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재겸이 물었다.
“야. 왜 넌 아까부터 똑같은 반찬만 먹냐?”
재겸이 ‘돌쇠네 백반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밥을 고봉으로 주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반찬을 여섯 가지나 주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반찬 가짓수가 많은데, 윤태희가 여태 손을 댄 반찬은 딱 두 개뿐이었다. 어묵볶음과 진미채볶음. 나머지 네 가지는 콩자반과 나물류였는데 채소 위주의 반찬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윤태희는 입이 짧고 뱃구레가 작으며 편식을 한다. 며칠 전인가 임효문네 돈가스 가게에서 함께 밥을 먹었을 때도, 윤태희는 돈가스 몇 조각을 남겼고 샐러드는 손도 대지 않았었다. 딱히 관찰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그냥 어느 순간부터 눈에 보였다.
“깨작거리지 말고 골고루 좀 먹어.”
“응.”
그러나 대답뿐이었다. 이번에도 윤태희의 손이 향한 곳은 어묵볶음이었다.
“자꾸 그렇게 편식하고, 건강에 안 좋은 것만 먹으니까 네 몸이 약한 거야.”
재겸이 끝내 한소리를 했다. 여긴 나물 반찬도 많이 나오고, 밥도 많이 주니까 푸지게 먹고 기운 좀 내라고 일부러 생각해서 데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자꾸 음식을 가려 먹고 있다. 재겸은 밥을 깨작거리는 윤태희가 못마땅했다.
“몸에 좋은 것도 많이 먹었어.”
윤태희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대꾸했다.
“뭐? 언제. 내가 계속 봤는데 너 손도 안 댔어.”
“지금 말고, 예전에. 어렸을 때.”
“너 어렸을 때는 편식 안 했어?”
“응.”
“그럼 지금은 왜 편식하는데?”
“하도 먹었더니 지긋지긋해서.”
윤태희가 젓가락을 움직이며 조용히 덧붙였다.
“절밥은 온통 풀밭이잖아.”
재겸이 눈을 크게 떴다. 절밥? 절에서 살았다는 건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어쩐지 윤태희는 밥을 먹을 때 아주 조용했고, 남이 먼저 말을 걸지 않는 한 먼저 대화를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입을 꼭 닫고 정적으로 식사를 했고, 특별할 정도로 차분한 느낌이 있었는데, 절에서 생활하여 그런 모양이었다.
“너 중이었냐?”
“…….”
윤태희가 밥을 먹다가 작게 기침을 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지낼 데가 없어서 몇 년 동안 신세를 졌었어.”
“어렸을 때?”
“응. 어렸을 때.”
재겸은 문득 윤태희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윤태희도 부모가 없다고 했었지. 자기가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고 했었고. 열아홉에 나자가 됐다고 했었나. 그러고 보니 윤태희가 어디 사는지도 몰랐다.
“너 근데 지금은 어디서 살아?”
“하이펠리스 B동 1402호.”
문자로 집 주소를 물어봤을 땐 답장도 안 하더니. 무슨 동이라거나 지역을 말해 줄 줄 알았는데, 윤태희는 아주 구체적인 답변을 꺼내놓았다.
“현관 비밀번호는 1333.”
덧붙인 말에, 재겸이 젓가락질을 하며 윤태희를 쳐다보았다.
“그거 누르면 너네 집 들어갈 수 있어?”
“응.”
“너네 집 비밀번호 아는 사람 또 누구 있어?”
“없어요.”
나만 윤태희 집이 어딘지 아는구나. 하긴 팀원들도 윤태희 집을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가슴 한구석에 뭔가 꿈지럭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겸은 괜히 시선을 슥 내리고 숟가락으로 밥을 뒤적거리는 시늉을 했다. 가만… 그럼 윤태희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건가?
“너 이따가 퇴근하고 집에 가면 다른 거로 번호 바꿔.”
재겸이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왜?”
“너네 집에 도둑 들면 내 모양새가 의심스러워지잖아.”
“…….”
“만약에 네가 집에 갔는데 도둑이 들어서 세간도 다 박살이 나 있고 금붙이도 싹 사라졌어. 그럼 넌 당연히 나를 의심할 거잖아. 너네 집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윤태희가 말없이 눈썹 끝을 매만졌다.
이건 뭐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거야.”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거잖어.”
“도둑맞아도 의심 안 할게.”
“아니. 너 말고 나 말이야.”
“…….”
윤태희는 잠시 말을 잃었다. 도둑으로 오해받을까 봐 바꾸라는 건 줄 알았는데, 내가 정말로 네 집을 털 수도 있으니 곤란하다는 이야기였다….
“왜? 뭐 털어 가려고?”
윤태희가 진지하게 물었다.
“만약 정주가 이대로 계속 일이 없어서, 모아놓은 돈 다 쓰고 빈털터리가 됐어. 그래서 며칠을 굶었다고 쳐. 그렇게 궁지에 몰리면 네 집에 가서 쌀이든 뭐든 훔칠 수도 있는 거지.”
“…….”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네가 돈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잖어. 생판 모르는 사람 집 창문 깨부수고 들어가서 도둑질하느니 돈 많은 네 집을 터는 게 낫지. 마음도 훨씬 편할 거고.”
“…….”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윤태희가 물었다.
“왕년에 도둑질 좀 해 보셨나 봐요.”
“…….”
재겸이 뜨끔했는지 젓가락질을 멈칫하더니, 이내 솔직하게 말했다.
“응. 예전에. 근데 마을에서 제일 큰 기와집만 골라서 털었어.”
윤태희가 소리 내 웃었다. 그땐 배가 고파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재겸이 변명하듯이 덧붙였다. 천석 부자 만석 부자 곳간 털어서 쌀 한 섬 사라져 봐야 걔들이 그 소중함을 알겠느냐고 갑자기 화를 내더니, 많이 가진 사람은 그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야기가 끝났다.
“아무튼, 그러니까 집 가서 번호 바꿔.”
“싫어.”
“왜?”
“기대하려고.”
“무슨 기대?”
“집에 왔을 때, 어쩌면 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숟가락을 들어 올리던 재겸이 멈칫하며 윤태희를 쳐다보았다. 윤태희는 평소와 다름없는 태연한 얼굴로, 시선을 반쯤 내리깔고 조용히 밥을 먹었다.
“…….”
재겸은 순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저 역시도 혼자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살던 집은 언제나 냉골이었다.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집에 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재겸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대화가 끊겼다. 왠지 갑자기 가슴이 덜그럭거리는 듯했다. 그래서 재겸은 괜히 밥을 뒤적거리는 시늉을 하다가 말을 돌렸다.
“야. 근데….”
제대로 말을 섞는 것이 오랜만이라서 그런 걸까? 재겸은 왜인지 윤태희에게 자꾸 뭔가 말을 걸고 싶었다.
“그 벽사단이라는 건 어떻게 된 거야?”
뜬금없는 화제에, 윤태희가 고개를 들었다. 재겸은 벽사단의 수장이 윤태희이며, 벽사단의 존재가 나례청 부수기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윤태희가 재겸에게 벽사단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애당초 윤태희가 후임을 찾아다닌 이유는 목패를 훔쳐다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목패를 되찾아온 후임은 그대로 이 판에서 퇴장한다.
윤태희는 처음부터 원한 것은 ‘계획의 일원’이 아니라, 쓰고 버릴 ‘장기 말’이었다. 그것은 판을 설계하던 순간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었다.
윤태희는 본디 인간을 믿지 않았다. 그건 재겸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재겸의 힘과 능력은 믿지만, 이 판에 속한 ‘인간’이므로 믿지 않았다. 왜 말하지 않느냐는 패현의 말에 ‘뭘 믿고 말을 해,’ 대답한 것은 진심이었다.
게다가 재겸은 언제나 변수로 작동했다. 재겸은 석주련과 면담한 내용을 비밀로 했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제1팀 팀원들과 잘 지내는 것은 그렇다 쳐도 임효문과는 필요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는 듯했다. 따로 약속을 잡아서 만날 정도면 꽤 친분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리고 재겸에게 의외로 물렁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윤태희는 잘 알고 있었다. 한 달 남짓한 학교생활을 하던 당시에도 재겸은 조영우에게 정을 붙였다. 산에서 전투를 벌일 때도 재겸은 나자들에게 깊은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에는 저에게 화살을 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윤태희는 재겸을 믿을 수 없었다. 장기 말로 따지면 재겸은 판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위력적인 기물이었고, 그걸로도 모자라 윤태희마저 뒤흔들고 있었다. 그것이 자꾸만 윤태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더는 변수로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재겸에게 언질을 해 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리하여 윤태희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재겸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덧붙였다.
“그때 벽보에 방상시가 돌아온다고 쓰여 있었잖아. 만약 그 말이 사실이면 어떻게 되는 거야? 여기가 원래 내 자리라고, 다시 나례청에 돌아오면?”
며칠 전, 임효문이 벽사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 전까지만 해도 재겸은 별생각이 없었다. 물론, 벽보를 해석한 당시에는 ‘방상시가 돌아오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의문을 가졌으나, 이내 석주련에게 정체를 발각당하거나, 방상시에 대해서 어떻게 아느냐고 추궁당할 것을 우려하여 그대로 잊어버렸었다.
석주련은 그날 벽보를 파쇄하라고 명령하며 함구령을 내렸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이미 나자들 사이에선 ‘나례청의 원주인, 방상시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태였다. 나자들은 귀신들이 떼로 뭉쳐서 뭔 작당을 하려는지 꿍꿍이를 모르겠다며 불안해했으나, ‘벽사단의 단주가 방상시를 참칭하여 혼란을 일으키려는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굳혀져 있었다.
그리고 재겸은 여기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나례청에서는 귀신을 쥐 잡듯이 잡아 대니까, 당연히 귀신들 처지에선 나례청을 싫어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원한을 가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귀신이 공격을 해 오거나 나례청과 갈등을 빚는다고 해도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고, 그러든가 말든가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겠지 싶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무언가 마음속에서 걸리는 것이 있었다. 만약 방상시가 돌아온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원래 방상시의 소유였으나 지금은 나례청장이 가지고 있다는 그 방상시 탈은 어찌 되는가 싶었던 것이다.
“나례청장이 가지고 있다는 그 탈 말이야. 원래 방상시가 쓰던 탈이었다며. 그럼 만약에, 우리가 나서기 전에 먼저 방상시가 선수를 쳐서 탈을 가지게 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럼 우리 계획에 문제가 생기잖아.”
숟가락을 들어 올리던 윤태희가 우뚝 손을 멈췄다. 윤태희가 감정을 알 수 없는 눈으로 재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에 재겸이 재차 물었다.
“야. 왜 대답이 없어?”
“설마…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아마도.”
대답은 한참 뒤에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