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61)화 (61/348)

#61

2부

주어진 명이 다하여 죽음에 이르면 그 육신은 땅으로 돌아가 흙이 되고, 몸에 갇혀 있던 혼은 하늘로 흩어진다고 하였다. 죽기 바로 직전에 몸에서 맑고 푸르스름한 빛이 빠져나오는데, 사람들은 고래로부터 이것을 ‘혼불’이라고 불러 왔다.

사람들은 혼불을 목도할 적이면 먼 길을 떠날 불빛을 애도하며 두 손을 모아 망자의 명복을 빌었다. 허나 언제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은 있기 마련이라. 모든 혼불이 승천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승천은커녕 외려 땅에 들러붙는 일이 생겨났다. 하늘로 올라가야 할 혼불이 이승에 묶이면 그 자체로 생의 찌꺼기요, 재액의 씨앗이 되었다. 그리하여 불길한 씨앗은 마침내 삿된 이물(異物)을 틔워 내고 말았던 것이다. 바로 ‘귀신’이라는 존재였다.

(중략)

어둠에 물든 산천이 귀신의 영토라면 나례는 어둠을 몰아내는 횃불이라. 나례를 거행할 적이면 그 중심에는 언제나 방상시가 있었는데 그 외형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묘하여, 그가 좌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 적이면 누구라도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곰 가죽을 뒤집어쓰고 붉은 옷에 검은 치마를 둘렀으며, 얼굴에는 반드시 해괴한 탈을 썼으니 그 용모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탈에 새겨진 눈은 자그마치 네 개나 되는데, 그 색이 황금과 같다고 하여 황금사목(黃金四目)이라고도 불렸다.

그의 얼굴이 곧 탈이요, 탈이 곧 힘의 원천이었다.

황금색 눈은 혼에 새겨진 이름을 볼 수 있었는데, 방상시가 혼의 이름을 세 번 연달아 호명하면 그 혼은 혼불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였다. 그 절대적인 호명으로 하여금 산 자에겐 죽음을, 죽은 자에겐 승천을 안겨 주었으니. 역류하는 섭리를 바로 잡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며 모든 질서를 정연케 하였던 것이다.

혼불을 인도하는 힘, 그것이 방상시의 권능이었다.

구나세전(驅儺世傳) 발췌

***

그 날, 재겸은 말했다.

“떠나라는 말은 진심이었어.”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주를 보자마자 꺼낸 말이었다. 그 말을 듣기 전부터 정주는 이미 몹시 놀란 상태였다. 메산이와 함께 외출에 나섰다가 이제 막 집에 돌아온 재겸은 누가 봐도 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주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재겸이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나는 너네한테 같이 살자고 한 적도, 곁에 있어 달라고 한 적도 없잖아.”

재겸은 정주와 메산이가 애써 잠시 미뤄 두었던 화제를 순식간에 불러들였다.

재겸은 둘 다 떠나라는 말을 했었다. 그것이 소원이라고.

“나는 오라고 안 했는데 너네가 멋대로 온 거야.”

재겸의 코끝은 빨개져 있었고, 눈가 언저리가 붉었다. 퉁퉁 부은 눈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평소와 같던 재겸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지내고는 있지만 계속 같이 살고 싶다, 헤어지고 싶지 않다, 한 번도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재겸은 아주 오랫동안 곱씹고, 곱씹은 내용을 토해 내듯 울컥대며 말을 쏟아 냈다.

“그럼 너무 슬프니까.”

그렇게 말하며 재겸은 얼굴에 남은 물기를 닦아 냈다.

“나중에 너무 슬퍼지잖아, 내가….”

재겸은 둘을 처음 만나던 때를 떠올렸다. 만난 시기는 달랐지만 행동은 비슷했다. 둘 다 끈질길 정도로 재겸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내쫓기도 귀찮고 제풀에 떨어져 나갈 거라고 생각해서 그대로 놔뒀더니 어느샌가 은근슬쩍 곁에 눌러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셋이서 한 지붕 생활을 하는 꼴이 기가 막혔다. 여우에, 산삼에. 떼어 놓을까 고민도 했지만 재겸은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딱히 싫지도 않았다. 또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둘 다 인간보다 수명이 몇 배나 길었다. 이것은 사실상 둘을 곁에 둔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리고 둘을 곁에 둔 이유는 훗날, 둘에게 떠나라고 말한 이유가 되었다. 처음엔 어차피 당분간이라는 생각에 이 생활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다 불현듯 위기감을 느꼈다. 혼자가 익숙했던 재겸이, 어느새 셋이 함께 있는 풍경에 익숙해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그 순간부터였다.

나중엔 반드시 혼자가 된다.

깊게 박혀 있는 이 생각이 재겸을 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재겸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혼자 동떨어져 있었다. 이 이상 각별해져선 안 됐다.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서로를 필요로 해서는, 그래서는 안 됐다.

각자의 자리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재겸은 생각했다. 하루빨리 더 늦기 전에. 그러나 윤태희가 정주를 들먹이며 협박을 했던 날, 집에 돌아왔더니 메산이가 없었던 그날, 난장판이 된 거실에 멍하니 앉아서 재겸은 생각했다.

이미 늦었다고.

정주도 메산이도 정말 ‘그냥 아는 애’였으면 훨씬 좋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오늘 재겸은 울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근데, 이젠 떠나라고 안 할 거야.”

지킬 수 없다면 버릴 것, 그리고 버릴 수 없다면 지킬 것.

이것이 소년이 내린 결론이었으므로.

“내가 오라고 해서 온 거 아니니까, 가라고 하지도 않을래.”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는 정주도 메산이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하여 앳된 얼굴의 소년은 다가올 작별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겨질 훗날에 미리 겁먹지 말자고.

“대신 언제든지 떠나도 돼. 멋대로 온 것처럼 갈 때도 멋대로 가면 돼.”

그날이 오거든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겠노라고.

“올 때 환영은 못 해 줬어도, 갈 때는 환송해 줄게.”

그 말을 끝으로 재겸이 심술궂게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소년다운 웃음이었다. 정주는 얼빠진 얼굴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정주는 지금 이 순간, 비로소,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음을 알았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재겸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한 박자 늦게 정주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소년은 소원을 회수하였다.

***

산 밑에 자리한 아담한 이층집은 얼마 전부터 이사 준비에 돌입했다. 폭주의 여파로 사경을 헤매던 재겸이 정신을 차리고 이틀이 지났다. 이후로 정주는 방방곡곡의 정보를 수집해 가며 새로 옮길 거처를 열심히 알아보는 중이었다.

집을 옮기자는 제안은 꽤나 갑작스러웠지만 재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겸 또한 이 집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의견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이사할 집이 정해지는 대로 당장 떠날 수 있도록 이미 채비도 마쳐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새로운 거처를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메산이가 정기를 취해야 하므로 산 주변이어야 했고, 집에는 넓은 정원이 딸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또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이기를 바랐으므로, 여러모로 조건이 까다로웠다.

이 모든 조건에 해당하는 집을 단시간에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괜찮은 곳을 찾아서 연락을 해 보면 몇 달 뒤에나 집이 빈다고 하여 좌절하기를 몇 번. 정주는 그야말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이틀간 잠 한숨 못 잔 정주는 이른 아침부터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한껏 충혈된 눈으로 미리 챙겨 온 여분의 휴대폰을 번갈아 들여다보느라 재겸이 방에서 나온 것도 몰랐다. 재겸은 밤새 얼마나 요란하게 잤는지 머리가 까치집이었다. 부엌으로 향한 재겸은 식탁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재겸은 익숙한 손길로 찬장을 열어 컵라면을 꺼냈다.

그제야 재겸의 존재를 알아챈 정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가왔다. “언제 나왔어?” 정주는 재겸의 손에 들린 컵라면을 보더니 제대로 된 아침밥을 차려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재겸은 반송장한테 어떻게 밥상을 받아먹겠느냐며 까칠한 반응을 내보였다. 그만큼 정주의 얼굴은 초췌했다.

“발 닦고 잠이나 자.”

핀잔과 함께 재겸은 뜨거운 물을 부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걱정돼서 잠이 안 와….”

“걱정을 안 하면 되잖아.”

명쾌하고도 한결 같은 대답에 정주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해?”

“당분간은 괜찮을 거라고 그랬다며.”

재겸이 주어를 생략한 채로 대답했지만, 정주는 누구의 말을 빗대고 있는지 곧바로 알아들었다. 나자들이 한 달 동안은 꼼짝도 못 할 거라는 이야기. 재겸이 사경을 헤매던 사이에 왔다 갔던 윤태희의 전언이었다. 메산이가 고스란히 말을 전해 주었는데, 건성으로 듣는 것처럼 하더니 전부 다 새겨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너 설마 그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지?”

정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슥 들이밀었다.

“근데 며칠 동안 아무 일 없었던 건 맞잖아.”

조급한 정주와 달리 재겸은 태평하기만 했다. 윤태희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당연히 화살을 쐈으니 당분간은 몸을 움직이기 힘들 것이고, 만약 회복하더라도 윤태희가 기억을 지웠으므로 추적 또한 어려울 터. 이 집만 떠난다면 행적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 근데, 재겸아. 그 사람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정주는 그간의 정황에 대해 대략적인 내용을 들은 상태였다. 하지만 윤태희만은 종잡기 어려웠다. 메산이는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정주의 생각은 달랐다. 정주는 메산이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도움을 줬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도 나자였다. 마지막에 재겸이 손을 쓰지 않은 데는 나름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정주는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다.

“말했잖아. 학교 사서로 잠입한 나자라고.”

재겸이 입을 우물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게 다야?”

정주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재겸이 눈을 뜨면 다시 오겠다던 윤태희는 며칠째 감감무소식이었다. 정주가 윤태희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는 학교 사서로 잠입한 나자라는 사실, 그리고 재겸에게 나자가 되어 달라는 제의를 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게 다야.”

왜냐하면 재겸이 딱 그 정도만 얘기했기 때문이었다.

재겸은 윤태희가 협박을 했다는 사실과 자신에게 나자가 되어 달라고 한 이유, 나례청을 부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메산이에게도 일단은 입단속을 시켜 둔 상태였다. 가볍게 흘려보낼 이야기는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그게 사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난 그 사람 싫어.”

정주가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정주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이 지뢰밭을 걷고 있었음을 알았다. 나례청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은 있었지만 자세히는 몰랐다. 한때 사라졌던 나례청이 현대에 이르러 재건되었고 나자로 일하는 귀재들이 있다더라, 정도였다. 이렇게 엮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업계에 나자들 많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이었다.

“너만 싫냐? 그 새끼 나도 싫어.”

재겸이 컵라면을 뒤적거리며 무심하게 동조했다.

“뭔가 촉이 안 좋아. 나 촉 좋은 거 알지?”

정주가 목소리를 낮추며 속닥거렸다. 재겸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대충 추려서 이야기했을 뿐인데도, 정주는 필요 이상으로 윤태희를 의식하고 거부감을 드러냈다. 위협을 감지하는 직감. 여우의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알았으니까. 가서 자라, 좀.”

재겸이 성가시다는 투로 말했다.

“왜 자꾸 가서 자래? 그렇게 상태 안 좋아 보여?”

“못 믿겠으면 메산이한테 가서 물어 보든지.”

재겸이 턱짓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커다란 미닫이창 너머, 담장 위로 보이는 하늘이 맑았다. 메산이는 아침부터 마당을 부산히 돌아다니며 이슬을 받아먹고 있었다. 마당 구석으로 번져 오는 햇볕이 따사로웠다. 이사를 갈 거라고 했더니 메산이는 정든 집을 떠나는 게 아쉬운지 평소보다 훨씬 오랫동안 마당에 머물렀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미리 겁먹을 필요 없어.”

물끄러미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재겸이 중얼거렸다.

“찾아보면 세 식구 살 집 하나쯤은 있겠지.”

태평한 한마디를 남겨 놓은 뒤, 재겸은 밥을 먹는 데 열중했다.

“…….”

정주가 얼떨떨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세 식구.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 단어가 귓가에 메아리처럼 남았다.

지금껏 같이 살아온 세월 동안 재겸이 셋을 묶어서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재겸은 항상 ‘우리’ 대신에 ‘너네’라고 했다. 일부러 선을 긋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그런 말을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식구라니….

“왜 그러는데?”

정주가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재겸이 한쪽 눈을 찌푸리며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 정주는 고개를 저으며 어색하게 말했다.

“어, 어? 아무것도 아냐….”

재겸은 잠시 미심쩍은 얼굴을 하다가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재겸은 어느새 컵라면에 찬 밥까지 말아 먹고 있었다. 정주는 흐뭇한 눈길로 재겸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입꼬리가 꾸물꾸물 올라가려고 해서, 정주는 눈을 굴리며 표정 관리를 했다. 연기자의 재능은 이럴 때 써먹는 것이다. 퀭하던 얼굴은 어느새 살짝 밝아져 있었다.

“근데 재겸아, 너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생각해 보니 평소 아침잠이 많은 재겸은 누가 깨우지 않는 이상 해가 중천에 떠야 잠에서 깨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챙겨 먹는 모습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그에 재겸은 숟가락을 들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야….”

뭐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재겸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학교 갈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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