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역설적으로 묘정 자신의 삶을 돌보는 일이었다.
죄책감 때문이라고 여태 외면해 왔으나, 사실은 전부 다 핑계일 뿐이었다. 묘정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아는 인간이었다. 어쩌면 이 시한부와 같은 생애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동행을 마련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운명 속에는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없다. 이제는 돌아갈 곳조차 없다. 어차피 죽어야 하는 이 아이라면 곁에 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묘정은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것을 멈췄다. 아이가 계속 앓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일종의 시험이었다. 만약 아이가 무사히 눈을 뜨고 제 곁으로 돌아온다면, 그때는 이 삶이 다하는 날까지 아이를 거두겠노라고… 묘정은 열병 속에 시들어 가는 아이를 보며 다짐했다.
그리고, 연약한 인간의 목숨은 질겼다.
아이는 기특하게도 열병과 싸워 이기고 건강을 되찾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아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버르장머리가 없었고, 조금 야윈 얼굴로 묘정의 밥을 뺏어 먹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묘정은 제풀에 웃었다.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묘정은 아이와 함께 살고 싶었다. 아이를 살려야 할 이유나 명분 따위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이 마음이 향하는 대로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려 보았다. 아이를 곁에서 지켜본 결과, 감정이 날뛰는 상태가 되거나 육체적인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붉은 안개가 흘러나왔다.
우선은 저것부터 막아야 했다.
묘정은 아이의 몸과 정신을 훈련시켰다. 귀기를 제어하고 다스리는 법을 알려 주었고, 기운이 날뛸 때면 옆에서 그 힘을 억눌러 주었다. 수시로 부적을 태워 넣은 탕약을 먹이고, 아이가 잠들었을 때 결계에 가두고 재앙신을 제압하는 의식을 행했다. 재앙신을 아예 떼어내지 못하는 이상,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었으나 어쨌거나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묘정은 어느 순간, 정말로 아이의 스승이 되어 있었다.
***
몇 해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묘정은 아이와 함께 팔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거처를 몇 차례 옮겼다. 그 사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덧 어린 소년의 경계에 서 있었다.
가끔은 모든 게 버거울 때도 있었다. 덮어둔 문제는 세월이 흐를수록 눈덩이처럼 쌓여 나가며 묘정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자신에게 남은 생애와 아이의 몸속에 있는 재앙신을 생각하면 금세 착잡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정은 때때로 자신이 현재 삶의 양지(陽地)에 서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놀라울 정도로 충만하고, 따스했다.
묘정은 오늘도 전서구를 불러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부탁하마.”
전서구가 푸드덕거리며 하늘 위로 날아갔다.
묘정은 언제부턴가 휘림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처음에 편지를 써서 부친 이유는, 휘림이라면 자신의 이러한 혼란스러운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누구에게라도 좋으니 묘정은 자신의 죄책감과 허물을 낱낱이 고백하고, 고민과 번뇌를 털어놓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종의 수기처럼 서신을 써서 보냈다. 아이를 죽이지 못했다는 것, 제자로 거두었다는 것, 거처를 옮겼다는 것…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따라붙는 말이 있었다.
보고 싶어요.
토로하는 것에서 시작한 편지는 어느샌가 연서(戀書)가 되었다. 일 년에 두어 번 편지를 보냈지만 휘림에게선 단 한 번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휘림이 아니면 편지를 열어 볼 수 없게 손을 써두었으니 다른 이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해도 내용이 바깥으로 샐 염려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 보낸 서신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
‘이전에 내가 맡긴 물건을 돌려줄 수 있겠습니까?’
이전에 맡긴 물건이라 함은 방상시의 탈이었다.
몇 년을 고민하던 묘정은 마침내 상상했던 일을 실제로 옮겨 보기로 했다. 이제껏 아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오랫동안 골몰하고 있었다. 아이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순간부터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일이었다.
자신이 아이의 목숨을 빼앗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재앙신에게 혼을 잡아 먹혀 죽는다. 그렇다면 재앙신의 혼과 아이의 혼이 섞이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묘정이 떠올린 방법은 이중 봉인, 즉 아이의 혼에 불변의 봉인을 거는 것이었다.
비유하자면 아이의 생혼과 붙어 있는 재앙신의 혼이 이 이상 섞여들거나 합쳐지지 않도록 보호구를 한 겹 덧씌우는 것이었다. 혼을 불변케 하는 봉인을 건다면, 재앙신은 아이의 생혼을 완전히 차지하지 못할 것이고, 두 혼이 하나가 되어 그릇이 깨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건 차선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묘정도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좋은 건 재앙신의 혼을 떼어내는 것이나 그건 묘정으로서도 방법을 찾기가 힘들었다. 기존의 봉인으로 인하여 하여금 두 혼은 이미 오래전에 들러붙어 일체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중 봉인은 여기서 더 융화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었다. 각각의 혼을 떼어낼 수도 없고, 완전히 분리할 수도 없다면, 최소한의 영역에서 공존하는 방식이 최선일 것이었다.
아이가 귀기를 단련하고 본인의 의식을 강화해 나간다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재앙신의 힘과 존재감을 최대한 축소한다면, 본질적으로는 재앙신을 봉인한 그릇이라고는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재앙신이 기생하는 형국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묘정은 마지막 안전장치를 생각해 냈다. 이름을 부여하고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탈에 깃든 성명자의 권능이 필요했다. 재앙신에게 이름을 지어서 그 이름을 부르고 명령을 내리면, 호명을 받은 존재는 그 명령에 필히 종속되리라는 계산이었다.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묘정은 머나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묘정, 뭐 해? 밥 다 됐어.”
“오냐.”
묘정은 작은 상을 사이에 두고 아이와 마주 앉았다.
“오늘도 밥을 태웠느냐?”
“…밥은 좀 타야 맛있어.”
“허, 참.”
작은 등불에 의지해 길을 더듬더듬 걸어 나가는 듯한 일상이었다.
비록 그러할지언정 행복한 날이 많았다.
***
서신을 보낸 지 보름이 지났을 무렵, 휘림이 찾아왔다.
“여기, 묘정이 이전에 맡겼던 물건입니다.”
몇 년째 답장이 없었던 휘림이 정확한 용건을 말하자마자 곧바로 찾아왔다는 사실에, 묘정은 못내 섭섭함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휘림의 얼굴을 보니 얼뜨기 소년처럼 설레기만 했다. 오랜만에 본 휘림은 그대로였다. 휘림은 어제 헤어진 사이처럼 태연하게 묘정을 대했다.
“방 하나 남습니까? 멀리서 왔으니 오늘은 자고 갈까 하는데.”
묘정은 잠시 얼이 빠져 있다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휘림은 냇가에 가서 씻고 오겠다고 말했다. 묘정은 서둘러 초가집 한편에 딸린 방 하나를 쓸고 닦기 시작했다. 묘정이 답지 않게 수선을 떨자, 아이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냥 셋이 자면 안 돼?”
“응?”
“따로 불 지펴야 되는데 그냥 한 방에서 같이 자면 되잖어.”
“…….”
묘정은 말문이 막혔다. 아이는 휘림을 사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실대로 바로잡아 줘야 할까,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묘정이 입술을 달싹일 때였다.
“사실 저 이는…….”
“잠버릇이 고약하단다.”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벌컥 끼어들었다.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휘림이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휘림이 웃음을 참으며 눈썹을 까딱 움직여 보였다.
묘정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잠버릇이 고약하단다…….”
휘림은 여전히 짓궂은 사람이었다.
묘정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 오랜만에 휘림과 만난 것인데,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는가 싶었다. 계속 뒤척이던 묘정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아이는 배를 훌러덩 까고 쿨쿨 잘 자고 있었다. 창호지 너머에서 희미한 달빛이 번져 들어오고 있었다. 묘정은 손을 뻗어 아이의 배를 덮어주고는, 이불을 목 끝까지 여며 주었다.
구들장을 매만지던 묘정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잠도 안 오고, 바닥이 조금 식은 것 같기도 해서, 아궁이로 가서 불이나 한번 살펴볼 생각이었다. 아이가 깨지 않게 문을 닫고 나온 묘정은 별안간 멈칫하고 말았다. 휘림은 달빛을 받은 채 마당 한편에 서 있었다.
휘림이 기척을 느꼈는지 묘정을 돌아보았다.
가슴이 쿵쾅거렸으나 묘정은 내색하지 않고 신발을 꿰어신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휘림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휘림이 닫힌 문에 힐끗 시선을 주었다가 소근소근 입을 열었다.
“안 자고 왜 나왔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