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불 (346)화 (346/348)

#346

“본향의 아이야.”

윤태희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사라진 줄 알았던 황금사목이 제 앞에 있었다. 넝마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인간의 형상을 한 황금사목이 윤태희를 향해 한 걸음 성큼 다가서자, 절그럭 소리가 났다. 그의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황금색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다.

고양이.

전율과도 같은 깨달음이 뒤통수를 후려쳤다. 윤태희는 지금 이 순간 비로소 알아차렸다. 고양이는 수향의 선생인 동시에 수향의 모든 것이었다. 수향의 곁에는 언제나 고양이가 있었다. 인간에게 마음을 주지 못한 수향은 자신의 고양이에게 방상시의 탈을 남겼던 것이다.

수향의 고양이는 황금사목 그 자체였다. 고양이의 주인은 수향이었지만, 수향은 끝내 탈의 주인이 되지는 못했다. 황금사목이 끝까지 수향을 선택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나를 가지겠느냐?”

“허락해 준다면.”

“좋다, 그렇다면 나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 보자꾸나.”

황금사목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심장에 비수가 꽂히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가슴을 움켜쥐었던 윤태희가 울컥 피를 토했다. 윤태희가 작게 신음을 흘리며 기침을 뱉을 때였다.

“어디 빼앗아 갈 수 있으면 뺏어 가 보거라.”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암흑이 끈적한 늪처럼 윤태희의 몸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윤태희는 황금사목을 향해 힘겹게 팔을 뻗었다. 탈을 빼앗기엔 역부족한 거리였다. 아슬아슬하게 손끝이 닿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 거리로도 충분했다.

윤태희의 손끝이 황금사목의 이마를 일직선으로 그었다.

윤태희가 입술을 달싹였다. 세 번 연달아 이름을 부른 순간, 마침내 그 의도를 알아차린 황금사목이 호탕하게 웃었다. 인간의 형상으로 있던 방상시가 모래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과연, 본향의 아이로구나.”

눈을 떴을 때는 새벽녘이었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배 위에 몸을 말고 있었던 고양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배 위에 놓여 있는 것은 나무로 깎아 만든 탈이었다.

“…….”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 윤태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무 탈을 손에 쥐었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희끄무레한 새벽빛이 번져오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집안은 조용했다. 탈을 든 채 멍하니 앉아 있던 윤태희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윤태희의 발걸음은 재겸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방문을 열자 평소와 다름없이, 마치 식물처럼 누워 있는 재겸의 모습이 보였다.

스탠드 불빛이 은은하게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멍하니 재겸을 응시하던 윤태희가 손에 들고 있던 탈을 얼굴에 썼다. 나무로 된 탈의 감촉이 서늘했다. 방상시 탈을 쓴 윤태희는 마침내 재겸의 진명(眞名)을 보았다.

“…….”

아, 윤태희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쿵, 쿵, 쿵…….

꿈에서 깨어나 방상시의 탈을 본 순간부터 심장이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만약 이 자리에서 너를 부르고, 내 곁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한다면, 너는 지금이라도 눈을 뜰지도 모른다.

“미안해. 나 널 위해 살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너도 너를 위해서 살아.“

불덩이처럼 뜨거운 것이 목울대를 치고 올라왔다. 애타도록 소년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소년의 이름 석 자와 소년의 삶을 빼앗고 싶었다. 먼 곳에서 헤매고 있을 소년을 허락 없이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싶었다. 윤태희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탈을 벗었다.

“어디쯤에 있어……?”

윤태희는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기다리지 않겠다.

그러나 부디, 선물처럼 나에게 찾아와 주기를.

***

소리 없이 스며들었던 고양이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고양이의 모습이 보이질 않자 메산이와 유남생은 고양이가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윤태희는 고양이가 멋진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어도 정이 붙었는지, 고양이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자 메산이와 유남생은 한동안 심란해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헤어짐이 섭섭한 모양이었다.

혹한의 겨울이 가고, 때 이른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온종일 비가 내렸다.

얼음이 녹고, 새싹이 움트는 계절이었다. 만물이 생동하는 생명의 기운이 지천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러나 재겸만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고 제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윤태희는 거실 마룻바닥에 누워서 비 내리는 창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메산이와 유남생은 그 옆에 엎드려 배를 깔고 누운 채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어깨 한쪽을 베고 무료하게 누워 있던 윤태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루 종일 축축하네…….”

불규칙한 일정으로 근무를 하다가 저녁과 주말이 있는 생활을 하게 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쉬는 날을 어떻게 보내야 되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벽사단 일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호출이 빈번하여 걸핏하면 현장에 불려 나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평생을 바쁘게 살다가 이렇게나 온전한 여백 속에 있으려니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삶 전체를 견인하던 복수는 끝났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 어김없이 내일이 온다.

윤태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직장에 출근하는 일상은 평화롭고 무료했다. 그러나 대륭 고등학교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생활이 불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나례청으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그때가 그리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윤태희는 때때로 소년의 권태에 대해서 생각했다.

윤태희는 어느샌가 자신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동자님은 무슨 생각 하면서 살아요?”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던 윤태희가 메산이를 향해 불쑥 입을 열었다.

“네?”

“동자님은 사는 게 재밌어요?”

뜬금없이 날아든 질문에 메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뜰 때였다.

“우리 중에 동자님이 제일 오래 살았잖아요.”

“네엥.”

“사는 게 지루하지 않아요?”

윤태희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메산이가 손가락을 꿈지럭거렸다.

“어어… 저는요… 그냥 너구리랑 산새랑 놀러 와 주고… 그리고… 정주 님이 해주시는 밥도 맛있고… 어어, 그래서… 그냥 매일매일이 재밌어요…….”

“하지만 오늘은 비가 와서 너구리도 산새도 안 왔잖아요.”

“네에….”

“그리고 정주 씨는 지금 서울에 가 있고.”

“네에…….”

“오늘 같은 날도 사는 게 재밌어요?”

“아니요… 오늘은 조금 재미없었어요….”

메산이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은 외롭고 슬프지 않아요?”

“음…….”

골똘히 고민하던 메산이가 고개를 들었다.

“네, 슬프지 않아요.”

“왜요?”

“비가 그치면 또 올 테니까요.”

비가 오고 너구리도 산새들도 놀러 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도 있는 거다. 그러니까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메산이가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구나.”

잠시 말이 없던 윤태희가 빙그레 웃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샌가 비가 그쳐 있었다. 밤이 깊었다. 비를 피하던 너구리와 산새들도 자러 갔을 시간이었다. 밤하늘이 맑게 갠 것을 보니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 같았다.

윤태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내일은 올까요?”

메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태희는 메산이를 훌쩍 안아 올렸다. 이제 잘 시간이었다. 기다리지 않아도 내일은 온다. 그러나 밤을 건너서 아침으로 가려면 잠을 자야만 한다.

“잘 자고 내일 만나요.”

윤태희는 메산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

매일매일 재밌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메산이는 정말로 하루하루가 재밌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곁에 있던 정주가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윤태희는 직장에 출퇴근하게 되면서 한동안은 쓸쓸한 기분이 들었었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며칠 지나니 괜찮아졌다. 유남생이 빈자리를 채워 준 덕분이었고, 생각해보니 할 일이 매우 많았던 탓이다.

한글 공부도 해야 하고, 이사 가기 전 함께 어울려 지내던 너구리와 다시 재회하게 되어 쉴 틈 없이 신나게 놀아야만 했다. 공부도, 노는 것도 어느 것 하나 게을리해선 안 되었다.

헤어진 줄 알았던 너구리와 다시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역시 삶에 영원한 이별은 없는 법이구나! 메산이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삶이라는 길 위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진다는 건 그런 것이다. 어느 날은 그 작별이 너무나 쓸쓸하게 느껴지지만, 살다 보면 돌고 돌아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렇기에 더 소중한 것이다.

어떤 이의 눈에는 쳇바퀴 굴러가듯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메산이는 매일 밤마다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일기를 다 쓴 후에는 잠들어 있는 재겸에게로 갔다. 메산이는 재겸의 옆에 뒹굴 누웠다. 어느 샌가부터 ‘어어, 나리! 저요, 오늘은요….‘ 하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것이 하루를 정리하는 마지막 일과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말을 하다 보니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분명 눈앞에서 이렇게 보고 있는데도, 눈물이 날 만큼 나리가 보고 싶다.

“흑, 흑…….”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메산이는 울음을 참으려고 애쓰며 눈가를 주먹으로 문질렀다. 지금까지 재겸이 깊은 잠에 빠진 적은 여러 차례 있었다. 비마에게 악몽을 사거나 크게 다쳐 폭주하였을 때 그랬었다. 그러나 이렇게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대로 재겸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봐 메산이는 덜컥 겁이 났다.

다음날, 윤태희가 출근하기만을 기다린 메산이는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조언을 구할 곳이 필요했다. 비마라면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마가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건 메산이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메산이는 재겸이 하던 대로 마패를 땅에 묻고 피 몇 방울을 흘렸다. 한 차례 목을 가다듬은 메산이가 어색하게 주문을 외웠다.

“비, 비마의 갈기는 방황을 멈추고 부름을 받으라…….”

땅속에서 쿠르릉, 소리와 함께 진동이 시작되더니 발밑이 흔들렸다.

“무슨 일이오?”

비마가 땅을 박차고 솟아 나오자, 메산이는 꾸벅 허리를 숙였다.

“어어… 비, 비마 나으리. 안녕하세요.”

메산이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나리가요, 아직도 눈을 뜨지 않으셨어요. 나리께서 왜 깨어나지 않으시는지 모르겠어요. 호, 혹시 짐작 가는 바가 없으신지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비마는 얼마간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있다가, 한참 만에 대답을 꺼내놓았다.

“재앙신이 떨어져 나가고, 공자의 혼만 남은 것은 맞을 것이오.”

메산이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왜 깨어나지 않으시는 걸까요?”

“혼이 훼손된 모양이군.”

비마의 말은 이러했다.

재앙신의 혼과 분리되는 과정에서, 하나로 붙어 있던 혼이 떨어지면서 재겸의 혼이 온전치 못하게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재앙신의 혼이 남았더라면, ’재겸‘은 진작 눈을 떴을 것이라고 비마는 덧붙였다. “호, 혼이 다쳤다는 건가요?” 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어떡해야 해요?”

“그거야 나도 모르오.”

메산이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한 기분이 되었다. 비마가 떠나고, 유남생과 단둘이 남은 메산이는 잠든 재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의 나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런데 비마의 말대로라면 이대로 아주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혹은 영영…….

메산이는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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