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39)화 (39/348)

#39

흩날리는 불씨가 흐린 밤하늘에 별처럼 박혀 들었다. 산중에 위치한 외딴 초가집은 거센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초가집을 집어삼킨 불기둥은 하늘에 닿을 듯 솟구쳐 올랐다. 깊은 어둠을 뒤집어쓴 산자락 속에서 유일하게 초가집 주변만 대낮처럼 환했다.

마당에 서서 불타오르는 초가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내는 고개를 내렸다. 흙바닥 위에는 앳된 얼굴을 한 소년이 쓰러져 있었다. 소년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어 냈다. 열기 섞인 바람에 사내가 입고 있던 흑색 장포가 펄럭거렸다.

“내가 없었다면 너의 생은 오래전에 끝났을 것이다.”

사내의 다정한 목소리가 소년의 정수리 위로 부드럽게 흩어졌다. 소년은 고통에 가득 찬 신음을 내뱉으며 몸부림쳤다. 흙을 짓이기다시피 움켜쥐는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눈앞에 선 사내를 쳐다보려고 했지만,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시야를 흐릿하게 물들였다. 사내는 웃고 있다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울고 있다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그때 죽여 버리지 그랬어….”

소년이 동그란 이마를 흙바닥 위에 사정없이 짓뭉갰다.

“그땐, 어차피 순순히 죽어 줬을 건데. 그럴 수 있었는데!”

서러운 포효가 힘없이 사내를 향했다.

“내가 거둔 삶이다. 그러니 네 삶의 주인은 나란다.”

사내가 태연한 어조로 대꾸했다.

“모든 생명은 때가 되면 죽는단다. 헌데, 그냥 죽이자니 퍽 아쉬운 마음이 들더구나. 그래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흔적으로 이 세상에 남겨 놓기로 했단다. 너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알리는 증표가 될 것이다.”

스승의 손에 관통당한 옆구리에서 피가 콸콸 흘러나왔다. 온몸에서 온기가 빠져나갔다. 식어 버린 몸에 강렬한 한기가 들어 사지가 벌벌 경련했다. 소년은 저절로 감기려는 눈에 힘을 주었다. 자꾸만 시선이 무너졌다. 눈앞으로 다가온 죽음이 양팔을 벌리고 있다.

“누구도 너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물론 너 역시 마찬가지지. 너는 죽고자 하여도 죽을 수 없다. 필멸의 세상 속에서 오로지 너만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너를 잡아먹을지, 네가 시간을 잡아먹을지 정말 궁금하구나.”

사내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소년에게 흑색 장포를 덮어 주었다.

아, 따듯하다.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점멸하는 의식을 비집고 들어온 망연한 생각이 소년을 슬프게 만들었다. 예전엔 무척이나 품이 크게 느껴졌던 사내의 옷이 지금은 적당히 여유롭게 몸을 휘감아 왔다. 웅덩이처럼 고여 있던 피가 흑색 장포에 스며들었다. 사내와 소년이 함께 세월을 보냈던 초가집은 타오르는 불길에 금세 폐허가 되었다.

“겸아, 너의 삶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지?”

소년이 멍하니 입술만 달싹였다.

널… 만난… 그 순간부터….

뱉어 낸 목소리는 말이 되지 못하고 숨결처럼 흘러나왔다. 용케 재겸의 말을 알아들은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잔혹하리만치 다정한 음성으로 쐐기를 박아 주었다.

“그렇지. 너는 나를 만나서 잘못되었다.”

눈앞에서 꽃가루처럼 흩날리는 불씨를 좇던 소년의 눈동자에서 점점 초점이 사라졌다. 사내가 등을 돌렸다. 넓고 탄탄한 등이 보이자 소년의 턱 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가엾은 나의 제자야, 부디 운명을 거슬러 보거라.”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

‘귀한 아이야, 나와 함께 가겠니?’

어린아이였던 재겸은 사내가 손을 내밀던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은 악의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재겸이 인생에서 처음으로 건네받은 ‘호의’였다.

사내는 저더러 귀한 아이라고 했다. 사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귀하다고 하니 정말 귀하게 느껴졌다. 길가의 돌멩이와도 같았던 재겸은 기꺼이 사내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귀신, 인간, 삶, 죽음. 재겸은 사내의 온기 어린 품에서 이 세상의 거대한 섭리를 차근차근 깨우쳐 나갔다.

그밖에도 사내는 귀재로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를 알려 주었다. 귀신을 분간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어리고 약한 아이였던 재겸이 귀신과 인간의 틈에서 스스로를 호신(護身)할 수 있도록 매일 같이 수련을 시켰다. 다정한 사내는 때로 엄격한 스승이었다.

재겸은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아이였다. 사내가 가르치는 게 무엇이든 놓치는 법이 없었다. 사내가 부적 한 장을 그려 주면 부적에 쓰인 도식을 곧바로 이해했고, 그걸 금세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알았다. ‘귀재(貴才)’라는 말을 쓰기에 모자람이 없는 그릇이었다.

다만, 그런 재겸에게도 부족한 점은 있기 마련이었다. 귀기를 다루는 것만은 유달리 서툴렀던 것이다. 재겸은 날 때부터 남다른 귀기를 지니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귀기가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나온다는 것이었다. 사내는 재겸에게 귀기를 다스리는 법부터 익히도록 했다.

“귀기를 내보이는 것은 만방에 정체를 알리는 것과 다름없단다.”

그제야 재겸은 그간 귀신들이 제 주변을 맴돌았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저절로 흘러나오는 귀기 때문에 귀재라는 사실을 알았던 거였다. 둘이 처음으로 만나던 날, 사내가 재겸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귀기 덕분이라고 했다.

귀기를 다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쁠 때나 화가 날 적이면 요동치는 감정과 같이 귀기 또한 제멋대로 튀어나왔는데, 사내는 그때마다 무서운 얼굴을 했다. 그 장소가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특유의 표정은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 정도로 싸늘했다.

“겸아, 기운을 숨기라고 하지 않았느냐.”

“나도 노력 중이야. 근데 마음대로 안 된단 말이야.”

섭섭해진 재겸이 불퉁한 낯으로 투정을 부렸다.

“꼬리가 따라붙기 전에 어서 기운을 갈무리하거라.”

“그래 봤자 잡귀일 거 아냐. 그냥 네가 내쫓아 주면 안 돼?”

사내는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고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정체를 알아채고 들러붙는 귀신이 있거든 물리치면 그만이었다. 그것도 나름 성가시긴 할 테지만 그 정도야, 사내가 가진 힘에 비하면 그 어떤 악귀라도 잔챙이에 불과할 것이다.

“겸아.”

잠시 침묵하던 사내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귀신 때문이 아니다.”

“뭐라고?”

귀신이 꼬일까 봐 그러는 게 아니었나. 재겸이 알쏭달쏭한 얼굴을 할 때였다.

“겸아, 넌 귀신이 싫으냐?”

대뜸 사내가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그건 왜? 그야….”

당연히 싫지. 귀신은 툭하면 장난을 치고 패악을 떨어 대는 성가신 것들이다. 주위를 맴돌며 인간의 빈틈을 노리고, 여리고 약해진 마음을 말 그대로 ‘귀신같이’ 눈치채고는 농간을 부리려 든다. 재겸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인간이 좋으냐?”

재겸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허면, 귀신은 악하고 인간은 선한가?”

“아무렴 귀신보다야 인간이 훨씬 낫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귀신은 존재부터 요사스럽고 이질적이다. 따라서 귀신이라면 일단 본능적인 거부감이 드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자연스러울 것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인간도 인간 나름이고 귀신도 귀신 나름이지 않겠느냐.”

사내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귀신이 방심한 틈을 노린다면, 인간은 방심을 하게 만든단다.”

“방심을 하게 만든다니?”

“이 세상에는 귀신보다 간악하고 사특한 인간도 있는 법이거든.”

“…그게 누군데?”

사내는 허리를 숙여 재겸에게 눈높이를 맞췄다.

“나자(儺者).”

나자? 재겸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할 때였다.

“나자는 나례청에 소속된 귀재란다. 귀재 중에서도 강하고 능력이 있는 자만이 나자가 될 수 있지. 그들은 본디, 나라의 부름을 받아 귀신으로부터 궁궐을 수호하고 인간을 지키는 신성한 존재였으나….”

말을 흐리던 사내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나라를, 인간을 위한다는 사명감이 나자를 괴물로 만들고 말았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그게 선하고 옳은 일이라고 믿었단다. 그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무자비하고 잔혹하지. 자기 자식마저 제물로 바치는 인간이 바로 나자다.”

침중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그러니 나자의 눈에 띄어선 아니 된다. 나자를 만나거든 그때는 반드시 도망쳐야 한다. 알겠느냐? 겸아, 내 말을 명심해다오. 만에 하나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사내는 말을 멈추고는 재겸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에 재겸은 나자가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무겁게 부딪쳐 오는 사내의 시선에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사내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절대로 용서하지 말거라.”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살짝 떨린 것도 같았다.

***

사내는 인간이 좋으냐고 물었었다.

좋았다. 사내는 그런 재겸에게 귀신보다 더한 인간이 있노라고, 섣불리 인간을 믿어선 안 된다고 말했으나 재겸은 어쩔 도리 없이 인간에게 애정을 느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사내가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사내를 만나기 전에는 인간이나 귀신이나 전부 똑같이 싫었다. 하지만 사내를 알게 되면서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인간을 좋아졌다. 좋았었다. 인간이.

“내 스승이 나자였거든.”

그러나 이젠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나자를, 아주 싫어해.”

재겸의 입에서 평이하게 흘러나온 말에 윤태희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나자를 향해 적대감을 드러낼 때부터 응당 사연이 있을 것이라 짐작은 했다. 하지만 배신한 스승이 나자였다니, 그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잠시 놀란 기색을 내비치던 윤태희의 얼굴이 제법 심각해졌다. 이내 눈매를 가늘게 좁혀 뜨며 물었다.

“누구? 이름이 뭐지?”

순수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시기를 미루어 보면, 과거의 나례청이 해체되기 이전에 몸담고 있었던 선대 나자였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일지도 몰랐다. 만약 모르는 이름이더라도 나례청 문헌실에 가면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

“…….”

윤태희는 집요한 시선으로 재겸의 낯을 관찰했다. 재겸은 뭐라 입술을 달싹이는가 싶더니, 이내 그대로 다물었다. 재겸이 선택한 건 침묵이었다. 이름을 입에 담기도 싫다는 건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윤태희는 그 얘기는 됐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일단은 네 스승이 개새끼라는 건 잘 알겠어. 근데….”

잠시 말을 흐리던 윤태희가 모자챙을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싸잡아서 취급하면 섭섭하지. 나는 얼굴도 모르는 선대 나자 한 명 때문에 덩달아 미움받는다고 생각하니까 억울하네.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진 말아 줬으면 좋겠는데.”

무표정하던 재겸의 얼굴에 냉담한 조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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