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218)화 (218/348)

#218

“이 세상에 진정한 영생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신지혜의 모친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섰던 재겸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진정한 영생환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겸이 고개를 뒤로 돌려 윤태희를 쳐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윤태희는 무표정한 낯으로 재겸의 곁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신지혜의 모친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무슨 말이지?”

첫인사는 존대했으나, 윤태희는 어느 순간 신지혜의 모친을 향해 자연스럽게 반말로 묻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신지혜와 모친의 기색을 예리하게 살폈다. 그런데 신지혜도, 신지혜의 모친도 윤태희가 반말을 쓴 것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아까부터 신지혜는 줄곧 침묵한 채 어정쩡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왜냐하면, 인어는 영생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지.”

신지혜의 모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인어는 인간과 달리 늙지 않고, 상처를 입어도 스스로 재생해서 저절로 나으니, 인간들의 눈에는 불로불사처럼 보였을 테지. 그러나 인어는 애초에 불멸의 존재가 아니란다.”

인어는 본디 노화하지 않으며, 엄청난 치유력을 지닌 특별한 영물이었다. 어느 순간 외적인 생장이 멈추고 나면 그 상태 그대로 늙지 않는 데다가 수명이 아주 긴 편이었다.

신지혜 모친의 말인즉슨, 항간에 불멸의 존재로 와전되었다는 설명이었다.

“인어에게도 수명이 있다는 거야?”

“그렇지.”

생각해보면 섬에 오기 전, 신지혜 역시 인어도 언젠가 죽는다는 말을 했었다. 인어들은 이를 두고 ‘영면에 든다’라는 표현을 쓴다고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윤태희가 물었다.

“그럼, 수명은 어느 정도 되지?”

“보통 200년에서, 장수하면 300년까지 산단다.”

200년? 익숙한 체감에, 윤태희의 눈이 서서히 커질 때였다.

“영생환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건 200년도 더 된 일이야. 아주 오래전, 금술을 탐구하던 어떤 한 인간이 있었지. 그 인간은 영물을 제물로 바쳐서 그 대상이 가진 특성을 고스란히 빼앗아 오는 은밀한 비술을 찾아냈는데, 그 주술로 만든 것이 영생환이란다.”

신지혜의 모친이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인어를 바쳐서 만든 것, 인간은 그걸 ‘영생환’이라고 불렀지. ‘영생환’을 취하면 늙지 않고 상처가 저절로 나으니 인간들은 영생환이 불로불사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러나 영생환을 취해도 불로불사가 되지는 않아. 정확히 말하면 ‘불로장생’일 터. 제물로 바쳐진 인어의 수명대로 세월이 흐르고 나면, 영생환의 효력도 사라지니까 말이야.”

인어의 수명만큼 영생환의 효력이 끝나면 다시 노화가 시작된다. 따라서 영생환을 취한 이는 다시 인간의 세월로 돌아가 원래 수명대로 살다가 병들거나 늙어 죽는 것이었다.

“그럼 언젠가는 영생환의 효과가 사라진다는 거야?”

“그렇지.”

신지혜의 모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생환의 실체를 새롭게 알게 된 윤태희는 현기증을 느꼈다. 여태껏 재겸이 살아온 세월은 200년 이상으로, 신지혜의 모친이 말한 인어의 수명과 비교하면 시기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게다가 영생환을 취한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외양이 멈춘다는 점 역시 그러했다.

만약 그 스승이라는 자가 재겸에게 영생환을 쓴 것이라면…….

윤태희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영생환과 재겸. 둘을 엮을수록 냉철함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평정심을 되찾아야만 했다. 만약 재겸의 저주가 정말로 영생환과 관련된 것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뜻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런데…”

그때였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재겸이 입을 열었다.

“나는 상처가 저절로 낫지 않아.”

인어 둘과 윤태희, 셋의 시선이 동시에 재겸에게 향했다.

“영생환을 취하면 늙지 않고, 상처가 저절로 낫는다고 했잖아. 늙지 않는 건 맞지만 나는 다쳐도 스스로 재생할 수 없어. 오히려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더디게 낫는 편이야.”

윤태희가 멈칫하며 재겸을 응시했다.

과연, 생각해보니 그 말대로였다. 재겸은 상처를 입어도 스스로 재생하는 몸이 아니었다.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메산이가 없었다면 온 몸에 온갖 상처를 달고 살았을 것이었다.

“그럼 무턱대고 영생환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겠구나.”

신지혜의 모친이 잠시 눈을 굴리더니, 재겸에게 손짓을 했다.

“그렇다면 잠깐만 이리 와보렴.”

“왜?”

“네가 영생환을 취했는지 직접 확인해보는 편이 낫겠구나.”

“어떻게 확인하는데?”

“인어를 먹었는지, 아닌지 인어들은 직접 알 수 있단다. 인어를 먹으면 묘한 냄새가 나거든. 그러나 인어를 직접적으로 먹지 않고 인어로 만든 영생환을 취한 인간은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아. 그 대신에 영향을 받은 인간과 인어의 피를 섞어보면 알 수 있단다.”

신지혜의 모친이 제 손바닥에 피를 낸 뒤 설명을 이었다.

“이것 보렴, 인어의 피는 녹색이지. 그래서 인간의 붉은 피와 섞이면 보통 황색으로 변하는데, 영생환을 취한 인간의 피와 섞이면 파란색으로 변하거든.”

말을 마친 신지혜의 모친은, 재겸을 향해 제 피가 고여 있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이리 가까이 와서 피를 흘려 보겠니?”

재겸은 물끄러미 신지혜의 모친을 응시했다. 신지혜의 모친에게 가까이 가서 피를 흘리려면 바다와 접한 바위 끝에 서야만 했다. 바위 끝에는 파도가 세차게 부딪치고 있었다.

“알겠어.”

잠시 고민하던 재겸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윤태희가 재겸의 앞으로 확 튀어나왔다. 재겸의 앞을 가로막은 윤태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당신이 나오지 그래.”

그에 재겸이 멈칫하며 윤태희를 쳐다볼 때였다.

“당신은 두 다리를 얻었으니 걸어 나올 수 있을 텐데.”

윤태희의 눈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윤태희는 신지혜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기억했다. 신지혜의 모친은 사랑하는 이의 쓸개를 먹고 자유자재로 다리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지적에 신지혜의 모친이 눈을 찌푸리며 윤태희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둘 사이에 찰나의 기 싸움이 스쳐 지나갔다.

“…….”

“…….”

잠시 정적이 흘렀고, 신지혜의 모친이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하도 오랫동안 다리 없이 살았더니 어색해서 말이야.”

신지혜의 모친은 곤란하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에 윤태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신지혜의 모친을 싸늘하게 응시할 때였다. 재겸이 윤태희를 지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재겸이 바닷가를 향해 걸어 나가자, 윤태희가 낯을 덜컥 굳히며 재겸의 팔을 잡아챘다.

“재겸아.”

무언가 이상하다, 라는 것은 재겸도 어렴풋이 체감하고 있었다. 늘 여유롭던 윤태희가 한껏 경계하고 의심하고 있다는 것쯤은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황토집을 나서던 그 순간부터였다. 이것은 어쩌면 덫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덫이라는 것을 알아도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죽지 않는 몸이다. 이 저주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는 꼭 알아내야 했다.

윤태희로서는 막을 수밖에 없었고, 재겸으로서는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괜찮아.”

재겸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윤태희를 돌아보았다.

“…….”

재겸의 팔을 잡아 쥔 손이 스르륵 떨어져 나갔다. 재겸은 무심한 낯으로 바위 끝까지 걸음을 옮겼다. 바닷속에 몸을 담근 신지혜의 모친을 내려다보다가, 다리를 굽히고 앉았다. “피 흘리면 돼?” 재겸은 제 손가락을 꽉 깨물었다가, 인어의 손바닥에 가져다 댔다.

신지혜 모친의 손바닥 위로, 재겸의 손끝에 맺힌 핏방울이 도르륵 흘러내렸다. 인어의 피와 인간의 피가 섞이는 순간이었다. 색상을 확인한 재겸의 눈동자가 짧게 흔들렸다.

“…….”

섞인 피의 색상은 갈색, 재겸은 영생환과 관련이 없었다. 거센 바람이 불고, 파도가 강하게 내리쳤다. 신지혜와 모친, 그리고 재겸과 윤태희.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확인해줘서 고마워.”

멍하니 손바닥을 내려다보던 재겸이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내 저주는 영생환 때문이 아니었다는 거네.”

재겸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재겸아.”

“정말 지긋지긋해.”

이로써 인어를 찾아다니고 거여도까지 오게 된 모든 과정이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재겸의 저주는 인어와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크게 상심한 윤태희가 고개를 푹 숙였다.

반면에 재겸은 담담했다.

“이걸로 됐어. 그만 가자.”

저주를 풀고 평범한 인간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무너졌다.

다시 원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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