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144)화 (144/348)

#144

평화로운 며칠이 흘렀다.

오늘은 환한 대낮부터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목적지는 충청북도 어드메에 위치한 한적한 야산으로, 서울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산 중턱으로 올라가다 보면 비좁은 동굴이 하나 나오는데, 그 동굴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암행부에서 먼저 현장 조사를 끝마친 뒤에 축역부로 이관하여 출동 명령을 내리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요즘 암행부는 벽사단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그쪽으로 인력이 집중된 상태였고,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본청에서는 조사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축역부 나자 한 명을 투입하게 되었다. 암행부의 조사를 거치지 않아, 정황이 검증되지 않은 현장이므로 돌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혹여 만일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거뜬히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리고 그 축역부 나자는 깍두기 하나를 달고 나왔다.

“후아암.”

축역부 나자는 조수석에 깍두기를 태우고, 손수 차를 운전하여 현장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는데, 깍두기는 연신 하품을 해 대고 있었다. 둘을 태운 차는 한적한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깍두기는 차창 너머로 흘러가는 풍경을 졸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또 하품을 했다.

재겸이 턱이 빠져라 하품을 하자, 운전 중이던 윤태희가 물었다.

“아까부터 계속 하품하네. 졸려?”

“응.”

요사이 재겸은 선배 팀원들을 따라다니며 성실하게 깍두기 노릇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어제 몇 시에 잤어?”

“원래 일찍 자려고 했는데, 어젯밤에 메산이가 갑자기 고구마가 먹고 싶다고 하길래. 야밤에 마당 나가서 불 피우고 고구마 구워 먹었어. 그래서 새벽 두 시 넘어서 잤어.”

‘나리. 고구마가 먹고 싶어요.’

메산이가 그렇게 말했을 때는 자정 무렵이었다. 야식이 생각나는 출출한 시간이기는 해서, 재겸은 메산이와 함께 고구마를 쪄먹기로 했다. 내일은 오전 출근이니까 후딱 먹고 자야지, 하며 냄비에 물을 올리는데, 정주가 ‘너 진짜 뭘 모른다. 고구마는 군고구만데.’ 하더니 이왕 먹는 거 제대로 먹자며 마당 한쪽에 조그만 모닥불을 피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세 식구는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캠프파이어를 벌이게 되었다…. 고구마는 물론이고, 감자와 옥수수까지 포일에 싸서 구워 먹었다. 결국 새벽 2시를 넘어서 잠이 들었다.

“졸리면 자도 돼.”

조수석에 찌그러진 깍두기를 향해 윤태희가 다정하게 말했다. 그래서 깍두기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운전 중인 팀 내 최고 상급자 옆에서 쿨쿨 잠을 자는 악행을 저질렀다. 한숨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니 차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때는 오후 3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산중이라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후다닥 사건을 해결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차에서 내린 윤태희는 트렁크를 열더니 필요한 제구를 꺼냈다. 동굴 안이라 어두울 테니 손전등 두 개와 귀신을 가둘 부채 하나, 그리고 등에 멜 수 있게 끈이 달린 기다란 지팡이.

“웬 지팡이?”

재겸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윤태희는 대답 대신 빙그레 웃더니, 지팡이를 손에 쥐고, 어깨너비로 양쪽을 잡았다. 윤태희가 읊조리는 듯한 말투로 짤막하게 뱉었다.

“은기(隱器). 기묘(奇妙). 철천지(徹天地).”

동시에 달칵, 소리가 나더니 검집이 열렸다. 보잘것없는 지팡이 속에 숨겨져 있던 예리한 칼날이 모습을 드러내자 재겸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은기(隱器)란 쉽게 말해 위장한 무기였다. 재겸이 눈을 끔뻑거리며 지팡이를 보다가, 줘 보라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검을 받아든 재겸이 검집을 확 열어젖혔다. 스르릉, 소리와 함께 검이 나왔다.

“오… 이거 창포 검인가?”

“응. 맞아.”

검을 잡아 보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러고 보니 윤태희가 무기를 쓰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면신례 때는 귀기로만 지박령을 제압했었고, 그때 강이빈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해 듣기로는 무기 들고 다니는 걸 귀찮아해서 부채를 주로 쓴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근데 너 무기 잘 안 쓴다고 하지 않았어?”

“현장 조사 없이 나왔으니까, 혹시나 해서.”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가 보면, 대부분 귀신이 원인이었다. 암행부에서 조사를 했다면 어떤 귀신인지 대충 알 수 있으므로 적당히 부채만 들고 갔겠지만, 이번에는 어떤 녀석이 있는지를 모르니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무기를 챙겼다.

검을 빼 들고 찬찬히 살펴보던 재겸이 고개를 돌려 윤태희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칼 좀 쓰냐?”

재겸이 눈썹을 까딱이며 물었다. 자신의 실력에 확신이 있는 자만이 건넬 수 있는, 특유의 여유에서 나오는 질문이었다. 윤태희가 픽 웃었다. 뺨에 옅은 볼우물이 패었다.

“좀?”

흠… 재겸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뭐 얼마큼 하는지는 직접 보면 알겠지. 둘은 사이좋게 무전 핀을 나누어 꽂았다. 탈을 쓰고 비탈을 따라서 산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을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을 찾았다. 동굴 주변에는 우거진 수풀이 겹겹이 자라 있어서, 사전에 위치를 전달받지 않았다면 못 보고 그냥 지나쳤을 것 같았다. 동굴 입구는 제법 넓었고, 입구도 제법 완만해 보였다. 마치 버려진 작은 터널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아직 낮이어서 그런가?”

두 사람은 동굴 앞에 나란히 섰다. 윤태희는 손전등을 켜고 내부를 살펴보았다. 이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온다고 했는데, 겉으로 봐서는 딱히 특이점이 없어 보였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윤태희가 탈을 고쳐 쓰며 말했다. 재겸은 뒤로 살짝 물러나서 손전등을 들고, 앞장선 윤태희의 앞을 비추며 따라갔다. 발아래와 주변을 꼼꼼히 살펴 가며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에 들어서자 확실히 바깥에 있을 때보다 축축하고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길은 아주 울퉁불퉁했다. 천장에서 물이 똑, 똑, 떨어져서 바닥이 온통 젖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발에 돌부리가 차이고 굴곡이 심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앞서 걷던 윤태희가 삐끗하며 벽을 짚었다. 작은 돌부리를 밟아서 살짝 미끄러졌다. 그에 곁에서 뒤따라오던 재겸이 재빨리 윤태희의 팔을 확 잡아챘다.

“넘어져. 조심해.”

각시탈 너머로, 재겸의 눈동자가 윤태희를 또렷하게 쳐다보았다. 윤태희가 멈칫하며 재겸을 응시했다. 재겸의 손이 윤태희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었다. 재겸이 턱짓을 했다.

“야. 내가 앞에서 걸을게.”

“…….”

“길도 험하고 뭐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데, 위험하니까 네가 뒤로 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재겸이 말했다. 순간 가슴이 쿵 떨어졌다. 이런 건 반칙이다. 수습이 수석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나례청 역사에서 전무후무할 것이었다.

이매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각시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자꾸 그러지 마. 너 이럴 때마다 심장 터질 것 같으니까.”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뭐?”

재겸이 물었으나, 윤태희는 별말 없이 가던 길을 앞장서 걸었다.

***

얼마나 걸었을까, 재겸과 윤태희는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교환했다. 어느 순간 양 갈래로 나누어진 길이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눈에 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만약 더 들어가려면 여기서 찢어져야 했다. 한쪽은 길이 비좁았고, 다른 쪽은 그보다 넓었다. 혹시 몰라서 무전 핀과 손전등을 각각 하나씩 챙겨 온 것이 잘한 일이었다.

“길이 두 갠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따로 가?”

손전등으로 양쪽 길을 비추어보던 재겸이 물었다.

“응,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은데.”

둘은 무전이 잘 통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재겸은 배정받은 무기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대신 귀신을 가두기 위해서 챙겨 온 부채를 가져가기로 했다.

“뭐 보이거나,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알려 주시고.”

당부의 말을 남긴 뒤, 윤태희는 탈을 고쳐 쓰며 걸음을 옮겼다.

윤태희가 향한 쪽은 입구부터가 비좁은 길이었다. 안쪽으로 계속 들어갈수록, 한 사람만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점점 좁아졌는데, 어느 순간 꺾이는 길목이 나왔다.

“어…….”

어느 순간, 윤태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모퉁이를 꺾자마자 광장처럼 아주 넓은 공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돔처럼 광활한 공간 안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었다. 말이 웅덩이지, 사실상 거의 저수지 수준이었다.

윤태희는 손전등으로 이곳저곳을 비추며 내부를 살폈다. 높은 천장에는 크고 작은 종유석이 삐죽빼죽 매달려 있었고, 구석에는 크레바스처럼 미세한 틈이 나 있었는데, 거기서 희미한 빛줄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이곳이 제일 깊숙한 위치였음에도 암흑처럼 어둡다는 느낌은 없었다.

여기서 더는 나아갈 곳이 없었다.

윤태희는 천천히 물가로 걸어갔다. 비가 흘러들어서 이렇게 물이 고인 건가? 그런 것치고 물이 아주 맑았다. 다만, 깊이가 어느 정도가 되는지 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그밖에 딱히 특별할 것도 없어 보였다. 이쪽 길은 여기가 끝인 듯했다.

윤태희는 물가 근처로 가까이 다가갔다. 윤태희는 얼굴에 쓰고 있던 탈을 벗고,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발치에 탈을 내려놓고 호수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에 묻은 것을 씻어냈다. 아까 삐끗하면서 벽을 짚은 이후로, 손에 정체 모를 끈적임이 남아서 계속 불쾌했다.

물은 아주 깨끗하고 맑았다. 그리고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손을 씻은 윤태희는 손에 남은 물기를 털어내며 다시 탈을 집어 들었다. 탈을 쓰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반대편으로 갔을 재겸에게, 이쪽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무전 핀으로 손을 가져갈 때였다. 불현듯, 뒤에서 아주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 오… 야….”

넥타이 자락을 입가 근처로 갖다 대던 윤태희가 그대로 우뚝 굳었다.

“…….”

탈을 쥐고 있던 윤태희의 손이 경련하듯 짧게 꿈틀했다.

“선… 오… 야….”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말도 안 돼…….

“…….”

얼어있던 윤태희가 삐걱거리듯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호수 정중앙, 어두컴컴한 수면 위에서 누군가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윤태희의 손에서 탈이 툭, 떨어졌다.

“선… 오… 야….”

한순간에 다리 힘이 풀렸다. 윤태희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아니야… 아니야….”

윤태희는 작게 중얼거리며 이마를 짚었다. 손아귀에 잡히는 대로 머리칼을 쥐어뜯듯이 움켜쥐고, 고개를 푹 숙였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이럴 순 없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생각해. 생각해라, 생각해야 해, 제대로 생각하라고. 오래전에 떠났어. 그때 눈앞에서 떠나는 걸 봤잖아. 품에 안고 있던 책이 그 증거고. 그 책은 누각에 있잖아, 며칠 전에도 열어 봤었어…….

“선… 오… 야….”

“…….”

“보… 고… 싶… 었… 어….”

“…….”

마침내 선오는 희게 질린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네가 왜… 왜….”

선오는 한 손으로 하관을 틀어쥔 채 몸을 일으켰다.

“여기 있었어?… 왜 여기 있었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물을 헤치고 들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촤악, 촤악, 물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선오는 수살귀와 마주 보고 섰다.

그때, 갑자기 수살귀가 물속으로 쑥 들어가더니 모습을 감췄다.

그와 동시에 선오가 딛고 있던 바닥이 푹 꺼졌다. 높은 곳에서 추락하듯이 한순간에 깊은 물 속에 잠기게 된 선오가 두리번거릴 때였다. 바닥에서 덩굴 같은 것이 자라나더니 선오의 발을 휘감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선오는 금세 어둡고 깊은 물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물거품이 몰아치며 시야가 온통 산란했다. 호수 바닥으로 끌려가던 선오는 인상을 쓰며 발목을 묶은 덩굴을 잡았다. 손에 귀기를 실어 그대로 비틀었다. 하지만 덩굴은 단단하고 질겨서 끊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잘라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선오는 등에 차고 있던 창포검을 꺼내 들었다.

그때였다.

“선… 오… 야….”

잠시 사라졌던 수살귀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운 수살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물고기처럼, 부드럽게 유영하며 선오의 주위를 맴돌았다. 선오의 손아귀에 잡혀 있던 검이 천천히, 그대로 더 깊은 물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선오가 수살귀를 품에 끌어안았다.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수살귀를 꽉 끌어안고, 선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품 안에 가득 찬 감각이 선명했다. 그렇게 선오는 어둡고 깊은 곳으로, 평온하게 침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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