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63)화 (63/348)

#63

2학년 3반은 아침부터 술렁거렸다. 일주일 동안 결석했던 동급생의 등장 때문이었다. 재겸은 등굣길에 윤태희를 떨궈 내고 이제 막 교실에 들어서던 참이었다. 조용히 자습을 하고 있던 조영우는 재겸을 보자마자 샤프를 내던지고 한달음에 달려왔고, 반 아이들도 앞다투어 아는 척을 해 왔다.

“재겸아, 괜찮아?”

조영우는 재겸의 손을 덥썩 잡으며 다짜고짜 안부부터 물었다. 괜찮냐니? 뭐가 괜찮냐는 거지…. 재겸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할 때였다. 뭐라 묻지도 않았건만 주변을 얼쩡거리던 몇몇 아이들이 슬쩍 끼어들어서는, ‘너 없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하며 그간의 소식들을 전해 주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옆 반 애들이 너 맨날 찾아왔었어.”

“맞아. 너 학교 빠진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니까.”

“우린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으니까 걱정 마.”

재겸은 결석한 사정에 대해 아직 입도 뻥긋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조영우를 비롯한 아이들은 굳이 말 안 해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처럼 굴었다. 논란에 휩싸인 연예인 삼촌 때문이라고 기정사실화한 듯했다. 그 조카가 있는 학교였으니 교내에서도 ‘정주 잠적 사건’은 꽤나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담임 쌤도 너 오면 아무것도 물어보지 말라고 그랬어.”

“누가 물어보면 그냥 무시해. 어차피 나중엔 다 잊을 거야.”

“어? 어어….”

재겸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 아이들은 사정을 묻지도 않고 무작정 재겸을 다독여 주었다. 정주가 잠적한 이유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추측성 루머가 돌아다니는 상황이었고, 그중에선 다소 악의적인 내용도 있었다. 반 아이들은 어림짐작으로 가족인 재겸이 상처받을 것을 염려했다. 재겸 입장에선 딱히 그들의 염려를 부정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귀찮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보다야 이게 낫긴 했다.

오늘 아침, 정주는 학교에 가는 재겸을 배웅하며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말했다. 재겸은 고민 끝에 그 말에 동의했다. 괜히 말해 봤자 성가신 질문만 받을 것이 뻔했고, 정주가 알아서 절차를 밟을 텐데 굳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한 달을 전제로 했던 학교생활이었다. 그보다 일찍 끝난 것일 뿐, 떠난다는 사실에 별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교실에 오니 조영우 이외에도 많은 얼굴들이 있는 것은 물론이요, 저를 둘러싸고 친근하게 너스레를 떨어 대는 모습에 재겸은 어쩐지 싱숭생숭한 기분이 되었다.

이를테면 정이 붙으려는 듯한, 그런 미지근한 느낌 같은 것.

낯설다면 낯설고, 익숙하다면 익숙한 감각이 마음 한 켠에서 헛돌았다. 재겸은 말없이 볼만 긁적거렸다. 이제 막 붙으려는 정이니, 긁으면 금세 떨어질 것이었으므로.

***

점심시간이 되자 재겸과 조영우는 나란히 급식실로 향했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급식실은 왁자지껄했고,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조영우는 자신의 몫으로 나온 제육볶음을 재겸의 식판으로 옮겨 주었다.

주변에 앉아 있는 녀석들이 하나같이 재겸을 곁눈질하며 뭐라 수군덕거렸다. 그러나 원체 남에게 관심이 없는 재겸은 그러거나 말거나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이기 바빴다.

“재겸아, 맛있어?”

재겸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처럼 잘 먹는 재겸의 모습에 조영우가 입에 숟가락을 물고 흐흐 웃었다. 수북이 쌓여 있던 밥과 반찬이 착실히 줄어들어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려 낸 조영우가 재겸을 향해 손바닥을 파닥거렸다.

“재겸아. 재겸아.”

“응. 왜.”

재겸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 오늘 5교시 수업 끝나고 조퇴해.”

뭐라? 이어진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퇴? 왜? 오늘?”

“으응, 오늘 병원 가는 날이거든.”

병원에 간다고? 재겸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병원은 왜?”

조영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성실하게 대답했다.

“원래 두 달에 한 번씩 정기 검진 받는데 오늘이 검진일이거든.”

“…….”

재겸이 시선을 내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럼 오늘은 같이 못 가겠네….”

“응. 이따 어머니가 데리러 오신대.”

정주가 저녁 사 주라고 돈까지 쥐어줬건만. 애석하게도 오늘은 날이 아닌 모양이다. 하필 마지막에 이렇게 딱 어긋나다니, 운과 때라는 것은 이토록 얄궂은 법이다. 굳이 안 와도 됐을 학교에 왔던 이유는 조영우 때문이었다. 살짝 허탈해지려고 했지만, 재겸은 어쩔 수 없다 치고 그냥 단념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원래는 얼굴만 보러 온 거였으니까.

“뭐, 그래.”

그간의 경험으로 비춰 보면 이럴 땐 그럴 연이 아니었다고 여기는 게 마음 편했다. 이렇게 보란 듯이 어긋날 정도라면 꼭 오늘이 아니더라도 똑같았을 것이다. 어차피 재겸 혼자 간직하고 있던 계획이었다. 불발되었음을 알 길이 없는 조영우로서는 그저 해맑기만 했다.

“야. 좀 뜬금없는 말이긴 한데….”

한동안 말이 없던 재겸은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사람들 만날 땐 발밑을 잘 봐.”

미리 예고한 대로 정말 뜬금없는 말이었다. 작별을 대신하는.

하지만 무엇 하나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재겸의 입장에선 이것이 최선이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지만, 유약하고 여린 녀석이라 내심 걱정이 되어서 이렇게나마 언질이라도 주고 싶었다.

머지않아 조영우의 세계는 달라질 것이고 당분간은 괴로운 시절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런 스스로를,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응? 발밑? 갑자기 발밑은 왜?”

재겸이 지금 최선을 다해서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조영우는, 맥락을 알 수 없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일 따름이었다.

“어, 그게. 그러니까….”

말해 놓고 살짝 당황한 재겸이 눈을 굴렸다.

“운 좋으면 흘린 돈을 주울 수도 있잖어.”

머리를 쥐어 짜냈더니 영 엉뚱한 핑계가 튀어나왔다. 조영우가 그게 뭐냐며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 임마.”

뭐, 그렇게 해서 진짜 돈이라도 주우면 그건 그거대로 횡재인 거고….

살짝 머쓱해진 재겸이 웅얼거리며 시선을 돌릴 때였다. 앞쪽에서 선생 몇 명이 대화를 나누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교직원 식당에서 나오는 길인 듯했다. 재겸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언제 봐도 반갑지 않은 얼굴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재겸아, 왜 그래? 돌 씹었어?”

“어, 아니. 아무것도 아냐.”

대충 얼버무리며 그대로 고개를 돌려 모른 척하려는데, 때마침 시선이 딱 마주쳤다. 어김없이 상대방의 눈꼬리가 휘었다. “잠시만요.” 상대는 일행인 선생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재겸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재겸은 보란 듯이 식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열심히 밥만 퍼먹었다. 그러자 상대가 정중한 손길로 노크하듯 테이블을 똑똑, 두들겼다. 국을 한 술 뜨던 조영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사서 쌤이 왜? 둘이 친했나…?

“재겸….”

아. 입을 열던 윤태희가 별안간 말을 흐렸다. 윤태희는 눈을 내려 뜨고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다가, 슬쩍 호칭을 수정했다.

“나리야.”

푸흡, 켁, 쿨럭쿨럭!

음식을 삼키다 말고 재겸이 와장창 기침을 토했다. 조영우는 제 귀를 의심했다. 당황한 얼굴로 사서 선생을 올려다보았다. 뭣모르는 남고생들에게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다정하게 들리는 호칭이었다. 근처에 앉아 있던 다른 아이들의 반응 역시 비슷하여, 앞뒤와 양옆 테이블에서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던 소란이 일시에 잦아들더니 기묘한 웅성거림이 일었다.

“수업 끝나면 잠깐 봐요.”

뭐야? 방금 들었냐? 웅성웅성… 쟤 김재겸 아니야? 웅성웅성…

“나리가 저녁 먹는 건 싫다고 했으니까, 그럼 도서실에서….”

윤태희가 아랑곳없이 입을 열자 여기저기서 풉, 큭,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에 의아해진 윤태희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때마침, 뒤쪽에 앉아 있던 두어 명이 웃으며 꽥꽥거렸다.

“쌤! 김재겸이 왜 나리예요?”

윤태희가 김나리, 아니 김재겸을 슬쩍 봤다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냥 내가 부르는 별명이에요. 왜?”

“무슨 여자애 부르는 거 같잖아요!”

“아, 난 또 뭐라고….”

윤태희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시대가 어느 땐데… 입 다물고 밥이나 먹어요.”

깔끔하게 대화를 잘라 낸 윤태희는 고개를 내려 재겸을 쳐다보았다. 멍하니 굳어 있던 조영우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재, 재겸아. 휴지랑, 물, 물 가져다줄게!” 후다닥 식수대로 달려갔다.

그러자 윤태희는 조영우가 앉았던 의자를 허락도 없이 차지했다. 별안간 거하게 사레에 들려 버린 재겸은 한참 동안 잔기침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양쪽 귓바퀴가 유난히 새빨갰다.

“와 주실 거죠? 도서실.”

아침에 말하려고 했는데 먼저 가 버려서. 윤태희가 입을 가리고 은밀히 속삭였다. 그러자 재겸이 슬쩍 고개를 들고 잠시 양옆을 곁눈질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대꾸했다.

“야. 너 지금 나 엿 먹이냐?”

사서 선생을 노려보는 눈빛이 살벌했다.

“설마요. 나 그렇게 싹바가지 없는 새끼는 아닌데.”

윤태희가 상체를 숙이며 진지한 얼굴로 속삭였다.

“허락없이 이름 부르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전처럼 친구라고 부르면 또 화내실 테고요. 그렇다고 애들 앞에서 나으리, 라고 부를 수도 없고. 그래서 이름 부르듯이 자연스럽게 불러 봤는데… 마음에 안 들어요? 아, 애들이 놀려서?”

윤태희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정중하게 덧붙였다.

“대가리에 든 게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이해하세요.”

“…….”

재겸이 이를 악물었다. 일부러 성질 긁으려고 그런 줄 알았는데, 듣다 보니 묘하게 수긍이 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빴다.

“아니면, 뭐 따로 원하는 호칭이라도?”

윤태희가 얄밉게 고개 옆으로 까딱거렸다. 의견을 묻는 일상적인 제스처에 불과했지만 재겸의 눈에는 그저 얄미워 보이기만 했다.

그날, 재겸은 금기를 어긴 댓가로 고통스러워하는 윤태희의 모습을 보았다. 동정이나 연민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해는 했다. 죽음과도 같은 그 고통을. 그 고통이란 어떤 것인지 재겸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 역시 몇 번이나 겪어 보았으니까.

화살을 비껴 쏜 것은 그래서였다. 만약 그것이 정말 환심을 사기 위한 ‘개수작’에 불과할지라도, 그 정도 노력이면 제법 가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메산이가 무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하지만 그밖에 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리고 재겸은 지금 이 순간, 그날 밤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쟤를 죽여 살려…?

재겸이 수저를 움켜쥐고 윤태희를 노려볼 때였다. 식수대에서 물컵을 들고 달려오는 조영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재겸이 다급하게 쏘아붙였다. “나중에 얘기해. 꺼져.” 윤태희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도서실 와 주신다는 거죠?” 그러나 재겸은 들은 척도 않고 밥을 먹었다. 묵묵부답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에, 윤태희의 표정에 장난기가 떠올랐다.

“…….”

윤태희는 흠, 목을 가다듬더니 양손을 입에 대고 나팔처럼 만들었다.

“나리야~! 도서실에서 기다릴….”

“아! 알았다고!! 요!”

결국 재겸이 씩씩거리며 수저를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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