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309)화 (309/348)

#309

‘인어를 찾았습니다.’

민란에 가담 중인 휘림은 작년부터 매우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민란의 규모는 생각보다 커졌고, 팔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휘림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휘림은 제법 중추가 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봄에 만나고 여태껏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터라, 묘정은 내심 마음 한편으로 휘림이 어쩌면 인어를 찾는 일을 포기하거나, 뒤로 미뤄 두었을 것으로 생각하던 참이었다. 허나 그는 바쁜 와중에도 끈질기게 인어의 행방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묘정과 가족이 되고 싶습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던 묘정은 길을 떠날 채비를 했다. 휘림을 마지막에 보았던 때가 올해 봄과 여름 중간쯤이었으니, 몇 달 만에 보러 가는 길이었다. 산봉우리마다 형형색색의 단풍이 흐드러져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낙엽이 부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 휘림이 묘정을 불러들인 곳은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마을이었다. 곧 있을 민란에 대비하여 새롭게 본거지로 삼은 곳으로, 몇 달 전부터 이곳에 와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묘정 못지않게 휘림 또한 나례청을 떠난 이후로 팔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몇 달 만에 만난 휘림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안정감 있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왠지 전에 비해 살이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묘정, 어서 오십시오.”

“아이고, 저 훤칠한 나리는 누구시래요?”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휘림의 곁에는 못 보던 얼굴이 있었다. 푸근한 인상을 가진 노년의 여인이었다. 자신을 ‘이월댁’이라고 소개한 노인은 본래 노비 출신이었으나 이후 자유를 얻어 이곳에 정착했다고 했다. 이월댁과 휘림은 서로의 생활을 도우며 가족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때, 휘림이 이월댁에게 뭐라 귓속말을 하자 이월댁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오호라… 낭군님이셨구먼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이월댁은 홀홀 웃으며 자리를 떴다. 묘정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휘림을 바라보자, 휘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묘정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리 오세요.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내밀한 장소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그간의 안부를 나누었다.

“준비하고 있는 일은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휘림이 몇 년 동안 몸담아 왔던 민란도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다. 전력도 전부 확보하였으며, 훈련한 병사들을 민간에 매복시키고 마지막 준비를 끝마쳤다고 했다. 거사가 있는 날까지 머지않았으니 검술에 능한 휘림 또한 출정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예, 이 달이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입니다.”

묘정은 당연하게도 휘림의 안위가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일인 만큼 막아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무사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무운(武運)을 빕니다.”

애써 흐린 낯을 감추며 묘정이 입을 열 때였다.

“이달이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말은, 비단 나의 일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이는 묘정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묘정의 삶도 두어 달 뒤에는 전과는 뒤바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요?”

“인어를 찾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안부를 주고받던 대화는 어느덧 본론으로 이어졌다.

얼마 전, 휘림의 부탁을 받은 인어는 동족을 찾아가 사정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무작정 인어의 피와 살을 취한다고 해서 불로장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듭된 사냥으로 인간과 적대 관계에 있던 인어들은 섬을 떠나기 직전에 인간의 수중에 있던 ‘영생환’이라 불리우는 환약 하나를 되찾아 오게 되었다. 동족의 아픔이 담긴 물건이니, 그들에게는 뼈아픈 유품인 셈이었다.

그들은 휘림의 사연을 전해 듣고는, 간직하고 있던 영생환을 내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영생환은 동족과 맞바꾼 희생의 산물인 만큼 인어들 입장에서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크나큰 보은임에 틀림없었다. 영생환을 전달받은 인어는 전서구를 통하여 휘림에게 이 소식을 알렸고, 머지않은 시일에 직접 영생환을 가져다 주겠노라고 했다.

“아마 늦어도 다음 달 안에는 도착할 겁니다. 사실은 영생환이라는 것을 직접 받고 나서 서신을 보낼까 하였으나… 그 전에, 묘정과 내게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휘림이 해야 할 일이란, 곧 있을 민란에 출정하는 일이라는 것쯤은 묘정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남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묘정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건 무엇이냐는 것이다.

“묘정, 지금도 이미 충분히 늦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때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겸이에게 진실을 말하세요.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시지요.”

휘림은 곧은 시선으로 묘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

묘정은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했다. 두려웠다. 진실을 알리는 일은 아이를 상처 입히는 일인 동시에 묘정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아이가 용서해 주지 않으면 어쩌나. 아이가 저를 원망하고 증오하면 그때는 어찌한단 말인가. 묘정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걱정 마세요.”

휘림이 무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겸이라면 틀림없이 좋은 사형(師兄)이 되어줄 것입니다.”

휘림이 덧붙인 말에, 생각에 잠겨 있던 묘정이 멈칫하며 눈을 들었다.

“그게 무슨…….”

“지난봄에 있던 일을 잊었습니까?”

태평하게 대꾸한 휘림이 작게 하품을 하더니 비스듬히 턱을 괴었다. 그 순간, 묘정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지난봄의 일이라면…… 휘림과 함께 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휘림이 삐뚜름히 입꼬리를 올리며 능청스레 말했다.

“운명이고 나발이고 간에, 내 아이의 아비가 되어 주셔야지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묘정의 눈이 점점 크게 뜨일 때였다.

“아이의 이름은 뭐라 지을지 생각 중입니다. 이름 짓는 건 묘정이 전문이겠지만요. 아아, 그렇지. 겸이에게 지어달라고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한참 어린 동생이 생기는 셈일 테지요.”

“…….”

“묘정이 약속해 준다면, 나 역시 민란에서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그러니 묘정도 겸이에게 사실대로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가족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묘정은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목울대에서 울컥하는 느낌이었다. 멍한 얼굴로 휘림을 바라보기만 하던 묘정은, 어느 순간 고개를 툭 떨구었다.

“묘정?”

꿈에 그리던 가족이 눈앞에 있었다. 어떻게든 피하려고 발버둥 쳐 왔던 일이건만, 묘정은 지금 이 순간 너무나도 가슴이 벅찼다. 묘정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러자 휘림이 묘정을 빼꼼, 들여다보더니 탁자를 내리치며 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아니, 묘정이 울긴 왜 웁니까? 사내가 되어서는 덩치가 아깝소!”

휘림의 놀림은 계속되었고, 묘정은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

휘림의 곁에서 며칠의 시간을 보낸 묘정은, 평소보다 하루이틀 일찍 짐을 꾸리고 길을 나섰다. 홀몸도 아닌 휘림을 놔두고 가자니 발길이 떨어질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휘림은 주변에 저를 돌봐주는 이들이 널려 있다며 어서 빨리 겸이에게 돌아가라고 성화를 부렸다.

“제가 곁에서 어미 노릇을 하고 있을 터이니 걱정 마시지요.”

휘림의 생활을 돕는다던 이월댁도 묘정에게 귓속말을 소곤거렸다.

그렇게 묘정은 등이 떠밀리다시피 귀갓길에 오르게 되었다. 집까지 도착하려면 며칠이 걸리는 먼 거리였다. 평소 같았으면 중간에 마을에 들러 잠시 묵고 갔을 테지만, 묘정은 쉬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며칠이 넘도록 집에 혼자 남겨져 있을 아이에게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이번에야말로 아이에게 그간 숨겨왔던 모든 것을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이중 봉인을 건 것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린 순간, 묘정은 결심했었다. 서른세 살이 되는 해에 아이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자고. 그리고 황금사목을 이용하여 아이를 하루 먼저 떠나보내고, 그 뒤를 따라서 정해진 날에 죽으면 되는 일이라고.

그러나 휘림을 만나고, 처음으로 선택지가 주어졌다. 휘림이 손을 내밀어준 순간 묘정의 삶은 달라졌다. 영생환이 과연 통할지, 과연 이 운명을 비틀 수 있을 것인지, 그건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영생환이 통하지 않더라도, 그래서 운명을 피할 길이 사라지더라도, 세상에 태어날 뱃속의 자식에게 탈을 물려준다면, 비록 저주가 대물림이 될지언정 두 사람은 주어진 시간 동안에 가족이 되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묘정의 발걸음은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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