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후식으로는 매실 샤베트가 나왔다.
엄한 훈계를 마친 재겸은 티스푼으로 샤베트를 괴롭히고 있었다. 입에 수저를 물고 있던 윤태희가 좌식 등받이에 허리를 편히 기대며 입을 뗐다.
“자… 그럼, 먹으면서 들어.”
재겸이 입을 우물거리며 눈을 들었다. 윤태희가 한 손을 들더니 손바닥이 보이게끔 펼쳐 보였다. 후식까지 나왔으니 직원의 발길이 잠시 뜸할 것이었다. 그 틈을 타 윤태희는 차분하게 일대일 오랭테이션을 시작했다.
“나례청의 부서는 총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어.”
윤태희가 설명과 함께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정화부. 제구부. 부적부. 암행부. 마지막으로 축역부. 재겸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먼저 정화부. 정화부는 부정이 깃든 물건이나 장소를 정화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야. 그리고 다친 나자들을 치료하는 곳이기도 해.”
진귀한 약재들의 밑바탕이 되는 약초실을 관리하는 것도 정화부에서 하는 일이다. 치유, 치료, 정화에 관련된 일은 전부 정화부에서 전담한다고 보면 된다. 본청 안에서 가장 평화롭고 한적한 부서가 바로 정화부다.
“다음은 제구부. 제구부에서는 각종 무기와 도구를 발명하고 개발해. 나례청에서 쓰이는 신기한 물건들은 거의 다 제구부에서 만든다고 보면 돼.”
제구부 얘기가 나오자 재겸이 단박에 눈을 구겼다.
“야. 그 씹새끼들 지금 살아 있냐?”
“네… 뭐, 일단은 그렇게 됐어요….”
윤태희가 눈썹 끝을 매만지며 유감을 표했다. 메산이 사건으로 인해 재겸은 제구부 나자들에게 생생한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 특히 이영신은 밤길을 조심해야 할 거다. “만나면 그땐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재겸이 이를 갈았다. 잠시 난감한 얼굴을 하던 윤태희가 운을 뗐다. “그리고 암행부….” 제구부 화제가 자리를 잡기 전에 얼른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암행부는 민간의 치안과 순찰을 맡고 있어. 보통 신분을 숨기고 잠입하는데, 정보를 수집하는 게 암행부의 역할이야. 위장하는 직업도 다양해. 민간에서 사건 사고가 생기면 상황실에 보고해서 지원 요청을 하지.”
세간에 떠도는 미신이나 뜬소문 따위를 그냥 흘려듣지 않고, 단서를 잡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비유컨대 제구부가 나례청의 수족이라면 암행부는 나례청의 눈과 귀라고 할 수 있다. 양지에 경찰이 있다면 음지엔 암행부 나자들이 있다. 물론 실제로도 경찰로 근무하는 나자도 많았다. 초라니 기간이 되면 귀재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바로 암행부가 하는 일이다.
윤태희는 팀의 막내를 위해 조곤조곤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축역부는 모든 사건 사고의 정면에 나서는 부서야. 현장에 출동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이지. 보통은 원귀를 상대하는 일이 많은데, 그밖에도 목숨이 위험할 법한 일은 전부 축역부로 이관된다고 보면 돼.”
귀신과 격돌하는 축역부는 나례청의 핵이다. 악귀를 쫓는 의식을 뜻하는 ‘나례’라는 단어를, 가장 직접적으로 실천하는 부서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축역부 나자에게만 주어지는 전통 탈은 방상시의 의지를 천명한다.
따라서 나례청의 핵심 권력은 축역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축역부의 업무를 서포트하기 위해 나머지 부서들이 있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윤태희의 이름값이 높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적부. 이름 그대로 부적을 쓰고 주술을 다루는 곳이야. 기본적인 용도의 부적을 제외하면 따로 신청서를 제출해야 돼. 허가가 떨어져야 부적을 발급해 줘. 주술은 위험하고 강력한 영역이니까.”
민간에서도 점집을 통한다면 얼마든지 쉽게 부적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바깥에서 얻는 부적은 엉터리인 경우가 많고, 제대로 된 부적이어도 합격 운이나 재물 운을 부르는 정도의, 소소한 용도로 쓰이는 게 대부분이다.
반면에 나례청의 부적은 용도에 따라 다양한 주술을 발휘한다. 따라서 간단한 축귀부라면 쉽게 소지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함부로 힘을 남용하거나 악용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윤태희가 삐뚜름히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축역부 다음으로 영향력이 강한 곳이 부적부야. 나례청의 숨겨진 실세라고 부르기도 해. 밉보이면 부적을 잘 안 내어 주거든. 부적 한 장만 잘 받아 놓으면 고생할 일이 훨씬 줄어드니까, 다들 설설 기는 거지.”
“재수 없는 부서네.”
재겸이 수저로 샤베트를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각 부서에 대한 대략적인 정리는 끝난 셈이다. 말을 마친 윤태희가 테이블에 팔을 걸쳤다. 샤베트를 떠먹는 재겸을 바라보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명부실을 담당하는 부서가 그 재수 없는 부적부야.”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재겸이 멈칫하며 눈을 들었다.
‘명부실’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재겸은 이 자리가 반역을 모의하는 자리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오랭테이션이라는 껍데기를 쓴 이 대화의 본 목적인 거다.
‘윤태희’를 윤태희에게 돌려주는 것.
재겸은 닫힌 미닫이문에 힐끗 시선을 던졌다. 느긋하던 분위기가 단숨에 팽팽하게 당겨졌다. 태평하게 샤베트를 갉아 먹느라 내내 멀뚱하던 재겸의 낯빛이 기민하게 바뀌었다.
역시….
윤태희가 소리 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있잖아. 그럼 나는 그 목패 언제 제출해?”
재겸이 손에서 수저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수습 나자 때는 제출 안 해. 3개월 뒤에 정식으로 나자가 되면 그때 제출하는 거야. 그 대신에 수습 기간 동안엔 본청에서 예의 주시를 하지.”
수습 나자는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불안정한 위치이기 때문에 따로 계약을 맺지 않는다. 또한 수습 나자들은 대체로 힘이 불안정하고 귀기를 다루는 데 서투른 경우가 많아서, 같은 나자를 향하여 실수로 귀기를 쓰는 일이 왕왕 일어나기 때문에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차원이기도 했다. 그리고 윤태희는 그 빈틈에, 괴물 같은 후임을 꽂아 넣었다.
“근데 그 목패 말이야. 왜 네가 직접 훔치지 않는 거야?”
재겸이 허리를 바르게 세우며 마주 앉은 윤태희를 또렷하게 응시했다. 명부실에서 ‘윤태희’가 적힌 목패를 훔쳐 오는 것. 그것이 계획의 첫 단추라고 윤태희는 말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자기 이름이 적힌 목패를 건드리면 주술이 발동하게 되어 있거든.”
“주술이라니? 그게 뭔데?”
“목패가 불타오르는 거야.”
자신의 이름이 적힌 건드리면 목패가 불타올라서 안 된다? 그렇다는 건…
설명을 곱씹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재겸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 목패, 육체랑 이어져 있는가 보네.”
무심한 어조로 건넨 말에, 윤태희가 멈칫하며 재겸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봐?”
재겸이 의아한 눈을 했다. 윤태희가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어?”
재겸이 시큰둥한 얼굴로 대답했다.
“척하면 척이지.”
재겸은 정말이지 명민하고 똑똑했다. 현대 생활에 서투른 엉뚱한 모습을 보여 줄 때는 말 그대로 앳된 소년처럼 보이다가도, 저렇게 기민하고도 번뜩이는 면모를 보여 줄 때마다 문득, 소년의 오래된 연륜을 체감케 된다. 소년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윤태희가 미소를 지었다.
“정확하십니다.”
정중한 칭찬이 날아들자 재겸이 괜히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재겸이 짐작한 그대로였다. 신체의 일부 혹은 피를 매개한 물건은 일종의 분신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예컨대 저주나 액막이용으로 그 사람을 대신할 짚 인형을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당사자의 손톱이나 머리카락을 지니게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물리적인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하물며 피로 이름 석 자까지 새겨서 주술까지 걸었다면, 실제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 또한 아주 클 것이었다. 때문에 목패를 보관하는 명부실은 본청 안에서도 엄격하게 다루는 장소 중 하나였다. 나자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목패를 함부로 노출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명부실은 제아무리 직급이 높더라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야. 원칙적으로 명부실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명부실 서기뿐이고.”
목패로 피의 계약을 맺는 것 또한 주술의 영역이기에 부적부의 소관 아래 있다. 따라서 목패를 보관하는 명부실 역시 부적부가 전담하여 관리하는데, 명부실 서기는 나례청이 재건된 이래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명부실 서기는 팔십을 앞둔 노인으로 부적부 출신의 나자였다. 이름은 전옥례. 나자들 사이에선 ‘옥례 씨’라고 불렸다. 목패에 피로 이름을 새겨 제출하면 옥례 씨가 하나하나 직접 주술을 걸어 명부실에 보관하는 것이다.
“명부실은 본관 지하에 있어. 예전엔 경비 인력을 따로 배치해서 사람이 직접 명부실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사고 이후로는 사람이 지키지 않아.”
재겸이 고개를 들었다.
“사고라니? 무슨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