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189)화 (189/348)

#189

윤태희가 처음으로 인어의 행방을 알게 된 것은 나흘 전의 일이었다.

‘내가 언제 너더러 나 좋아하랬어?’

그날 밤, 몸을 가누지도 못할 만큼 만취한 상태로 휘청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윤태희는 눈을 뜨자마자 누각으로 향했다. 술기운에서 깨어났음에도 몸과 마음은 정신없이 비틀거렸다. 윤태희는 폐허 속에 있었다. 그러나 윤태희는 무너져가는 폐허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이날은 오전에 의뢰인이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누각에 오자마자 윤태희는 곧바로 탁자 위에 몸을 엎드렸다. 숙취로 인해 머리가 깨질 듯했고, 위가 쥐어짜는 듯이 아팠다. 기분은 말할 것도 없었다. 크게 상심한 탓에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윤태희가 중얼거렸다.

“인어, 아직 못 찾았니?”

조용히 곁을 지키고 있던 패현이 어두운 얼굴을 했다. 며칠째 바닷가 근처를 돌아다니며 영물과 귀신들에게 인어에 관한 정보를 수소문하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상태였다. 패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네, 죄송합니다.”

진척이 없다는 말에, 윤태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요한 침묵이 매우 살벌하고 두려워, 패현은 의뢰인이 빨리 오기를 바랄 지경이 되었다.

“단주님, 계심까.”

그때, 새로가 해맑은 표정으로 나타나 말을 붙였다.

“단주님, 제 친구의 친구가 부탁할 것이 있다고 찾아왔슴다. 단주님을 뵙고 드릴 말씀이 있다는데 잠깐 시간 되시면 이야기를 들어 주실 수 있겠슴까?”

새로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벽사단에 대한 소문이 바깥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되면서 생겨난 변화 중 하나였다. 저희의 편이 생겼다고 생각한 것인지, 귀신들은 몇 다리를 건너서라도 벽사단에 찾아와서 도와달라 부탁하는 일이 있었다..

말이 의뢰지, 사실상 민원이나 다름없는 일들이었다.

“약속도 없이 무슨 실례냐. 돌려보내라.”

패현이 인상을 쓰며 제지를 했다. 왜냐하면, 단주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 보였고, 약속도 없이 찾아왔으므로 받아 줄 이유도 없었다. 그때, 단주가 손을 들어 마른세수하더니 힘없이 “괜찮아, 들어오라고 해.” 허락했다.

그에 패현이 못마땅한 눈을 할 때였다. 새로가 냉큼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며 사뿐사뿐,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네 발 달린 짐승이 걸어 들어왔다.

단주를 찾아온 것은 험악하게 생긴 고양이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묘귀, 살찐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살찐이라고 소개한 묘귀는 볼이 매우 빵빵했다. 평범한 고양이였다면 소통할 수 없었겠지만, 눈앞의 고양이는 귀신이기에 말이 통했다. 묘귀는 의자를 밟고 훌쩍 올라오더니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묘귀는 고양이가 원한을 품어서 생겨나는 동물귀로, 마찬가지로 그림자가 없었다.

묘귀는 원래 농촌이나 산골에서 출몰하였으나, 현대에 이르러 도심에서 핍박받는 길고양이들이 늘어나면서 언젠가부터는 각지에서 묘귀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야생의 본능만이 남은 묘귀는 짐승을 사냥하여 내장을 빼 먹는 것을 즐겼는데, 그 사냥감에는 인간도 포함되었다. 도시에서도 가끔 장기가 파헤쳐진 인간의 시체가 일 년에 한두 번꼴로 발견되었다.

“그래, 안녕. 무슨 일이니.”

침울하게 탁자 위에 엎드려 있던 윤태희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살찐이가 험악한 얼굴로 다가오더니 아주 자연스럽고도 정중하게 윤태희의 손에 머리를 비볐다.

“저는 숭인1동의 골목 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작년에 헌 옷 수거함을 뒤지고 있던 새로 님과 처음으로 인사 나누고 그때부터 왕래하고 있습니다.”

“그랬구나.”

“아주 못된 인간이 있는데 혼쭐 좀 내주십사 청하러 왔습니다.”

묘귀의 말에, 윤태희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희는 가끔 인간도 사냥하지 않아? 그렇다면 직접 혼내 주면 될 텐데….”

묘귀가 정색을 하더니, 꼬리를 붕붕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희 묘귀들에 대해서 오해하신 부분이 있는 것 같군요. 외람되지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묘귀들은 인간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습니다. 살아 생전 저희를 핍박하거나 괴롭힌 인간만을 사냥합니다. 아니, 사냥이 아니라 정당한 응징입니다.”

묘귀가 유연한 몸으로 기지개를 켜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희 묘귀들은 인간과는 왕래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길고양이 동무들을 지켜 주고, 쥐를 잡거나 사냥하러 다니며 자유롭게 지냅니다.”

고양이와 뱀 등, 민간 사람들 사이에서도 흔히 영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영특하고 명민한 생물은 목숨이 다해서 죽은 뒤에도 산 자에게 영향을 끼치거나, 인간 세상에 남는 경우가 많았다. 개중에서는 인간만큼 뚜렷한 이지를 가지는 동물귀도 있었다. 각자 이승에 뿌리를 내린 사정은 다를 것이나, 도심에 사는 묘귀는 길고양이들에게 수호신과 같았다.

“죄 없는 인간들에게는 복수하지 않습니다. 저희에게 나쁜 짓을 한 인간만 기억해서 앙갚음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묘귀들은 인간에게 호의적입니다. 왜냐하면, 살아생전 길고양이 시절의 기억으로 골목마다 저희에게 밥을 챙겨주는 인간들이 많았기 때문에, 저희는 인간에게 고마워합니다.”

윤태희가 듣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묘귀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몇 년 전부터 저희 묘귀 중에 순진한 녀석 하나를 꼬드겨서 못된 짓을 하는 악인이 있습니다. 이 순진한 녀석을 ‘김짱돌’이라고 하겠습니다. 김짱돌이라는 이름은 살아생전에 함께 살던 인간이 붙여줬다고 합니다. 아무튼, 김짱돌은 사람 손길을 탄 놈이라, 묘귀가 된 지금도 인간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저희 묘귀들은 인간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설사 저희를 볼 줄 아는 사람을 만나도 모른 척합니다. 그게 서로에게 이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짱돌은 살아 생전 인간에게 예쁨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서, 저희들 몰래 인간을 쫓아다녔던 모양입니다.

김짱돌은 몇 년 전, 길에서 악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눈이 뜨인 인간이라 김짱돌을 알아보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둘은 자주 만나서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악인이 김짱돌에게 괴상한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사람 한 명을 데려올 테니 쓸개를 빼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짱돌은 그 악인을 곧잘 따랐기에 요구에 들어주었습니다. 쓸개 빼는 건 일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희 묘귀들은 원한이 없는 인간에게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필요에 의해 사냥할 일이 있으면 닭장을 털거나 산에 가서 사냥하거나 쥐를 잡아먹거나 비둘기를 노립니다.

그러나 그 악인의 요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악인은 일주일마다 새로운 사람을 홀려서 데리고 왔고, 김짱돌에게 쓸개를 빼내라 시켰습니다. 그게 자그마치 몇 년이나 이어졌다고 합니다. 김짱돌은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의 쓸개를 빼느라 크나큰 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죄책감과 가책에 시달리던 김짱돌은 참다못해 도저히 못 하겠다고, 그만두겠노라 그 악인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껏 친절하게 김짱돌을 예뻐해 주던 악인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너희 다 나례청에 신고해 버리겠다고 협박을 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인간이 어딨습니까?

“나례청에 넘겨 버리겠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윤태희가 무료한 눈으로 턱을 괴었다.

“네, 그래서 김짱돌은 홧김에 ‘일러라 일러라 일름보야’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그간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골목 대장인 제게 말해 줬습니다.”

“…….”

“그저 협박일 뿐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문제는 악인이 저희 묘귀들의 은신처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그 날 이후로 한 시도 편히 지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악인을 사냥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 악인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므로 당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겠구나. 그 사람은 귀재일 테니까. 눈이 뜨였다고 했으니….”

“아닙니다. 그 악인은 평범한 귀재하고는 다릅니다.”

“다르다니?”

“김짱돌의 말에 의하면 그 악인은 평범한 귀재가 아니라, 인어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윤태희가 멈칫 굳었다.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패현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인어에 대한 화제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뭐? 인어?”

“그 악인이 김짱돌에게 은밀히 말하기를, 자신은 인어라서 사람 쓸개를 먹어야 다리가 생기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쓸개를 먹어야만 인간의 다리가 유지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다리에 비늘이 돋아난다고 했답니다.”

윤태희의 눈에 광기 어린 섬광이 스쳤다.

“쓸개….”

마침내 단주와 패현이 시선을 교환했다.

“그래서 그 악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사람을 꼬셔서 인어의 힘으로 정신을 홀린 뒤, 일주일이 되는 날 김짱돌에게 데려와서 쓸개를 빼내라고 시킨 것입니다. 홀렸던 사람은 그 홀려 있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말을 이어나가던 묘귀가 씩씩거리다가 갑자기 앞발로 탁자 위에 있던 빈 찻잔을 퍽 쳤다. 찻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와장창 깨졌다. 그에 패현이 흠칫하며 인상을 썼다. 옆에 서 있던 새로도 당황해서 “뭐 하는 검까!”라고 소리를 쳤다.

“어이쿠!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단주는 깨진 찻잔에도 아랑곳없이 “괜찮아, 계속 얘기해.”라고 했다.

“사실 김짱돌은 그 악인이 인어라는 사실만은 끝까지 비밀로 하려고 했으나, 제가 계속 추궁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악인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짱돌은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저희를 지켜 주실 건 영귀님들뿐입니다.”

묘귀가 앞발을 슥 들더니 살벌하게 발톱을 꺼냈다.

“그 악인의 성명은, 신지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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