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233)화 (233/348)

#233

거여도로 떠났던 재겸이 집에 돌아온 것은 정확히 닷새 만의 일이었다. 때는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녘이었다. 적막 속에서 현관 바깥에서 쿵, 작은 소란이 있었다.

난데없는 기척에 잠에서 깬 정주는 현관으로 나가 보았다. 이내 문을 연 정주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기저기 찢긴 옷을 입고, 마른 피로 범벅된 재겸이 서 있었다.

“재겸아!”

정주의 안색이 창백해질 때였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서 있던 재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정주는 고꾸라지는 재겸의 몸을 지탱하듯 받아 내며 부축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험한 몰골을 본 정주는 필시 재겸이 또 크게 다친 것이라 생각하고 서둘러 메산이에게 치유를 부탁했다. 그다음, 상처 부위를 자세히 살피기 위해 피로 물든 티셔츠를 벗겼다. 그런데, 재겸의 몸은 다친 곳 없이 깨끗했다.

“재겸아, 내 목소리 알아듣겠어? 너 섬에 갔었잖아.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태희 씨는 어디 갔어?”

재겸은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혹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무어라 대답을 꺼내 놓았다. 그러나 정주가 알아들은 말은 딱 두 마디뿐이었다.

윤태희가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한 짓이 아니야…….”

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재겸은 그날 이후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나례청에 출근을 하지도 않았고, 사람들과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TV를 보지도, 게임도 하지도 않았다. 모든 일상이 멈췄다.

재겸은 식음을 전폐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웅크려 있기만 했다.

끔찍한 불면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재겸이 저토록 괴로워하는 이유는 죄책감 때문일 것이라고, 정주는 생각했다.

정주는 고심 끝에 윤태희가 입원한 병원에 직접 가 보기로 했다. 재겸은 자신이 윤태희를 다치게 했다고 말했지만 설마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분명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윤태희가 많이 다쳤으니 충격이 클 것도 당연했다.

윤태희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간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다.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정을 묻고, 다친 몸을 치유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주는 결국 윤태희를 만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병실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윤태희가 의식을 되찾진 못했어도 고비를 넘겼다는 것, 따라서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당장은 그걸로 충분했다.

정주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재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윤태희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재겸의 죄책감도 한결 덜어질 것이고, 무엇보다 안심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정주의 예상과 달리 재겸은 윤태희가 회복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재겸의 마음은 여전히 지옥 속에 있었다.

빛이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 틀어박힌 재겸은 여전히 잠에 들지 못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멍하니 어둠 속을 응시하다 보면 헛것을 보기도 했다. 어둠의 한 점을 응시하던 재겸은 어느 순간, 거센 풍랑이 몰아치는 절벽 위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것은 아주 기이한 광경이었다.

마치 제 안에 깃든 재앙신이 화경이라며 보여 주었던 풍경과 비슷했다. 흡사 화면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혹은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제3자의 시선에서 모든 것이 조그맣게 보였다. 주변 풍경이 훤히 내다보이는 각도였다. 멍하니 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또 다른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른 등, 탄탄히 벌어진 어깨를 보니 묘정이 떠올랐다. 묘정을 닮은 인영은 형체가 뿌옇고 등을 돌리고 있는 탓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재겸은 불현듯 알아차렸다.

‘저 사람은 묘정이 아니야. 저건 태희야.’

그때, 절벽에 선 재겸이 상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진짜’ 재겸은 소년의 손에 어디서 났는지 모를 칼 한 자루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재겸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대로 놔두면 ‘나’는 윤태희를 찌를 것이다.

생각과 동시에 재겸은 덜컥하여 목소리를 냈다.

‘그만둬!’

그러나 소년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하지 말란 말이야!’

재겸은 소년의 행동을 제지하고자 절박하게 고함을 쳤다. 그러나 재겸은 소년의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어느덧 윤태희와의 거리는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마침내 소년이 칼을 쥔 손을 들어 올릴 때였다.

‘그 애는 묘정이 아니야!’

몸이 부서져라 악을 내지르자, 비로소 움직임이 멈췄다. 동시에 소년은 고개를 홱 기울이더니 정확히 재겸의 시선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마치 연기 중이던 배우가 카메라를 올려다보는 것처럼, 둘의 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 소년은 죽일 듯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심장이 뛰고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묘정이 아니면? 그럼 누군데?”

‘그, 그 애는 윤태희야.’

“그러니까, 윤태희가 누군데?”

기묘한 질문이었다. 윤태희가 누구냐니, 윤태희는 윤태희다. 그밖에 달리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묘정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어.’

재겸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꺼내 놓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뭐?’

“근데 넌 왜 그랬어?”

‘무, 무슨 말이야.’

대답 대신 소년은 검을 들어 올렸다. 피가 팍, 하고 사방으로 튀는 순간, 재겸은 번쩍 눈을 떴다. 숨을 컥컥 들이쉬며 방을 뛰쳐나가자 정주가 달려와 재겸의 상태를 살폈다. 환영에 시달린 재겸은 식은땀에 푹 젖어 있었다.

“재겸아, 무슨 일이야? 괜찮아?”

재겸은 새하얗게 질린 낯으로 정주를 바라보았다.

…뭐지?

재겸은 그제야 방금 전의 상황은 현실이 아니며, 자신이 헛것을 봤음을 알아차렸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윤, 윤태희는?”

재겸은 정주를 붙잡고 절박하게 물었다.

“뭐?”

“태희 지금 어딨어?”

재겸은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 어쩌면 전부 다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랬듯이 이번에도 말도 안 되는 악몽을 꾼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태희 씨 지금 병원에 있잖아.”

그러나, 기어코 현실이었다.

“…뭐?”

재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잔혹한 현실감이 집채만 한 파도처럼 몰아닥쳤다. 재겸은 넋이 나간 얼굴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은 추위에 떠는 사람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깨끗한 손이었으나 윤태희의 피로 뒤범벅되었던 손과 겹쳐 보였다.

그랬다.

거여도에서, 이 손으로 윤태희를 찔렀다.

“재겸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한 짓이 맞구나.”

“뭐?”

“내가 태희를 찔렀어.”

그 말을 끝으로, 재겸은 죽음처럼 기나긴 잠에 빠졌다.

재겸은 지금껏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불사의 육체는 재겸을 세월의 타성과 권태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끔찍한 저주였으나, 한편으로는 마음만 먹으면 그 무엇이든 돌파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기도 했다.

‘넌 안전해.’

인어를 상대하던 그날, 윤태희의 앞을 막아섰던 재겸이 단언하듯이 던진 말이었다. 재겸은 여태껏 수도 없이 윤태희를 막아섰다. 불사라는 갑옷을 두른 재겸은 무적에 가까웠고, 재겸 스스로도 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거여도는 그러한 믿음을 깨트린 섬이었다.

재겸은 이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윤태희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인어 때문도, 그 누구 때문도 아니라, 다름 아닌 재겸 저 자신 때문에.

윤태희를 지키지 못했다는 패배의 경험, 자칫하면 윤태희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느낀 상실감, 그리고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공포.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꼭 찾아낼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엉망으로 뒤섞인 감정들은 마침내 재겸의 마음속에 있던 무언가를 망가뜨렸다.

“원래 약속한 대로 두 달 뒤에 죽을 거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윤태희의 낯이 무섭게 굳었다. 재겸이 지난 며칠간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었는지 알 길이 없는 윤태희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병실 안으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말없이 재겸을 바라보던 윤태희는 어느 순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병실에서는 바깥세상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윤태희가 느릿느릿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여 재겸을 바라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어?”

사경을 헤매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윤태희는 야윈 듯하면서도 한층 예민해 보였다. 윤태희는 말없이 재겸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재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날 좋아한다고 그랬잖아.”

재겸은 자신의 손을 꽉 맞잡아 쥐며 손의 떨림을 감췄다.

“그렇다면 네 손으로 날 죽여.”

재겸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죄책감 때문일 것이라고 정주는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정주의 생각과 달리, 재겸을 잠식한 감정은 고작 죄책감 따위가 아니었다.

재겸을 집어삼킨 감정은, 바로 윤태희가 없다는 ‘두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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