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220)화 (220/348)

#220

소용돌이에서 태어난 것, 그것은 거대한 해룡(海龍)이었다.

용의 모습을 한 거대한 물기둥이 재겸과 윤태희,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거대한 용의 형상을 맞닥뜨린 순간, 윤태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두 눈으로 직접 보았음에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용(龍)?”

윤태희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바닷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다섯의 인어가 오각형 형태로 넓게 포진하여 독경하던 순간부터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나선 형태로 회오리치던 커다란 물기둥은 하늘 끝까지 솟구쳐 오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푸른색 비늘에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용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뭐, 뭐야?”

재겸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인어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목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해신의 전령(傳令)이라는 신이한 존재라는 말만 들었을 뿐,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재겸이라도 인어는 낯선 존재였기 때문에 인어가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바가 없었다.

재겸이 당황한 얼굴로 용을 올려다볼 때였다.

우르릉…….

어느 순간, 지축이 요동치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천지가 진동했다. 난데없는 진동에, 재겸과 윤태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때, 해룡이 아가리를 쩍 벌리더니 재겸과 윤태희를 집어삼킬 것처럼 돌진해 왔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다.

용이 덮쳐오는 순간, 재겸과 윤태희는 동시에 몸을 피했다. 땅을 박차고 오르며 각각 반대쪽으로 솟구쳐 올랐다. 표적을 놓친 해룡이 절벽을 험하게 물어뜯었다. 방금 전까지 재겸과 윤태희가 서 있던 자리였다.

콰과광——!

해안과 마주 보고 있던 절벽 한 면을 해룡이 사납게 물어뜯었다. 용이 베어 문 모양대로 절벽이 잘려나갔다. 산사태처럼 절벽이 무너져 내렸다.

“윤태희!”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암석의 파편과 돌무더기들이 땅으로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재겸은 온몸에 귀기를 두르고 잔해가 섞인 폭풍에 맞섰다.

한차례 폭격이 지나간 후, 재겸은 황급히 윤태희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재겸과는 반대편으로 피신했던 윤태희는 다행히 무사해 보였다.

“응, 괜찮아.”

서로 무사함을 확인한 두 사람의 꼴은 아주 엉망이었다. 날치 떼의 습격으로 티셔츠는 너덜너덜 찢겨나간 상태였고, 온몸에 생채기가 가득했다. 윤태희의 뺨에서는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날치에 스친 흔적이었다.

“저 씨발 새끼들이….”

재겸은 이를 악물고 바다를 노려보았다.

저 복수심의 무게를, 재겸도 잘 알고 있었다. 저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 무게를 전부 받아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재겸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우산을 집어 들었다. 바다 정중앙으로 돌아간 해룡은 다시 돌진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절벽을 한 차례 물어뜯었던 해룡은 바다 한가운데, 원래 있던 자리에 돌아가 있었고, 수면 위에 선 인어들은 여전히 독경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공격이 시작되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전세가 좋지 않았다. 수적으로도 열세임은 물론, 바로 뒤에는 커다란 절벽이 있었으며 바다가 전면에 있었다.

난데없는 인어들의 습격, 특히 저 해룡은 아주 위험했다.

일단은 저 용부터 어떻게든 해야겠다.

재겸은 우산을 둘둘 말아 쥐고 있는 힘껏 귀기를 실었다. 해룡 향해 쏘아 던졌다. 귀기가 실려 투창이 된 우산은 해룡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그러나 해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산의 뾰족한 부분이 머리를 꿰뚫는 순간, 그 부위가 물처럼 변하더니 아무런 타격 없이 그대로 통과했다.

저것은 진짜 ‘용’이 아니었다.

“씨발, 짜증 나네.”

재겸이 낮게 욕을 뇌까렸다.

저 용은 필시 인어들이 주술로 만들어낸 것이리라. 주문을 독경하여 용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주술로 만든 대상이라면, 주술을 건 술사를 쓰러트려야 한다.

한 마디로 인어 다섯을 전부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어들은 저 멀리, 바다 위에 서 있으므로 접근하는 게 불가능했다. 육지에서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 이 싸움의 승패는 정해질 것이다.

…잠깐, 신지혜는 어디로 갔지?

재겸이 흐트러진 숨결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신지혜의 기척이 느껴지질 않았다. 인어들이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재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지형이 불리한 탓에 이쪽의 움직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인어에게 유리한 바다로 끌려 들어간다면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쪽은 아무런 무기가 없었다.

어쩌지? 만약 여기서 도망친다면?

‘아니, 도망치는 건 불가능해.’

이곳은 섬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다. 게다가 저 낯선 인어는 신지혜의 모친이 아니었다. 그 말인즉슨 처음부터 이쪽을 노리고 여기까지 왔다는 뜻이다. 신지혜의 모친은 인질로 잡혀 있으며, 협박을 당한 신지혜는 인어 무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저 인어들은 인간에게 깊은 원한과 앙심을 품고 있다….

만약 여기서 물러선다면, 저 복수의 방향은 이 섬 전체로 향할 것이다. 그렇다면,

“……싸워야 해.”

결론을 내린 재겸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바다를 노려보다가,

“가.”

윤태희를 돌아보며 한쪽 팔로 윤태희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

“여긴 내가 해결할 테니까 너는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이어진 말에, 윤태희의 낯이 무섭게 굳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예리한 눈으로 인어들의 동태를 살피던 재겸이 입을 열었다.

“둘 다 빠져나갈 수는 없어.”

“아니, 나는 안 가.”

그러자 재겸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윤태희를 돌아보았다.

“윤태희.”

“나는 네 곁에 있을 거야.”

재겸이 눈에 힘을 주며 윤태희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내 말 똑똑히 들어. 지금 신지혜는 저쪽에 붙잡혀 있고, 상대해야 할 인어는 총 여섯이야. 게다가 넌 수영도 못 해. 우리 둘이서 덤볐다가 한 명이라도 붙잡히면 그대로 끝나는 거야. 나 혼자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어.”

멱살이 잡힌 채로 재겸을 바라보던 윤태희가 시선을 내렸다.

“…….”

윤태희의 눈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왼쪽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에 시선을 주었다. 절벽에 부딪혔을 때의 충격 탓인지, 시계 겉면에는 전에 없던 금이 생겨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틀림없이 네 일신(一身)이 위험해진다.’

‘위험하다니, 어째서?’

긴 시간 동안 말 한마디 없었던 시시가 위험을 예고했다.

‘네 곁에 저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시시의 말을 떠올리던 윤태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시는 분명히 뭔가 알고 있었어.’

온몸을 휘감고 있는 불길한 위화감, 그리고 시시의 경고.

- 모르겠어? 너는 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멍청아!

그때, 재겸이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을 풀며 윤태희를 강하게 밀쳤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윤태희를 밀어낸 재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위험해. 빨리 가.”

“안 가, 아니. 못 가.”

재겸이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왜!”

“널 좋아하니까.”

심장이 쿵, 내려앉음과 동시에 재겸의 낯이 매섭게 굳었다.

“…….”

잠시 침묵하던 재겸이 눈을 꾹 감았다가 뜨더니,

“너 이 씨발 새끼가….”

아무런 예고 없이 윤태희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너 지금 내가 농담하는 것 같냐?”

불시에 따귀를 맞은 윤태희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

고개가 돌아간 채로 있던 윤태희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는 너는… 내가 농담하는 것 같니?”

“이 등신 새끼야, 나는 안 죽어!”

재겸이 답답하다는 얼굴로 벌컥 쏘아붙였다.

“근데 너는 아니야, 잘못될 수도 있어!”

- 너는 내 말을 듣지 않은 걸 영영 후회하게 될 거다.

“그럼 네가 나를 지켜줘.”

“…뭐?”

“그리고 나는 너를 지킬게.”

“…….”

윤태희가 재겸의 양 뺨을 잡아 쥐며 말했다.

“재겸아, 나는 너랑 같이 돌아갈 거야.”

생채기를 잔뜩 매단 얼굴로, 윤태희가 낮게 말했다

“약속할게.”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재겸의 표정이 흔들렸다.

“…….”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쥐고 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킨다. 재겸은 문득 알아차렸다.

이토록 급박한 상황 속에서, 우습게도 심장이 뛰고 있음을.

“어디든 따라갈 테니, 넌 앞만 봐도 돼.”

그 순간, 재겸은 문득 가슴이 욱씬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막막함, 두려움, 공포를 닮은 감정, 이 감정의 정체가 뭔지 재겸은 알 것 같았다.

“…….”

윤태희를 응시하고 있던 재겸은 말없이 바지 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작은 수첩이었다. 황토집을 나서기 전, 안방에서 챙겨 나온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져온 물건이었다. 가게 상호가 적힌 작은 수첩은 특별할 것이 없었으나 아무렴 상관없었다. 특별하게 만들 것이므로.

재겸은 수첩에서 종이 한 장을 떼어내더니, 검지 끝을 세게 깨물었다. 검지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윤태희의 눈이 크게 뜨였다.

“너, 부적 쓸 줄 알아?”

경면주사도 없이 부적을 쓸 줄은 몰랐다. 재겸은 대답 없이 술식을 휘갈겼다. 그렇게 해서 만든 부적을 반의반으로 접었다. 재겸이 윤태희의 턱을 덥석 잡아 쥐더니, 엄지손가락을 윤태희의 입술 틈으로 쑥 집어넣었다. 윤태희가 얼떨결에 입을 벌렸다.

“내 눈 똑바로 봐.”

재겸은 윤태희와 눈을 맞추며 방금 전에 만든 부적을 입에 물렸다.

그에 윤태희가 저도 모르게 부적을 입안에 앙, 물었다. 윤태희를 응시하던 재겸은 피에 물든 검지를 엄지에 문질렀다. 재겸은 윤태희의 미간 정중앙, 제3의 눈이라고 불리우는 자리에 도장을 찍듯이 엄지를 눌렀다.

“팔난(八亂). 삼재(三災). 수액멸(水厄滅).”

재겸이 날카로운 눈으로 윤태희를 응시했다.

“절대 놓치지 마.”

입에 문 부적을 놓치지 말라는 것인지, 어디든 따라오겠다는 말에 당부를 한 것인지, 그 맥락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으나 윤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련의 행위를 끝마친 재겸이 몸을 일으켰다.

윤태희에게서 두 세 걸음 앞으로 향한 재겸이 곧바로 허리를 굽혀 앉더니, 피가 흐르는 손으로 땅 위에 무언가 글씨를 휘갈겨 적기 시작했다.

지(地), 산(産), 결(結), 그리고…….

입으로 훈음을 작게 중얼거리며 땅에 한자를 휘갈겨 쓴 재겸은, 일렬로 쓴 한자를 한꺼번에 관통하는 직선을 그었다. 그러고는 무릎 한쪽을 꿇어앉으며 피로 그은 선 위를 양 손바닥으로 짚었다. 어느 순간, 재겸의 머리가 부스스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무릎을 굽히고 앉은 재겸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두운 바다를 노려보았다.

“대지에 깃든 광명이 곧 나의 영토이니, 영벽(靈壁)으로 사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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