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경상북도 경주시 대릉원 일원.
때는 자정을 훌쩍 넘긴 야심한 시각이었다. 평소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대릉원 내부는 사람 한 명 없이 적요한 상태였다. 대릉원은 밤 10시까지만 개방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커다란 고분이 언덕처럼 펼쳐진 대릉원의 정경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불빛이라고는 산책로를 따라서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가로등이 유일했다.
부적부 나자 최 주임은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최 주임이 손목시계를 젖혀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덧 시간은 축시를 지나고 있었다.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축시(丑時)는 음기가 가장 강한 시간이어서 귀신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일 때였다. 때문에 최 주임은 이 시간만 되면 저절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한껏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귀신이 나타나 훼방을 놓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최 주임은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두 시간에 한 번씩 대릉원 일대를 순찰하고 있었다. 나례청 지부 설립을 위한 공사가 한창인 만큼 부정이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약 1년 전부터 대릉원 안에서는 나례청 경주 지부 건설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 주임은 현장을 관리·감독하는 책임자였다. 대릉원은 신라 시대의 왕릉이 밀집해 있는 묘역이므로 각별한 감시가 필요했다. 무덤이 있는 곳은 기운이 강하여 귀신이 들끓기 마련이었다.
순찰을 마친 최 주임은 대릉원 안에서 유일하게 담장이 둘러져 있는 미추왕릉으로 향했다. 미추왕릉으로 가는 길에는 빽빽한 대나무 숲이 있었다. 댓잎이 스치며 스스스, 소리가 났다. 대숲 앞에서 걸음을 멈춘 최 주임은 좌우를 살폈다가 울창한 대나무를 양옆으로 가르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대나무 숲을 헤쳐 가며 몇 발자국 걸어 나갔을까, 어느 순간 점점 시야가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평범한 인간은 닿을 수 없는 장소였다.
안에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망치질하고 뚝딱이는 소리가 들렸다. 곳곳에 조명을 밝혀 둔 탓에 대낮처럼 환했다. 인부들이 자재를 짊어지고 부산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은 전부 평범한 범인(凡人)이었다. 범인인 인부들이 이 공간에 출입할 수 있는 것은 부적부에서 피를 매개로 한시적인 주술을 걸어 두었기 때문이었다. 공사가 끝나고 주술의 효력이 다하면, 인부들은 이 장소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못할 것이다.
종묘 안에 자리한 본청과 마찬가지로, 지금 짓고 있는 경주 청사 역시 드러나서는 안 되는 건물이었다. 건물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서는 아주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빈터에 흰 털을 지닌 동물의 피를 뿌리고 100일간 제사를 지낸 뒤, 땅속에 부적을 묻었다. 그런 다음에는 정화부에서 터를 정화하며 몇 달에 걸쳐 결계를 쳤다. 공사에 쓰인 재료들 또한 하나같이 특별하고 영험한 재료들이었다.
공사를 준비하는 기간만 따져도 족히 몇 년은 걸린 셈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 준비한 공사였다. 다행히 무사히 공사에 착수했으나 그 이후에도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직접 건물을 짓는 사람은 부정이 타지 않도록 정결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범인을 공사 현장에 투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귀신을 보고 듣는 귀재이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귀감이 열려 있는 사람은 그만큼 영향을 많이 받기 마련이므로 귀신이 꼬이거나 부정한 기운을 옮아 올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현장에 투입된 인부들은 하나같이 감이라고는 없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범인들이었다. 조금이라도 귀감이 있거나 가물의 체질을 지닌 것은 아닌지 몇 차례나 검증을 거쳤다. 심지어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받아서 ‘귀문살’이 있는지 없는지 사주까지 풀어 보았다.
그만큼 지부 설립은 나례청에 있어 무사히 완수해야 하는, 매우 중대한 일이었다.
“잠시 쉬었다가 합시다.
팔짱을 끼고 잠시 현장을 둘러보던 최 주임이 손뼉을 맞부딪쳤다. 최 주임이 손뼉을 치며 휴식을 알리자, 인부들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숨을 돌렸다.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던 인부 하나가 기지개를 켰다. 공사에 투입된 지 며칠 안 된 김 씨였다.
“아이고, 되다.”
인부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김 씨는 아직 현장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다. 뻐근한 목을 꺾어대던 김 씨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대숲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생님, 어디 가십니까?”
그때, 등 뒤에서 최 주임이 입을 열었다.
“어이쿠. 내 정신 좀 봐, 또 깜빡했네.”
김 씨가 멋쩍어하며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잠시 화장실에 좀….”
김 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최 주임이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선생님, 원내에서는 2인 1조로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몇 번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어디 가실 땐 꼭 저에게 말하고 가셔야 합니다.”
“예, 예.”
김 씨가 머쓱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어, 임 형. 나랑 좀 가줘요.”
임 형이라 불린 사내가 흔쾌히 따라왔다. 임 형을 대동한 김 씨는 대나무 숲을 헤치고 나오자마자 이내 떫은 표정으로 “나, 참… 살다 살다….”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별스럽기는.”
김 씨가 투덜거리자 동행한 인부가 어색하게 말을 얹었다.
“힘드시죠? 적응하면 금방 괜찮아지실 거예요.”
“돈이나 많이 주니 망정이지, 안 그랬음 진작 날랐어요.”
김 씨는 이 현장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참이긴 했지만, 지금껏 30년이 넘도록 목수 일을 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사람이었다. 그만큼 산전수전도 많이 겪었고, 별의별 공사판을 다 가보았다. 그런데 오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해괴한 현장은 처음이었다.
며칠 전, 건너건너 알고 지내던 인맥으로부터 돈을 많이 주는 공사가 들어왔다며 현장을 소개받았다. 그런데 막상 소개받고 보니 뭘 짓는지 알려주지도 않는 데다가 위험한 현장이라서 각서를 쓰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각서라는 것을 받아보니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1. 공사가 끝날 때까지 절대 금주할 것
2. 매일 현장에 출근하기 전 반드시 목욕재계할 것
3. 단독 행동을 삼가며 현장에서는 반드시 2인 1조로 움직일 것
4. 정해진 동선을 이탈하지 말 것
5. 혼잣말하거나 콧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
6. 공사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평생 비밀에 부칠 것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을 짓는 공사이길래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조건이 따라붙는가 황당할 따름이었다. 다른 현장에서보다 몇 배나 많은 노임을 준다는 말에 혹한 제 잘못이었다.
“그럼 금방 나올 테니까 여기 있어요.”
구시렁거리며 화장실에 도착한 김 씨는 임 형을 밖에 세워두고 홀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렇게 볼일을 보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였다. 문밖에 서서 기다려야 할 임 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리춤을 추슬러 올리던 김 씨는 어리둥절한 낯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임 형?”
김 씨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먼저 간 건가? 하지만 말도 없이 갔을 리가 없는데. 김 씨는 어색하게 임 형, 하고 목소리를 내며 좌우를 살폈다. 그러나 임 형은 사라진 상태였다.
김 씨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별스럽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어둠에 물든 광활한 장소에 혼자 남았다는 공포로 인해 이성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휘이이—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던 김 씨가 재빨리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휘파람 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김 씨를 따라오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가던 김 씨는 점점 겁에 질렸다. 누군가 뒤를 쫓아오고 있는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작정 뛰다시피 대숲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휘이이—
또다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김 씨가 벌벌 떨며 귀를 틀어막았다.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김 씨는 헐레벌떡 담벼락 아래로 몸을 숨겼다. 기왓장이 얹혀 있는 돌담에 등을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 순간, 휘파람 소리가 뚝 그쳤다.
마침내 안심한 김 씨가 천천히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허, 헉!”
김 씨가 숨을 들이켜며 기함했다.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성인 어깨높이의, 기왓장이 얹힌 담벼락 위에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희미한 달빛을 받으며 앉아 있는 정체 모를 인영은 긴 도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도포와는 어울리지 않는 남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에는 검은 면사가 달린 너울을 쓰고 있는 탓에, 얼굴이 완전히 가려져 있어 생김새가 보이지 않았다.
귀, 귀신인가?
묘하게 이질적인 차림에, 김 씨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와들와들 떨던 김 씨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대로 발이 꼬인 나머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와 동시에 담벼락 위에 앉아 있던 남자가 훌쩍 땅으로 뛰어내렸다. 가뿐히 땅을 딛고 선 남자가 어깨 근처로 큼직한 손바닥을 펼쳐 보이더니, 손끝을 살랑거렸다.
“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