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138)화 (138/348)

#138

오후 8시, 아직은 한가할 시간이었다.

현장직인 축역부 나자들은 외근이 업무의 팔 할을 차지했다. 그 때문에 남는 시간에는 서류 작성을 하거나 각자 할 일을 하며 출동 대기를 하였는데, 제1팀 주임 나자 강이빈은 며칠 전부터 그 빈 시간을 프렌즈팡으로 채우고 있었다.

“내가 1위 먹는다. 고준형, 각오해.”

그것은 비단 강이빈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로, 요사이 팀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프렌즈팡에 열심이었다. 축역부 제1팀 사무실에는 얼마 전부터 때아닌 프렌즈팡 열풍이 불었다. 막내인 재겸 덕분이었다.

임효문에게 프렌즈팡을 배워 온 이후, 재겸은 팀원들에게 꾸준히 하트 요청을 보냈다. 팀원들은 프렌즈팡에 열심인 재겸을 보고 처음에는 “그렇게 재밌어?” 하며 웃고 말았으나, 나중에는 “나도 한 번 해 볼까?” 하며 기웃거리기 시작하였고, 종국에는 “와, 이거 오랜만에 하니까 엄청 재밌네.” 하며 너도나도 프렌즈팡 물결에 합세하였다. 프렌즈팡은 한참 전에 유행이 지나간 게임이었지만, 적어도 제1팀 안에서만큼은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한 셈이다.

“아싸, 기록 경신했다!”

현재 팀 내 랭킹 1위는 고준형이었다. 고준형의 기록을 추월하는 데 성공한 강이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했다.

“아악, 안 돼!”

그와 동시에 고준형이 책상을 쾅, 내리치며 분한 얼굴을 했다.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팀원들은 매일 같이 열띤 순위 경쟁을 하고 있었다. 단, 재겸과 윤태희만은 순위 싸움에 참전하지 않았다. 재겸은 매번 하위권을 맴도느라 순위 경쟁은커녕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하는 중이었고, 윤태희는 프렌즈팡을 하지 않았다.

강이빈이 어깨춤을 덩실거리며 1위의 기쁨을 만끽할 때였다. 때마침 데스크 한쪽에 올려둔 호출용 손거울이 진동하여 빛을 뿜었다. 부장실 호출이었다.

“어, 사건 크게 터졌나? 오늘은 좀 빠르네.”

강이빈이 벽걸이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직 7시밖에 안 됐는데…

귀신들이 제일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간은 축시(丑時)로, 새벽 1시부터 3시 사이였다.

단순히 귀신을 축귀하면 되는 평범한 사건은 호출용 손거울을 통해서 위치와 사건 분류 유형을 전송받기에 어떤 사건인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지만, 부장실로 직접 오라는 것은 특이점이 있거나 복잡한 사건이라는 뜻이다.

“무슨 일이래?”

강이빈이 부장실에 갔다가 돌아오자, 팀원들이 물었다.

“엊그제 뉴스에 나온 자살 사건 있지? 귀신 때문인가 봐. 이 썅새끼들.”

얼마 전, 뉴스에 처음으로 보도되어 세간을 떠들썩하게 달군 사건이 있었다. 누군가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여 숨진 사건이었는데, 이 일이 크게 화제가 된 이유는 지난 한 달 동안 똑같은 자리에서만 총 네 명이 투신했기 때문이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망자들은 사는 지역도, 직업도 전부 달랐으며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연관된 지점도, 공통분모조차 없었다.

“마지막으로 투신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살아남았대.”

앞서 네 명은 그대로 즉사하여 목숨을 잃었는데, 마지막 한 명만은 골절상에 그쳤다. 천만다행으로 나뭇가지에 걸린 것이 완충 작용을 한 덕분이었다.

‘일주일 단위로 똑같은 장소에서 사람들이 투신하여 숨진 사건.’

어떻게 봐도 기이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었으나, 눈에 띄는 특별한 단서를 찾지 못한 경찰은 이 일련의 사건을 ‘기존에 일어난 사례를 모방하여 일어난 개개인의 단순 자살’로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례청의 입장은 달랐다. 암행부의 조사 끝에 본청이 내린 결론은 ‘악귀로 인한 연쇄살인’이었다.

그 증거는 건물 옥상에 달린 씨씨티비를 통해 녹화된 영상 속에 있었다.

나자의 눈으로 본 씨씨티비 영상 속, 투신한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네 사람 모두 손가락에 알이 굵은 반지를 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반지는 투신 직후 시신을 확인할 때마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에 암행부에서는 사망한 이들의 가족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은밀히 탐문을 벌였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였다. 사망자들은 숨지기 며칠 전에 하나같이 길에서 값비싼 반지를 주웠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암행부는 생존자의 행방을 쫓았다. 증언에 따르면, 그는 투신하기 며칠 전 길에서 웬 반지를 주웠다고 한다. 한눈에 봐도 값비싸 보이는 보석인 데다, 이상하게 마음을 잡아끄는 데가 있어 망설임 없이 반지를 주웠고, 조금 크게 느껴졌지만, 막상 손가락에 끼워 보니 이상할 정도로 딱 맞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날부터 줄곧 반지를 끼고 다녔는데, 언제부터인가 잠만 자면 가위에 눌리고, 이상한 악몽을 꾸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꾸만 어디선가 ‘뛰어내려…….’ 하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고 한다.

강이빈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고준형이 혀를 찼다.

“허얼, 완전 전형적인 빙의 증상.”

“어, 백 퍼야. 반지에 귀신 들린 거.”

강이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래서 그 반지는 어떻게 했대요?”

“반지를 마지막으로 갖고 있었던 그 생존자는 범인이긴 해도 아예 감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나 봐. 반지를 줍고 나서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다는 걸 눈치챈 거지,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주얼리 숍에 가서 반지를 팔아 버렸대.”

그 사실을 알게 된 암행부에서는 서둘러 생존자가 반지를 팔았다는 주얼리 숍을 찾았으나, 한발 늦고 말았다. 그 반지는 이미 누군가가 사 간 상태였다.

“그래도 다행히 판매 기록이 남아 있어서, 반지를 사 간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냈대. 그리고 방금 전에 위치를 파악했다고, 바로 출동해서 회수해 오래.”

암행부에서는 반지의 주인에게 접근하여 반지를 산 값의 두 배로 돈을 줄 테니 그 반지를 팔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몹시 정색하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집착과 독점욕. 귀신 들린 물건을 소지했을 때의 특징 중 하나였다. 이대로 반지를 지니도록 놔뒀다간 앞서 네 명의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귀신에 의해서 목숨을 잃게 될 것이 뻔했다. 따라서 늦지 않게 반지를 뺏어야만 했다.

“반지 사 간 사람은 누군데요?”

“유명한 패션모델이라던데.”

고준형이 입을 틀어막으며 놀란 눈을 했다.

“대박, 모델이요?”

반지를 구매한 이는 패션쇼의 모델로, 현재 업계 관계자와 VIP를 대상으로 하는 프라이빗 파티에 참석해 있는 상태라고 했다. 반지 소유자가 있는 곳이자, 한창 파티가 열리고 있는 장소는 청담동에 있는 어느 살롱이라고 했다.

프라이빗 파티인 만큼 초대장이 없으면 출입할 수 없었고, 신분을 위장하여 잠입해야 했다. 암행부 출신인 강이빈에게 일을 맡긴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본청에서는 이미 초대장을 위조해 둔 상태였다.

귀신이 아니라 인간을 상대해야 하는 사건인 데다가, 해당 장소에는 많은 사람이 있으므로 탈을 쓸 수는 없었다. 은밀히 반지를 회수해야 했다.

“인원은요? 혼자 출동하래요?”

“아니, 한 명 같이 출동하래.”

잿밥에 관심 있는 고준형이 눈을 빛내며 팔을 번쩍 들었다.

“나나나나! 나 데려가요!”

의도를 간파한 강이빈이 경멸하는 눈으로 고준형을 쳐다보았다.

“지랄 마. 재겸이랑 갈 거니까.”

“넵….”

요즈음 강이빈은 현장에 나갈 때마다 항상 재겸을 데리고 다녔다. 훗날 인사 고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한 줄이라도 더 넣어 주기 위함이었다.

“좋아! 그럼, 재겸이는 일단 집에 가서 옷부터 갈아입자. 나도 옷 갈아입고 나서 집 앞으로 데리러 갈 테니까. 음, 지금이 여덟 시… 열 시까지 나와!”

강이빈이 환하게 웃으며 재겸의 귀에 소곤거렸다.

“모델들한테 안 꿀리게, 힙스터처럼 입고 와. 알겠지?”

“느에….”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재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

평소보다 이른 재겸의 귀가에, 정주와 메산이가 반색하며 달려 나왔다.

“어?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재겸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잠깐 들른 거야. 열 시에 다시 나가야 해.”

그에 메산이는 금세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오랬는데. 힙수터처럼 입으래.”

재겸은 넥타이를 풀며 강이빈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음? 힙스터?” 잠시 의아한 얼굴을 하던 정주는 이내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힙수터가 뭐냐.”

“그런 게 있어, 이리 와. 옷 골라 줄게.”

정주는 몹시 신이 난 얼굴을 하더니 재겸을 데리고 옷방으로 갔다. 연예인답게 정주는 옷이 엄청나게 많았다. 정주는 옷장에서 별의별 옷을 잔뜩 꺼내더니, 하나하나 코디를 맞춰 보며 심각한 얼굴로 고뇌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냐… 이것도 아니야.”

바닥에 열 맞춰 옷을 늘어놓던 정주가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자! 안에 이거 입고, 바지는 이거 입어. 그리고 재킷은 이걸로….”

재겸은 일단 입으란 대로 입었다. 정주가 골라준 옷은 위아래 세트로 된 옷이었는데, 입고 보니 난해하기 짝이 없었다. 흰색 셔츠와 남색 재킷은 원래 재겸이 입던 사이즈보다 훨씬 품이 컸고, 셔츠 소매는 얼마나 통이 큰지 접어서 올려야 했다. 게다가 상의는 긴팔인데 하의는 반바지였으며, 목에는 넥타이 대신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실크 스카프를 둘러 주었다. 짧게 매듭을 지어서 스카프를 묶어 준 뒤, 정주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했다.

“야. 뭔 옷이 이래? 얼뜨기 같잖어.”

아무리 봐도 옷 꼬락서니가 이상해서 재겸이 눈썹을 찌푸렸다.

“좋아. 이 반항적인 눈빛. 힙스터 느낌 제대로야.”

“그래서 힙수터가 뭔데.”

“아, 대충 그런 게 있다니까.”

그나저나 뭔가 심심한데… 고민하던 정주는 모자를 정리해둔 서랍을 열더니, 야구 모자를 꺼내 재겸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머리가 작아서 헐렁했다.

“이거지! 그래! 이거지!”

정주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의 패션 감각을 자화자찬했다. 재겸은 머리통이 작고, 목이 길고, 턱선이 고운 편이라 모자를 씌워 놓으니 아주 잘 어울렸다. 오버핏 슈트도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나쁘지 않은 조합이었다.

“옷이 너무 큰 거 아니냐?”

“원래 이렇게 입는 거야.”

실랑이하기도 귀찮아서 그러려니 했다. 신발은 평소 신던 대로 너덜너덜한 컨버스를 신었다. 열 시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었지. 시계를 보니 지금쯤 나가면 될 것 같았다. 재겸은 정주와 메산이의 인사를 받으며 집을 나섰다. 대문을 열자마자 재겸은 그대로 굳었다. 골목에 서 있는 것은 강이빈의 흰색 차가 아니라, 윤태희의 검은 세단이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눈에 익어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윤태희는 자동차 보닛에 살짝 걸터앉아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평소의 옷차림 그대로 검은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재겸을 발견한 윤태희는 멈칫하는가 싶더니, 힙스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윤태희는 아무런 말 없이 재겸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평소에 할 법한 안녕, 이라고 싱거운 인사도 없었다. 그래서 재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강이빈은?”

왜 네가 여기 왔냐는 질문이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윤태희는 사무실에 없었다. 오늘 윤태희는 야간 근무로, 밤에 출근해서 이튿날 오전 퇴근이었다.

“…….”

잠시 말이 없던 윤태희가 이내 평이한 어조로 대꾸했다.

“어머니 쓰러지셨대. 지금 병원에 있어.”

뭐?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재겸이 눈을 크게 떴다.

“심각한 건 아닌데 하루 정도는 경과를 지켜봐야 한대. 강 주임이 보호자라서 연락받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갔고. 그래서 내가 대신 출동하기로 했어.”

재겸이 저도 모르게 심란한 얼굴을 했다. 강이빈네 엄마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재겸은 자신이 강이빈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어쨌든 심각한 건 아니라니 다행이긴 했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그런데 왜 하필 윤태희가 대신 온 건지….

재겸은 윤태희가 불편했다. 게다가 저번에 공원에서 한바탕 싸웠을 때 다시는 네 차에 타지 않겠노라 선언을 했던 참이라, 이 상황이 영 떫기만 했다.

“먼저 타.”

재겸은 떨떠름한 낯으로 차 문을 열었다. 그래, 이건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타는 거다. 이제는 하잘것없는 일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왜 너는 타지 않느냐고, 재겸은 묻지 않았다. 윤태희는 담장에 몸을 기대어 느리게 담배를 한 대 태웠고, 잠시 그 주변을 서성인 뒤에야 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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