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231)화 (231/348)

#231

“너, 2주 동안 의식이 없었어.”

석주련의 말에, 윤태희의 눈이 서서히 크게 뜨였다.

……뭐?

윤태희가 고개를 번쩍 들고 석주련을 쳐다보았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윤태희가 보기 드물게 동요를 보이자 석주련이 물었다.

“…….”

2주, 2주가 지났다고? 일순 사고가 정지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한 타격감이 일었다. 잠시 낯을 굳혔던 윤태희는 애써 평정을 가장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아뇨, 아니에요.”

그때, 때마침 석주련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석주련이 잠시 전화를 받으러 병실 밖으로 나간 사이, 병실에 혼자 남은 윤태희는 고개를 푹 숙이며 양손으로 얼굴을 틀어쥐었다.

“씨발.”

윤태희는 미간을 일그러트리며 이를 악물었다.

2주.

누워서 흘려보낸 시간이 자그마치 2주였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다. 그러나 윤태희는 목숨을 부지하고 현실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전에, 집채만 한 파도처럼 덮쳐 오는 낭패감을 맞닥뜨려야 했다.

안 그래도 윤태희는 최근 하루하루가 아까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피 같은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로 고스란히 허비하고 말았다.

영영 눈을 뜨지 못했다면 모를까, 다시 이 땅에 발을 딛게 된 이상 윤태희에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나례청을 부수는 일에 시동을 걸었어야 했다. 10년 동안 차근차근 쌓아온 반역의 주춧돌을 하나씩 점검하고, 본격적인 계획에 착수했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한 일이 하루아침에 틀어져 버렸다.

2주가 지났다는 말인즉슨 재겸과 약속했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주어진 시간에 비해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재겸의 불로불사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며, 나례청을 부수어야 한다.

불현듯, 의식 저편에서 들었던 시시의 경고가 떠올랐다.

‘한 번만 더 정해준 길 밖으로 벗어나면, 너는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걸 잃게 될 거야.’

확실히 그랬다. 언젠가부터 윤태희는 지난 십 년간 그려왔던 밑그림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었다. 인어를 추적한 것, 거여도에 다녀온 것… 돌이켜 보면 최근 한 달 동안 윤태희가 온 신경을 쏟았던 일들의 대부분은 나례청을 무너트리는 계획과는 무관한 영역에 있었다.

그럼에도 윤태희는 허비한 시간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윤태희는 재겸과 복수, 어느 것 하나 놓칠 생각이 없었다. 윤태희는 어느샌가 복수를 마친 그 이후를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걸 끝내고, 재겸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삶이었다.

“환자분, 일어나셨어요?”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전화 통화를 하러 나갔던 석주련이 의료진과 함께 돌아왔다.

의료진은 윤태희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수술 부위는 잘 아물고 있었고 혈압, 맥박 등 전부 정상이었다. 그에 윤태희는 퇴원 시기부터 물었다. 의료진은 꽤 오랫동안 의식이 없었던 데다 후유증이 있을 수 있으니 며칠 더 입원하여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의료진이 떠나고, 석주련과 단둘이 남게 된 윤태희는 자신이 이곳에서 눈을 뜨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물었다. 잠시 침묵하던 석주련은 윤태희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

재겸이 석주련에게 연락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태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시선을 내리고 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다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재겸이는 지금 어디 있어요?”

석주련은 수술실 앞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던 소년을 떠올렸다. 윤태희의 수술이 끝날 때까지 재겸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짐짝처럼 얹혀 와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팀원들이 병원에 도착하면서 재겸을 수습하듯 데리고 나갔다.

“그 애는 무사해. 다만, 최근에는 얼굴을 보지 못했어.”

그것이 석주련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재겸의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로 출근을 하지 않았으니까.”

재겸은 윤태희가 없는 지난 2주 동안 나례청에 나타나지 않았다.

“네가 눈을 뜨기 전까진 나오지 않겠다고 하더군.”

이어진 말에, 윤태희가 멈칫하며 석주련을 바라볼 때였다.

“나머지는 나중에 얘기하지. 퇴근 후에 다시 올 테니.”

눈을 뜬 것을 확인했으니 지금은 이걸로 되었다. 수척한 얼굴로 말을 끝마친 석주련은 협탁 서랍에서 윤태희의 휴대폰을 꺼냈다. 피가 묻어 있던 휴대폰은 어느샌가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석주련은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그대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어딘지 수척한 저 등을 본 순간, 윤태희는 불현듯 강렬한 위화감에 휩싸였다.

“…….”

무언가 이상했다.

“부장님.”

윤태희는 문간을 향해 걸어가는 석주련을 불러 세웠다. 그러자 석주련이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석주련은 고개를 살짝 틀더니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윤태희를 돌아보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하세요?”

석주련은 한눈에 보기에도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저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했으리라는 것쯤은 윤태희 또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석주련은 2주 만에 얼굴이 반쪽이 됐을 정도로 윤태희를 신경 썼다. 하루에 두 번씩 병원을 드나들 정도였다.

그런데, 석주련은 윤태희에게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윤태희는 석주련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 석주련의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만약 재겸을 통해서 사실 확인을 이미 끝냈고, 재겸이 어떤 식으로든 둘러댔다고 하더라도 당사자인 윤태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한 번 더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

윤태희의 질문에 석주련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원래대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덕분에 윤태희의 시야에서는 석주련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섬에서 있었던 일은 이미 2주 전에 그 아이를 통해서 전해 들었어.”

석주련이 문간에 시선을 둔 채 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귀기 다루는 훈련을 하러 갔다가 일어난 사고였다고….”

윤태희가 멈칫하며 석주련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

두 사람이 인적 드문 외딴 섬에 여행을 간 이유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귀기를 물리적으로 꺼내서 쓰는 훈련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저 때문이라고 자책하더군.”

윤태희는 재겸의 가슴에 비수가 꽂히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 그렇게 깊은 나락에 빠지는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한 차례 정신이 무너졌었다. 그리고, 윤태희는 붉은 폭풍 속에서 눈을 뜬 소년을 보았다.

분명히 재겸이었으나, 그것은 재겸이 아니었다.

윤태희가 목숨을 잃을 뻔한 것은 재겸 안에 있는 그 ‘무언가’ 때문이었다.

“…….”

하지만 그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물론 외부의 공격을 받았다고 말을 꾸며낼 수 있겠지만, 그 또한 깔끔한 핑계는 아니었다. 귀신, 영물 등의 존재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둘러댄다면, ‘축역부 수석 윤태희’가 당한 셈이므로 나례청에서 움직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 일대를 조사하게 될 것이고, 조사 과정에서 인어에 관한 단서를 잡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찌 됐든 인어에 관한 정보를 숨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어의 존재를 들킨다면 영생환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재겸이 불로불사라는 정체까지 덜미가 잡힐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줄줄이 엮여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꼬리를 밟혀선 안 됐다.

그러나 둘 사이에 일어난 사고라면 이야기는 단순해진다. 더군다나 윤태희의 상처는 일반적인 상처와 다른, 귀기로 인해 생겨난 상처였으므로 재겸의 대처는 아주 영리했다.

그때, 얼마간 말이 없던 석주련이 입술을 달싹였다.

“왜? 이거 말고 달리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나?”

무심하게 날아든 질문에, 윤태희의 눈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

꼭 무언가 떠보는 듯한, 왠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질문이었다.

“아뇨, 그게 다예요.”

석주련은 별다른 대꾸 없이 그대로 등을 돌려 병실을 빠져나갔다.

……뭐지?

병실에 혼자 남은 윤태희는 그 상태로 문을 빤히 노려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생각보다 상황을 쉽게 모면했음에 안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자꾸만 신경을 긁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윤태희는 휴대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날짜를 확인하니 정말로 2주가 넘게 지나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으나, 이제 더는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자꾸만, 애타도록 보고 싶은 얼굴이 있었다.

윤태희는 재겸의 번호를 누르고 휴대폰을 귓가로 가져갔다.

-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재겸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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