았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