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계십니까? 시청에서 나왔습니다!”
오후가 되자 밖에서 대문을 쾅쾅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불청객이 찾아왔다. 모처럼 멀쩡해진 것 같았던 윤 노인의 눈에 다시 광기가 차올랐다. 윤 노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여긴 내 집이야! 어서 썩 꺼지지 못해!”
윤 노인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시끄러운 고성이 오고 갔다.
“계속 주민분들이 민원을 넣으셔서 저희 어쩔 수 없이….”
윤 노인과 선오는 산 초입에 버려진, 거의 폐가나 다름없는 낡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윤 노인은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하루 종일 폐지와 공병을 주워서 생계를 연명하였는데, 처음엔 폐지와 공병만 주웠으나 점점 병적인 수집벽과 강박이 생기면서 어느덧 윤 노인의 집에는 온갖 고물과 잡동사니가 가득하게 되었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윤 노인의 집은 동네의 ‘흉물’이 된 지 오래였다.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근처를 지나기만 해도 악취가 진동하는 데다가, 주변에 벌레가 들끓으니 동네 주민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윤 노인의 집은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막상 그 누구도 윤 노인의 집을 찾아가서 따질 엄두는 내지 못했다.
윤 노인은 사람을 미워하고 극도로 경계해서, 누가 말만 걸어도 패악을 부렸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윤 노인을 ‘노망난 미친 늙은이’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래서 윤 노인은 동네 주민들과 사이가 나빴다. 게다가 윤 노인이 사는 집은 ‘귀신이 들린 집’이라는 소문이 파다하여 모두가 윤 노인을 꺼렸다.
동네 주민들은 윤 노인이 손자와 함께 산다는 것을 몰랐고, 그 집에서 윤 노인 혼자만 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주민들 사이에서 가끔씩 윤 노인의 집 앞을 지나다가 담장 안에서 쿵쿵거리는 소리,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처음에 반신반의했지만, 윤 노인의 집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초저녁만 되어도 섬뜩하고 을씨년스러웠기에 어느샌가 모두 그 소문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윤 노인의 집에는 잡귀가 들끓었다. 윤 노인의 집은 잡귀들의 사랑방이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윤 노인은 인간을 혐오하였으나 귀신에게 자비로웠고 친절한 편이었다. 가끔은 기꺼이 몸주가 되어 줄 때도 있었고, 오갈 곳 없는 객귀들을 데려와 메(조상이나 망자를 위해 차리는 밥)를 지어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예 터를 잡고 눌러앉은 잡귀도 생겨났는데, 매년 식구가 하나씩 늘기 시작하여 어느덧 윤 노인의 집에 사는 잡귀는 어느새 일곱이나 되었다.
윤 노인이 시청 직원과 언쟁을 벌이는 사이, 좁고 어두운 방 안에 남겨진 선오는 침울하게 누워 있었다. 입술에 난 피를 쪽쪽 빨아먹는데,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잡귀 중 하나가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선오에게 다가왔다.
“선… 오… 야….”
잡귀는 선오의 앞에 쪼그려 앉더니 뻐끔뻐끔 입을 벌렸다. 천장을 올려다보던 선오는 잡귀에게 힐끔, 시선을 주었다. 눈앞의 잡귀는 수살귀(水殺鬼)였다. 수살귀는 선오가 갓난아이였을 때부터 이 집에 있었다. 수살귀는 물에서 빠져 죽은 물귀신을 말하는데, 원래는 계곡에서 살고 있었다. 물귀신은 본디 물 밖으로 나올 수 없지만, 윤 노인이 직접 건져 올려서 데려왔다고 했다.
“괜… 찮… 아…?”
수살귀는 물속에서 산 세월이 오래된 탓에, 무언가 말을 할 때마다 여전히 물속에 있는 것처럼 입을 뻐끔거리는 습관이 있었다.
“선… 오… 야….”
선오는 수살귀에게서 등을 돌리고, 몸을 웅크렸다.
“저리 가. 말 걸지 마….”
잡귀들은 언제나 선오의 주위를 맴돌았다. 일부러 시선을 끌기 위해서 저희끼리 투닥거리기도 하고, 괜히 눈앞에서 어슬렁어슬렁하곤 했다. 선오는 그런 잡귀들을 몹시 귀찮아했다. 잡귀들은 성가실 정도로 선오에게 관심이 많았고, 또 관심을 받고 싶어 했다. 갓난아기였던 시절부터 선오를 봐 왔던 수살귀는 특히나 선오를 몹시 좋아해서, 선오가 어딜 가든지 그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선… 오… 야….”
수살귀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책을 가지고 오더니, 선오의 머리맡에 놔 주었다. 조금 전에 소리 내서 읽었던 동화책이었다.
“책… 읽… 어….”
수살귀는 선오를 위로하고, 달래 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선오는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조금 전에 책을 읽다가 할아버지한테 혼났는데, 멍청한 잡귀는 그걸 봐 놓고도 책을 가져와서 읽으라고 하고 있었다.
“선… 오… 야….”
“…….”
“화… 났… 어…?”
“…….”
수살귀가 손을 뻗더니, 선오의 머리를 쓰다듬는 시늉을 했다. 선오는 평소 수살귀가 제 몸을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물귀신의 손은 축축하고 차가워서, 기분이 무척 나쁘기 때문이었다. 결국, 선오는 몸을 일으켰다. 머리맡에 있던 책을 집어 든 선오는 그대로 귀기를 실어서 수살귀에게 냅다 집어 던졌다.
“저리 가라고 했지…!”
선오는 귀신에게 물리력을 행사할 줄 알았고, 그냥 물건을 던지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귀신들과 함께 살면서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터득한 사실이었다. 귀기가 실린 책에 얻어맞은 수살귀가 뒤로 꽈당 넘어졌다.
“아… 파….”
선오는 평소 자신의 기분대로 잡귀들에게 함부로 굴고 막 대했다. 오늘처럼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애먼 화풀이를 하기도 했고, 심술을 부리곤 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제 할아버지가 그러하듯, 잡귀들을 앉혀 놓고 머리를 빗겨 주기도 하고 함께 잡동사니를 찾아서 놀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잡귀들을 성가셔하고 귀찮아하는 날이 더 많았다.
이 작은 쓰레기장이 선오에게 허락된 유일한 세계였다. 선오는 가끔 이 세계가 못 견디게 답답했다. 그럴 때면 선오는 눈을 감고 상상했다.
드넓은 바다, 에메랄드빛 물결이 햇살에 반짝이는 아름다운 섬, 잡귀들도 없고, 할아버지도 없는 곳…
선오는 입 모양으로 소리 없이 뻐끔거렸다.
‘모두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
윤 노인은 보통 아침 일찍 나가서 해 질 녘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윤 노인은 선오에게 집 안에서 나오지 말라 신신당부를 했지만, 선오는 가끔 몰래 마당으로 나와서 볕을 쬐고는 했다. 그러나 대문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다. 윤 노인이 부적을 덕지덕지 붙여 놓고 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열리지 않았다. 저 문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윤 노인뿐이었으나, 가끔은 담을 타고 넘어온 길고양이들이 한가롭게 뒹굴뒹굴하며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선오는 쓰레기더미에서 찾아낸 노끈을 흔들며, 마당 구석에서 고양이와 놀아 주고 있었다. 그때, 녹슨 철문을 쾅쾅쾅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 계세요!”
마당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던 선오는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 가만히 숨을 죽인 채, 대문 너머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척 기척을 죽이면 금세 떠났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이 조용해졌다. 선오가 다시 노끈을 휘적거릴 때였다.
“어? 저기, 꼬마야!”
그때, 누군가와 담장 위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단발머리를 한 젊은 사람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선오는 몹시 당황하여 그대로 얼어붙었다. 담장이 꽤 높은 편이어서 보통 담장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는데, 상대는 무언가를 받침대로 삼고 올라온 듯했다. 상대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꼬마야. 너 여기 사니?”
상대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 반가워. 언니는 복지관에서 왔어.”
복지사는 생글생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선오의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탓에 여자인 줄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꼬마야. 너 예쁘게 생겼다.”
“…….”
“할아버지 지금 안 계시니?”
“…….”
선오는 윤 노인과 약속한 대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복지사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점점 기묘하게 변했다.
복지사가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네네, 지금 여기 왔는데요. 할아버지는 안 계시고, 웬 애가 있는데요? 혼자 사시는 줄 알았는데… 근데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딱 봐도 너무 말라 보여서… 네. 혹시 가족이 있는지 한번 확인을….”
선오는 노끈을 휘적거리며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드디어 갔구나 싶어서 안심하는 찰나,
“꼬마야!”
담장 안쪽으로 무언가 투두둑 쏟아져 내렸다. 선오는 놀라서 황급히 다시 담벼락을 응시했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깥에서 떨어져 내린 것을 살펴보았다. 낱개로 포장된 사탕이며 초콜릿이며 작은 과자들이었다.
“언니는 힘들고 아픈 분들을 도와주는 사람이야.”
복지사는 까치발을 딛고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할아버지 오시면, 여기로 꼭 연락 달라고 말씀드려 줘. 알았지?”
그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아까처럼 담장 안으로 떨어트려 주었다. 더 가벼운 무게감을 지닌 것이 팔랑팔랑 내려왔다. 그것은 명함이었다.
나눔 복지 지원 센터
TEL. 033-XXX-XXX
복지사가 떠난 뒤, 선오는 명함을 주워 들었다. 적힌 글자를 찬찬히 바라보던 선오는 망설임 없이 명함을 찢어 쓰레기 더미에 집어 던졌다. 그런 다음, 바닥에 떨어진 단것들을 주섬주섬 주워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잡귀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잡귀들이 쭈뼛거리며 줄을 섰다. 선오는 잡귀들의 손에 단것을 하나씩 배급해 주었다. 잡귀들은 포장지를 부스럭거리며 너도나도 사탕을 까먹는 시늉을 했다. 다 먹으면 다시 선오의 앞에 와서 줄을 섰고, 계속 그렇게 줄을 섰다.
잠시 머뭇거리던 선오도 잡귀들을 따라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선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윤 노인이 주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 끔찍할 정도로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