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328)화 (328/348)

#328

제1팀 팀원들은 사무실로 돌아왔다.

침중한 사무실에는 죽음과도 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팀원들 모두가 하나같이 알 수 없는 낯을 하고 있었다.

역모라는 건 주변 사람들까지 줄줄이 엮여 나가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석주련의 말대로 주변인들에게 불똥이 튀리라는 사실을 윤태희가 몰랐을 리는 없다.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아무도 모르게 이런 일을 꾸미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꾸며낸 모습이었을까. 대체 언제부터 이런 일을 계획해 온 걸까. 윤 수석의 진짜 모습은 어느 쪽인가. 팀원들은 혼란스러워졌다. 그가 이런 일을 벌일 리 없다고 철석같이 믿어주는 것이 그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편이 된다는 건 그런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 일방적인 믿음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믿음의 방향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그 아이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지.’

그렇다면 선택해야 했다.

윤태희의 적이 될 것인가, 윤태희의 편이 될 것인가.

“너희는 어떻게 할 거야?”

정적을 깬 것은 강이빈이었다. 의자에 앉은 채로 생각에 잠겨 있던 강이빈은 데스크를 양손으로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팀원들 모두가 고개를 들고 강이빈을 바라보았다.

“나는 수석님한테 갈 거야.”

강이빈은 결심을 마쳤다는 듯이 흔쾌하게 입을 열었다.

“네? 하지만….”

“강 주임님…….”

우려 섞인 목소리에, 강이빈은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아, 나는 어차피 나자 그만두려고 생각 중이었으니까.”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팀원들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얼굴을 할 때였다.

“강 주임, 일단 좀 진정해.”

곁에 서 있던 표지호가 강이빈의 팔을 잡았다.

“뭘 진정해. 난 지금 누구보다 침착해.”

“우리는 같은 팀이기 전에 나자야.”

“알아, 그리고 나자도 사람이야.”

“정말 이 모든 일에 책임질 수 있겠어?”

표지호는 윤 수석이 없는 팀에서 가장 높은 상급자로서 이 사태에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모두의 길이 단 하나일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혐의가 될 거다. 지금 이 순간이 장차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생각해야만 했다.

표지호 역시 가능한 윤 수석을 포함하여 모두를 지키고 싶었다.

다만, 자신이 없을 뿐이었다.

“나도 윤 수석님이 있는 나례청이 좋아. 하지만 윤 수석님은 어떨지 모르지. 우리를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서 지금까지 말을 안 하신 걸 수도 있고, 애초에 우리랑은 길이 다르다고 생각해서 선을 그었던 걸지도 몰라. 그래서 윤 수석님은 어쩌면 우리를…….”

“지호야.”

그때, 강이빈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표지호의 말을 잘랐다.

“그렇다고 병원비 내 주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데?”

표지호가 멈칫하며 강이빈을 바라보았다.

“알지? 윤 수석님이 우리 엄마 병원비 내 준 거.”

“…….”

“윤 수석님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했든지 나한테는 상관없어. 역모를 꾸몄든, 벽사단의 주인이든 간에, 윤 수석님은 내가 필요할 때 도움을 준 사람이야. 나한테는 그게 전부야.”

표지호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너, 윤 수석님이 내빼는 거 봤어? 그 사람은 팀원들 위험할 때 한 번도 나서지 않은 적이 없어. 나는 윤 수석님이 우리 편이어서 좋았고, 그런 윤 수석님이 나자라서 좋았어.”

표지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

윤 수석은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그가 베푼 호의는 결국 누군가를 살렸고, 삶을 지탱해주는 결과를 낳았다. 의도야 어찌 됐든 강이빈은 자신의 가족을 지켜준 그에게 감사했다.

설사 그것이 위선이었다고 하더라도.

강이빈은 팀원들을 돌아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너희는 어떻게 할 거야?”

***

“수석님, 괜찮으세요?”

간발의 차로 뛰어든 강이빈이 뒤를 돌아볼 때였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복도에 서 있던 초인들이 일시에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강이빈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다시 검을 잡았다.

흰 가면을 쓴 청장의 친위대는 이지가 없었고, 인간의 형상을 한 기계와도 같았다.

이대로라면 수세에 몰리고 말 것이다. 강이빈은 서둘러 윤태희의 멱살을 잡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질질 끌고 들어왔다. 재빨리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자 바깥에서 쿵, 몸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버튼을 눌러 문을 연다는 것을 모르는지,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수석님, 정신 차리세요!”

강이빈이 윤태희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었다.

잠시 가라앉는 듯했던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윤태희는 오래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숨 가쁘게 신음을 토하며 고통을 삭여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이빈의 낯이 새파랗게 질렸다. 금기를 어기면 그에 상응하는 고통이 찾아온다고 말은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윤태희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때, 윤태희가 인상을 쓰며 강이빈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얘기하면 기니까 그건 나중에 얘기해요.”

강이빈은 가방 속에서 작은 물병 하나를 꺼냈다.

“이거 드세요, 정화부에서 받아놨던 약수예요.”

“이걸로는 안 돼요.”

“알아요, 이걸로는 안 될 거지만, 조금은 괜찮아질지도 모르잖아요.”

사실은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만 아니었다면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심이었는지. 대체 왜 이런 일을 꾸몄으며,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그 아이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지.’

아무래도 괜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온 건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므로.

“저랑 같이 가요, 수석님.”

같이 가다니, 어디를?

“이번엔 제가 수석님을 지켜 드릴게요.”

윤태희의 눈이 천천히 크게 뜨였다.

“대신에 이걸로 병원비 퉁쳐요.”

윤태희는 푸시식 웃어 버렸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말은 그렇게 해도 빚진 병원비를 아득바득 모아서, 결국에는 눈앞에 들이밀 것을 안다. 강이빈은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요. 곧 애들이 올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팀원들은 지금 명부실에 있어요. 한 명씩 돌아가면서 교대로 목패 가지고 나오기로 했어요. 같은 나자들끼리 싸우게 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저것들은 뭐예요? 졸라 징그러워!”

윤태희는 잠시 말을 잃고 강이빈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애들 오면 그때 같이 움직여요.”

본인 이름이 적힌 목패에는 직접 손댈 수 없으니, 팀원들은 각자 교대로 서로의 이름을 가지고 나오기로 했다. 명부실 앞에는 백호가 있으나, 5명의 축역부 나자들이 한데 뭉친다면 버티고 있을 만할 것이었다. 백호를 버티는 동안 한 명씩 목패를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

윤태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로써 목패를 되찾고자 후임을 찾아 나섰던 것, 그리하여 나만의 나자가 되어줄 이를 찾아내 재겸을 여기까지 데려온 지난날의 일들은 전부 허사가 되었다. 결국 모든 계획이 틀어졌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윤태희는 뜻밖에도 유쾌함을 느꼈다.

언젠가 한 번 느껴본 적이 있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덜컹!

그때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거세게 흔들리며 바깥에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한 번 적을 감지한 초인들이 엘리베이터 문을 열지 못하자, 결국에는 힘으로 문을 열고 있는 것이었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공간에서, 금세 궁지에 몰리게 된 상황이었다.

이대로 계속 기다린다면 팀원들이 오기 전에 초인들이 뛰어들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초인들이 나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자가 아니므로 귀기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수석님. 제가 길을 열게요.”

윤태희의 손에 약수가 담긴 생수병을 쥐여준 뒤, 강이빈이 몸을 일으켰다.

“제가 길을 열 테니 수석님은 앞만 보고, 문으로 가세요.”

“잠깐, 강 주임님, 잠깐만요.”

“아셨죠? 어차피 곧 있으면 애들 올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강이빈은 정말로 팀원들이 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듯했다. 그에 윤태희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누군가를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제가 신호 보낼게요, 수석님은 열림 버튼만 눌러요.”

곧바로 뛰쳐나갈 것처럼 강이빈이 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강이빈은 심호흡을 했다.

“눌러요!”

그러나 윤태희는 선뜻 열림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혼자였을 때는 이렇게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이젠 둘이었다. 누군가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래서 성가신 것이다, 라고 윤태희는 생각했다.

“눌러요! 얼른요!”

강이빈이 발을 쾅 구르며 결국 소리를 질렀다.

“아, 윤태희! 빨리 열으라고!”

그에 윤태희의 얼굴이 확 풀어졌다.

“이젠 막 말도 놓네.”

“어차피 동갑이잖아요, 아 빨리 열어!”

윤태희는 손에 쥐고 있던 약수를 전부 비웠다. 빈 생수병은 와그작, 구겨트렸다. 손아귀 안에서 종잇장처럼 구겨진 페트병을 대충 바닥에 던지고, 한쪽 무릎을 일으켰다.

‘열림’을 눌렀다.

검을 비스듬히 세운 채 자세를 잡고 있던 강이빈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귀기에 실려 있던 검이 떨어져 나가며 엘리베이터 앞에 모여 있던 초인들의 몸뚱어리를 단숨에 베었다.

그러나 초인들은 쓰러지기가 무섭게 다시 꾸물꾸물 몸을 일으켰다.

“꺄아악! 뭐야 시발, 이 징그러운 새끼들!”

강이빈이 비명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가세요, 얼른!”

베고 또 베어 나가던 강이빈이 고함을 쳤다.

“얼른요!”

윤태희는 피에 물든 구둣발을 질질 끌며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강이빈이 어째서 자신에게 온 것인지, 팀원들은 왜 이곳으로 오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앞을 향해 걸었다. 강이빈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지 않으려면 무사히 복도를 지나 저 문으로 가야만 한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윤태희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윤태희는 손을 뻗었다. 문손잡이를 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철컥, 소리와 함께 등 뒤로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모든 소리가 일시에 차음되었고, 오로지 정적만이 있었다. 어쩌면 이곳에도 흰 가면을 쓴 무리들이 있거나, 혹은 나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으나 예상과는 다르게 아무도 없었고, 몹시 조용했다. 윤태희는 문을 등에 기댄 채 잠시 눈을 감았다. 느리게 숨을 뱉었다.

문득 윤태희는 생각했다.

아,

나는 아마 신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공평하게 사랑할 자신이 없다. 어떤 귀신을 어떤 인간보다 더 사랑하고, 어떤 귀신보다는 어떤 인간을 더 사랑한다. 유독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울어지는 것을 참아낼 도리가 없다. 혼자 걸어온 길이었으나, 이 길 위에 있는 저는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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