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301)화 (301/348)

#301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니 옆에 있던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바깥으로 나온 묘정은 주변을 살피다 높은 나무에 매미처럼 붙어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게서 뭐 하니?”

“알 거 없잖어….”

왜 난데없이 저기에 올라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묘정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이를 유심히 바라보던 묘정은, 이내 아이가 나무에 오른 이유를 간파했다.

가을과 겨울 사이, 감나무 위에는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이 몇 개 남아 있었다. 감에 눈독을 들이느라 나무에 오른 모양이었다. 한숨을 쉬던 묘정이 아이를 향해 손짓했다.

“이놈아, 까치 먹으라고 남겨둔 것을 탐내면 되겠느냐? 얼른 내려오거라.”

“…….”

“바로 조반을 내달라 할 터이니, 얼른 내려오래도.”

“…….”

계속된 손짓에도, 아이는 묵묵부답이었다. 그제야 묘정은 알아차렸다. 높은 곳까지 올라간 아이는, 막상 겁이 나서 내려오지 못하는 듯했다.

올라올 때는 이리저리 발로 디딜 구석을 찾아서 어찌어찌 위로 올라오기는 올라왔는데, 내려가려고 하니 발이 닿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높이에서 훌쩍 뛰어내렸다간 필시 다리가 부러지고 말 것이다. 제법 큰 열매를 고른다고 욕심을 부린 게 화근이었다.

“내려올 수 있겠니?”

묘정의 물음에, 아이가 심기 불편한 낯을 했다. 아무래도 내려올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묘정은 아이를 나무에서 내리기 위해 가지를 붙잡고 나무 위에 오르려 했다. 그러나 장성한 사내의 무게를 견디기엔 역부족했는지, 팔에 힘을 주자마자 가지가 우지끈 부러졌다.

이를 어쩐다…….

잠시 고민하던 묘정은 나무 밑에 서서 팔을 뻗었다.

“이리 뛰어내려 보거라. 내 받아 주마.”

“거짓말하지 마.”

“음?”

“받아 주려는 척해놓고 비겁하게 슥 피할 거지?”

“…….”

어이가 없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내가 그런 짓을 왜 한단 말이냐?”

“아니면 나를 네 종으로 삼으려는 거지?”

“뭐?”

어째서인지 아이는 묘정이 자신을 어디다 팔아넘길 것이거나, 노비처럼 부리기 위해서 데려왔다고 믿는 듯했다. 생각해 보니 딴 곳을 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아이의 시선이 따라붙고는 했는데, 아마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나름대로 관찰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너 같이 밥 많이 먹는 녀석을 달고 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얼른 내려오거라.”

정말 저기로 뛰어내려도 되는지 가늠하듯이, 아이의 눈이 이리저리 불안스레 흔들렸다. 그러나 묘정은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팔을 벌리고 있었다. 한참을 주저하다가, 이내 결심이 섰는지 아이가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렸다. 묘정은 냉큼 두 팔로 아이의 몸을 안아 들었다.

아이는 쭈뼛한 얼굴로 묘정의 너른 품에서 얼른 내려왔다.

“괜찮으냐?”

묘정은 말없이 손을 들어 아이의 자그마한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아이는 껄끄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묘정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까치밥에 미련이 남은 것인지 다시 감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묘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또 못 내려오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아이가 발치를 툭툭 걷어차며 불퉁하게 중얼거렸다.

“그럼 또 구해주면 되잖어…….”

그렇게 말한 아이가 고개를 들고 묘정을 바라보았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묘정은 멈칫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길 속처럼, 아이의 눈은 곧고 맑았다. 묘정은 저도 모르게 먼저 시선을 피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들키기라도 할 것처럼.

***

본디 묘정의 계획은 하루빨리 재앙신을 없애는 것이었다.

재앙신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면 결심은 굳건해진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보면 자꾸만 주저하게 되었다. 그렇게 온종일 고심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있었다. 내일은 반드시 아이의 생을 거두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이튿날 막상 날이 밝으면, 또다시 제풀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지난밤의 결심을 번복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서질 않는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하루 이틀 사이에 날이 눈에 띄게 추워졌다.

“눈이다.”

아이가 문밖에서 목소리를 냈다.

“바깥에 눈이 와.”

방 안에 앉아 서책을 읽던 묘정은 밖을 내다보았다.

아이는 꽃잎처럼 나풀나풀 떨어지는 눈송이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꼴이 꼭 나비를 잡으려는 들고양이 같아서 묘정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어느덧 겨울의 한복판이었다. 모든 것이 죽어가는 계절은 앙상하고 황량하였으며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나 때로는 이렇게 무엇 하나 때 묻지 않은 순백의 풍경이 된다.

눈이 쌓이는 풍경을 구경하던 묘정은 화롯불을 갈기 위해 마당 뒤편으로 향했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요?”

그때, 아궁이의 불을 지피고 있던 주모가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넌지시 날아든 질문에 묘정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요.”

“아이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이들이 많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아이가 이 마을에 나타나면서부터 이 근방에 안 좋은 일이 몇 번씩 생기고 하여 다들 저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니 때를 봐서 아이를 데리고 떠나시오. 아니면 아이만이라도 내보내든지…….”

주모는 처음엔 대놓고 꺼리는 티를 냈다. 그때는 마지못해 손님으로 받아 준 기색이 역력했으나 지난 며칠 동안 나름 정이라도 들었는지, 이전보다 한결 살가운 태도를 보였다.

“내 노파심에 하는 소린데, 애먼 인정을 베풀어봤자 좋은 것 하나 없수다. 갈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정이야 딱하다고는 하나, 어차피 저 아이와는 쌩판 모르는 사이이지 않소?”

그러니 괜히 정 붙기 전에 떼어 내는 편이 이로울 거라고, 주모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은 묘정이 듣기에도 옳았다. 어쨌든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다. 묘정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당장 오늘이라도 재앙신을 없애야 할까……. 처음 만난 날 밤에 아이가 잠든 틈을 타 부정한 기운이 최대한 흘러나오지 않도록 임시방편으로 손은 써둔 참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에는 붉은 안개를 내뿜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묘정은 힐끗 고개를 빼고 마당을 내다보았다. 아이는 어느새 마당에 소복이 쌓인 눈을 맨손으로 그러모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

묘정은 지낼 만한 거처가 있는지 찾을 테니,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

다음날이 되자 묘정은 외출에 나섰다. 거처를 옮기려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가진 옷은 온통 얇은 옷뿐이었다. 찬바람을 뚫고 길을 떠나려면 채비를 해야 했다.

묘정은 시전에 나가 아이가 입을 만한 옷을 사기로 했다. 처음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갈까 했으나, 괜히 마을 사람들 눈에 띄었다가 혹시라도 몰매를 맞거나 눈총을 사는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었다. 하여 묘정은 아이에게 방에 얌전히 있으라 단단히 일러두고는, 옆 마을의 시전으로 향했다. 아이가 입을 방한복과 귀마개, 털장갑, 그밖에 쓸 만한 물건들을 샀다.

한가득 짐을 안고 주막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것이오!”

주모가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묘정에게 달려왔다.

“일 났소, 일!”

“무슨 일인지요?”

주모가 숨을 헐떡이며 발을 굴렀다. 이 마을 어귀에는 수백 년 동안 지켜 오던 당목이 있는데, 멀쩡하던 당목이 얼마 전 하루아침에 말라 죽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필시 변고가 든 것이라 여기고는, 장정들 몇 명을 꾸려서 아이를 먼 곳으로 데려갔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묘정은 덜컥 낯을 굳혔다.

“어디로 갔습니까?”

묘정은 마을 장정들이 아이를 끌고 갔다는 방향으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걷다가, 나중엔 뛰다시피 하여 산길을 올라갔다.

저 멀리 장정 서넛에 붙들려 짐짝처럼 끌려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아이는 악다구니를 쓰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넘어져 다치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매질이라도 당한 건지 얼굴에는 상처가 있었다. 묘정의 낯이 무섭게 굳었다.

“뭣들 하는 짓이오? 당장 그 손 놓으시오.”

묘정이 형형한 낯으로 성큼성큼 다가서자, 장정들이 멈칫하며 물러섰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묘정은 순간 주춤했다.

“…….”

자신을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지 알지 못했다.

“외지에서 온 당신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오. 당신은 어차피 이 아이와 아무런 연고도 없지 않소? 이 아이의 부모도 아니고 피가 섞인 것도 아니면서,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묘정은 말문이 막혔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묘정과 아이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다. 연관이 있다면 방상시로서 결국 재앙신의 그릇인 아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묘정은 아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이는 씩씩대며 붉어진 눈으로 눈물을 툭 흘리고 있었다.

“이 아이는 내 제자요.”

묘정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당신들 눈에는 연고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이 아이는 꽤나 장래가 유망하여 내 일찍이 제자로 삼고자 마음먹었지. 어느 스승이 제자가 누명을 쓰는데 손을 놓고 있겠소?”

마을 사람들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묘정의 말이 허언인지 참인지 알지 못하여 혼란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저를 제자라고 부르자 놀랐는지,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묘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묘정은 성큼성큼 다가가 장정들에게 붙들려 있던 아이의 손목을 덥석 쥐었다.

그러자 장정들이 묘정의 손길을 제지하며 벌컥 목소리를 냈다.

“이 아이는 귀신에 씐 게 틀림없소. 이 아이가 처음에 이 마을에 왔을 때 어땠는지 아쇼? 눈을 까뒤집으면서 이상한 말을 줄줄 쏟아냈지! 그때부터 마을에 이상한 일이 생겼소!”

“그래서, 이 아이가 직접 한 짓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소?”

“그, 그건…….”

묘정은 마을 사람들을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다가, 아이를 데리고 등을 돌렸다.

“애먼 사람 잡지 마시오. 당장 이곳을 떠날 테니 다시는 이런 짓 마시오.”

사납게 일갈한 묘정은 아이의 손목을 붙잡고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가 발을 절뚝이며 앓는 소리를 냈다. 묘정은 허리를 굽히고 아이의 발목을 살펴보았다. 아이의 발목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묘정이 이를 악물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고얀 인간들 같으니…….”

묘정은 화를 삭이며 왔던 곳을 돌아보았다.

“가자꾸나, 이곳은 있을 곳이 못 되는구나.”

묘정은 아이를 등에 업었다. 아이는 어영부영하며 묘정의 등에 업혔으나 이내 뭐가 불편한지 몸을 바르작거렸다. “떨어지지 않게 목을 꽉 안아야지.” 체구가 작고 마른 아이는 몸이 몹시 가벼웠다. 아이가 어설프게 묘정의 팔을 둘러 안았다. 등에 닿은 온기가 따듯했다.

“어, 어디로 갈 건데?

“글쎄, 집에 가야겠지.”

“나 집 없어.”

“나도 집이 없단다.”

“뭐? 근데 무슨 집에 가겠다는 거야?”

“…….”

묘정은 잠시 침묵했다. 방상시의 지위를 스스로 버린 데다 나례청도 없앴으니 이제 더 이상 묘정에게는 해야 할 일도, 가야 할 곳도 없었다.

“이곳이 내 집이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면 그곳이 바로 네 집일 것이다.”

아이를 추슬러 업으며, 묘정은 눈 내리는 산길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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