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
자정을 앞둔 시각, 공주 지부 일대에는 엄숙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주 지부를 수호하고, 외침을 진압하라.'
이것이 본청에서 전해온 명령이었다.
공주 지부는 산과 산이 이어진 거대한 산맥 어딘가에 지어져 있었다. 평범하게 두 발로 걸어서는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공부 지부 역시 본청과 마찬가지로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닿으려면 종묘의 문을 열어야 하듯이 나자들 역시 통로를 통해야만 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전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전각 뒤편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넓은 운동장만 한 크기의 야트막한 평지가 펼쳐졌다. 공주 지부의 풍경은 흡사 작은 마을 같았다. 우거진 나무를 둘러싸고, 돌담을 세워 막은 공주 지부의 담장 너머로는 한옥 건물이 몇 채가 있었고, 짓다 만 상태로 늘어서 있었다.
공주 지부에 배치된 나자들은 습격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다.
정화부는 일대에 결계를 쳤고, 부적부는 산어귀부터 곳곳에 진을 걸어 두었다. 제구부는 귀신을 벤다는 사인검과 그 밖에 제구들을 지급하였고, 암행부는 후방에서 지원 및 엄호를 맡았다. 축역부는 순찰과 방어, 진압 담당으로 전방에서 침입자와 정면으로 격돌해야 했다.
때문에 축역부 나자들은 제각기 얼굴에 탈을 쓴 채, 지부를 둘러싼 담장을 따라서 가로등처럼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었다.
윤태희는 이매탈 너머로, 보름달이 뜬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이다.
이곳의 불력이 강하다는 것을 윤태희도 알고 있었다. 이미 영귀들에게는 언질을 해 두었다. 불력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땅을 딛지 말아야 한다. 땅에 머무를수록 불력의 힘이 세지기 때문에 땅을 딛지 말고, 나무나 지붕 위에서 움직이라 미리 전해 두었다.
“윤 수석님!”
팔짱을 끼고 전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그때, 부적부 나자 김 수석이 다가왔다. 윤 수석이 멈칫하며 김 수석을 바라보았다.
“산어귀에 침입이 있습니다.”
김 수석은 설핏 인상을 쓰며 먼 하늘을 돌아보았다. 품속에 있던 부적을 꺼내 살펴보니 모퉁이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진에 무언가 잡혀서, 포획되었다는 신호였다.
부적부는 일찍이 이곳에 내려와 산의 초입부터 꼼꼼히 진(陣)을 그려둔 참이었다. 가두고 진압하는 진이었다. 인간의 기운이 아닌 것이 지형지물을 건드렸을 때 발동하게 해 두었다.
“삿된 것이 산에 들어왔군요.”
모퉁이가 검게 타들어간 부적을 바라보던 윤태희가 태연히 말했다.
“벽사단이라면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겠는데.”
“그랬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주변을 지나는 멧돼지나 야생동물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벽사단의 영귀라면, 그 자리에서 포획해야 하니 윤 수석님께서 동행하여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윤태희는 일단 김 수석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행동 개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영귀들이 나타나야 하는 시각은 7월 7일이 되는 12시, 자정이었다.
설마 우리 쪽에서 걸린 걸까.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어느덧 시침은 자정을 가리키는 숫자 ‘12’에 닿을 듯이 가까워져 있었다. 덫에 걸린 게 우리 쪽 영귀일지 아닐지, 그 여부는 공주 지부의 문턱을 넘기 전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김 수석을 뒤따라가던 윤태희가 어느 순간 걸음을 늦췄다.
3.
2.
1.
마침내, 시침이 숫자 ‘12’를 가리키는 순간이었다.
휘이이잉——
창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은 밤하늘에 번쩍, 하는 커다란 빛이 터졌다. 폭죽과도 같은 것이 폭발했다. 섬광이 터지며, 달보다도 더 밝은 빛이 검은 밤하늘에 환하게 밝혔다.
김 수석과 윤태희가 멈칫하며 발길을 멈추고 밤하늘을 돌아보았다.
행동 개시를 알리는 신호였다.
역시.
탈 속에서, 윤태희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진에 걸린 것은 우리 쪽이 아니다. 영귀가 덫에 걸렸을 리 없었다. 계획에는 문제가 없었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저, 저기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어 가리켰다.
흑의를 입은 벽사단의 단원들이었다.
담장 바깥, 나무 위에 듬성듬성 올라 서 있는 인영이 보였다. 달빛을 받고 서 있는 인영은 총 여섯이었다. 크고 작은 체격의 영귀들은 면사를 쓰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어린아이처럼 작은 체격이었는데, 제 몸집만 한 거문고를 끌어안고 있었다. 어린 영귀는 거문고를 안고 자세를 잡더니, 술대를 손에 쥐었다.
구슬픈 연주가 흘러나왔다.
연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흑제가 팔을 펼쳤다. 그러자 땅이 한순간에 검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곳곳에 밝혀둔 조명이 터져나갔다. 섬광이 사라지고, 공부 지부는 암흑에 잠겼다.
자정. 벽사단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
정말이지 요상한 일이다.
“아놔, 미치겠네! 대체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임효문은 재겸을 등에 업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헤매고 있었다. 주변을 걸어도 걸어도 같은 길이었다. 갑작스럽게 안개가 드리운 이후로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재겸은 토를 한 이후로 데친 시금치처럼 축 늘어져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임효문은 등에 업은 재겸을 추슬러 올리며 “칠칠아, 괜찮아?” 하고 물었다.걷기도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냅다 등에 업고 걸음을 옮기던 참이었다. 그러나 자욱한 안개가 사방을 가린 탓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에 휩싸인 후로 이상하게 몸이 붕붕 뜨는 느낌이었다.
선배들의 뒤를 놓친 임효문은 깜짝 놀라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으나 어째선지 전화도 터지지 않았고, 아무리 목청을 높여 선배들을 불러도 돌아오는 대답도 없었다.
얼마나 길을 헤맸는지 알 수 없었다. 임효문은 점점 두려워졌다.
“야… 효문아….”
그러던 어느 순간, 등에 업혀 있던 재겸이 힘없이 입을 열었다.
“대체 얼마나 더 가야 되는 거야?”
“어헝, 모르겠어. 길 잃어버렸나 봐. 어떡하냐.”
임효문이 울먹울먹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그나저나 이제 좀 정신이 들어?”
“응. 아까보다 괜찮은 것 같어.”
임효문의 등에 업혀 있으니, 땅에 서 있을 때보다 덜 어지러운 것 같았다. 땅의 기운에서 멀어지면서 불력의 영향이 약해진 것 같았다. 임효문의 등에 업히기를 잘한 일이었다.
“야, 잠깐 멈춰 봐.”
“어? 왜?”
“일단 내려줘 봐.”
임효문의 등에서 내려온 재겸이 비틀거렸다. 좀 나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기운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지럽고 머리가 아팠다. 그러나 재겸은 정신을 집중하고 땅에 손을 짚었다.
“이건….”
재겸이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씨발, 덫에 걸렸어.”
“덫?”
“그래. 이건 침입자를 가두는 감금 진이야.”
임효문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걸 어떻게 알아?”
재겸은 별 대답 없이 울렁거리는 속을 가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왜 이런 덫에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을 깨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임효문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재겸은 임효문에게 잠깐 뒤돌아 있으라고 했다.
“왜? 오줌 매렵냐?”
“…어.”
“엉. 알았어. 얼른 싸.”
임효문이 순순히 뒤를 돌았다. 재겸은 재빨리 손끝을 깨물고, 손바닥에 피로 글자를 휘갈겼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재겸은 허리를 굽히고 땅에 양손을 짚었다.
재겸이 뭐라 작게 중얼거리자,
쿠구구궁—
땅에서 이상한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에 깜짝 놀란 임효문이 펄쩍 뛸 때였다. 안개가 한순간에 흩어지고, 검은 밤하늘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임효문이 눈을 크게 떴다.
“뭐, 뭐야!”
답답한 안개가 가시고, 생생한 현실감이 밀려들었다. 임효문이 몹시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던 그가 화색을 띠고 재겸을 돌아보았다.
“칠칠아! 네가 한 거야? 어떻게 한 거야?”
“몰라. 그냥 저절로 된 것 같은데….”
“네가 오줌 눠서 덫이 깨졌나?!”
임효문이 매우 기뻐하는 낯으로 재겸의 등을 퍽퍽 쳤다.
“야씨, 대박이네! 야, 오줌 싸길 잘했다.”
재겸은 애써 시치미를 떼며 식은땀을 닦았다. 윤태희의 말이 맞았다. 정체를 들킬 수도 있다는 말. 임효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수습 나자가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을 분명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최대한 모르는 척하는 게 최선이었다. 임효문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다가, 재겸을 보았다가, 또 주변을 돌아보며 감탄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일단 가자, 너 길 안다며.”
“응. 다시 업힐래? 걸을 수 있냐?”
“아니, 못 걸어. 힘들어.”
진을 깬다고 땅에 내려왔더니 그새 어지럼증과 구역질이 심해졌다. 재겸은 일부러라도 임효문의 등에 업혀 있기로 했다. 땅에서 떨어져 있으면 그나마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다시 방향을 찾은 임효문은, 재겸을 업고 산 중턱의 전각으로 향했다.
“다 왔다! 아, 이게 무슨 고생이야!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네.”
임효문은 전각 앞으로 가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선배들한테 이야기를 들었던 대로, 전각의 기둥 어딘가에 손을 대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아까 전까지만 해도 벽뿐이었던 전각 뒤편에 못 보던 문이 하나 생겨 있었다.
임효문이 재빨리 문을 활짝 펼치듯이 열었다.
그런데, 문을 열어도 아무런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공주 지부에 입성한 두 사람을 맞이한 것은 매캐한 연기였다. 불씨가 섞인 뜨거운 바람과 불타는 연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뭐, 뭐야!”
임효문이 사색이 되어 입을 틀어막았다.
“이게 웬 불이야? 지금 불 난 거야?”
등에 업혀 있던 재겸이 덜컥 숨을 들이켰다.
“말, 말도 안 돼…….”
잠시 길을 잃었던 사이, 이미 습격은 끝난 듯했다.
임효문은 몹시 당황한 얼굴로 문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황급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지부 건물과 산 일대에 커다란 불이 번지고 있었다. 그가 사색이 되어 재겸을 매달고 달리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임효문은 몸을 덜덜 떨면서도 계속 달려 나갔다.
“선, 선배님들! 선배님들!”
그런데, 마구 달리다 보니 누군가 검을 떨어뜨린 채 쓰러져 있었다.
“저, 저기요! 괜찮으세요?”
쓰러진 나자를 흔들어 깨웠다. 그러나 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임효문이 울먹거렸다.
“켁,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임효문의 얼굴이 불타는 연기에 어느덧 눈물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눈이 매웠고, 코가 쓰렸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재겸도 몹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주 지부의 풍경은, 아무리 봐도 상황 종료였다. 건물은 불에 타고 있었고, 근처 나무와 숲으로 산불이 번지고 있었으며, 곳곳에 나자들이 쓰러져 있었다. 움직이는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침내 재겸은 덜컥 겁이 났다.
“나, 나 좀 내려 줘.”
“뭐? 안 돼! 일단 나가자!”
“씨발, 내려 달라고!”
윤태희가 무사한지 확인해야 했다. 재겸이 마구 발버둥을 쳤다. 그에 임효문이 재겸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팔을 풀었다. 철푸덕, 넘어진 재겸이 휘청휘청 몸을 일으킬 때였다.
“끼야아아아악—!”
갑자기 임효문이 돌고래처럼 비명을 질렀다.
“왜, 왜 그래?”
재겸이 깜짝 놀라서 임효문을 돌아보았다.
“악귀다! 악귀야, 귀신이야아아악! 아악!”
임효문이 괴성을 지르며 물러서다가 다리가 꼬여서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재겸은 번쩍 고개를 돌려 임효문이 가리킨 방향을 돌아보았다.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 키가 훤칠한 두 인영이 보였다. 각각 검은 두루마기와 붉은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두 영귀는 어디론가 향하다 말고 걸음을 멈춘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벽사단?”
재겸은 제 눈을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