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313)화 (313/348)

#313

어느 봄날이었다.

묘정은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채 산을 오르고 있었다. 햇볕은 따스했으나 바람은 아직 쌀쌀했다. 혹한의 겨울을 무사히 견뎌낸 대지는 기이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헐벗었던 나무는 가지마다 초록빛 새싹을 틔워 냈으며, 볕이 잘 드는 곳에는 들꽃이 피어 있었다.

산을 오르는 묘정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미 준비는 끝났다. 석관을 마련하고, 관을 묻을 자리도 미리 만들어 두었다. 이제는 의식을 행할 일만 남겨두고 있었다. 깊은 잠이 드는 탕약을 먹이고 나왔으니, 아이는 머지않아 잠들 것이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손을 도닥거리며 산길을 걷던 묘정이 혼잣말을 했다.

“벌써 매화가 피었구나…….”

흐드러진 홍매(紅梅)를 올려다보던 묘정은 발치에 떨어진 꽃잎으로 시선을 내렸다.

“이건 매화라고 하는데, 참으로 아름답지?”

땅에 떨어진 붉은 꽃잎을 주워 아이의 코 위에 얹어 주었더니, 아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를 했다. 산에 오른 지 꽤 되었으니 약효가 돌아 잠투정을 할 법한데도 아이는 칭얼거리기는커녕 방긋 웃기만 했다. 아이의 이마에 코끝을 붙이며 묘정도 방긋 미소를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잠들었다.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묘정은 인어환을 꺼냈다. 작은 경단처럼 생긴 인어환을 잠든 아이의 입술 틈으로 밀어 넣고, 입 안에 살며시 물려 주었다. 휘림이 말하길 인어환을 취하면 상처가 생겨도 저절로 낫고, 노화하지 않으며, 아주 오랜 세월을 살게 된다고 했다. 만약 인어환이 아이에게 제대로 통한다면 서른세 살에 죽는다는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서른세 살에 죽는다는 저주를 피하면 방상시의 예언을 거스르는 셈이니, 세대를 타고 대물림되는 저주의 내력에는 빈틈이 생긴다. 운명을 교묘하게 비트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리하여 이 그물 속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아이는 저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묘정은 눈을 감고, 휘림이 제게 해주었던 말을 되새겼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 혹시 모르는 일이다. 혹시 모르는 일이라는 말은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크게 기대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하지도 않은 담담한 한 마디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한참 후에 입안을 확인하자 아이의 입에 물려 있던 인어환은 녹아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묘정은 손톱으로 여린 뺨에 살짝 상처를 내 보았다. 제대로 통한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작은 생채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스르륵 아물더니 이내 저절로 없어졌다.

묘정은 미리 땅에 묻어 놓은 석관 안으로 잠든 아이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무거운 석관 뚜껑을 닫고, 피를 내서 샛길 혜傒라는 글자를 적었다. 구금한다는 뜻이 담겨 있으면서도 기다림을 의미하는 글자였다. 무엇도 침입할 수 없도록 안전하게 지키되, 긴 세월이 흘러 아이가 눈을 떴을 때 저절로 깨지도록 만든 결계의 표식이었다. 저는 지금껏 운명이라는 이름의 지도를 가지고 일평생을 한계 속에 갇혀 살았으나 아이만은 길을 만들어 가길 바랐다.

삶에는 늘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삶의 진정한 순간은 뜻하지 않은 길에서 온다.

묘정은 아이가 잠들어 있는 석관을 흙으로 덮었다.

아기에게 이름은 지어주지 않았다. 휘림의 말대로 태어나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업이고 짐이라면, 이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름이라는 것은 누군가 지어주는 것이다. 날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가진 이는 없다. 태어나보니 사주와 팔자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이름 또한 불가항력으로 주어진다. 따라서 명名과 명命은 같다.

이로써 기회는 사라졌다.

운명을 비틀 수 있는 기회. 결국 묘정은 방상시의 저주대로 살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고, 자식을 낳아 저주를 대물림하게 되었으며, 예정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휘림이 그날 죽을 것을 알고도 쓰개치마를 내던지고 몸을 일으켰듯이, 이 또한 묘정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스스로 기회를 버렸다는 사실에 문득 웃음이 나왔다.

지금 이 순간, 묘정은 이 삶이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었음을 알았다.

***

이제 묘정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한 해뿐이었다.

마지막 남은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던 묘정은 홀로 여행길에 올랐다. 목적지가 없는 여행이었다. 탈을 빼앗긴 이후로 꼬리가 붙는 일은 없었다. 이제는 지킬 것도, 저를 필요로 하는 곳도 없었다. 진정한 자유를 얻은 묘정은 산천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지금껏 가 보고 싶었던 곳은 전부 다 가 보기로 했다. 명산이라고 이름난 곳에도 가 보고 절경으로 소문난 곳에도 가 보았다. 끼니때가 되면 아무 집이나 찾아가 남는 밥을 청해서 얻어먹었다. 밤이 되면 길가는 나그네인데 하루 묵어도 되겠느냐고 청하여 잘 곳을 빌렸다.

제법 마음에 드는 곳을 찾으면 며칠 정도는 그 근처에 눌러앉아 머물기도 했다. 홀로 하는 여행도 나쁘지 않았다. 가끔은 운이 맞아서 동행이 생길 때도 있었다. 그 동행은 사람일 때도 있었고, 귀신일 때도 있었으나 같은 길을 걷다가도 나중에는 반드시 헤어지게 되었다.

간혹 짧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있었다.

“무얼 그리 기다리고 계시오?”

언덕에 앉아 머나먼 풍경을 바라보는데, 누군가 와서 물었다. 옷차림을 보니 지나가던 나무꾼인 듯했다. 그날 묘정은 경치 좋은 언덕에 앉아서 온종일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누굴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오?”

“아까부터 한 곳만 바라보기에 누굴 기다리나 싶었지.”

그러나 묘정은 자신이 무얼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

“글쎄, 죽음을 기다리고 있나 보오.”

“허허, 이상한 양반일세.”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었다.

함박눈이 잔뜩 쌓인 어느 날 묘정은 자선원을 찾았다. 오래전에 문을 닫은 자선원은 황량한 폐가나 다름없이 망가져 있었다. 어린 날 휘림과 함께 놀았던 냇가는 꽝꽝 얼어붙어 있었고, 수향과 함께 풀피리를 불곤 했던 버드나무는 누가 베었는지 그루터기만 남아 있었다.

사랑하던 이는 떠났고, 오래된 벗은 저를 등졌다. 하나뿐인 자식은 기약할 수 없는 미래 소관에 맡기고자 머나먼 앞날로 보냈고, 온 마음을 쏟아서 길렀던 제자는 제 곁에 없었다.

찬란하던 날은 모두 과거 속에 있구나.

묘정은 뿌득뿌득 밟히는 눈길을 걸었다.

***

계절은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봄이 찾아왔다.

묘정에게 주어진 마지막 봄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여행도 어느덧 막바지였다. 더 가 보고 싶은 곳도 없었고, 한 해 동안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더니 문득 이제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묘정은 먼 길을 돌고 돌아서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어디로 갈 건데?’

‘집에 가야겠지.’

‘나 집 없어.’

‘나도 집이 없단다.’

‘뭐? 근데 어떻게 집에 가겠다는 거야.’

‘이곳이 내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그곳이 바로 네 집일 것이다.’

집 뒤편에 붉은 매화나무가 있었던, 소년이 아이였을 때 처음으로 둥지를 꾸렸던 오래전의 그 초가집이었다. 이 집에서 아이와 살아가겠노라 결심했었고, 재앙신을 억누를 방법을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준 곳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생활을 꾸려 나갔던 곳이었기에 많은 추억이 있었고, 그만큼 정이 많이 들어서 떠날 때 유독 아쉬웠던 기억이 있었다.

몇 해가 넘도록 방치되어 있던 집은 금세라도 무너질 것처럼 폐허가 되어 있었다. 아이가 뛰놀던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였으며, 흙을 문질러 발라둔 벽에는 쩍쩍 금이 가 있었다.

그런데도, 묘정은 아주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묘정은 찬찬히 마당을 살펴보았다. 마당 구석에서는 아이가 쪼그려 앉아 흙을 주워 먹고 있었다. 신을 벗고 마루 위로 올라섰다. 낡고 뒤틀린 나무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너덜거리는 창호지 문을 열자, 언젠가 아이가 풀어놓았던 산천어가 방 안을 휘젓고 있었다.

묘정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이번엔 부엌에 가 보기로 했다. 부엌으로 가자마자 쥐가 찍찍 소리를 내며 도망쳤다. 벽면으로 시선을 돌리자 낙서가 보였다. 언젠가 아이가 숯으로 휘갈겨 놓은 엉성한 그림이었다.

손으로 슥 쓸어 보았더니 그림이 흐려졌다.

“이곳이 내 집이구나…….”

아주 먼 길을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정은 제일 먼저 마당에 솟아난 잡초를 정리하고, 금 간 벽을 손보았다. 너덜거리는 창호지 문에 풀을 먹이고 종이도 새로 사다가 붙였다. 아궁이 속에 그득히 쌓여 있던 잿가루도 몽땅 끌어낸 뒤, 정성스레 방을 쓸고 닦았다.

모든 할 일을 끝낸 묘정은 깊은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느덧 밖은 한밤중이었다. 잠시 쉬고 싶었다. 묘정은 언제나처럼 앉던 자리에 경상을 놓고 정좌했다. 벽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사방이 고요했다. 묘정은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여전히 깊은 밤이었다.

잠깐 졸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주 오랫동안 자고 일어난 것 같기도 했다. 몇 날 며칠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기척도 소리도 없었으나 묘정은 방 안에 다른 누군가가 있음을 알았다. 어둠 속에 누군가 서 있었다. 눈앞의 인영을 본 순간, 묘정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자신이 줄곧 기다려 왔던 것, 그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음을.

“겸이 거기 있느냐.”

묘정은 허리를 세우며 바르게 정좌했다. 방 안이 어두워 소년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얼굴 생김새를 보고 싶어서 눈에 힘을 주었으나, 그럼에도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우리 제자가 왔구나.”

전혀 놀라지 않은 기색으로, 묘정은 빙그레 웃었다.

“묘정.”

“오냐.”

“옷을 돌려주려고 왔어.”

“그래, 잘 왔구나.”

‘이 세상 하직하는 날, 내 이것을 입고 무덤에 들어가리라.’

“이번에도 망설일 것이냐?”

“아니.”

소년의 대답에, 묘정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나는 당신을 죽이러 왔어.”

“그래.”

경상 앞에 앉아 있던 묘정은 어둠 속에 선 소년을 바라보았다.

“내 손에 순순히 죽어주려는 거야?”

“그래.”

“어째서?”

주어진 운명과 같은 궤적을 그렸으나, 마지막은 명백하게 달랐다.

“나를 죽일 사람은 너뿐이란다.”

이것은 묘정이 선택한 길이었다.

소년이 천천히 묘정의 앞으로 다가왔다. 방 안에 스며들어오는 달빛에 소년의 얼굴이 비친 순간이었다. 서늘한 칼날이 옆구리로 쑥 들어왔다. 묘정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상한 일이었다.

칼에 찔렸음에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단지,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면서 점점 추운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바르게 세운 상체에서 조금씩 힘이 빠져나가고,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때, 소년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묘정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옷에 묻어 있던 따스한 온기가 묘정의 몸에 그대로 옮아 왔다. 묘정은 가물거리는 눈으로 옷고름의 잎사귀를 보았다.

“묘정.”

그때, 소년이 경상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이건 배신한 대가야.”

소년은 묘정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었다.

허리를 바르게 세우고 앉아 있던 묘정이 경상 위에 스르륵 엎어졌다. 옆구리를 타고 흘러내린 피는 웅덩이처럼 고여 있었다. 더는 버티고 있을 힘이 없었다. 불현듯 웃음이 나왔다.

“…….”

휘림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묘정은 휘림의 무정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저와 갓난아기를 남겨놓고 한이 맺히진 않았을까. 어쩌면 당신은 귀신이 되지 않았을까. 가끔은 휘림이 차라리 귀신이 되어서라도 저를 다시 한번만 찾아와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휘림은 어떠한 미련도 여한조차 없이 자신의 생애를 살아냈고, 이 땅을 훌훌 떠나버렸다.

묘정은 문득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겸아, 명심하거라.”

묘정이 힘없이 입술을 달싹였다. 고개를 들고 싶었다. 고개를 들고, 다 자란 소년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소년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네 삶의 주인은…….”

마지막 말이 희미하게 흩어졌다. 제대로 말이 닿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눈꺼풀이 자꾸만 무거워졌다. 차츰 시야가 암전되었으나, 멀리서 올빼미 우는 소리만은 선명하게 들렸다.

우우우…….

우우우…….

시야에 가득 찼던 어둠 사이로 빛이 스며들었다. 닫혔던 눈꺼풀이 다시 열렸다. 소년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몸을 일으킨 소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어둠의 장막과도 같은 거대한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우우우…….

여전히 올빼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밤바람이 어두운 산중을 휩쓸고 지나갔다. 점점이 흩뿌려진 별이 빛나고 있었다. 동그랗게 떠 있는 달과 눈이 마주쳤다. 멍하니 눈을 감았다가 뜨는데 무언가 툭 떨어졌다. 소년은 삐걱거리듯 손을 들어 제 얼굴 가죽을 더듬어 보았다.

볼이 축축했다.

그제야 소년은 자신이 울고 있음을, 이곳은 현실임을 알아차렸다.

“배신자.”

소년은 처음 말을 배운 사람처럼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배신자……?”

다시 한번 소리 내 보았다.

어쩌면 꿈을 꾼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주 오래 꿈을 꾼 것 같은 착각이 일었으나 현실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소년은 동공이 크게 확장된 채로 멍하니 굳어 있다가, 이내 낯선 세계에 떨어진 사람처럼 이리저리 고개를 꺾으며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여긴 어디지, 나무로 만든 누각. 벽사단을 만나러 왔었다. 그런데 쟤들은 누구지. 왜 나를 보고 있는 거지. 아, 흑제와 새로, 패현이라고 했었다. 휘림에게 검을 배웠다고 했었는데.

그리고, 눈앞에 있는 건. 태희.

“태희야.”

재겸은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홀연히 중얼거렸다.

“배신자는 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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