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162)화 (162/348)

#162

너른 축역부장실은 적막했다. 이따금 서류를 넘기거나 만년필로 서명을 하는 소리만 간간이 났다. 돋보기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가에는 옅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석주련의 날카로운 눈이 서류를 꼼꼼히 훑을 때였다. 문에서 똑똑, 정중한 노크 소리가 났다. 석주련은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주영이라면 노크와 함께 용건을 밝힐 것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문 너머의 방문객은 묵묵부답이었다.

마침내 한주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석주련이 고개를 들고 문을 응시할 때였다.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건만, 허락도 없이 문이 반쯤 열렸다.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똑똑.”

눈이 마주치자 상대가 눈썹을 장난스레 비뚤어 트리며 입으로 노크 소리를 냈다. 석주련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윤태희가 손에 쥐고 있던 종이 쇼핑백을 들어 보였다.

“밥 배달시키신 분.”

능청스러운 말에, 예민하게 날이 서 있던 석주련의 눈매가 한순간에 누그러졌다. 쇼핑백 겉면에는 본청 근처에 있는 도시락 가게의 상호가 적혀 있었다. 석주련은 벽면에 붙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업무에 몰두한 사이 어느덧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식사 안 하셨죠? 도시락 사 왔는데.”

석주련은 별다른 대꾸 없이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윤태희는 종종 이렇게 밥때에 맞춰서 음식을 사 들고 축역부장실을 찾아오곤 했다.

윤태희는 평소 회식을 제외하면 본청 사람들과 사적으로 식사를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회식에 참석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업무의 연장선일 뿐, 1차에는 참석해도 2차 장소로 이동할 때가 되면 어김없이 자리에서 빠졌다.

이렇듯 본청 내 인간관계에 있어서 확실하게 선을 긋는 윤태희와 허물없이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관계에 있는 사람은 이영신과 석주련, 단 두 명뿐이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석주련을 상대로 선약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같이 밥 먹자고 찾아올 수 있는 건 윤태희뿐이었다.

윤태희는 석주련의 의사도 묻지 않고 부장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부장실 한쪽에 마련된 응접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윤태희가 쇼핑백을 뒤적이며 말했다.

“얼른 오세요. 식어요.”

윤태희는 포장해온 도시락을 꺼내 석주련이 앉을 상석 자리에 두었다. 일회용 수저와 생수도 가지런히 놨다. 석주련은 몇 개의 서류철에 서명을 한 뒤에야 몸을 일으켰다.

소파에 앉은 석주련이 무심히 물었다.

“네 거는?”

테이블에 놓인 도시락은 하나뿐이었다.

“제 거는 여기.”

윤태희가 쇼핑백 안에서 종이봉투를 꺼냈다. 봉투 속에는 본인 몫으로 포장해온 햄버거 세트가 들어 있었다. 삼 년을 함께 살았기에 윤태희는 석주련의 식성을 잘 알고 있었다. 석주련은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윤태희가 턱짓으로 식사를 권할 때였다. 도시락 뚜껑을 열던 석주련이 눈가를 좁혔다. 석주련은 육류를 잘 먹지 않았는데, 도시락에 고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그에 물티슈로 손을 닦던 윤태희가 곧바로 눈치채고는 입을 열었다.

“고기 안 드시는 거 아는데 오늘은 그냥 넣어 달라고 했어요. 가끔은 일부러라도 좀 드세요. 단백질 안 드시면 부장님 나중에 골다공증 걸려요.”

잠시 떫은 기색을 내비치던 석주련은 이내 별말 없이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잘 먹겠다거나 고맙다는 식의 인사치레는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래 알고 지낸 관계에서 으레 느껴지는 묘한 안정감이 있었다. 대화가 없어도 어색하지 않고 서로의 침묵을 불편해하지 않는, 당연한 정적이었다.

묵묵히 도시락을 먹던 석주련이 작게 중얼거렸다.

“맛있네.”

“식사 걸러 가며 일해봤자 월급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쉬엄쉬엄하세요.”

햄버거 포장지를 벗기던 윤태희가 말했다.

“가끔 농땡이도 피우시고. 사우나라도 다녀오시고. 부하직원한테 일도 좀 떠넘기고 그러세요. 윗사람이 너무 열심히 하면 아랫사람들이 고생해요.”

석주련이 밥을 먹다 말고 눈을 흘겼다.

“뭐 이 자식아?”

상관의 꾸지람에도 윤태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햄버거를 베어 물며 석주련을 빤히 쳐다보았다. 특유의 장난기가 묻어나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에 석주련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릴 듯 말듯했다.

“요즘도 일이 바쁘세요?”

음료 뚜껑에 빨대를 꽂아 넣으며, 윤태희가 물었다.

“벽사단 때문에 암행부 인력이 많이 빠진 상태야. 평소 같았으면 암행부에서 처리했을 일들이 죄다 축역부로 넘어왔어. 어쩔 수 없지.”

벽사단의 출현 이후로, 암행부에서는 전국 각지에 상당수의 인원을 투입하여 벽사단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암행부는 잠입과 정보 수집, 현장 조사 등 여러 방면에서 온갖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인 만큼 빈자리가 컸다. 당연히 암행부의 서포트를 받는 축역부도 고스란히 그 영향을 받는 상황이었다. 당장 며칠 전에 출동했던 동굴 건도 그랬다.

“하긴. 요즘 축역부에서 현장 조사까지 다 하고 있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던 윤태희가 태평하게 덧붙였다.

“그래서 벽사단 건은 진척 좀 있어요?”

“이래저래 소문만 많아. 그런데 아무리 추적해도 소문의 진원지를 알 수가 없더군. 아마 벽사단에서 일부러 이야기를 흘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입을 우물거리던 윤태희가 턱 놀림을 멈췄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찰나였다. 잠시 멈췄던 저작근이 다시 움직이면서 양상추 씹는 소리가 났다.

“아직 뚜렷한 실마리는 잡지 못했어. 현재까지 조사한 내용으로는 단주는 외양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주기적으로 본거지를 옮겨 다닌다더군.”

거기까지 알아냈구나. 예상보다 정보에 접근하는 속도가 빨랐다.

“그래요?”

윤태희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주억거릴 때였다.

“네 생각은 어때?”

“글쎄요….”

윤태희가 음료 빨대를 입에 물며 지나가듯 물었다.

“단주가 방상시일 가능성은요?”

스치듯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으나, 윤태희의 시선은 석주련의 기색을 예리하게 훑고 있었다.

“증거가 없는 이상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야.”

“벽사단에서 일부러 낸 소문이라면 소문을 낸 의도가 있을 텐데요.”

“의도야 불 보듯 훤해. 선대의 주인이었던 방상시를 앞세워 나례청의 정당성을 훼손 시키려는 거겠지. 나례청에 위기감을 조성하려는 수작질이야.”

윤태희가 천천히 미소를 띠었다. 역시나 석주련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정확하게 과녁을 명중하는 추측이었다. 석주련이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벽사단 때문에 골치가 아파. 가뜩이나 인원이 부족해서 재작년부터 지부 세우려고 하는 마당에, 공사가 끝나기도 전에 엎친 데 덮친 격이야.”

나례청에서는 재작년부터 충남 공주와 경북 경주, 두 군데에 지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올해 말 완공 예정으로, 전국 각지로 활동 지역을 넓히기 위한 지부 설립이었다.

“아, 맞다. 그러게요. 지부 공사 중이었죠.”

“밤에만 작업하고 있으니 내년쯤에나 마무리되겠지.”

공주 지부는 마곡사, 경주 지부는 대릉원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자 밤에만 공사하고 있어 일반적인 공사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잠시 대화가 끊겼다. 얼마간 말이 없던 석주련이 입을 열었다.

“내년에 공사 끝나면 짐 싸서 내려갈 준비 해.”

윤태희가 눈을 두어 번 감았다가 뜨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 나 좌천당하는 건가?”

“지부장으로 가는데 좌천은 무슨 좌천이야?”

“…지부장이요?”

윤태희가 멈칫하며 석주련을 바라보았다.

“…….”

얼마간 생각에 잠긴 눈을 하던 윤태희가 턱을 매만지며 느릿느릿 말했다.

“그건 좀. 제가 이 나이에 지부장 달면 사람들이 뒤에서 손가락질해요.”

“언제 그런 거 신경 썼어? 지부장으로 한 오 년 있다가 서른셋쯤 올라와.”

석주련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차기 축역부 부장으로 널 추천할 테니까.”

“백세시대에 무슨 말씀이세요.”

윤태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피식 웃었다.

“정년이 65세인데 설마 벌써 퇴직 생각하시는 거예요?”

“이젠 할 만큼 했어.”

“청장까지 가셔야죠. 그래야 저도 마음 편히 부장 달지.”

“건방진 소리 하지 말고.”

“왜 안돼요.”

식사를 마친 석주련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젠 귀신이니 뭐니 신물이 나…….”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말이었다. 윤태희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에 석주련이 왜 웃느냐는 표정으로 윤태희를 바라보았다. 윤태희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부장님도 나이를 드시긴 하는구나 싶어서요.”

“너는 나이 안 먹는 줄 알아? 네 나이도 이제 결혼 생각할 나이야.”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러는 부장님도 결혼 안 하셨으면서.”

윤태희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부장님, 아직 늦지 않았어요. 적당히 잘생기고, 빚 없고, 멍청한 남자 하나 골라서 데리고 살지 그러세요? 공동명의니 재산 분할이니 귀찮게 구니까 혼인 신고는 하지 마시고요. 부장님은 처음부터 내조받으셔야 했어요. 편하게 시중받다가 좀 질린다 싶으면 돈 몇 푼 쥐여서 내쫓아 버리고, 다른 놈으로 갈아치우세요.”

“…….”

어이가 없어서 잠시 말을 잃었던 석주련이 혀를 찼다.

“제정신이야?”

윤태희가 코를 찡긋해 보였다.

“뭐 어때요.”

석주련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데스크로 향했다. 석주련은 서랍을 열어 약통을 꺼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약을 툭툭 털어서 꺼낸 석주련은 물도 없이 약을 삼켰다.

“요즘도 머리 아프세요?”

윤태희의 물음에, 석주련이 무심히 대꾸했다.

“신경성이야.”

석주련이 진통제를 밥처럼 먹는다는 사실은 한주영과 윤태희밖에 몰랐다. 석주련은 일평생 그림자처럼 두통을 달고 살았다. 과중한 업무와 타고난 기질이 자체가 예민한 탓도 있었으나,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스트레스성 통증이었다.

석주련은 밤마다 곧잘 악몽을 꾸고, 약을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한창 심할 때는 병원을 오가며 치료할 방법이 있는지 찾아다니는가 싶었지만, 그마저도 어느샌가 체념하고 이제는 병원에 가지 않는 듯했다.

오로지 두통약에 의지해 감내한 고통이었다. 양약이 아니라 정화부에 가서 약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석주련은 그러지 않았다. 부하직원들 눈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윤태희는 언젠가 저 두통의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해본 적이 있었다.

윤태희는 석주련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당신도 죄책감이라는 벌을 받고 있는가. 당신도 자신의 악덕을 후회하는가. 부디 그러지 말기를, 윤태희는 마음속으로 바랐다. 석주련이 죄의식과 수치를 모르는 인간이기를, 고통을 모르는 인간이기를 바랐다.

“…….”

잠시 침묵하던 윤태희가 한참 만에 중얼거렸다.

“아프지 마세요. 부장님.”

윤태희는 정말 진심이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