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192)화 (192/348)

#192

묵묵히 신지혜의 이야기를 듣던 윤태희는 생각에 잠겼다.

신지혜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인간 아버지와 인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쪽 인어라고 한다. 인어는 인간의 쓸개를 먹으면 다리를 얻을 수 있는데, 그러나 신지혜는 인간의 쓸개를 먹어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비늘이 돋아나고 머지않아 물고기의 하체가 된다고 했다.

“고생이 많았던 것 같아서 유감이야.”

윤태희는 손끝으로 식탁을 톡톡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사연은 안타깝지만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어. 세 가지.”

윤태희가 빈손을 펼쳐 보이며 말을 이었다.

“첫째. 인어의 피와 살을 먹으면 불로불사의 존재가 된다는 게 사실인지. 둘째. 만약 사실이라면, 불로불사가 된 몸을 되돌리는 방법이 있는지. 셋째. 인어를 제물로 쓰는 ‘영생환’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목적에 충실한 태도에, 눈물을 닦고 있던 신지혜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잠깐만. 생각해 보니까 갑자기 어이가 없네? 나랑 ‘대화’를 하자고 했잖아. 근데 이게 무슨 대화야? 너 혼자 나를 일방적으로 취조하는 거지.”

안 그래? 신지혜가 살벌하게 눈을 치켜뜨며 윤태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왜 인어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건데?”

새침한 물음에, 윤태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불로불사를 푸는 방법을 찾고 있어.”

갑자기 웬 불로불사? 신지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뜰 때였다. 때마침 시야에 재겸이 들어왔다. 그에 눈치 빠르게 조각을 짜 맞춘 신지혜가 놀라워하며 물었다.

“설마, 조선 시대에서 왔다더니… 진짜였어?”

재겸이 말없이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였다.

“왜 불로불사가 됐는데? 설마 인어 때문에?”

“인어 때문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널 부른 거야.”

윤태희가 재겸 대신 대답을 꺼내놓았다.

“그래서, 네 어머니는 어디 있지?”

“엄마는 여기 없어. 몇 년 전에 바다로 돌아갔거든.”

“왜?”

“더 뭍에서 살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윤태희가 눈을 가늘게 좁힐 때였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해서 뭍으로 온 거야. 그런데 아빠가 도박에 빠져서 사채 끌어다 쓰는 바람에 집안 풍비박산이 나서 엄마한테 이혼당했거든.”

“…….”

생각지도 못한 현실적인 결말에 윤태희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아무튼, 난 반쪽짜리 인어야. 완전한 인어는 아니라서 잘 몰라.”

“그럼, 인어들이 사는 고향에 가 본 적은 없는 거야?”

신지혜가 얼굴에 붙은 휴지 조각을 무심히 떼어 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몇 년 전에 딱 한 번. 엄마를 따라서 가 본 적이 있어. 아무리 쓸개를 먹어도 자꾸 다리에 비늘이 돋아나니까, 내 다리를 고칠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거든. 근데 나는 바다에 들어가고 하루도 안 돼서 바로 뭍으로 올라왔어. 왜냐면 나보고 인간의 피가 섞였다면서 다른 인어들이 나를 엄청 경계하고 미워했거든. 그래서 나는 섬에서 기다렸지.”

그렇게 말하는 신지혜는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신지혜는 인간이 되지도 못하고, 인어가 되지도 못한 것이다. 신지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재겸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 그래서 방법은 못… 못 찾은 거야?”

이쪽이 더 오래 살았다는 걸 알았을 테니, 재겸은 은근슬쩍 말을 놓았다.

“찾긴 찾았지. 엄마가 어르신 인어를 만나서 내 사정을 얘기했는데…”

잠시 말을 멈춘 신지혜가 어두운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 엄마도 나도 몰랐던 조건이 있었어.”

“조건?”

“사랑하는 사람의 쓸개를 먹어야만 영원히 다리를 얻을 수 있다는 거였어. 누구의 쓸개든 상관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아무 쓸개나 먹으니 금방 되돌아오는 거고.”

신지혜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려고 죽자 살자 노력해 봤는데, 내가 인간 남자 새끼들한테 마음이 생기겠니? 매주 남자들을 갈아치우고 데이트를 해봐도 마음이 안 생기더라고.”

“…….”

말없이 눈썹 끝을 매만지고 있던 윤태희가 불쑥 물었다.

“인간을 싫어하나 봐?”

“인어들은 원래 인간을 싫어해.”

“아니, 너 말이야.”

“나? 나는 인간 남자를 싫어하는 거야.”

신지혜가 단호하게 낯을 굳히며 범위를 콕 집었다.

“왜?”

“아빠 때문에. 아빠 때문에 인간 남자들이 다 싫어졌어.”

“…….”

하긴… 윤태희가 수긍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엄마 아빠를 봐. 이래서 콩깍지가 무서운 거야. 좋아하면 쓸개고 간이고 다 빼 준다는 말이 있지? 그건 사실 인어들 사이에서 파생된 말이래. 사랑이란 건 순간순간의 감정일 뿐인 거지. 처음엔 둘이 영원할 줄 알았겠지. 하지만 결국은 이 모양 이 꼴이 됐잖아.”

신지혜가 팔짱을 끼며 조소할 때였다. 눈치를 보던 재겸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네 어머니는 어떻게 인간인 네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 거야?”

“어딜 가나 돌연변이는 있으니까. 우리 엄마도 그랬나 보지.”

심드렁하게 대꾸하던 신지혜가 이내 우중충하게 한숨을 쉬었다.

“예전엔 엄마랑 아빠가 미웠어. 둘이 사랑하면 사랑한 거지, 나는 태어나길 바란 적도 없는데 왜 멋대로 나를 낳은 걸까, 매일 원망했었어. 인간도 인어도 아닌 나는 이렇게 힘든데. 그나마 영영 둘이 평생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또 몰라. 결국은 갈라섰잖아.”

그래서 신지혜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부모 세대의 사랑은 신지혜에게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감정일 뿐이고, 그 순간의 감정에 현혹되어 인생을 바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엄마는 30년 전에 뱃사람이던 아빠와 사랑에 빠졌어.”

***

지금부터 내가 해 줄 이야기는, 전부 엄마가 내게 직접 해줬던 이야기야.

예로부터 전설 속의 영물로 여겨진 인어는 해신(海神)의 전령(傳令)으로 뱃사람을 지켜주고 섬을 수호하는 역할을 했어. 엄마는 스스로 인어인 걸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어. 갑작스러운 풍랑이 닥치거나 태풍이 오면 뱃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 주기도 하고, 고기를 몰아다 줬는데, 사람들은 인어에게 감사하면서 풍어제를 지내거나 공양을 바치곤 했대.

인어는 영물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특별한 존재거든.

인어는 아주 뛰어난 재생력을 가지고 있어서 다치더라도 금방 상처가 낫고, 설사 팔이 잘리는 일이 있어도 스스로 재생해서 다시 팔이 자라난대. 재생력이 워낙 뛰어나서 늙지 않는 거지.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인어는 불로의 존재이지, 불사의 존재는 아니야. 인어도 때가 되면 ‘죽음’과 같은 형태를 맞이해. 인어들 사이에서는 그것을 ‘영면’이라고 부른대.

그래서 인간과 달리, 겉으로 노화하지 않는 인어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아주 오랜 세월을 살 수 있었는데, 이 억겁 같은 시간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어.

바로 인간의 쓸개를 먹는 거야.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야.

인간과 더불어 살며 어울리던 시절, 인어들은 자주 인간과 사랑에 빠졌어.

바다에 사는 인어가 사랑하는 인간과 함께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둘 중 하나야. 하나는 인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피와 살을 먹이는 거야. 인어의 피와 살을 취한 상대는 인어와 마찬가지로 상처가 저절로 낫고, 늙지 않는 인어의 육신이 된대.

또 다른 하나는, 반대로 인어가 사랑하는 이의 쓸개를 먹는 거야. 사랑하는 인간의 쓸개를 먹은 인어는 영구적인 다리가 생기는데, 인간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몸이 되어 자연스럽게 늙어 죽을 수 있다고 해. 아, 근데 이렇게 평범한 몸이 되어도 인어의 흔적이 남아 여전히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긴 해. 본인이 원할 때 자유자재로 인간으로 변했다가 인어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고. 그래서 나도 엄마가 인어로 변한 거 몇 번 본 적이 있거든.

아무튼, 인어와 인간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이 사실이 뭍에 알려지면서부터야. 말에서 말을 옮기다 보면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가게 되잖아. 몇몇 뱃사람들이 소문을 냈는데, 인어의 피와 살을 취하면 무조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와전이 된 거지.

그때부터 인간은 인어를 닥치는 대로 사냥하고 포획했어.

이때부터 인어들은 인간을 증오하기 시작했대. 인간들로 인해 인어는 절멸 위기에 놓일 만큼 개체수가 줄어 들었으니까. 예전에는 수백 마리의 인어가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겨우 스무 마리 남짓이라고 들었어. 그래서 인간을 적대하게 된 인어들은 결국 인간들의 곁을 떠나서 원래 고향인 거문도를 벗어나서 전부 이주를 했고, 인간을 멀리하게 되었다고 해.

인간들은 그 소문을 믿고 인어를 마구잡이로 잡아먹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지. 왜냐면 그 방법은 인어가 사랑한 인간한테만 통하는 거니까. 그런데 어떤 한 인간이 특별한 주술을 써서 인어를 제물로 바치고 불로불사가 되는 ‘영생환’이라는 걸 만들어 낸 거야. 근데 영생환에 대해선 나도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어. 엄마가 끔찍하다고 자세하게 얘기를 안 해 줬거든.

아무튼,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전부야.

깔끔하게 설명을 마친 신지혜가 재겸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서, 너 예전에 뭐 잘못 먹은 적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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