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129)화 (129/348)

#129

“무슨 소리야! 그 애는 내 손자야! 내 손자라고!”

그 날은 아침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할아버님,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가족도 없으시면서 손자라니요? 금치산자가 어떻게 애를 키워요. 이거 아동 학대예요, 아동 학대!”

선오는 지저분한 커튼을 슥 걷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윤 노인과 시청 직원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고, 복지사는 그 옆에서 마당을 둘러보고 있었다. 선오는 복지사가 담장 안으로 검은 봉투를 휙 던져 넣는 것을 보았다.

윤 노인은 씩씩거리며 사람들을 쫓아내고는 손수레를 끌고 집을 나갔다. 선오는 계속 자는 척을 하다가, 몰래 나가서 복지사가 놓고 간 봉투를 열어 보았다. 봉투 안에는 초코파이, 젤리, 사탕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잡귀들이 헤실헤실 웃으며 선오의 앞에 주르륵 줄을 섰다.

“…….”

그날 이후, 복지사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선오를 찾아왔다.

점심때가 지나서 대문 밖에서 “꼬마야.” 하는 복지사의 목소리가 들리면, 선오는 부리나케 창문으로 달려가서 커튼을 들치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복지사는 지난번에 마당에 던져 둔 간식 봉투가 없어진 걸 확인하고, 잠시 주변을 서성이며 선오가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새로 가져온 간식을 담장 안에 던지고 그대로 등을 돌려 돌아가고는 했다.

선오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간식이 싫지 않은 건지, 복지사가 싫지 않은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복지사가 선오를 들여다본 지 세 달째가 되던 어느 날이었다.

“할아버지가 아파요.”

선오는 처음으로 윤 노인과의 약속을 어겼다.

어느덧 계절은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윤 노인은 한 달 가까이 계속해서 기침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은 피도 토했다. 그런데도 윤 노인은 매일같이 손수레를 끌고 나갔고, 이상한 잡동사니와 쓰레기를 주워 왔다.

선오는 윤 노인이 저러다 죽을까 봐 두려워졌다. 하지만 집 밖에 나가 본 적이 없는 선오로서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랬구나. 언니가 내일 할아버지 병원에 모셔 갈게. 금방 나으실 거야.”

복지사는 말을 못 하는 줄 알았던 선오가 입을 연 것을 놀라워하면서도, 이내 차분하게 선오를 달래 주었다. 내일 다른 복지사들과 함께 와서 윤 노인을 병원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병원에 가면 금방 건강해질 것이라는 말에 선오는 안심이 되었다.

“근데 왜 지금까지 말을 안 했니?”

“할아버지가 말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왜?”

“그건… 나자가 찾아온다고 해서….”

복지사는 짧게 멈칫하더니,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나자? 나자가 뭔데?”

잠시 고민하던 선오는 잘은 모르겠지만 무섭고 나쁜 사람들이라고, 어눌한 음성으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윤 노인이 선오를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 윤 노인이 나자를 무서워한다는 것도 말했다. 복지사는 몇 달 동안 저를 들여다 봐준 사람이었다. 선오가 도움을 청할 곳이라고는 눈앞의 복지사밖에 없었다.

복지사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응, 그건 전부 다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그런 거야. 치료받으시면 나으실 거야. 언니가 도와줄게. 할아버지가 나으면, 너도 이제 학교에 갈 수도 있어.”

복지사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신, 나자… 그런 건 세상에 없어. 다 할아버지가 농담하신 거야.”

복지사는 귀신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으며, 전부 윤 노인이 아파서 그런 거라고 했다. 그런데 선오는 그런 복지사의 말이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그럼 얘는 뭔데요?”

선오가 손을 들어 저의 뒤에 서 있는 수살귀를 가리켰다.

“…응?”

복지사는 선오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보았다.

“얘 말고도 집 안에 여섯 마리가 더 있어요.”

“…뭐?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복지사의 낯이 서서히 굳어질 때였다.

“너… 너, 지금 누구랑 말을 하는 게야!”

골목 끝에 윤 노인이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채 서 있었다.

“꼬, 꼬마야. 그럼 언니는 내일 다시 올게….”

복지사는 윤 노인을 보고는 후다닥 어디론가 뛰어갔다.

***

그날 밤, 선오는 모진 회초리질을 당하고 어두운 방 안에 갇혔다.

선오는 창문 너머로 휘영청 비치는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방 안, 벽 한쪽에는 무신도(巫神圖)가 그려진 병풍이 놓여 있었다. 선오가 갇혀 있는 방은 이 집에서 그나마 깨끗한 방이었다. 윤 노인은 방 안에 신당을 마련해 두고 가끔 향을 올리기도 하고 물을 떠 놓기도 했다. 병풍 아래에는 작은 서랍장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쌀이 담긴 함이며 그릇을 놓아두었고, 촛불 한 촉을 켜 두었다. 윤 노인은 가끔 이 방에서 ‘천지신명이시여!’ 하면서 기도를 올리고는 했다.

신방으로 쓰이는 작은 골방에 갇힌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신방 안에 갇히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잡귀들을 괴롭히다가 혼났을 때, 마당에 나와 있다가 운 나쁘게 들켰을 때도 그랬다. 그때마다 윤 노인은 무섭게 화를 내며 선오를 신방 안에 가둬 놓는 벌을 내렸다.

그러나 길어야 한나절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적은 없었다. 몇 번이고 나가려고 문손잡이를 돌려 보았고, 열어달라고 손이 부서져라 문을 두들겨 보았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선오는 방에서 나가는 것을 포기했다. 문이 열리지 않는 이유는 진작부터 알아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또 문에 부적을 붙여 놓은 거다. 손바닥을 대고 있으면 열기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그게 부적의 기운이었다.

윤 노인은 집을 나설 때 대문에 부적을 붙여 두었는데, 윤 노인이 문에 부적을 써서 붙이면 꼭 이상한 힘이 문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방법을 써도 나갈 수 없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문이 절대로 열리지 않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바깥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곳에 있으면 희한하게 배도 고프지 않고 춥지도 않았다. 다만, 이상하게 아늑하고 포근해서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선오는 졸린 눈으로 촛불에 그림자가 일렁이는 무신도를 끔뻑끔뻑 바라보았다.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선오는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어쩌면 윤 노인이 죽어 버린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정말로 어디가 크게 아픈 걸까. 만약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이면….

평소 선오는 윤 노인의 정신이 맑게 개는 날만을 기다렸다. 그동안 선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책은 선오의 유일한 친구이자, 바깥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창구였다. 잡귀들은 선오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잡귀들은 때때로 쓰레기 더미를 뒤지든가 하여 새로운 책을 구해다 주기도 했다. 그러면 선오는 좁은 방 안에 누워서 책을 읽고, 또 읽고 했다.

‘우리 선오 있느냐.’

그러다 보면 선오가 알고 있는 그 윤 노인이 돌아오는 것이다.

맑은 눈을 한 윤 노인은 난장판이 된 방을 깨끗이 치웠다. 따뜻한 물을 받아서 선오를 정성껏 씻겨 주었고, 상하지 않은 음식으로 밥을 차려 주었으며, 아무렇게나 자라난 긴 머리를 참빗으로 조심조심 빗어서 묶어 주었다.

때로는 선오를 무릎에 앉혀 놓고 옥편을 펼쳐 한자를 알려 주기도 하고, 장기 두는 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 선오는 아주 영리하여 한번 알려 준 것은 잊지 않았고, 글을 물론이고 한문까지 읽을 수 있었다.

윤 노인은 선오가 장기 대국에서 저를 이기거나, 몇 번 봐서는 외우기 힘든 어려운 한자를 기억할 때면 싱글벙글 웃으며 무척이나 기뻐했다.

‘수재로구나. 수재야.’

그리고는 그 상으로, 어디서 났는지 모를 사탕을 하나 꺼내 주었다. 윤 노인이 ‘사랑방 사탕’이라고 적힌 통을 가져오면 가슴이 뛰었다. 선오는 사탕을 아주 좋아했다. 매일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것은 윤 노인이 맑은 눈을 했을 때만 먹을 수 있는 귀한 것이었다.

선오는 입 안에서 사탕을 천천히 녹여 먹고는 했다. 그리고 윤 노인에게 나는 어디서 왔느냐고 일부러 캐물었다. 그러면 윤 노인은 껄껄 웃으며 엉터리로 지어낸 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려 주었는데, 선오는 그 이야기를 아주 좋아했다.

‘예전에 산에 가지를 치러 갔었지. 근데 어디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서,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찾아다녔는데, 가만 보니 신기하게도 땅속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땅을 파 보니 웬 비석이 있었는데, 거기에 기다릴 혜(徯)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지. 그래서 참으로 이상타 싶어서 비석을 치워 보았지. 그랬더니 웬 관이 있었어. 그래서 또 열어 보았지. 그런데 우리 선오가 그 안에서 자고 있지 뭐냐! 우리 선오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단다.’

선오는 자신을 선물이라 말하는 윤 노인을 사랑했다.

그리고,

선오는 그런 윤 노인을 미워했다.

“…….”

또 졸립다. 방바닥에 모로 누워 있던 선오는 다시금 잠이 들려고 했다.

“크크. 바보. 크크크.”

그런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였다. 선오가 천천히 감은 눈을 떴다. 눈동자를 굴려 보아도 보이는 것은 희미한 촛불에 비치는 무신도뿐이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눈을 감는데,

“크크크. 크크. 바보야. 바보.”

또 목소리가 들렸다. 선오는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졸린 눈을 비비며 무신도를 바라보았다. 무신도에 그려진 수염이 긴 신령이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이목구비가 마구 뒤섞였다가, 이지러지더니 어느새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누구야?”

선오가 속삭이듯 조용히 물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림 속 신령은 변함없는 표정이었다. 찬찬히 무신도 곳곳을 살펴볼 때였다. 선오의 시선이 어딘가에 닿았다. 그림 속 신령의 어깨 뒤에서 스멀스멀 검은 뱀 한 마리가 미끄러지듯 기어 나온 것이었다. 신기한 광경에 선오가 눈을 크게 떴다.

“크크크. 이 바보야. 멍텅구리야.”

틀림없었다. 그림 속의 뱀이 말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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