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89)화 (89/348)

#89

때는 추운 겨울, 자정이 훌쩍 지난 야심한 새벽이었다.

석주련은 날카롭게 파고드는 찬바람에 코트 깃을 여미고 텅 빈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따금 휘이잉, 바람이 휘몰아치며 가로수의 잔가지들이 파들파들 떠는 소리가 났다. 어느 틈엔가 석주련은 자신의 뒤를 밟는 기척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일정한 거리에서 따라오는 기척은 꽤 은밀하였다.

귀신인가, 아니면 인간인가….

적이 많은 석주련은 태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멀리 불 밝힌 가게 하나가 눈에 띄었다. 24시 편의점이었다. 석주련은 우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딸랑, 종소리가 났다. 카운터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점원이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석주련이 점원을 힐끗 곁눈질했다. 반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점원의 어깨에 얼굴 하나가 더 붙어 있었다. 귀신이었다. 예닐곱 먹은 어린애처럼 보이는 귀신은 점원의 어깨에 턱을 걸치고 있었다. 어린 귀신은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석주련을 쳐다보았다.

석주련은 시선을 돌리며 음료가 진열된 투명한 냉장고 앞으로 갔다. 태평하게 음료를 고를 때였다. 딸랑, 편의점 문이 열리며 찬 기운이 훅 끼쳤다. 누군가 들어왔다. 석주련은 냉장고의 유리문을 빤히 응시했다. 유리에 상이 비쳐서, 뒤이어 들어온 사람의 인상착의를 확인했다. 머리가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어서 처음엔 여자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남자다.

대충 열댓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소년의 행색은 한눈에 보기에도 남루했다. 잔뜩 해진 야구 점퍼를 입은 소년은 유제품이 진열된 매대 앞에 서서 물건을 골랐다.

혹시 뒤를 밟은 것이 저 아이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석주련은 일단 맥주 한 병과 생수 한 병을 꺼냈다.

석주련은 계산대로 맥주와 생수를 가져갔다. 점원은 졸기 바빠서 손님이 계산을 하러 온 것도 몰랐다. 고개도 가누지 못하고 거의 상모를 돌리다시피 꾸벅거리고 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피곤한 모양이었다. 그 이유로는 물론 야간 근무가 고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어깨에 붙은 저 귀신 때문일 것이다. 저리 귀신이 붙으면 몸이 무겁고 졸음이 밀려든다.

석주련은 점원을 깨우는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장지갑을 열었다. 수북한 지폐 사이에 지폐와 비슷한 형태로 만든 축퇴부(縮退符)가 섞여 있었다. 석주련은 만 원 한 장을 꺼낸 뒤, 그 밑에 부적을 겹쳐 계산대 위에 올려 두었다. 딱 보아하니 악의가 없고 힘이 약한 잡귀임이 분명했다. 점원의 손에 부적이 닿는 것만으로도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었다.

“계산해 주세요.”

석주련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점원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더니 굼뜨게 몸을 일으켰다. 잠기운이 가득한 눈동자는 총기가 없이 탁했다. 점원은 석주련이 가져온 맥주를 먼저 집어들고 바코드를 찍었다. 그때, 갑자기 계산대에 놓인 생수 옆으로 우유 팩 하나가 끼어들었다.

베리베리 드링킹 요거트.

석주련은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보았다. 어느 틈에 야구 점퍼를 입은 소년이 와서 서 있었다. 소년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석주련의 시선을 받아 냈다. 예리하게 날이 선 눈매. 깊고 어두운 눈동자. 석주련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소년의 눈 속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짙은 적대와 분노를.

점원이 나머지 생수의 바코드를 찍으며 물었다.

“이것도 같이 하시는 거예요?”

점원이 가리킨 것은 소년이 가져온 드링킹 요거트였다. 잠이 덜 깬 점원의 눈에는 석주련과 소년이 일행으로 보였다. 석주련이 고개를 저었다. 뭐라 입을 달싹이려는데, 소년이 말했다.

“네.”

석주련이 멈칫하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점원은 우유 팩을 집어 들어 바코드를 찍었다. “4700원입니다.” 점원이 지폐로 손을 뻗을 때였다. 점원의 손이 닿기 전에 소년이 먼저 만 원에 손을 댔다. 한발 빠르게 돈을 채간 소년은 점퍼 주머니에 지폐를 욱여넣었다. 당연히 겹친 부적도 함께였다. 점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그에 석주련이 눈을 가늘게 뜨고 소년을 응시했다. 소년은 다른 쪽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오천 원짜리 한 장이었다. 소년이 점원에게 돈을 건넸다. 점원은 석주련과 소년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소년이 내민 돈을 받았다.

소년은 물건을 담을 비닐 한 장을 달라고 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점원이 거슬러 준 동전까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 챙겼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소년은 비닐 안에 제 몫의 드링킹 요거트뿐만 아니라 석주련이 산 맥주와 생수까지 몽땅 집어넣은 뒤에야 석주련을 향해 말을 건넸다.

“가요.”

소년은 유리문을 활짝 열더니 석주련에게 눈짓을 했다. 따듯하던 편의점 내부로 찬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점원이 팔을 감싸며 소년을 보았다. 빨리 문을 닫아 주길 원하는 눈치였다. 귀신도 달달 떨었다. 석주련은 점원의 어깨에 붙어 있는 귀신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말없이 편의점을 나섰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석주련은 비스듬히 팔짱을 끼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전부 제 것인 양 손목에 비닐 봉투를 걸고 있었다. 혹한의 바람이 소년의 긴 머리칼을 헤집었다. 마주 선 소년은 태연한 얼굴로 주머니 안에서 부적을 꺼냈다.

“날이 추워서요.”

반쯤 구겨진 부적이 소년의 손바닥 위에서 후루룩 타올랐다. 그에 석주련이 설핏 눈가를 좁혔다. 소년은 자신이 귀재임을 숨기지 않았다. 게다가 부적을 태울 수 있는 것을 보면 제법 좋은 자질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소년이 손에 남은 재를 탈탈 털어 내며 말했다.

“저 귀신이요. 원귀도 아닌데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잖아요. 바깥이 추워서 저렇게 붙어 있는 건데. 좀 있다가 해 뜨면 어련히 알아서 갈걸요.”

석주련이 소년을 향해 가까이 다가섰다.

“아까부터 뒤를 따라왔지. 내가 누군지 아는 모양이구나.”

“나자 지망하는 귀재 중에 당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소년이 비닐을 뒤적거릴 때였다.

짜악-!

석주련이 무표정한 얼굴로 소년의 뺨을 올려붙였다. 겁이 없는 것은 봐줄 수 있으나 무례한 것은 넘어가 줄 생각이 없었다. 소년은 뺨을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차갑게 얼어붙은 뺨이 깨질 듯이 아팠다.

“건방진 새끼.”

석주련이 낮게 말했다. 그러자 소년이 천천히 눈을 들었다.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렸다.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진 눈동자가 형형하게 번뜩거렸다. 날 것의 감정이 고스란히 엿보일 정도로 서툴고 투박한 가시였다.

“너, 눈에 칼이 들었구나.”

석주련은 저런 눈을 잘 알았다. 자신도 한때 저랬으니까. 저 나이 정도 되는 어린 귀재에게선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눈빛이었다. 귀재로 산다는 것은 세상의 변두리를 맴돈다는 뜻이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고 뿌리 내릴 수 없는 삶. 이유 없이 울화가 치밀고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들끓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오래전에 지나온 석주련에겐 그저 우습기만 했다.

“저를 데려가세요.”

소년이 말했다. 석주련이 싸늘하게 물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날이 추우니까요.”

석주련이 코웃음을 쳤다. 제법 괜찮은 대답이었다. 녀석은 제 눈에 들기 위해 일부러 주변을 맴돌았다. 다른 노선을 제쳐 두고 직접 접근을 할 정도면 배포가 상당하다는 얘기다. 그건 마음에 들었으나, 건드리자마자 곧바로 이를 드러내는 짐승이라면 사양이었다. 그래 봤자 자신이 범인 줄 착각하고 겁도 없이 덤벼 오는 하룻강아지일 뿐이었다.

“칼끝 하나 제대로 감추지 못하는 녀석은 필요 없어.”

말을 마친 석주련이 그대로 등을 돌렸다. 소년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석주련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석주련이 점점 멀어져 갈 때, 소년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우뚝 걸음을 멈춘 석주련이 소년을 돌아보았다.

“글쎄. 칼은 눈이 아니라 여기….”

석주련이 손가락으로 소년의 명치 아래를 가리켰다.

“보이지 않게 뱃속에 숨겨야지 않겠어?”

석주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년이 갑자기 입고 있던 점퍼를 벗었다. 살벌한 겨울바람이 얇은 티셔츠 차림이 된 소년을 휩쓸었다. 소년은 손목에 걸고 있던 비닐에서 맥주병을 꺼냈다. 맥주병을 든 손에 귀기를 실었다.

챙그랑!

한순간에 병이 깨졌다.

“…….”

“…….”

“이렇게요?”

소년이 물었다. 무언가를 예감한 석주련이 낯을 굳혔다.

“너, 잠깐…!”

석주련은 소년에게 다가서며 급히 손을 뻗었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반쯤 날아간 병목을 주워 든 소년이 그대로 제 배에 박아 넣었다. 깨진 유리병은 흉기 그 자체였다. 날카로운 단면이 파고들자 얇은 티셔츠가 삽시간에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피에 젖은 옷자락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저는 윤태희예요. 나이는 모르고, 부모는 없어요. 그러니 목줄을 채우고 나를 사냥개로 쓰세요. 언젠가 필요가 없어진다면 그대로 버려도 돼요.”

당황한 석주련이 저도 모르게 소년의 양어깨를 붙들었다. 내내 무표정하던 소년은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소년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석주련이 황급히 소년을 상체를 받쳤다. 소년은 연신 피식거렸다. 조금씩 눈이 가물거렸다. 화난 석주련이 소년의 뺨을 매섭게 후려갈겼다.

이 건방진 새끼야, 눈을 떠….

그것이 석주련이 기억하는 윤태희와의 첫 만남이었다.

***

이후 녀석은 건방지게도 삼 일 만에야 눈을 떴다. 한 치만 더 들어갔어도 목숨이 위험했을 거라고 했다. 나이도 모르고 부모도 없다던 그 말은 사실이었다. 윤태희는 삶의 기억이 시작된 순간부터 길거리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오로지 이름 석 자뿐이라고.

그에 의심을 품은 석주련은 경찰에 따로 연락을 넣어 윤태희의 신원 조회를 요청해 보았으나, 공식적인 신분이 없는 무연고자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실종 신고도 없었다. 실체는 있으나 존재하지 않는 유령과도 같았다.

나를 사냥개로 쓰세요.

석주련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에 균열이 가는 것을 느꼈다. 당당하고도 건방진, 되바라진 부탁이었다. 헌데 이상하리만치 쓸쓸하게 들렸다. 석주련은 일면식도 없는 윤태희에게서 어린 날의 제 모습을 보았다.

윤태희와 마찬가지로 석주련 또한 부모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낳아 준 사람은 있었으나 그건 부모가 아니었다. 석주련의 부모는 어린 석주련을 무당에게 팔아넘겼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당집의 문턱을 넘었던 그 날도 날카로운 바람에 살갗이 에일 것처럼 추웠던 겨울날이었다.

한때 신기가 떨어지거나, 신기가 떨어진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무당들 사이에선 어린아이를 데려와 태자귀로 삼는 일이 암암리에 횡행하였다. 그 방법인즉슨, 빛이 들지 않는 좁은 곳에 아이를 가둔 뒤 천천히 기를 빼앗아 죽인다. 그리하여 아이가 원귀가 되면 그 힘을 부리는 것이었다.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광에 갇혀 지내던 석주련은 마침내 무당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 나왔다. 그러나 막상 갈 곳이 없었다. 어린 석주련은 길거리를 전전하며 몇 날 며칠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운 좋게 누군가의 눈에 띄어, 그 길로 나자가 되었다.

석주련은 들개와도 같았던 소년을 데려와 신분을 만들어 주었다. 갈 곳이 없는 윤태희에게 방 한 칸을 내어 주었고, 성년이 될 때까지 이 집에서 지내도 좋다고 말했다.

16세. 그것은 윤태희가 처음으로 가진 나이였다.

석주련과 윤태희가 함께 산 세월은 3년 남짓이었다. 윤태희는 이듬해 봄에 입청하여 2년 만에 수석의 위치에 올랐고, 같은 해에 석주련은 축역부 부장이 되었다.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하긴 했지만, 가족 같은 사이는 아니었다. 식구라고 칭하기에도 어폐가 있었다. 가끔 때가 맞으면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기도 했으나, 그래 봤자 달에 한두 번이었다.

당시 석주련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본청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한집에서 같이 살긴 했어도 함께 보낸 시간을 합쳐 본다면 석 달도 채 되지 않을 터였다.

삼 년 동안 윤태희는 아주 조용히 생활했다. 퇴근한 석주련이 집으로 돌아오면 새벽이든 낮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현관 앞으로 나와서 ‘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녀석의 눈높이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있었다.

“어때요? 지금도 칼날이 보입니까?”

그렇게 녀석을 거둬들인 지 햇수로 10년이 지났다.

“…….”

석주련은 눈앞에 마주 앉아 있는, 더는 이를 데 없이 완성되어 있는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어깨가 탄탄히 벌어지고, 모든 선이 굵어져 있었다.

“역시 웃는 게 낫죠?”

무표정한 낯으로 질문을 던졌던 윤태희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윤태희가 저렇게 눈매를 허물어트리며 웃을 때마다 석주련은 가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때론 묻고 싶었다.

넌 숨기는 데 능숙해진 것일까, 아니면 칼을 내려놓은 것일까.

“그래. 넌 웃어야 그나마 봐 줄 만해.”

석주련이 모르는 척, 서류를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살갑게 곁을 내준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사냥개로 삼았다고 한들 10년이라는 긴 세월은 서로에 대해 충분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녀석은 웃음을 배웠다.

“웬일이에요. 우리 부장님이 나한테 칭찬을 다 해 주시고.”

윤태희가 턱을 괸 채로 장난스레 말했다.

“칭찬은 무슨 칭찬….”

아아. 석주련은 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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