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137)화 (137/348)

#137

어느덧 나례청에 입청한 지도 벌써 2주가 흘렀다.

재겸의 나례청 생활은 그럭저럭 순탄히 굴러가고 있었다. 본청 지리에도 제법 익숙해졌다. 이제는 비품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았고, 타 부서 사무실에 가서 서류를 전달해 주고 오라는 심부름도 곧잘 해냈다.

화장실에서 충돌을 빚었던 그 날 이후, 윤태희와 재겸은 서로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아니,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윤태희가 더 이상 재겸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았다. 둘은 예전처럼 불필요한 언쟁은 하지 않았고, 업무를 제외하면 부딪치는 일도 전혀 없었다. 당연히 입을 맞추는 일도 없었다.

그동안 재겸은 서너 번 정도 현장에 출동했으며, 그때마다 보고서를 써서 제출했다. 보고서를 제출하러 수석실에 들어갔다가 단둘이 남게 되었을 때도,

“고생했어요.”

윤태희가 건네는 말이라고는 이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재겸도 용건이 없으면 윤태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다만, 프렌즈팡 하트는 꾸준히 요청하고 있었다. 사실 임효문이 알려준 대로 차단할까 고민도 했었지만 묘하게 오기가 생기기도 했고, 그랬다간 왠지 지는 것 같았다. 재겸은 윤태희가 저에게 그렇게 영향력이 크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윤태희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는 다소 침체되어 있었다. 평화 속에서 윤태희는 차분했고, 고요했으며, 조금은 의기소침했다. 그리고 묘하게 수척해 보이기도 했다. 팀원들과 함께 차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눌 때도 간간이 빙그레 웃기만 할 뿐이었다.

재겸은 그런 윤태희를 의식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

오늘은 이른 오전부터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재겸은 강이빈과 함께 외근을 나가게 되었다. 둘이 맡은 임무는 신호등 수리였다. 현장에 가 보니 귀신 하나가 도로 위 신호등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귀신이 신호등을 점거한 것이 고장 원인이었다. 분명 방금 전에 파란불로 바뀌었는데 불과 몇 초 사이에 빨간불로 바뀌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길을 건너던 보행자들은 큰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벌써 몇 번의 접촉 사고가 일어났고, 덕분에 교차로 일대는 교통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아오, 저 썅새끼.”

신호등을 올려다보던 강이빈은 시원하게 욕부터 했다.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기도 하고, 환한 대낮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보는 눈이 많아서 탈을 쓰진 못했다. 그리하여 강이빈과 재겸은 탈 대신 형광색 조끼를 입고 안전모를 쓰고 시설 보수과 직원으로 위장하여 트럭 크레인에 올라탔다. 강이빈은 연장 가방에서 드라이버 대신 제구와 부적을 꺼냈다.

재겸은 조수였다.

몇 차례 현장 출동을 하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때마다 직접 사건을 해결한다기보다는 깍두기 노릇을 하는 것에 가까웠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사건의 경중에 따라 배정되는 인원이 다르고, 혼자서 출동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수습 나자는 선배와 함께 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어떤 순서로 일이 진행되는지 직접 보고 배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번 호출 역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조금 성가실 뿐이었다. 이 정도쯤은 달에 몇 번 정도는 일어나는, 흔하디흔한 사건에 속했다.

“아니, 여기 신호등은 저번에도 이러더니. 툭하면 고장이네? 고칠 때 제대로 좀 고쳐야 될 거 아뇨. 아가씨, 내가 일 년에 내는 세금이 얼만 줄 알아?”

신호를 받느라 잠시 정차한 사이, 운전자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비를 거는 일도 왕왕 일어났다. 귀신을 쫓아내는 일보다는 이런 사소한 일이 더 스트레스였다. 불같은 성격의 강이빈은 그런 잔소리를 참지 못했다.

“이봐요, 아저씨. 왜 나한테 지랄이에요?”

장년의 운전자가 게거품을 물었다.

“뭐? 지, 지랄? 너 말 다 했어?”

“할 일 없으면 집구석 들어가서 빨래나 해!”

“뭐, 뭐라?! …야, 넌 애비도 없냐!”

“그래, 없다! 당신 이거 공무 집행 방해야, 알아?”

강이빈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옆에 서 있는 조수를 쳐다보았다.

“재겸이, 가방에 펜치 있지? 꺼내서 저기로 확 떨궈 버려!”

재겸이 무표정한 얼굴로 공구 가방에서 무쇠 펜치를 꺼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말 떨궈 버리기 전에 근처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경찰이 와서 뜯어말렸다. 언성이 높아지자 상황을 눈치채고 끼어든 것이었다. ‘교통’이라는 글씨가 적힌 형광색 조끼를 입은 경찰의 진짜 정체 역시 암행부 나자였다.

“어휴 시발, 먹고 살기가 이렇게 힘들어요.”

강이빈이 한탄하며 신호등을 고쳤다. 아니, 귀신을 물리쳤다. 일이나 배우라고 데려온 것이니 딱히 막내의 손까지 빌릴 필요는 없었다.

“이런 일은 아주 흔하게 일어나거든? 잘 봐 둬.”

“예에….”

재겸은 처음 타 본 크레인이 신기했다.

***

윤태희는 며칠째 감기 기운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진작에 열이 떨어져야 하는데….”

윤태희의 체온을 확인한 정화부 나자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계속 미열이 있어서 머리가 멍했다. 그간 몇 번이고 정화부 치료실에 들러 케어를 받았으나, 좀처럼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또다시 제자리걸음이었고, 약을 먹어도 별 차도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건 감기가 아니라, 심화(心火) 때문인 것 같네요.”

심화? 윤태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양방에서 쓰는 말로 하면, 쉽게 얘기해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냥 감기였으면 진작에 열이 떨어졌을 거예요.”

정화부에서 만드는 약은 일반 양약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효험이 뛰어났는데도, 이마의 미열은 떨어질 듯하면서도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다.

“한마디로 울화가 쌓여서 몸에 열이 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화가 쌓이는 건데, 혹시 최근 스트레스받는 일 있으셨나요?”

나자의 질문에, 윤태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화부 나자는 조금 더 약효를 높여서 여러 약재를 섞어 만든 환과 맑은 약수 한 컵을 처방해 주었다.

윤태희는 처방받은 약을 한입에 털어 넣고 치료실을 나왔다. 탈을 쓰고 복도를 걸으니, 윤 수석을 알아본 이들이 곳곳에서 인사를 건네왔다.

“어? 수석님!”

빗발치는 인사에, 대충 고개를 꾸벅거리며 걷고 있을 때였다. 복도 끝에서 제1팀 팀원들이 윤태희를 발견하고는 팔을 훌쩍 들어 보였다.

“수석님, 몸은 좀 어떠세요? 뭐래요?”

“그냥. 감기.”

고준형이 안타까운 얼굴로 유감을 표했다.

“에구, 수석님.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강이빈이 팔꿈치로 고준형의 옆구리를 찍었다. 고준형은 가끔 할 말과 못 할 말을 구분을 못했다. 어느덧 계절은 초여름에 접어들고 있었다.

“저희 지금 밥 먹으러 가는데, 들어오는 길에 죽이라도 사다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식사들 맛있게 해요.”

“무리하지 마시구요.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하시는 게 어때요?”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윤태희가 픽, 웃었다.

“봐서.”

복도에서 잠시 대화를 나누던 제1팀은 그렇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윤태희는 사무실이 있는 방향으로 두어 걸음 걷다가, 불현듯 발길을 멈췄다.

“아, 근데….”

팀원들이 등을 돌려 윤태희를 바라보았다. 윤태희가 물었다. 드물게 뜸을 들이는 모습이었다.

“…재겸이는?”

팀원들 사이에 있어야 할 재겸은 어디 간 것인지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어제 프렌즈팡 하느라 밤새워서 졸린다고, 나중에 먹겠대요.”

강이빈이 못 말린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을 꺼내 놓았다. 재겸이 요사이 프렌즈팡이라는 게임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건 윤태희도 잘 알고 있었다. 하루에 두어 번, 재겸으로부터 하트를 요청하는 메세지가 왔기 때문이다.

“그래요.”

윤태희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제1팀 사무실로 돌아온 윤태희는 목에 걸고 있던 카드키를 집어 들었다. 불투명한 선팅지가 붙은 자동문이 지잉, 소리를 내며 열렸다.

사무실 안은 조용했다. 윤태희의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 향했다.

시선이 닿은 곳은 사무실 한쪽에 놓인 널찍한 테이블이었다. 평상시에는 다 함께 모여 간식을 먹을 때나 간단한 미팅을 할 때나 쓰이는 테이블이었다.

재겸은 테이블 위에 엎드려, 한쪽 팔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벽에 난 창문에서 햇볕이 번졌다. 햇살이 테이블 위를 물들이고 있었으나, 재겸이 엎드려 있는 공간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햇살을 피해서 일부러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으나, 햇살이 점점 재겸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윤태희는 재겸에게 힐끗 시선을 주었다가, 그대로 지나쳐 걸었다. 뚜벅뚜벅, 그대로 수석실로 향하던 윤태희가 어느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윤태희는 천천히 등을 돌려 재겸의 앞으로 걸어갔다. 쓰고 있던 탈을 벗고, 눈앞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학교 도서실에서는 종종 이렇게 재겸은 잠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용하네, 싶어서 쳐다보면 이렇게 팔을 베고 잠들어 있고는 했다. 그때마다 윤태희는 잠든 재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었다. 팔을 베고 누운 탓에, 재겸의 한쪽 뺨이 살짝 찌그러져 있었다.

윤태희는 재겸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팔을 쭉 뻗은 자세로 잠이 든 재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팔을 뻗었다. 창문을 통과한 햇살은 어느새 재겸의 손을 야금야금 잡아먹고 있었다.

윤태희는 햇볕을 가로막듯이 허공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윤태희의 손 모양 그대로 생겨난 검은 그림자가 재겸의 손 위에서 어른거리며 겹쳐졌다.

“…….”

윤태희는 재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단정하고 곧은 손끝으로,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그랬던 것처럼, 재겸의 이마를 조심조심 쓸어 보았다. 그러자 재겸이 눈썹을 아주 작게 꿈틀, 움직였다.

언젠가 시시가 해 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귀신을 권속으로 만드는 법을 알려 줄까? 너는 본향의 표식이 있는 인간이니 마음만 먹는다면 귀신을 부릴 수 있어. 손에 피를 내서 귀신의 이마를 일직선으로 긋고, 이름을 불러 보렴. 그럼 그 귀신은 네 것이 될 거야….’

그러나 눈앞에 있는 이 앳된 소년은 귀신이 아니었다. 따라서 시시가 알려준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윤태희는 이제껏 몇 번이고 소년의 이마에 손을 댔다.

‘우리는 서로가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잖아.’

‘닳지 않는 목숨을 바쳐서 내가 널 이기게 해 줄게.’

윤태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불현듯 가슴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를 데 없이 뜨거운 불덩이 같은 것을 삼켜내면, 외려 가슴 한구석이 싸하게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자꾸만 견딜 수 없이 갑갑해졌다.

명치 끝에는 응어리가 자라났다. 무거운 추가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거운 추가 좌우로 흔들리듯이, 윤태희의 마음 역시 비틀거리고 있었다.

윤태희는 스스로의 팔을 베고 누워 있는 재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얼굴선을 따라가던 시선이 길게 뻗은 목으로 미끄러졌다. 일순 가슴이 조여드는 듯했다. 윤태희는 불현듯 저 목을 움켜쥐고, 부러뜨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동시에 저 목에 얼굴을 묻고 크게 숨을 들이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무엇인가, 자꾸만 윤태희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너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어쩌면, 정화부 나자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이 열은 감기가 아니라 마음에 화가 쌓인 것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 윤태희는 화가 났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너에게, 그리고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나, 내 자신에게…….

윤태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음속에서는 언제 심겼는지 알 수 없는 씨앗이 조금씩 자라나서, 뿌리를 내렸다. 그 위로 무엇인가 자꾸만 퍼부어 내렸다. 소리 없이 뿌리를 내린 것은 어느새 덩굴처럼 자라나서 마음을 휘감았다.

자양분 없이도 자라나서는, 자꾸만 저를 갉아먹고 있었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리고 그 순간을 윤태희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그래, 너의 죽음은 내 승리의 전리품. 그러니 이대로 썩어서 사라질 마음이기를. 폭풍에 휩쓸려 뿌리째로 뽑혀 나가는, 그런 보잘것없는 마음이기를.

어느샌가 눈을 떴을 때,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을, 너와 같은 마음이기를.

발자국도 남기지 말고, 조용히 건너가는 사랑이기를…….

윤태희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조용히 수석실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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