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100)화 (100/348)

#100

팀원들은 둘이 어제 같이 들어간 거 아니었냐며 홀로 출근한 재겸을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재겸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자신도 그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한 번 더 휴대폰을 열어 보았다. 역시나 연락은 없었다.

다시 전화를 해 볼까?

잠시 고민하던 재겸은 윤태희가 평소에도 많이 바쁘냐고 물었다. “수석님이야 늘 바쁘시지.” 팀원들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재겸은 머뭇거리며 다시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뭐, 기다리다 보면 알아서 연락이 오겠지.

그 후로도 재겸은 틈틈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출근 3일차 신입의 하루는 그럭저럭 완만히 굴러갔다. 우선은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근무 스케줄 표를 짰다. 그리고 본청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해서 본관부터 별관까지 한 바퀴 돌기도 했고, 중간에 고준형이 외근을 나갔다가 떡볶이를 포장해 와서 팀원들끼리 조촐하게 간식 시간도 가졌다.

윤태희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늦은 오후 무렵이었다. 스트라이프 남색 슈트를 입은 윤태희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사무실로 들어왔다. 착석해 있던 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상관을 맞이했다.

재겸은 이면지를 펴 놓고 호출용 손거울에 쓰이는 술식을 끄적이던 중이었다. 엉겁결에 몸을 일으켰다. 인사하는 팀원들 틈에 끼어 대충 묵례하는 시늉을 하자, 윤태희는 손을 흔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안쪽에 위치한 수석실로 걸어갔다. 재겸의 시선이 윤태희의 꽁무니를 졸졸 쫓아갔다.

내 전화는 안 받더니….

얼마 뒤, 수석실 문이 열리며 통화를 끝낸 윤태희가 맨얼굴로 튀어나왔다. 손등에 핸드 크림을 덜어 나온 윤태희는 문간에 비스듬히 몸을 기댔다.

“안녕, 어제 다들 잘 들어갔어요?”

비로소 미뤄놨던 인사를 꺼내자 팀원들이 하나둘씩 말을 얹었다. 가벼운 대화가 이어졌다. 그동안 재겸의 시선은 줄곧 윤태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꼴이 흡사 미어캣 같았다.

윤태희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오늘따라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재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눈이 마주치는가 싶으면 그대로 미끄러지듯 시선이 비껴갔다.

“그럼… 전달 사항?”

윤태희가 손을 슬슬 문지르며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그에 고준형이 기다렸다는 듯, 의자 바퀴를 뒤로 물리며 모두 들으란 듯이 공지를 해주었다.

“오늘 저녁 6시에 월례 동향 보고 있슴다. 다들 아시죠? 부장님도 참석하신대요. 저녁에 퇴근하는 주간 조 여러분들은 일지 작성해서 저 주십쇼.”

팀원들이 “네엡!” 하며 힘차게 대답을 했다. 월례 동향 보고는 지난 한 달 동안 세간의 동향을 살펴서 특이점을 파악하고, 수집한 정보들 가운데 눈여겨볼 만한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발표는 암행부에서 맡아서 진행하며, 축역부 나자 전원이 참석하는 무게감 있는 자리였다.

“오늘 현장 나갈 땐 다들 일정 생각하면서 움직이도록 해요.”

윤태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히 말을 덧붙였다. “또?” 더는 전달 사항이 없는 것을 확인한 윤태희는 팀원들에게 차근차근 업무를 지시했다.

“표 선임님. 며칠 전에 부적부에 요청한 1급 퇴귀부 반려 떨어진 것 같던데 사유 한 번 확인해 주실래요. 그리고 시현 씨. 그때 버스 추돌 건 처리 어떻게 됐어요? 정화부에서 이관해 달라는데, 진행 사항 파악해서….”

멀뚱하게 자리에 앉아 있던 재겸은 고개를 숙이고 이면지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팀원들과 능숙하게 일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윤태희는 평소처럼 친절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재겸은 그런 윤태희에게서 전에 없던 오묘한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윤태희는 ‘윤 수석’이었고 한 팀의 상관이었다.

“그리고, 김 수습님?”

웃음기 어린 호명에 재겸이 번뜩 고개를 들었다.

“어제 지박령 퇴치 건, 사건 경위 정리해서 업무 보고서 작성해 주셔야 되는데… 음, 처음이니까 강 주임님이 옆에서 같이 좀 도와주실래요.”

이를 데 없이 사무적인 내용이었다.

“다 하면 저한테 제출하세요.”

윤태희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이더니, 그대로 등을 돌려 수석실로 들어갔다. 살짝 굳어 있던 재겸이 저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느에….”

대답은 한 박자 느리게 나왔다.

***

재겸은 강이빈의 도움을 받아 업무 보고서 작성에 돌입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제아무리 귀신 때려잡는 나례청이라도 문서 작업과 같은 사무적인 업무는 여느 평범한 회사처럼 컴퓨터를 이용하기 마련이었고, 그것은 컴퓨터를 다뤄 본 적 없는 재겸에게 크나큰 고난이었다.

“자. 봐봐. 저기 화살표. 이건 마우스라는 건데….”

그에 따라 강이빈은 보고서는 일단 제쳐 두고, 컴퓨터 전원을 켜는 법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주었다. “자. 창 닫기. 창부터 닫아 봐.” 재겸이 몸을 일으켰다. “창, 창문이 어디….” 강이빈이 절규하듯 뺨을 감싸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창문 말고! 저기 엑스. 엑스 표. 빨간 거!”

강이빈은 인내심이라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야…. 여기 지금 거의, 뭐. 컴퓨터 학원인데?”

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강이빈만은 웃지 않았다.

“괜찮아. 응, 그럴 수 있어. 우리 막내는 요즘 보기 드물게 순진한 소년이잖아. 아주 보기 좋아. 우선 당분간은 타자 연습부터 하는 걸로 하자.”

인내심보다 중요한 건 끈기다. 하루아침에 될 것이 아니다. 그렇게 판단한 강이빈은 결국 직접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어차피 양식에 맞춰서 어제 있었던 사건 과정을 적기만 하면 끝이다. 완성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재겸으로선 손 안 대고 코를 푼 셈이 되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보고서를 건네받은 재겸은 양손에 서류철을 들고 수석실로 향했다. 윤태희는 안쪽에 따로 마련된 수석실에서 업무를 봤다. 개별적으로 분리된 공간이었으나 평소 윤태희는 수석실 문을 활짝 열어 두는 편이었다. 열린 문으로 고개를 들이밀자 너른 데스크 앞에 앉아 있는 윤태희의 모습이 보였다.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타자를 치고 있었다.

재겸은 문간에 서서 보란 듯이 기척을 냈다.

“흐흠. 흠.”

괜히 헛기침도 해 봤다. 그러나 윤태희는 업무에 열중한 탓인지 별 반응이 없었다. 재겸은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려 사무실에 앉아 있는 팀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팀원들이 있는 데서 야, 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떨떠름한 낯으로 서 있던 재겸이 결국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쑤… 석님….”

윤태희는 그제서야 눈을 들었다.

“들어오세요.”

재겸은 열린 문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잠시 눈치를 보다가 문을 닫으려는데, “문은 그냥 두세요.” 윤태희가 마우스를 딸각거리며 나지막히 말했다. 재겸이 머뭇거리며 팔을 내렸다.

재겸은 바깥에 목소리가 들릴 것을 우려하여 문을 닫으려 한 것이었다. 단둘만 남은 상황에서 으레 할 법한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이 열려 있으면 듣는 귀가 있으니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없는데……. 평소엔 눈치가 귀신같이 빠르더니 새삼 왜 저러나 싶다.

그에 재겸이 뭐라 신호를 보냈지만 윤태희의 시선은 딴 데로 가 있었다. 재겸은 결국 문 닫기를 포기하고 데스크 앞쪽으로 다가갔다. 둘만 남을 기회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보고서만 주고 가라는 거였나….

어영부영 데스크 앞에 멈춰 서자마자 재겸이 눈가를 찌푸렸다. 가까이서 본 윤 수석의 데스크는 무척이나 어지럽고 산만했다. 도서실에서 봤던 사서 책상도 이랬었나? 그땐 정리를 잘 해 놨던 것 같은데….

서류 더미가 한가득 쌓여 있는 것은 물론이고, 탁상 캘린더는 석 달 전에 멈춰 있는 데다가, 모니터 주변에는 정갈한 글씨로 쓰여진 메모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복잡한 책상만 봐도 윤태희의 업무가 분주하다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다. 사탕이며 젤리를 까 먹은 흔적이 굴러 다니는 것은 덤이었다. 늘 깔끔하고 단정한 윤태희의 겉모습과 비교하면 다소 의외였다.

“주세요.”

윤태희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가만히 손을 뻗어 왔다. 그대로 서류철을 건네려는데 문득 떠오른 어떤 생각이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태희 씨랑 악수했을 때 좀 신기했는데.’

‘위압감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언젠가 정주가 했던 말이었다. 재겸은 서류철을 내미는 대신, 내밀린 손바닥 위로 대뜸 제 손을 포갰다. 그러자 윤태희가 멈칫하더니 그 상태 그대로 굳었다. 한참 만에야 윤태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허공에서 시선이 예리하게 부딪쳤다.

“…….”

“…….”

재겸이 잡은 손을 꽉 움켜쥐자 손끝이 움찔했다.

“…뭐 하는 거죠?”

잠시 침묵하던 윤태희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재겸이 손을 휙 놨다.

“그냥 악수요.”

정주가 말한 거대한 위압감이 뭔진 몰라도, 피가 후끈해지고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 같은 건 없었다. 그냥 크고 따스하다는 생각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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