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205)화 (205/348)

#205

“알겠느냐? 이것이 너와 묘정의 ‘인연’이란다.”

소년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굳어 있었다.

“묘정은 네 부모를 몹시 증오했지. 너는 그 증오의 씨앗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내 부모는 죄인이었고 묘정은 내 부모를 죽였다. 나는 죄인의 자식이며 묘정은 나를 죽이기 위해 데려왔다.

“…….”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니, 믿어서는 안 될 이야기였다.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누가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개, 개소리하지 마….”

소년이 말을 더듬거리며 수향의 손을 거칠게 쳐냈다.

“그, 그럴 리가… 묘정이 그럴 리가 없잖아….”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소년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묘정이 나를 죽이려고 데려왔다고? 그랬으면 여태껏 나를 죽이지 않고 내버려 뒀을 리가 없어. 내, 내가… 묘, 묘정이랑 몇 년을 함께 살았는데….”

소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향이 작게 웃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게 말이다. 어쩌면 너를 길러서 제물로 쓰려고 그랬는지도 모르지. 묘정 말대로 ‘나자는 자기 자식마저 제물로 바치는 간악하고 사특한’ 존재이니까 말이야.”

몸을 바로 세운 수향이 경멸 어린 시선으로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렴, 묘정도 어쩔 수 없는 ‘나자’였는가.”

부드럽게 흘러나온 목소리는 묘정과 소년을 동시에 비웃고 있었다. 소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왔다. 소년은 귀를 틀어막으며 상체를 웅크렸다.

“아니, 아니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믿고 싶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정 내 말을 못 믿겠거든, 네가 그렇게나 믿고 있는 묘정에게 직접 가서 물어보려무나. 나도 궁금하구나. 과연 묘정이 네게 뭐라 대답할지 말이야.”

소년에게서 빼앗은 행낭을 어깨에 들쳐메며, 수향이 말했다.

“빈약한 진실의 대가로, 네 덕분에 거창한 것을 얻었구나.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도록 하마. 그럼 또 보자꾸나. 너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내가 필요할 것이니….”

비정한 진실을 남겨둔 수향이 다정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건강하기를.”

***

보름달이 떠오른 밤, 어두운 산길을 비틀비틀 걸어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차디찬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돌아왔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소년은 불 한 점 밝히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 누워, 벽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불현듯, 언젠가 묘정과 마을로 내려갔던 일이 떠올랐다.

소년은 묘정과 함께 길을 지나는 중에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나란히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단란한 가족이었다. 곁을 지나쳤음에도 소년은 걸음까지 멈추고 고개를 돌려 세 사람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겸아, 왜 그러느냐?’

‘내 부모는 왜 나를 버렸을까?’

뜬금없는 말에, 묘정은 멈칫하며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낳아놓고 보니 키우기가 싫었나?’

소년이 시선을 내리며 곰곰이 중얼거렸다.

‘…….’

묘정은 세 사람이 멀어진 방향으로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부모님이 보고 싶니?’

넌지시 입을 열었다. 소년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아니. 보고 싶은 건 아니야.’

소년은 태어나서 한 번도 부모를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기억이 없기에 그립다거나 보고 싶다는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저를 낳아준 부모가 누군지 궁금했을 뿐이다.

설사 저를 버렸다고 해도, 소년은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에겐 묘정이 있으니까.

물론, 소년도 가끔은 제게 부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묘정이 내 부모였으면 좋겠다고,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 피가 섞여 있는 가족이 되고 싶다고, 묘정과 저 사이에 어떤 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소년은 고개를 들어 묘정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는 묘정의 손을 잡고 길을 걷기도 하였는데, 좀 크고 나서는 왠지 낯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언젠가부터 손을 잡지 않게 되었다.

‘그냥 나는 부모 복이 없구나 싶어서.’

소년이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낳아놓고 보니 괜히 낳았구나 싶었나 보지 뭐.’

그렇게 덧붙이며, 소년은 다시 걸음을 뗐다. 그러나 묘정은 소년을 뒤따라오지 않고 계속 멈춰 선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에 의아해진 소년이 묘정을 돌아볼 때였다.

‘네 부모는 틀림없이 너를 사랑했을 것이다.’

얼마간 말이 없던 묘정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네가 배 속에 있을 적부터 어서 태어나거라, 하고 배를 문질러 주며 네가 태어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너 같은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조용히 흘러나온 목소리에, 소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너를 버린 건 아닐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법 아니겠느냐.’

소년이 멍하니 묘정을 바라볼 때였다.

‘겸아, 참으로 잘하였다. 참으로 잘 태어났다.’

묘정이 제 어깨춤으로 시선을 내리며 소년과 눈을 맞췄다.

‘…….’

소년은 문득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렇구나. 참으로 잘 태어난 거구나.

그때, 묘정이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덧붙였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였다. 우리 겸이가 부모 복이 없는 덕분에 나는 이리 고약한 제자를 얻게 되었으니, 네게 복이 없는 것이 내게는 복이로구나.’

…그렇게 말해 줬었는데.

- 묘정은 때가 되면 죽일 생각으로 너를 곁에 둔 것이다.

그런데 나를 죽이려고 데려왔다니….

- 내가 훗날 노쇠하여 등이 굽으면 네가 나를 업고 다녀야 할 것이다.

어느새 수향의 목소리와 묘정의 목소리가 한데 뒤엉켜 머릿속을 어지럽게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소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렸다.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겸아, 자느냐.”

어느 순간, 마당에서 기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어둠 속을 비집고 들어온 목소리가 있었다. 소년이 스르륵 눈꺼풀을 말아 올렸다. 이내 창호지 문이 덜컹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직 바깥은 어두웠다. 밤하늘에는 동그란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라 있었다. 묘정이 하룻밤 일찍 돌아왔구나. 묘정이 일찍 돌아왔음에도, 왜인지 소년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엿새 만에 돌아온 묘정은 소년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다.

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소년이 잠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묘정은 어느 순간 기척을 죽인 상태였다. 평소와 변함없이 다정한 묘정의 배려에, 소년은 어둠 속에서 문득 서글퍼졌다. 혹시라도 자신이 깰 것을 염려하여 행동거지를 조심히 하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묘정이 조용히 등잔불을 밝힐 때였다.

“묘정, 왔어?”

주저하던 소년이 이불 속에서 목소리를 냈다.

“혹시 나 때문에 깬 것이냐?”

“응.”

“미안하구나. 헌데 요도 안 깔고, 어째 방이 냉골인 것이….”

묘정은 방바닥을 짚어보는가 싶더니,

“그렇지, 우리 겸이가 필시 고뿔에 들고 싶은 게로구나. 스승에게 병 수발을 받고 싶은 것이야. 며칠 집을 비웠다고 심통을 부리는 것이냐?”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잠시 침묵하던 소년이 물었다.

“왜 하루 일찍 돌아왔어?”

“음?”

“원래 내일 와야 했잖아.”

“그랬지. 날이 밝는 대로 길을 나설 요량으로 일찌감치 자려고 누웠는데, 우리 성미 고약한 제자가 이 스승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이,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있어야 말이다. 바깥을 내다보니 다행히 달빛이 환하여 내 밤길을 바삐 걸어왔단다.”

소년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며칠 전만 해도 이런 말을 들었다면, 내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내가 보고 싶어서 왔구나, 라고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같이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이제는 묘정의 속내쯤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고, 소년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뭐가 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거짓말.”

아니, 이제는 자신이 없었다.

소년이 음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묘정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소년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인지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소년은 오늘따라 기운이 없어 보였다. 어딘지 축 처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집을 비운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었다.

“겸아. 얼굴 좀 보자꾸나.”

묘정은 손을 뻗어 소년의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내렸다. 그러나 소년은 묘정을 등지고 누운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년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자, 그에 필시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직감한 묘정이 소년의 어깨를 잡아쥐었다. 저를 보게끔 소년의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

소년의 얼굴을 보자마자 묘정의 낯이 딱딱하게 굳었다.

희미한 등잔불에 비친 소년의 꼴은 엉망이었다. 옷은 흙투성이였고, 얼굴을 비롯해 몸 곳곳에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묘정이 눈에 힘을 주고 소년의 양어깨를 덥석 잡아 쥐었다.

“겸아, 얼굴이 왜 이러느냐?”

소년이 대꾸 없이 부스스 상체를 일으켰다.

“대체 누가 이런 것이냐?”

“…….”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

소년이 침묵으로 일관하자, 끝내 묘정이 큰 소리를 냈다.

“겸아!”

소년이 울컥 올라오는 불덩이를 꾹 삼켜내며 고개를 숙였다. 왜인지 묘정의 얼굴을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눈앞이 어지럽고, 가슴 속은 용광로처럼 뜨거운 것이 펄펄 끓는 듯했다.

한참 만에야 소년이 입술을 달싹였다.

“묘정, 나자였다며.”

뜬금없는 말에, 묘정이 그대로 굳었다.

“…뭐?”

“그리고 묘정에겐 정인이 있고.”

“…….”

“그리고… 그리고….”

소년이 눈동자를 스르륵 움직여 묘정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 부모를 죽였다면서.”

소년과 눈이 마주친 순간, 묘정의 눈가가 짧게 경련했다.

“사실이야?”

묘정은 숨을 멈춘 채 멍하니 소년을 쳐다보고 있었다.

“…….”

결국, 소년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묘정이 난생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절망했다. 이 모든 것이 오해이길 바랐다. 수향의 농간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수향이 한 말은 기어이 사실이었다. 그것은 묘정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정말이구나. 믿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애써 외면해 가며 묘정을 믿은 결과가 이거였구나!

소년이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수향을 만났어.”

수향.

소년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묘정의 눈이 서서히 크게 뜨였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멍하니 굳어 있던 묘정은 문득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혹은 곧 닥쳐올 재앙을 예감한 듯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벽에 붙은 장롱을 치우자, 장롱 뒤에 숨겨져 있던 조그마한 문이 나왔다. 벽 속의 창고처럼 숨겨져 있던 공간에는 반닫이 함이 있었다.

묘정은 뭐에 씌인 사람처럼 반닫이 함을 열고 마구잡이로 물건을 뒤지기 시작했다. 저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씨근덕거리던 소년은 묘정의 옷깃을 거칠게 잡아챘다.

“대답해! 정말로 내 부모를 죽이고, 날 죽이려고 데려왔냐고!”

묘정을 붙잡은 소년이 절박하게 따져 물을 때였다. 묘정이 거센 힘으로 소년의 손길을 뿌리쳤다. 쿠당탕, 소리와 함께 내던져진 소년이 벽에 그대로 처박혔다.

“윽….”

그때, 묘정이 성큼성큼 다가와 소년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자개함… 어디, 어디로 갔느냐.”

이번에도 역시나 묘정은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듯한 표정이었다. 크게 홉떠서 사백안이 된 눈. 살기와 분노가 서린 귀기. 멱살을 움켜쥔 손은 뼈대가 불거질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무섭기는커녕, 슬펐다.

아, 나는 결국 내기에서 졌구나.

수향은 말했다. 너는 묘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 말은 정녕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화 한 번 내지 않던 묘정이 내게 화를 낸다. 묘정은 화가 나면 이런 얼굴이 된다. 어쩌면 내 부모를 죽이던 순간에도 이런 표정이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를 찾아내서 처음 손을 내밀던 그 날도,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그때의 얼굴도 지금과 같은 표정이었을까?

“아아… 그거…?”

묘정에게 멱살을 잡힌 소년이 흐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내다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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