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축역부 제1팀 수석 나자 윤태희가 직접 후임을 발탁했다는 소식은 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윤태희가 김재겸의 뒷배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좌중 앞에서 재겸의 입을 빌어 자신을 소개한 윤태희의 노림수는 제대로 먹혀 든 셈이 되었다.
평소 평판이 좋은 덕분인지, 윤 수석이 황승수에게 싸대기를 날렸다는 사실은 모두가 한 귀로 듣고 흘렸다. 평소의 윤 수석을 겪어 본 이들은 ‘아랫사람들한테 예의 바르고 친절하신 분이 신입을 때릴 리가 있느냐’며 허황된 뜬 소문으로 취급했고, 윤 수석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 역시 ‘설사 때린 것이 사실이더라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며 반신반의했다.
나자들은 윤 수석이 낙점했다는 ‘그 후임’에 대해 입방아를 찧어 댔다. 1차 시험에서 사슴을 봤다더라, 골드 패스를 받았다더라, 와 같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내용뿐만 아니라, 으레 말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여기 저기서 살이 붙으면서 엉뚱한 카더라가 돌기도 했는데, 요지는 그 후임과 윤 수석이 무슨 관계냐는 것이었다. 호기심 반. 부러움 반. 윤 수석의 후광을 단단히 두른 후임의 등장은 본청 안에서 뜨거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윤 수석님이랑 먼 친척 지간이라고 하던데요?”
“진짜요? 전 그냥 친한 동생이라고 들었는데.”
복도에 모여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던 나자들이 어느 순간 헉, 숨을 들이켰다. 복도 모퉁이에서 갑작스레 이매탈이 쑥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매탈을 쓴 사람을 단번에 알아본 나자들은 서둘러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수석님, 안녕하십니까!”
“수석님, 안녕하십니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윤태희가 쓰고 다니는 탈이 바로 이매탈이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얼굴에 탈을 쓴 윤태희는 꾸벅꾸벅 조는 것처럼 가볍게 묵례를 해 가며 “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받아 주었다. 벽쪽에 몸을 붙이던 나자들이 눈짓을 주고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윤 수석의 곁에 동행인이 한 명 있었던 것이다. 나자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윤 수석의 동행인을 바라보았다. 목이 길고 까칠하게 생긴 소년은 윤 수석과 다르게 맨얼굴이었다.
저 사람인가? 좀 어려 보이는데. 잘생겼네….
벽에 붙어선 나자들이 힐끔거리며 소년의 얼굴을 구경할 때였다. 시선을 느꼈는지, 소년이 무표정한 낯으로 스르륵 곁눈질을 해 왔다. 나자들이 엉겁결에 눈을 돌렸다. 옅은 쌍꺼풀에 위로 뻗은 눈꼬리가 제법 사납게 느껴진 탓이다.
시선을 회수한 소년이 윤 수석에게 뭐라뭐라 속삭였다. 그러자 윤 수석이 고개를 돌려 나자들을 바라보았다. 그에 나자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혹시 얘기하는 걸 들었나? 딱히 뒷담화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자들은 왠지 찔리는 심정이 되어 “가, 가죠.” 하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빠르게 멀어져 가는 나자들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던 재겸이 입을 열었다. “야. 쟤들 너 욕하고 있었나 봐.” 그러자 윤태희가 픽 웃으며 “네가 가서 혼내 줘.” 장난스레 받아쳤다. 재겸이 “내가 왜.” 하며 볼을 긁었다.
방금 전, 재겸이 윤태희의 귓가에 속삭인 내용은 고자질이 아니라 ‘야. 네가 수석이면 나는 뭐야?’ 였다. 나자들이 윤태희를 향해 수석님, 하며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새삼 저는 어떤 호칭으로 불리나 궁금해졌다.
“그럼 나는 김 수습인가?”
재겸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자 탈 안쪽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특별한 직함이 없는 수습 나자, 혹은 평 나자의 경우에는 이름을 부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직장 내 호칭 문화를 재겸이 알 리가 없었다.
잠시 말이 없던 윤태희가 옅은 볼우물을 머금었다.
“멋진데? 김 수습님.”
그런 호칭은 쓰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을 수도 있었으나, 윤태희는 재겸의 발상을 그대로 수용해 주었다. 재겸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 수석은 만족한 김 수습님을 모시고 축역부 제1팀 사무실로 향했다.
축역부 제1팀 사무실은 본관 3층에 위치해 있었다. 출입 키를 갖다 대자 불투명한 선팅지가 붙은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업무 특성상 외근이 많긴 했지만 사무실 풍경은 여느 평범한 회사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비슷했다.
책상 파티션 위로 팀원들의 얼굴이 빼꼼 솟아났다.
“어? 수석님 오셨다!”
“수석님 오셨습니까!”
팀원들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윤태희를 반갑게 맞이했다. 복도에서 만난 나자들에 비하면 훨씬 허물없는 태도였다. “네, 안녕 안녕.” 윤태희 또한 아까보다 훨씬 편한 말투로 인사를 받으며 얼굴에 쓰고 있던 탈을 벗었다. 팀원들의 시선이 윤태희를 뒤따라 들어오던 소년에게 꽂혔다.
“어! 재겸이!”
강이빈이 활짝 웃으며 팔을 번쩍 들었다.
사무실이 순식간에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윤태희가 빙그레 웃으며 재겸을 끌고 오더니 한 팔로 재겸의 어깨를 가볍게 둘러 안았다. 그에 재겸이 움찔하며 제 어깨를 쥔 손을 보았다.
“우리 제1팀의 신입으로 온 김재겸 수습님이세요.”
재겸의 입을 빌어 대리로 소개를 맡겼던 때와는 반대로, 이번엔 윤태희가 직접 재겸을 대신하여 소개를 해 주었다. 소개가 끝나자마자 팀원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마치 신나는 축제라도 열린 듯한 분위기였다. 모두가 재겸을 환영하고 있었다. 재겸으로선 난생처음 겪어 보는 기이한 경험이었다. 팀원들이 재겸의 주변으로 우르르 다가와 열렬한 첫 인사를 건넸다.
“와, 진짜 반가워요. 제1팀에 온 걸 진심으로 환영해요.”
“골드 패스 받았다면서요? 역시 우리 수석님 픽이야.”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에 재겸은 멍하니 굳고 말았다.
“수석님,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막내 얼굴 보고 뽑았죠?”
팀원의 농담에 윤태희가 픽 웃으며 대꾸했다.
“이런, 들켰네.”
제1팀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화목하고 유쾌했다. 팀원들은 허물없이 서로를 대했고, 그건 윤태희 또한 마찬가지였다. 강이빈을 만났을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팀원들은 윤태희에게 아주 호의적이었다. 말과 행동에서 단단한 신뢰와 친근한 애정이 묻어났다.
모두가 윤태희를 좋아한다는 말은 정녕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 사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재겸은 얼떨떨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저는 선임 표지호라고 해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혹시라도 필요한 거나 도와줄 거 있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얘기하고요. 알았죠? 잘 지내봐요.”
팀원들이 하나둘씩 본인 소개를 하며 통성명을 해 왔다. 제1팀의 인원은 총 아홉 명이었다. 팀의 리더인 윤 수석과 막내인 김 수습을 제외하면 선임 두 명에 주임 세 명, 그리고 평 나자 두 명이었다. 현재 세 명은 출동 명령이 떨어져 외근 중이었으므로 사무실에는 여섯 명의 나자가 있었다.
“재겸이! 슈트 너어무 잘 어울린다!”
재겸과 구면인 강이빈은 손뼉을 치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아. 느에….”
재겸은 넋이 빠진 얼굴로 팀원들과 악수를 나눴다. 팀원들은 재겸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상태였다. 며칠 전부터 윤태희가 미리 언질을 해 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부 윤태희가 적당히 꾸며 낸 이야기였다.
‘나이는 올해 열여덟이고, 귀촌한 부모 아래서 홈 스쿨링을 하며 자랐다고 하네요. 얘기를 들어 보니 컴퓨터나 휴대폰이 없는 환경에서 지냈던 모양이에요. 그러다보니 요즘 또래들과는 좀 다른 면이 있어요.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르는 게 많을 테니, 옆에서 많이 알려 주세요.’
아아….
팀원들은 후루룩 납득했다. 티비 프로그램에서 종종 소개되는 사례였기에 쉽게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시 생활에 환멸을 느낀 부모가 회사를 그만두고 산속으로 들어갔구나. 손수 지은 통나무집에서 생활했겠구나. 저녁 9시가 되면 불을 끄고 잠을 잤겠구나. 아이는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부모가 직접 가르쳤겠구나. 현대문물과 거리를 두고 소박하게 삶을 꾸려 가는 이야기. 머릿속에서 그새 다큐 한 편이 뚝딱 완성 되었다….
실로 탁월한 구라였다….
이로써 재겸이 다소 어색하고 서툰 면모를 보이더라도 팀원들은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었다.
강이빈은 망부석이 된 막내를 이끌고 지정된 자리로 데려갔다. “여기가 재겸이 자리야.”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위에는 데스크탑이 놓여 있었고, 파티션에는 코팅된 종이 두 장이 붙어 있었다. 한 장은 호출용 손거울에 쓰이는 표식들이, 나머지 한 장은 팀원들의 개인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그사이, 윤태희는 표지호로부터 구두 보고를 받고 있었다.
재겸은 출입할 때 사용할 카드키와 호출용 손거울을 비롯하여 나자들이 소지하는 기본적인 물품을 건네받았다. 강이빈은 용도와 사용법을 세심하게 설명해 주었다. 강이빈의 설명을 들으며, 재겸은 저도 모르게 윤태희를 힐끔거렸다. 어째선지 자꾸만 눈길이 갔다. 낯설고 어색한 환경에 놓이니 무의식적으로 가까운 사람을 찾아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팀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수석님, 그럼 오늘 신입 왔으니까 그거 하겠네요?”
그러자 다른 팀원들이 “오! 맞다!” 하며 반색을 했다. 그거가 뭔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재겸 한 사람뿐이었다. 파티션에 팔을 걸치고 표지호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윤태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면신례? 그럼요. 해야지.”
면신례(免新禮)는 조선 시대에 있었던 관행으로, 오늘날 신고식 문화의 유래가 된 신참 맞이 의식이었다. 그 당시 관직에 올라 새로 부임한 신입 관원은 이 면신례를 통과해야만 선배 관원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과정이 꽤나 혹독하여서 악질적인 관습으로 취급받았다. 면신례의 과정은 선배 관원에게 호화로운 음식을 대접하고, 온갖 벌칙과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입 나자가 들어오면 면신례하는 것이 축역부의 전통이다. 그러나 악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은 아니라, 오히려 아예 정반대로 뒤바꿨으니 사실상 명칭만 물려받았다고 보면 되었다. 축역부의 면신례는 신입이 선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선배가 신입을 위해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면신례의 첫 단계는 팀 전체가 다 함께 출동을 하는 것이다. 지원 요청이 떨어지면 팀원 전원이 현장에 나가서 사건을 해결하는데, 나서는 건 선배들이고 신입은 물러나 있는다. 그러나 모든 공은 온전히 신입의 몫이 된다. 추후 인사 고과에 도움이 되도록 성과를 일부러 떠넘겨 주는 것이다.
윤태희가 넥타이를 어깨 위로 휙 걸치며 재겸을 바라보았다.
“그럼, 우선은…. 우리 수습님 탈부터 골라 줘야겠네.”
***
해 질 녘 노을이 지평선을 붉게 태우고 있었다.
저녁 하늘을 등지고 선 윤태희는 철근 뼈대가 앙상히 드러난 건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탈 너머의 눈동자가 짓다 만 건물을 예리하게 훑었다. 제1팀 나자들은 윤태희로부터 한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 일렬로 나란히 서 있었는데, 저마다 각기 다른 생김새의 탈을 얼굴에 쓴 상태였다.
찬찬히 건물을 뜯어보던 윤태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겉으로 봐선 딱히 눈에 띄는 게 없는데….”
지원 요청이 떨어진 곳은 십여 층짜리 빌딩을 건설 중인 공사 현장이었다. 족히 수십 명의 인부들이 동원되었을 규모였지만, 애석하게도 공사장은 텅 비어 있었다. 공사가 중단된 상황이니 아무도 없는 게 당연하긴 했다. 패널로 만든 가벽에 둘러싸인 공사장 부지는 썰렁하고 을씨년스러웠다.
“한 명씩 각 층을 맡아서 확인해 보도록 하죠.”
윤태희는 손에 들고 있던 칠접선으로 제 어깨를 탁탁 두들겼다. 칠접선은 대나무 속살에 옻칠을 하여 만든 쥘부채였다. 그때, 멀리서 불어온 바람이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켰다. 고풍스러운 칠접선을 반쯤 접었다 폈다 하던 윤태희가 부채를 활짝 펼쳐 들었다.
윤태희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부드럽게 칠접선을 휘둘렀다. 흙먼지가 흩어지는가 싶더니 바람이 잠잠해졌다. 뒤쪽에 서 있던 재겸이 그 광경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윤태희가 무심한 손길로 부채를 접었다.
“그럼… 양반아.”
윤태희의 부름에 나자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오냐!”
양반이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러자 윤태희를 비롯해 뒤에 서 있던 나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표지호였다. 그가 양반이인 이유는 그가 쓴 탈이 양반탈이기 때문이었다. 축역부에서는 여러 명이 모여 현장에 나오면 직함이나 본명 대신에 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원칙이었다. 보복을 우려하여 신변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예전에 어떤 축역부 나자가 강한 원귀를 축역하려다가 놓치고 말았는데, 앙심을 품은 원귀가 얼핏 주워들은 나자의 이름을 기억하여, 그 이름을 단서로 그 나자를 찾아내어 해꼬지한 일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축역부 나자들은 현장에서 탈의 이름을 가명 삼아 쓰게 되었다.
“양반이는 1층, 2층.”
윤태희가 접은 부채로 건물 입구를 가리켰다. 표지호는 선임이기에 두 개의 층을 할당해 주었다. “예이!” 표지호가 웃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말뚝아.”
말뚝이탈을 쓴 팀원은 3층으로 향했다.
“취발아.”
취발이탈을 쓴 강이빈은 4층으로 갔다. 그렇게 부네도 가고, 초랭이도 가고, 할미도 가고… 모두가 떠났다. 어느덧 남은 건 한 사람뿐이었다.
“…….”
윤태희가 부채를 촤르륵, 펼치더니 그대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쥐죽은 듯이 조용한 게 뭔가 불길한데? 뒤쪽에서 살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윤태희가 웃음을 꾹 참으며 뒤를 돌았다. 재겸이 주먹을 꽉 움켜쥐고 윤태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탈에 가려져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빛만은 아주 살벌했다.
“각시야.”
재겸의 귓바퀴가 불타는 저녁노을처럼 빨갰다.
“각시는 나랑 같이 갈까?”
윤태희가 재겸에게 골라 준 탈은 각시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