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134)화 (134/348)

#134

임효문과 재겸이 영화관에서 나왔을 때는 어느덧 정오를 지난 시각이었다. 출근까지 아직 시간이 널널하게 남아 있어서, 두 사람은 출근 전에 점심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임효문은 근처에 잘 아는 식당이 있다며 그리로 가자고 했다. 재겸은 임효문이 걸음을 옮기는 대로 쫄래쫄래 쫓아갔다.

임효문이 재겸을 데리고 간 곳은 본청 건너편에 있는 식당이었다.

“여기야?”

재겸이 시큰둥한 얼굴로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정덕철의 왕돈까스’

간판 속에는 ‘정덕철’로 추정되는 인물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들어가 있었다. 저렇게 이름 석 자를 내걸고 있는 거로 봐서는 자신이 만든 음식에 꽤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가게 안에는 벌써 손님이 반 이상 차 있었다.

“저 사람이 가게 주인이냐?”

임효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노라 했다. 그에 재겸은 간판 속 얼굴을 요모조모 유심히 뜯어 보았다. 흰 주방장 모자를 쓴 정덕철은 팔짱을 낀 채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덩치가 몹시 우람하였으며 인상이 아주 험악했다.

“멧돼지도 때려잡겠네. 도적 떼 두목 같어.”

재겸의 감상평에, 임효문이 덤덤하게 말했다.

“우리 아빤데.”

뭐? 재겸이 눈에 띄게 흠칫하더니 임효문과 정덕철을 번갈아 보았다. 하나도 안 닮아서 전혀 생각도 못 했다. 게다가…….

“근데 너 임 씨잖아.”

“울 엄마 성 따랐어. 엄마가 임 씨야.”

“아… 그렇, 그렇군….”

정말 세상이 많이 바뀌긴 했군… 아무튼 남의 부모를 함부로 말한 것 같아서 뜨끔했다. 눈치를 보던 재겸이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쥐고 입을 열었다.

“정말 듬직하, 하시고, 풍채가 좋으시다. 도둑이 왔다가도 그냥 도망갈 것 같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고라고 그랬는데, 싸울 필요도 없으시겠다.”

“뭐? 갑자기 도둑 얘기가 왜 나와….”

임효문이 어이없어하며 먼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안은 식사하는 손님들로 시끌벅적했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직원이 임효문을 보고는 아는 척을 했다. 임효문은 “누나, 얜 나랑 같이 일하는 친구고. 칠칠아, 가게 직원 누나야.” 서로를 소개해 주었다. 재겸이 쭈뼛쭈뼛 고개를 숙였다.

“나 오늘은 돈 내고 먹는 손님으로 온 거니까 일 시키지 마슈.”

“오키, 알았어.”

임효문은 재겸을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 잠깐 앉아 있으라고 말하고는 주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머지않아 주방에서 임효문의 아빠가 튀어나왔다.

정덕철의 손에는 뾰족한 톱니가 잔뜩 솟아나 있는 네모난 무기가 들려 있었다. 돼지고기를 펼 때 쓰는 망치라는 것을 모르는 재겸은 순간 움찔했다. 도적 떼 두목처럼 생겼다고 말했던 것을 임효문이 그새 일러바쳤구나 싶었다.

“아이고. 효문이 친구. 어서 와요, 어서 와.”

그러나 재겸의 걱정과는 달리, 다행히 임효문의 아빠가 망치를 휘두르는 일은 없었다. 그는 간판 속의 사진에서 방금 막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만큼 사진과 똑같았는데, 의외로 험악한 인상과는 다르게 몹시 상냥했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재겸은 어색하게 임효문의 부친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칠칠아, 우리 집은 돈가스 정식이 제일 괜찮거든? 정식 먹어.”

“어? 어….”

임효문은 피클, 김치 등 밑반찬과 식기를 손수 챙겨서 자리로 왔다. 일 시키지 말랄 때는 언제고, 손길이 아주 능숙했다. 멀뚱히 앉아 있던 재겸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가게 내부를 살펴보았다. 손님이 엄청 많네….

본청 근처에서 임효문네가 식당을 한다는 건 처음 안 사실이었다.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시끄러운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임효문은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서 흥얼거리며 오이 피클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칠칠아, 먹어 봐. 우리 집에서 직접 담근 거야.”

아삭아삭하면서도 새콤달콤했다. 맛이 어떠냐고 임효문이 물었다. 재겸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맛있어.” 임효문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갈 때 좀 싸 줄게. 그냥 밥반찬으로 먹어도 맛있을 거야.”

“어.”

재겸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괜찮다고 사양을 하겠지만, 재겸은 솔직했다. 임효문은 재겸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들이 마음에 들었다. 서툴지언정, 겉과 속이 똑같은 인간이라 좋았다.

“돈가스 먹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와. 부모님 모시고 와도 되고.”

재겸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알겠어. 근데 나 부모 없어.”

“어?……”

임효문이 흠칫하더니, 토끼 눈을 뜨고 재겸을 바라보았다. 포크에 아슬아슬하게 꽂혀있던 피클이 툭 떨어졌다.

동생이 있다고… 어린 동생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럼 동, 동생이랑 단둘이 사는 거야?”

“아니. 둘은 아니고 셋이 살어.”

외삼촌이 있다고 말하자, 임효문은 눈을 마구 깜빡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주저하듯 피어싱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참 만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외삼촌은 뭐하셔?”

“요즘 일 없어서 계속 집에 있어.”

“…….”

임효문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피클을 뒤적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임효문이 시뻘게진 얼굴로 뛔흙, 이상한 소리를 내며 미간을 감싸 쥐었다.

“뭐야. 왜 그래?”

임효문이 코를 훌쩍거리며, 피클에 붙은 검은 알갱이를 가리켰다.

“아니, 끄흑… 통후추를 씹어서 그래….”

대체 어떻길래? 재겸은 호기심에 통후추를 씹어 보았다. 흠… 과연… 그럴 만했다. 재겸은 오만상을 쓰며 후추를 뱉었다. 서둘러 물을 따라서 마셨다.

“야. 얼른 물 마셔.”

임효문은 그 후로도 한참을 훌쩍거렸다.

***

어쩐지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임효문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럼 밥 나오기 전까지 한 판 때리자.”

임효문은 훌쩍거리며 프렌즈팡을 켰다. 분위기 환기 차원이었다. 멀뚱멀뚱 멍하니 앉아 있던 재겸은 번뜩 정신이 들었는지, 후다닥 휴대폰을 꺼냈다.

어제 임효문은 재겸에게 프렌즈팡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첫걸음은 휴대폰에 메신저 어플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재겸은 임효문의 도움을 받아 메신저를 설치했다. 이외에도 폭탄을 쓰는 방법, 콤보의 기능, 아이템을 쓰는 법 등등 게임 규칙도 배우고, 하트를 얻는 방법도 배웠다.

프렌즈팡은 하트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하트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찬다고 했다. 임효문은 하트가 전부 다 찰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메신저의 친구를 통해서 얻는 방법이 있다고 꼼꼼하게 알려 주었다.

‘이 버튼 보이지? 이걸 누르면 하트를 받을 수 있어.’

하트 획득 방법을 알게 된 재겸은, 어제 사무실로 돌아가자마자 곧장 파티션에 붙어 있던 비상 연락망을 보고 팀원들의 번호를 전부 저장했다. 그 과정에서 고준형의 도움을 받았다. 번호를 저장하면 메신저상의 친구가 되는데, 친구의 이름 옆에 보이는 버튼을 누르면 하트가 생긴다고 했으니 싹 다 눌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팀원들이 파하하 웃으면서 “막내! 너 프렌즈팡 하는구나?” 하더니 웃어 대는 게 아닌가. 놀란 재겸은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그에 고준형은 자신이 받은 하트 요청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

그제야 재겸은 자신이 설명을 잘못 이해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르기만 하면 저절로 하트가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트를 보내면 자동으로 요청이 가는데, 동시에 상대는 메시지를 받게 되고, 상대가 그 요청에 응하여 직접 하트를 보내 주는 원리였다. 그에 재겸은 몹시 당황하여,

‘그럼 이거 없던 일로… 아니 취소 어떻게 해요?’

하고 물었으나, 고준형은 ‘못 해.’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재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윤태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잠시 동요했으나, 애써 평정심을 되찾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게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프렌즈팡을 켠 재겸은 하트 보관함으로 들어가 보았다.

[효문쓰 님이 하트를 보냈습니다.] 방금 전

[준형ㅋㅋ 님이 하트를 보냈습니다.] 1일 전

[깡이빈♨ 님이 하트를 보냈습니다.] 1일 전

하트를 보내 준 목록 중에서 윤태희는 없었다.

“…….”

재겸은 왜인지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 전날 재겸과 윤태희는 언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윤태희는 재겸에게 폭력을 빙자한 키스를 퍼부었으며, 재겸은 그 키스에 대한 앙갚음으로 윤태희의 뺨을 때리긴 했으나…….

어쨌든, 비록 그런 일이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하트 보내 주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걸 안 보내나 싶었다.

게다가 윤태희는 어제 휴무였다. 집에서 쉬는 날이니 시간도 남아돌았을 테고, 딱히 할 일도 없었을 텐데. 별것도 아닌데 끝까지 안 보내 주는 걸 보니 너는 역시 마음의 그릇이 좁고 졸렬하기 짝이 없는 소인(小人)임이 틀림없다.

드럽고 치사해서, 네가 보내 줬어도 네 걸로는 안 한다….

재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윤태희의 프로필을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야. 여기서 이름 안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어, 그거 까톡 들어가서 친구 차단하면 안 떠.”

“차단 그거 어떻게 하는데.”

임효문이 게임을 중지하더니 제 휴대폰으로 시범을 보여 주었다.

“자. 봐 봐. 여기로 들어간 다음에, 친구 관리로 들어가면….”

재겸은 임효문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설명을 듣다가 무심코 창밖으로 시선을 한 번 던졌다. 재겸이 멈칫하며 눈을 크게 떴다. 창밖으로 낯익은 사람이 슥 지나갔다. 재겸이 순간 저도 모르게 엇, 소리를 내자 임효문이 고개를 들었다. “엉? 왜. 뭐.” 재겸은 황급히 하늘을 가리켰다.

“비, 비 비둘기…….”

회색 슈트를 입은 소인(小人)은 그렇게 슥 지나갔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