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260)화 (260/348)

#260

검은색 카니발에 올라타 있던 암행부 제3팀 나자들이 바깥을 내다보았다.

“아니, 쟤네 뭣들 하는 거야?”

공주로 향할 예정이던 암행부 제3팀 나자들은 대로변에 차를 정차한 채 임효문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임효문은 아까부터 밖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안된다니까!”

“왜 안 되는데?”

“넌 수습이잖아.”

“그러는 너도 수습이잖아.”

바깥에서는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아니, 나는 우리 수석님이 따라오라고 허락한 거고!”

임효문이 답답해하며 말했다. 실랑이가 이어지자, 대로변에 정차하고 있던 검은색 카니발이 빵빵, 클랙슨을 눌렀다. 안 타고 뭐 하고 있느냐고, 어서 타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그에 임효문이 화들짝 놀라서 카니발을 돌아보았다가, 금방 가겠다는 듯이 손을 들어 보이며 양해를 구했다. 중간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냥 조용히 따라가기만 할게.”

“대체 왜 가려는 건데?”

“그, 그건… 나도 경험 좀 쌓자. 경험은 너만 쌓냐?”

“…….”

임효문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안 돼. 선배들한테 혼난단 말야.”

임효문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래? 그럼 먼저 가. 나는 택시 잡아서 뒤쫓아 갈 테니까.”

재겸은 곧바로 대로변 쪽으로 몸을 움직이며 손을 뻗었다. “그럼 되지?” 금방이라도 택시를 잡을 것 같은 기세에 임효문이 식겁하여 재겸의 팔을 잡아당겼다.

“미친놈아! 너 택시 타면 거기까지 20만 원은 나와!”

“그럼 그 20만 원 너 줄 테니까 나도 데려가든지.”

재겸은 진심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뒤쫓아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말려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심드렁하고 무심하던 칠칠이가 이렇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건 처음이었다. 임효문이 탈색모를 벅벅 긁으며 복장이 터진다는 얼굴을 했다.

“아놔, 미치겠네! 진짜.”

빵빵!

“진짜 안된다니까….”

빵빵!

“아이, 몰라! 일단 타! 난 진짜 모른다, 너 알아서 해!”

재겸은 임효문이 허락을 무르기 전에 냉큼 뒤쫓아가 뒷좌석에 올라탔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있던 선배 나자들이 당황한 눈으로 “응? 뭐야? 누구야?” 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축역1팀 수습 김재겸이요….”

재겸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자기소개를 했다. 임효문은 기가 막혔다. 암행부 팀원들은 임효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눈빛을 보냈다. 재겸에게는 확실히 배짱이 있었다. 한 번 무언가를 하겠노라 마음을 먹으면 그대로 밀고 나가는 호전적인 기질이 있었고, 고집도 셌다.

“아하하… 그게, 그….”

덕분에 고생하는 건 임효문이었다.

“일, 일단 출발하셔도 될 것 같지 말입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한참을 달리고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렸을 때는 어느덧 한밤중이었다. 공주 지부의 위치는 태화산을 진산으로 하는 유구 마곡 일대로, 조선 시대 때부터 십승지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었다. 십승지는 외침을 피하고 보신할 수 있다고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었다.

도중에 쫓겨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고맙다. 신세 졌어.”

차에서 내린 재겸은 임효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됐어, 위험한 짓만 하지 마.”

임효문이 불퉁한 얼굴로 구시렁거렸다.

너 알아서 해! 하고 쏘아붙이며 발을 빼는 듯했지만, 임효문은 확실히 의리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합류에 팀원들이 낯을 굳히자, 임효문은 자기 일처럼 발을 벗고 나선 것이다.

“죄삼다. 제, 제가 책임지겠슴다….”

“책임? 나 참, 수습 주제에 말은 잘해요!”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에 접어들 때까지, 임효문은 선배들에게 들들 볶였다. 구박받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살짝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별수 없는 일이었다. 서울에 혼자 남아 윤태희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이 편이 훨씬 나았다.

“동기 좋다는 게 뭐겠습니까. 축, 축역부는 위험하잖아요. 저희는 후방 지원이라 그렇게 위험하지도 않을 거고! 저랑 얘랑, 둘이 찍소리 안 하고 딱 붙어 있을게요.”

운전 중이던 권 주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룸미러를 힐끔거렸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공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암행부 제3팀에 축역부 수습 나자가 혹처럼 붙어 버렸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한 재겸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재겸은 살짝 멀미를 했다. 권 주임의 운전 실력이 꽤 과격한 탓이었다. 차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디뎠는데도 가벼운 어지럼증이 남아 있었다.

재겸은 어둠에 잠긴 산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산을 바라보는데, 재겸이 어느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신기루처럼 눈앞에서 무언가 아른거렸다. 눈앞의 거대한 산 전체를 감싸고 있는, 그보다 거대한 손이 보인 것 같았다.

뭐지?

재겸이 두 눈을 비비적거리며 다시 산을 바라볼 때였다. 어느새 손은 사라지고, 산 전체를 둘러싼 희미한 빛이 보였다. 마치 은은한 조명이 산을 비추는 것 같았다.

“왜 그래?”

임효문이 물었다.

“불력(佛力)이 강한 산이네.”

“뭐?”

“산 능선을 따라서 후광이 있잖아.”

재겸의 말에, 암행부 팀원들이 일제히 재겸을 바라보았다.

“…….”

“…….”

권 주임이 몹시 놀라워하며 입을 열었다.

“축역부에 괴물이 들어왔다더니 사실인가 보네.”

“네?”

“이 산에는 절이 하나 있는데, 그 절의 기운이 산 전체를 감싸고 있다고 들었어. 불력이 강한 산은 부정 자체를 정화하는 힘이 있어서, 누구는 산 전체에 빛이 보인다고 하더라.”

권 주임은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들을 위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마친 권 주임이 고개를 돌려 재겸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권 주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좀 질투 나는데. 나는 안 보이거든.”

임효문은 새삼 감탄한 표정으로 재겸을 바라보았다.

“역시 넌 대단해.”

재겸은 말없이 볼을 긁적거렸다.

“하지만 불력이 강한 산은 위험하다고 들었는데요.”

“응? 위험하다고?”

“네. 귀재의 기운까지 억눌려서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묘정과 팔도를 떠돌아다닐 적에 불력이 강한 산은 일부러 피해서 돌아가곤 했다. 묘정이 말하길, 불력이 강한 산은 그 기운이 몹시 엄하기 때문에 잘못하다간 동티가 옮기 십상이라고 했다. 재수가 없으면 나무를 건드리거나 돌 하나만 걷어차도 산이 화를 낸다고 했었다.

“뭐? 그런 얘기 처음 듣는데.”

그런데 나자들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나례청에서 이 산에 지부를 짓지 않았겠지. 불력이 강한 산은 부정이 저절로 정화되기 때문에, 잡귀의 접근이 어려워서 오히려 귀재들한테는 더 좋아.”

권 주임이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애초에 그렇게 까다로운 곳이라면 나례청 지부를 설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묘정이 허튼소리를 한 걸까… 재겸은 일단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암행부를 따라 산의 입구로 향할 때였다.

- 가지 마.

어디선가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뭐?”

재겸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임효문이 물었다.

“또 왜?”

“어? 아… 아냐.”

재겸은 방금 전의 목소리가 제 안에 들려온 것임을 알아차렸다. 기분 탓인지 산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왠지 몸이 천근만근이고, 속이 약간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설마 아직까지 멀미 기운이 남아 있는 건가 싶었다.

왜 이러지?

그 순간, 재겸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 있었다.

‘불력이 강한 산은 부정을 정화하는 힘이 있어.’

“…….”

설마, 이 안에 든 것 때문에 그러는 걸까.

재앙신의 존재를 떠올린 재겸은 저도 모르게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그렇다면 묘정이 왜 한사코 불력이 강한 산을 피해라 당부하였는지 이해가 된다. 불력이 강한 산에 들어가면 이렇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던 묘정은, 그 사실을 숨기려고 대충 구실을 만든 모양이었다.

“괜찮아? 너 어디 아프냐?”

재겸이 점점 뒤처지자, 임효문이 물었다.

“아냐, 그냥 산 올라가는 게 힘들어서 그래.”

상태가 이상한 걸 들키면 산에서 내려가라고 할까 봐, 재겸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그에 재겸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임효문이 재잘재잘 말했다.

“그러니까 왜 따라오냐, 집에서 편히 쉬라니까. 나야 수석님이 같이 가자고 해서 온 거지만, 사실 나였으면 신나게 집에서 놀았을 텐데. 너도 참 특이하다, 위험한데 왜 굳이…….”

그때, 임효문의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얘 설마… 이빈 누님 때문에!

왜 진작 생각 못 했지! 뒤늦게 퍼즐이 짜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칠칠이가 이렇게 끈질기게 따라온 이유. 그건 바로 이빈 누님 때문이었던 거다! 임효문은 재겸이 강이빈을 걱정하여 여기까지 온 거라고 자체 결론을 내렸다. 임효문은 비밀 엄수를 위해 앞서 걷던 팀원들로부터 일부러 거리를 벌리며, 느릿느릿 올라오고 있는 재겸의 곁에 후다닥 밀착했다.

“너 설마, 사랑을 지키러 온 거냐?”

어지러워 죽겠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뭐?”

재겸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미치겠다, 하놔~ 내가 또 이런 데선 눈치가 빨라요….”

그러나 임효문은 이미 상황 파악을 끝냈는지, 알만 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휴. 그래. 칠칠아. 너도 남자구나.” 심정은 이해한다. 칠칠이는 이빈 누님을 좋아하니까.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위험한 현장에 이빈 누님이 있으니, 지키고 싶은 마음에 따라온 것이 분명했다.

“얘 진짜 큰일 날 애네. 아주 그냥, 어? 사랑에 눈이 멀었어!”

“…….”

“나는 또, 네가 마음 접은 줄 알았네.”

“…….”

“하긴, 진짜 마음을 접었으면 이렇게까지 안 하지.”

“…….”

“너보다 몇 년을 더 살았는데, 내가 그걸 모르겠냐? 어?”

“…….”

“칠칠아, 정 그렇게 마음 접기 힘들다면 차라리 솔직해져 봐.”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산을 오르던 재겸이 결국 걸음을 멈췄다.

“야. 효문아.”

“응?”

“너 먼저 가라.”

“뭔 소리야. 너 길도 모르잖아.”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던 재겸이 근처 나무를 짚었다. “운동 좀 해. 이걸로 힘들어서 되겠냐?” 임효문이 잔소리를 할 때였다. 재겸이 몇 번 헛구역질을 하더니, 울컥 토를 했다.

헉, 임효문이 사색이 되어 숨을 들이켰다.

“야! 칠칠아! 왜 그래! 괜찮아?”

임효문은 재겸의 한쪽 어깨를 둘러메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재겸을 황급히 부축했다. 지부 안에 주둔하고 있는 정화부가 있을 테니 빨리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될 것 같았다.

“서, 선배님들! 칠칠이가…!”

몇 보 앞서 걷던 팀원들을 불러 세우기 위해, 임효문이 고개를 들고 벌컥 목소리를 낼 때였다. 임효문은 뒷말을 뱉지 못하고, 숨을 덜컥 들이켜며 그대로 멍하니 굳고 말았다.

팀원들은 온데간데없이, 정체불명의 희뿌연 안개가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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