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255)화 (255/348)

#255

텅 빈 밤거리를 방황하던 재겸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어느덧 깊은 새벽이었다.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던 재겸은 곧바로 쓰러지듯 잠에 빠졌다. 잠은 언제나 그렇듯이 훌륭한 도피처였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푹 자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거여도에서 돌아온 이후, 재겸은 때때로 악몽을 꾸었다.

윤태희가 죽는 꿈이었다. 내용은 언제나 절망적이었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윤태희를 품에 안고 끙끙대거나 혹은, 다친 윤태희를 둘러업고 정신없이 달려 나가다가 어느 순간 땅이 늪처럼 변하며 옴짝달싹하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세세한 부분은 조금씩 달랐으나,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죽어가는 윤태희를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점이 그러했다. 꿈속의 재겸은 끝내 죽어가는 윤태희를 구하지 못했으며, 아무리 발버둥 쳐도 거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늘도 그런 꿈이었다.

- 태희야!

처절한 악몽 속에 붙잡힌 재겸은, 피에 젖은 윤태희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 눈이 번쩍 뜨이며 시야가 바뀌었다. 재겸은 헉, 숨을 들이켜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움직임의 반동으로 침대가 한차례 출렁거렸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자 어느덧 저 멀리 동이 터 오고 있었다. 끔찍한 악몽에 시달린 재겸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으, 으….”

현실의 일과 뒤섞인 꿈은 잔혹하리만치 선명했다. 재겸은 꿈에서 깨어났음에도 무엇이 실제이고 허상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이번 꿈은 유독 생생해서 헤어나기가 힘들었다.

“아니야….”

재겸은 떨리는 손으로 머리맡을 헤집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재겸은 겁에 질려 있었다. 머릿속에는 윤태희가 살아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절박한 생각뿐이었다. 베개에 깔려 있던 휴대폰을 찾아낸 재겸이 윤태희에게 전화를 걸려던 순간이었다.

협탁 위에 올려둔 윤태희의 휴대폰이 보였다.

“…….”

그제야 재겸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난밤의 일이 떠오르면서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깊이 안도함과 동시에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어마어마한 탈력감이 찾아왔다.

아, 이번에도 꿈이었구나.

재겸은 얼굴을 감싸 쥐며 상체를 푹 수그렸다. 재앙신이 심술을 부리는 것인지, 아니면 정신적인 충격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반복적인 꿈을 꿀 때마다 정신이 무너질 것 같았다.

재겸은 조금씩 망가져 가고 있었다.

***

잠에서 깨어난 재겸은 출근 준비를 했다.

어제 늦게 들어온 데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피곤했지만, 오늘은 오전 출근이었다. 악몽의 여파가 남아 있었지만 재겸은 내색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식구들과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아까부터 마음 한편에는 희미한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꿈은 어디까지나 꿈일 뿐이라고, 마음속에 드리운 불안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재겸은 자꾸만 두려워졌다. 꿈은 가끔 어떤 징조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재겸이, 어제 잘 들어갔어?”

사무실에 들어서자 팀원들이 초주검이 된 몰골로 재겸을 반겨 주었다. 퀭한 안색을 보아하니 어제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재겸은 수석실로 시선을 던졌다.

윤태희는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재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이번 달 근무표를 확인해 보았다. 제1팀 팀원들의 근무 스케줄이 알아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제 윤태희가 놓고 간 휴대폰을 돌려줘야 하는데, 휴무일이라면 곤란했다. 그러나 다행히 윤태희도 오늘 오전 출근이었다. 근태가 불성실한 윤태희는 오전 출근을 하는 날이면 열에 아홉은 지각을 하는 편이었다.

그때만 해도 재겸은 윤태희의 부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올 때 되면 알아서 오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점심때가 가까워지도록 윤태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수석님 오늘따라 늦으시네. 왜 안 오시지?”

팀원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누가 전화라도….”

“수석님 휴대폰 재겸이가 가지고 있잖아.”

“아, 맞다. 그랬지.”

윤태희는 평소 지각을 자주 하고,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다가도 행방을 밝히지 않고 자리를 비우거나 외근을 나가는 일이 잦았다. 때문에 팀원들 역시 윤태희의 부재에 익숙한 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팀원들은 윤태희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 오면 내심 불안한 심정이 되었다. 거여도에 갔던 윤태희가 하루아침에 죽다 살아서 돌아온 그때부터였다.

혹시 어디서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윤태희가 생사의 기로에 설 정도로 크게 다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물론, 귀신이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생겨난 일이 아니라, 재겸의 훈련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일은 팀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파고들지 않은 것은, 당사자인 재겸과 윤태희를 위한 배려였다. 팀원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때 있었던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1팀 사무실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아무리 지각해도 이렇게 늦으신 적은 없었잖아.”

다리를 달달 떨던 표지호가 끝내 불문율을 깨고 입을 열었다.

“혹시 또, 어디서 무슨 일 생기신 거 아니야?”

“게다가 수석님 어제 술 엄청 드셨잖아.”

결국, 재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재겸에게로 향했다.

“제가 가볼게요.”

이 상황을 제일 견딜 수 없는 건 재겸이었다.

“응? 어디를?”

“수석님 집에요.”

재겸은 윤태희의 집 주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윤태희가 오기를 기다리자니 피가 마르는 듯했다. 저번에 한 번 가봤으니 찾아가는 데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재겸아, 수석님 집 어딘지 알아?”

팀원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재겸이 고개를 끄덕이자, 표지호와 강이빈이 기묘한 표정으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사실 윤태희와 재겸이 함께 휴가를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을 때도 팀원들은 적잖이 놀랐다. 윤태희는 훌륭한 상관이었고 누구에게나 다정하였으나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이 있었다. 팀원들 모두 내색하지는 않았어도 은연중에 느끼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둘의 사이는 뭔가 묘할 만큼 각별하게 가까운 것 같았다.

“그래, 다녀와.”

재겸은 의자에 걸어두었던 슈트 재킷과 크로스백을 챙겨 들고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 본청에서 나와 대로변에 나오자마자 팔을 뻗어 택시를 잡아탔다. 하이펠리스 B동 1402호.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밝힌 재겸은 초조한 심정으로 달리는 차 창 밖을 내다보았다.

쏜살같이 흘러가는 바깥 풍경을 보고 있자니 오만 잡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 여기서 창문 열고 뛰어내리면 돼?’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전부 없었던 일로 생각해도 돼.’

재겸은 자꾸 두려워졌다. 침착할 수가 없었다. 어제 윤태희의 키스가 절박하게 느껴져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입맞춤을 나눈 후여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윤태희는 어제 모든 걸 체념한 사람처럼 굴었다. 꼭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만 같았다.

대체 무엇이 이렇게 무섭고 두려운지 재겸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다행히 윤태희가 사는 아파트는 본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십 분 남짓 소요되는 거리였다. 택시에서 내린 재겸은 아파트 입구로 향했다. 차에서 내렸을 때는 제법 차분하게 걸었지만, 점점 걸음이 빨라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뛰고 있었다.

이전에 와봤던 기억을 더듬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이펠리스는 고급 아파트였다. 1층 로비에는 빌딩처럼 안내 데스크 같은 것이 있었고, 정장을 입은 보안요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냐는 말에, 재겸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대답했다. 재겸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4층 버튼을 눌렀다.

어느덧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14층에 도착할 때까지 엘리베이터 안을 이리저리 배회하며 서성이던 재겸은, 문이 열리자마자 총알같이 튀어 나갔다.

윤태희의 집 앞에 도착한 재겸은 손에 쥔 땀을 옷에 문질러 닦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분명히 안에 있을 것이다. 재겸은 긴장한 얼굴로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누르자, 새가 지저귀고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났다.

경쾌한 초인종 소리가 길게 이어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뚝 끊겼다.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재겸은 안절부절못하며 몇 번이고 연달아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 너머의 기척을 듣기 위해 귀를 갖다 대 보았으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재겸은 마침내 덜컥 겁이 났다. 그럴 리가 없다. 꿈은 꿈일 뿐이다. 숨결이 흐트러졌다. 어깨를 가파르게 들썩거리던 재겸은 주먹으로 사정없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윤태희!”

쾅쾅쾅, 몇 번이고 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문이 부서져라 두들기던 재겸이 어느 순간,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문 손잡이를 잡고 마구 달각거렸다.

“태희야.”

어느덧 재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태희야!…”

아무리 손잡이를 흔들어봐도 당연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재겸은 도어 록을 열었다. 번호가, 번호가 뭐였지? 머릿속이 마비된 탓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재겸이 씩씩거리며 손으로 되는대로 마구 터치패드를 눌러댔다. 삑삑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때, 갑자기 안쪽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문에 달라붙어 있던 재겸은 문짝에 그대로 머리를 쿠당, 부딪혔다. 갑작스런 충격에 재겸이 이마를 감싸 쥐고 한 발짝 물러섰다.

“아… 윽….”

이마를 붙잡고 잠시 끙끙대던 재겸이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샤워 가운을 걸친 윤태희가 문을 반쯤 연 상태 그대로 재겸을 바라보고 있었다. 샤워하는 도중에 급하게 나왔는지 머리에서 물기가 뚝뚝 흐르고 있었고, 가운 사이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체에는 미처 씻어내지 못한 거품이 묻어 있었다. 재겸은 말을 잃고 눈앞에 있는 윤태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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