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127)화 (127/348)

#127

부적부 나자 윤원중에게는 어린 아들이 한 명 있었다.

윤원중은 시골에서 생활하다 서울로 상경하였고, 우연찮은 기회로 나자가 되었다. 노총각이었던 그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었는데, 부인과는 평생 연이 아니었는지 중간에 헤어지면서 그에게 남은 가족은 일곱 살배기 아들뿐이었다.

윤원중은 제 목숨을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다. 성실한 성격을 가진 그는 홀로 아들을 키웠고, 하루 일을 끝마치면 남는 시간은 모두 아들과 보냈다. 하루하루 쑥쑥 커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다음 해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아들을 잃은 윤원중은 식음을 전폐하고 술독에 빠져 살았다. 깊은 상실감과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아들을 그리워한 나머지, 결국은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말았다.

하늘로 떠난 아들의 혼을, 이승으로 다시 불러내는 일이었다.

아들은 착하게도 별다른 미련 없이 하늘로 떠나 주었다. 귀신이 되지 않고 홀가분히 떠났으므로, 그대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도 되었다. 그러나 윤원중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령술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것은 나례청 안에서도 금기였으며,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금술이었다. 그러나 윤원중은 직접 부적을 쓰고 연구하는 나자였으므로 금술에 접근하기가 쉬웠다. 술식을 연구한 끝에, 경면주사에 자신의 피를 섞어 강령부를 개발해 내기에 이르렀다.

“기준아.”

윤원중의 부름에, 아들은 귀신이 되어 한달음에 달려왔다. 윤원중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아들을 껴안았다. 한 번 떠난 혼이 이승으로 불려 나와 이 땅에 남았으니, 귀신이 된 것이다. 윤원중은 이것이 자신의 욕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죽을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곁에 있어 다오.”

그때부터 윤원중은 다시 삶의 활기를 되찾았다. 매일같이 열심히 부적을 그려 댔으며, 집에 돌아오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들을 씻기고 놀아 주었고,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하고, 소중한 일상들이었다.

윤원중은 집을 나설 적이면 문지방에 부적을 덕지덕지 붙여 놓고 나왔다. 아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함부로 바깥에 나왔다가 길을 잃어서 말 그대로 ‘구천’을 떠돌지도 모르는 일이고,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이었다. 동료 나자와 함께 식사를 하고, 본청으로 돌아오던 윤원중은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저 멀리 제 아들이 서 있었다. 아침에 문지방에 부적을 붙이고 나온다는 것을 그만 깜빡하고 만 것이다. 평소와 달리 문이 열리자, 어린 아들은 그 길로 집을 나와서 일 나간 아빠를 찾아온 것이다.

아들을 발견한 윤원중은 몹시 당황하여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동료 나자가 혀를 차더니, 품 안에서 축퇴부를 꺼냈다. 윤원중이 황급히 손을 뻗었다.

“자… 잠깐만…!”

그러나 한발 늦고 말았다. 윤원중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던 귀신은 그대로 후루룩 불타서 사라졌다.

“요즘 귀신이 판을 치네. 별의별 잡귀가 본청 근처까지 어슬렁거리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윤원중은 팔을 축 늘어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윤원중은 입을 틀어막았다.

“으… 윽….”

윤원중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욕심으로, 눈앞에서 자식을 두 번 잃은 셈이 되었다. 하늘로 잘 올라갔으니 불러내지 않았더라면 거기서 잘 지내고 있었을 텐데… 나례청의 방식은 천도가 아니라 그대로 사멸을 시키는 것이었다. 아들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윤원중은 텅 빈 방에 앉아서 멍하니 벽을 보고 앉았다.

“기준아… 아빠가 부르는데 대답해야지….”

몇 번이고 다시 강령부를 써 봤으나,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기준이 어디 갔느냐… 아빠한테 돌아오거라… 기준아….”

결국, 윤원중은 바닥을 닥닥 긁으며 괴로움에 울부짖었다.

“기준아….”

아니다. 그것은 우리 기준이가 아니다. 내 아들이 아니다. 단지 귀신일 뿐이다.

“그래, 그저 귀신일 뿐이야….”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 봐도, 윤원중의 마음속에서는 동료 나자를 향한 원망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 인간만 아니었으면… 그때 딱 한 번만 너그럽게 봐주고 넘어갔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니, 내가 나자가 아니었더라면….

윤원중은 그때부터 자기 자신을, 나례청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원중은 마침내 생각했다.

내 아들을 죽인 놈에게 복수를 해야겠다고.

윤원중은 동료 나자를 저주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액운을 뒤집어 쓰게 만들어서 그의 삶을 은밀히 무너뜨리고 싶었다. 자신에게서 무엇을 앗아갔는지도 모르면서, 하루하루 무사태평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윤원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미쳐 가고 있었다. 놈에게 앙갚음하기 위해선 같은 나자끼리 위해를 가하거나, 예고 없이 귀기를 써서는 안 된다는 금기부터 풀어야 했다. 그리하여 윤원중은 자신의 목패를 되찾아 계약을 깬 다음, 쥐도 새도 모르게 저주를 걸어놓을 계획을 세웠다.

부적부 나자인 윤원중이 목패를 보관하는 명부실에 접근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명부실은 부적부에서 관리 감독하는 장소였으며, 부적부 소속 나자들이 당번제로 돌아가며 명부실 앞을 지키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윤원중은 자신이 당번인 날을 기다렸다가 명부실의 결계를 풀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목패를 금세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윤원중은 안타깝게도 원하는 바를 이뤄 내지 못 했다.

그는 목패의 주인이 자신의 목패에 손을 대면 주술이 발동하여 몸이 불타오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목패에 손을 대자마자 곧바로 화르륵 불이 일어났고, 윤원중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윤원중이 목패를 빼돌리려고 했던 그날의 일은 이후 ‘명부실 사건’으로 불리며, 본인의 목패에 손을 대면 주술이 발동한다는, 숨겨져왔던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불길에 휩싸인 윤원중은 그로부터 한 달 뒤에야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복수에 실패한 그에게 남겨진 것은 질기디질긴 목숨과 온몸에 둘린 끔찍한 화상 자국, 그리고 나례청에서 제명되었음을 알리며 치료가 끝나면 징계 위원회에 출석하라는 통첩장이었다. 죄목은 두 가지였다. 금술에 손을 댔음. 그리고 내란을 꾀했음.

윤원중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가누기 힘든 몸을 끌고 도주하였다. 명령 불복종. 나례청에서 쫓겨난 그가 마지막으로 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앙갚음이었다. 윤원중은 나례청의 추적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나례청에 대한 증오와 분노에 좀먹힌 윤원중은 하늘이 이 땅에 벌을 내려 주기를 바랐다. 윤원중은 그때부터 산천을 떠돌아다니며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간악한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십시오….”

모든 것을 잃은 인간이 기댈 수 있는 곳은 결국 신(神)이라는 존재뿐이었다.

“간악한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십시오….”

윤원중은 눈이 오고, 비가 오는 날에도 높은 산을 올랐다. 매일 자신의 피를 바쳐 가며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기도를 올린 지 천 일째가 되던 날, 윤원중은 시야가 새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끼며 제단 위에서 의식을 잃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을 때, 윤원중은 자신을 내리쬐고 있는 따스한 빛을 보았다. 머지않아 어디선가 웬 소리가 들려왔다.

응애… 응애….

윤원중은 뭐에 씐 사람처럼, 소리를 쫓아갔다.

“천지신명이시여! 천지신명이시여…!”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땅속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윤원중은 개처럼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점점 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무거운 석판이었다. 석판을 밀어내니 웬 관이 있었다. 윤원중은 떨리는 손으로 관뚜껑을 열었다.

“하하… 하….”

관 속에는 갓난아이가 조용히 자고 있었다. 윤원중은 뒤로 나자빠졌다.

“하하… 하하하… 하! 하하하….”

윤원중은 흐릿한 눈으로 소년의 뺨을 쓰다듬었다. 한참을 울면서 웃었다. 울음기 섞인 웃음소리가 산중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윤원중은 그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하늘이 응답하여 진정 깨달음을 베풀어 주신 것이다!”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년을 품에 안았다.

“내 아가로구나… 우리 아가로구나….”

누가 볼세라, 소년을 품에 안고 산 아래로 달렸다.

“아가… 할애비랑 가자… 나랑 살자….”

윤원중은 그날을 기점으로 완전히 미쳐 버리고 말았다.

***

“…테오는 바다에 가고 싶었습니다. 에메랄드빛 물결이 햇살에 반짝이는 아름다운 섬에 가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도록, 아무도 기다리지 않을 수 있도록, 외로운 테오는 외로운 바다로 가서 외롭지 않고 싶었습니다….”

어린 소년은 가녀린 촛불에 의지해 더듬더듬 책을 읽어 나갔다.

소년이 읽는 책은 얇은 동화책에는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었고, 따스한 색감의 파스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소년이 평소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책이었다.

“방금 누가 목소리를 낸 게야!”

그때, 바깥에서 성난 기척이 느껴졌다.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참 뒤에나 돌아올 줄 알았는데… 낭패였다. 소년은 훅, 숨을 불어 재빨리 촛불을 껐다. 후다닥 책을 덮은 뒤, 쓰레기더미에 몸을 누이고 자는 시늉을 했다.

“누가 목소리를 냈느냐! 응?”

간발의 차로 문이 벌컥 열리며, 윤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컴컴한 좁은 방 안은 쓰레기장이었다.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 더미가 한데 뒤섞여 산처럼 쌓여 있었으며, 둥지처럼 소년을 둘러싸고 있었다.

윤 노인은 어두운 방 안을 둘러보다가 얌전히 자는 소년의 뺨을 내려다보았다. 워낙 천연덕스러웠으므로 속을 법도 하건만, 윤 노인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이놈! 너지! 너! 너지!”

윤 노인은 자는 척을 하는 소년의 어깨를 덥석 잡더니, 우악스러운 손길로 소년을 일으켜 세웠다. 윤 노인은 소년의 어깨를 흔들며 다그쳤다.

“네 이놈,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으냐? 목소리를 내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이 못된 놈, 고얀 놈! 배은망덕한 놈….”

윤 노인은 소년을 세워 놓고 매타작을 하기 시작했다. 되는 대로 손을 휘둘러 가며 소년을 마구 때렸다. 윤 노인의 눈동자는 혼탁하였으며, 분노와 광기로 얼룩져 있었다. 소년은 입을 꾹 다문 채, 그런 윤 노인을 힘껏 노려보았다.

“그렇게 눈 뜨지 말라고 내 몇 번을 이야기했어!”

그에 윤 노인은 더욱 광분하여 소년에게 손찌검했다. 윤 노인은 때때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렇게 훼까닥 돌았을 때는 누구도 말릴 재간이 없었다. 소년은 윤 노인이 때리는 대로 묵묵히 얻어맞았다. 입술이 터지고, 몸 곳곳에 작은 상처가 생겨났으나 윤 노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때, 뭐에 씐 것처럼 손을 휘두르던 윤 노인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으, 흐윽….”

윤 노인은 별안간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끙끙 신음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윤 노인은 소년을 홱 내팽개치고 구석으로 기어갔다.

“헉… 큰, 큰일이야… 큰일이야! 놈들이 온다, 놈들이 와…!”

윤 노인은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어느새 그는 마치 엄동설한에 내던져진 사람처럼 벌벌벌 떨고 있었다.

“나자가 올 거야… 나자가 온다, 나자가 와! 필시 나를 찾아낸 게야…!”

불안한 눈초리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윤 노인은 별안간 소년의 손목을 확 잡아끌더니 이불 속에 처박았다. 누구에게도 보여 주려 하지 않는 것처럼, 소년의 몸을 이불로 꽁꽁 싸맸다.

“이 애는 내 손주야! 내 손주란 말이야, 네놈들이 뭔데… 저리 가, 오지 마!”

윤 노인은 허공을 보며 악다구니를 써 댔다. 목에는 핏대까지 서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윤 노인은 누군가 찾아와 소년을 뺏어 갈 것이며,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곧잘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고는 했다.

윤 노인이 소년이 누구와도 말을 섞지 못하게 하는 것도, 소년을 집에 가둬 두고 밖으로 절대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도, 전부 이러한 공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윤 노인의 통제욕과 집착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윤 노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하다가, 큰 소리로 웃어 대다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이리저리 삿대질해 가며 욕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돌연 입을 다물었다. 잠시 굳은 채로 서 있던 윤 노인은 무릎걸음으로 소년에게 가더니, 이불을 확 걷어 내고는 소년을 꼭 끌어안았다.

“선오야… 우리 선오로구나… 미안하다, 미안해….”

광기로 얼룩져 있던 눈동자는 어느샌가 맑게 개어 있었다. 윤 노인은 ‘하늘이 베푼 깨달음’이라 하여 소년의 이름을 선오(宣悟)로 지었다.

“할애비가 미안하다… 선오야….”

윤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소년의 뺨에 볼을 비볐다. 과거의 어느 날, 화마가 휩쓸고 간 뺨은 눈물로 젖어서 축축하였으며 그 감촉은 울퉁불퉁하고 다소 거칠었다.

선오는 무표정한 얼굴로 윤 노인의 품에 가만히 안겨 있었다.

“…….”

이런 날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윤 노인은 나흘은 미쳐 지냈고 하루쯤 멀쩡해졌다. 제정신일 때의 윤 노인은 너그러운 할아버지였고 하나뿐인 손주를 끔찍이 아꼈지만, 가끔은 남보다도 못한 인간이었다.

선오는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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