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여원 3
“진 사장. 요즘 기분 좋은가 봐?”
하재운이 능글맞은 얼굴로 빈정거렸다. 주변을 배회하던 담배 연기가 바람이 불자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담뱃갑에서 장대 하나를 꺼내는 하재운이 어서 피우라는 시늉을 했다. 흘끔 내려다보기만 하고 옆에 나란히 세워진 자전거 두 대로 시선을 옮겼다.
“뭐야, 금연 박살 난 거 아니었어? 그러지 말고 피워라, 응? 이왕이면 건물 내부에 흡연 구역도 좀 만들어 주고.”
하재운이 서 있는 자리는 암암리에 흡연 구역이 된 지 오래였다. 지속되는 폭염 때문인지 하재운이 투덜거리는 것도 불쾌지수만큼이나 올라갔다.
삐뚜름하게 세워진 분홍 자전거가 린스키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자전거 주차대를 제대로 내리지 않은 분홍 자전거가 엎어지지 않도록 린스키가 대신 버텨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피식 짧은 웃음이 나왔다. 주차마저도 박석연답게 어리숙해 보였다.
“뭐야, 무슨 생각하기에 그렇게 웃냐.”
“곰 같은 여우.”
“뭐?”
하재운이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했다.
“설마 네 애인 말이냐?”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눌러 끄며 재차 물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건만 하재운이 기막힌 얼굴로 나를 훑었다.
“그 대단한 진여원 씨께서 단단히 빠지셨구만.”
“보통이 아니라.”
린스키의 강화 프레임도 단번에 박살 내는 재주도 가졌고, 섹스 도중에 잠드는 무신경함도 지닌 박석연이었다.
단단히 빠졌다고……. 마음먹고 끊은 담배마저도 피우게 만들었던 상대이니 하재운의 말 대로였다.
분홍 자전거를 툭 치고는 로비로 걸어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도 거의 끝나가는 즈음이었다. 옆에서 나란히 걷던 하재운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보통이 아닌 애인은 언제 소개해 줄 건데? 푸핫, 으하하. 저거 석연이 봐라. 진짜 웃기다니까, 크크.”
궁금증을 쏟아내던 하재운이 배를 움켜잡았다. 안경을 벗고는 카페테라스로 다가갔다. 아이스크림 냉동고에 머리를 처박은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냉동고 속으로 들어갈 기세로 상체를 기울이더니 이내 팥빙수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양옆으로 눈치를 보고 다시 냉동고에 얼굴을 박았다.
누가 오는지도 모르는 채 땀을 식히는 박석연에게 다가갔다.
“아예 들어가지?”
박석연이 화들짝 놀라 몸을 들어 일으켰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그냥 아이스크림 고르고 있었……습니다.”
운동이라도 하고 왔는지 얼굴이 땀투성이였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이 촉촉해 보였다. 박석연의 눈가에는 아직 푸르스름한 멍이 들어 있었다. 펜스에 걸려 나자빠지며 생긴 상처가 제법 오래갔다.
잔디가 깔려 있어 저만하길 다행이지. 박석연 때문에 몇 번이나 심장이 철렁이는 일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뭔가를 닮은 것도 같은데…….
“우리 석연이 꼭 바우와우같다. 그 눈에 동그란 점 있는 개 말이야. 으하핫.”
팥빙수를 쥐고 있는 박석연이 하재운의 말에 뚱한 얼굴을 했다.
“가뜩이나 아픈데 이사님까지 그러시기입니까.”
“아, 미안 미안. 푸흣……. 누구랑 싸웠어?”
“펜스랑요.”
“하하, 대체 언제?”
“며칠…… 됐어요.”
하재운이 흡사 폭소를 터뜨렸다. 박석연이 내 쪽을 올려다봤다. 불만이 가득한 눈초리였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유를 전부 알 수는 없었다.
대체 뭐 때문인지 몰라 물끄러미 쳐다봐 주자 이내 눈을 내려서는 냉장고를 열었다. 박석연이 흰 우유를 꺼내고서야 물었다.
“포카리 드릴까요?”
“캔으로.”
“이사님은요?”
“난 됐어.”
박석연이 옆구리에 팥빙수를 끼고 꼭대기에 놓인 음료를 꺼냈다. 뚜껑까지 따서 주는 걸 보니 삐쳤다가 금세 풀렸나 본데……. 여전히 종잡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나기 같은 건지도 모른다.
음료를 마시며 박석연을 구경했다. 팥빙수 아이스크림 안에 흰 우유를 들이붓고 있었다. 수저로 휘휘 젓더니 목울대를 울려 가며 팥빙수를 마셨다. 일회용 팥빙수 용기에 입을 댄 채로 또 나를 쳐다봤다.
“왜……. 보십니까.”
박석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안에 남은 얼음을 수저로 퍼먹었다.
“곰 같은 여우라.”
어느새 웃음기를 거둔 하재운이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 정도 직구를 못 알아들으면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바보겠지.
하재운은 눈썹을 긁적거리며 설마…….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 지금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야. 진 사장……. 아니지?”
“뭐가.”
“그……. 보통이 아닌 사람이 말이야.”
하재운이 턱짓으로 박석연을 가리켰다. 박석연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팥빙수의 얼음이나 긁어 먹고 있었다.
“박석연이 보통은 아니지.”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박석연이 입 안에 얼음을 가득 넣고 우물우물거렸다. 제 맘대로 말을 뱉어 놓고는 또 주변의 눈치를 살펴봤다. 그걸로도 부족한지 양갱 하나를 계산서에 추가했다.
늘 보고 있노라면 유쾌했다. 가만히 대화하다 보면 무척 즐거웠고.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급히 냉장고를 연 하재운이 목이 타는 듯 탄산음료를 꺼냈다.
“테니스…… 경기, 두 분이 같은 팀 하시는 겁니까?”
박석연이 양갱 포장지를 벗기며 물었다.
“아, 맞어! 진 사장 내가 얘기 안 했지? 우리 참가 같이하자. 석연이는 부서 사람하고 한다네.”
“예, 새미요.”
“질투 나는데.”
적당히 본심이 섞인 말을 내뱉었다.
“푸핫-”
하재운이 마시던 콜라를 뱉어 냈다. 앞에 서 있던 박석연이 뒤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럼에도 전부 피하진 못해 거무튀튀한 콜라가 박석연의 셔츠에 점점이 묻어났다.
“쿨럭, 미안, 석연아 진짜 미안! 진 사장, 나 좀 그만 놀려라.”
믿고 안 믿고야 자유지만 둔한 것도 정도가 있다. 더는 힌트를 줄 생각을 버렸다. 놀리는 재미도 여기까지였다.
박석연이 콜라의 잔해를 털어 내며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저 인간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이번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속마음이 들려왔다.
당황하는 둘을 내버려 두고 카페를 걸어 나왔다. 손에 들린 음료를 입에 머금었다. 부족한 듯 시원한 향에 매료된 건 언제부터였더라. 지나치게 오래된 기억이라 이 음료를 즐겨 마시기 시작한 시작점도 희미했다.
“저, 사장님.”
뒤따라 나온 박석연이 나를 불렀다. 양갱을 든 채로 이마의 땀을 닦아 내리고 있었다.
“테니스 경기 정말 참가하실 겁니까?”
“그럴 생각인데.”
“사장님께서 1등 하시면 상금은……요?”
“당연히.”
상금을 욕심내는 모습이 눈에 훤했다. 애초에 참가할 생각은 없었으나 박석연이 저렇게 나오는 것을 보니 마음이 뒤바뀌었다.
“내 거지.”
젖은 박석연의 머리카락 가까이 대고 말했다. 박석연이 동시에 숨을 삼켰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양갱을 가지런히 들었다.
“치사하시네요.”
기가 죽은 모습을 보아하니 파트너의 실력이 썩 뛰어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라 그리 치사한 처사는 아닌 것 같은데. 멍 자국 때문인지 더없이 안쓰러워 보이는 형국이었다.
엘리베이터로 마저 걸음을 옮기자 박석연이 쪼르르 따라붙었다. 단둘뿐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박석연은 입술을 우물거리기만 했다. 자꾸만 저 입술로 시선이 가니 나도 문제다.
3층에서 내려 사장실로 향하는 내 뒤를 다시 바짝 따라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라며 고개를 까딱했다. 박석연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한달음에 안으로 들어왔다.
닫은 문을 등지고 박석연을 내려다봤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이내 땀 때문에 눈이 쓰라린지 벅벅 비벼 대기까지했다. 멍든 쪽은 함부로 만지지 못한 채 눈살만 찌푸렸다.
“저……. 휴가 때 말입니다.”
입을 달싹이고는 뭔가 결심한 사람처럼 고개를 바짝 들었다.
“저랑 같이 시골 내려가서 편히 쉬다오는 게 어떠……십니까.”
저 말을 하려고 그렇게 고민을 했던 건가? 그렇다면 뜸 들일 필요 없이 말하면 될 것을……. 평소와 같은 태연함으로 박석연을 내려다봤지만 분명 심장은 뒤흔들리고 있었다.
박석연 식의 데이트 신청은 나를 들뜨게 하고 있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눈치만 살펴 대고 있는 녀석의 팔을 잡아끌었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는 박석연에게 쪽하고 가볍게 키스했다. 입술은 차가웠고 맞닿은 뺨은 뜨거웠다.
축축하게 젖은 입술을 빨아들이자 양갱이 툭 떨어졌다. 금세 몽롱한 눈이 돼서는 제 입을 열어 주었다. 더 깊이 탐하지 않고 입술을 떼어 냈다. 박석연의 눈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왜 더 해 주지 않느냐는 듯한 부추김에 허리를 꽉 둘러 안았다.
“이러니 여우지.”
박석연의 입술에 대고 속삭였다.
“제가요? 오히려, 읍.”
항의로 잔뜩 벌어진 입술을 먹어 치웠다. 달달한 팥내가 박석연에게서 전해져 왔다. 마냥 달콤하기만 한 초콜릿과는 다른 담백함이었다.
화답하듯 내 등을 부둥켜안는 손길에 문득 참을 수 없는 흥분이 일었다. 문으로 박석연을 밀어붙였다. 말캉한 입술을 괴롭히며 엉덩이로 손을 미끄러뜨렸다.
몽롱함에 취해 있던 박석연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다급히 내 손목을 잡고 젖은 입술을 우물댔다.
“그래서 가실 겁……니까?”
되물으며 삽시간에 내 품에서 벗어났다. 박석연이 바닥에 떨어진 양갱을 툭툭 털고는 문고리를 잡았다. 귓바퀴까지 빨갛게 물든 뒤였다.
“바라는 바야.”
눈에 띄게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설마 내가 거절할 거라는 생각을 했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박석연의 머릿속을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박석연이 양갱을 쥔 채로 빙글 돌았다. 행여 내가 잡을까 염려하는 듯 문을 활짝 열었다.
“회사에서 이러시면 안 되죠. 직원한테 징계도 내리신 분이…….”
한 발을 밖으로 빼낸 채로 제 할 말을 전부 내뱉었다.
“양갱 맛이 궁금해서.”
박석연의 손에 들린 양갱을 가리켰다. 박석연이 내게서 도망치듯 재빨리 걸어 나갔다. 그러다가 곧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돌아섰다.
열린 문밖에 서 있는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거렸다. 뒤늦게 인사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유쾌함이 전신을 감쌌다. 적당히 버릇없고, 적당히 예의 있었다.
내가 봐주게 되니 박석연도 은연중에 마음대로 구는 걸지도 모르지. 쏜살같이 사라지는 박석연의 등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박석연이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빠져들었다.
불시에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정신을 차리니 나를 흠뻑 적셔 놓은 뒤였다. 어쩌면 가랑비처럼 젖어 갔는지도 모른다. 눅눅하고 축축하게 시나브로 젖어 가고 있다가 큰비를 맞고 나서야 깨달았을지도.
‘갑작……스럽네요.’
현관 아래서 비를 피하던 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동그란 콧대는 하염없이 내리는 소나기를 향해 있었고, 선한 눈에는 내가 모를 생각들이 담겨 있었다. 박석연에게 참지 못하고 물은 것도 나였다.
‘무슨 생각해.’
‘소나……기요.’
이윽고 나온 대답에 온몸이 젖어 버렸다.
박석연을 봐주고 싶고, 내 안에 가둬 두고 싶었던 감정의 정체를 인지한 순간이었다.
단순한 호감일 뿐이라고 치부할 뻔했던 내게, 박석연이 소나기가 되어 찾아왔다. 결국 내가 느끼던 유쾌함이 그런 거였다니. 그것이 미유가 말하던 내 인생에 한 번 정도는 찾아올 사랑이었다니.
어째서 박석연이었을까. 오랜 과거에는 단순히 눈에 밟히던 미련한 후배였을 뿐이다. 그러나 쌓여 가던 감정의 무게는 묵직하게 심장을 내리눌렀다. 정신 차렸을 때는 감정의 무게에 압사당할 지경이었다.
문고리를 잡고 사장실의 문을 닫았다. 저 문에 매달려 있던 운동화를 불현듯 떠올리자 서늘한 기운이 등에 머물렀다.
정말 사랑한다면 놓을 수도 놓칠 수도 없다는 미유의 말을 그날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박석연이 나를 밀어내려 해도 잡은 손을 놓을 생각 따윈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끝까지 붙잡아 보는 수밖에.
미련하다 여겼던 박석연과, 비참하다 여겼던 미유의 등이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저 사랑을 한 것뿐이었다. 다소 손해를 동반한 사랑일지라도. 만일 더 좋아하는 사람이 손해 보는 것이 사랑이라면 박석연에게는 수백 번 봐도 상관없었다.
그나저나 김대영 같은 새끼를 사랑했다니, 손에서 캔이 구겨지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때마침 직통전화가 울렸다. 찌그러진 캔을 책상에 두고 넌지시 번호를 확인했다. 역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이쯤 되면 올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전달한 서류를 받고 검토할 시간은 충분했을 테니까.
“윰 대표 진여원입니다.”
[안녕하시오, 나 세노스 대표 최재경이오.]
노인이 말끝에 침음을 흘렸다.
“안녕하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서에게 이야기 전해 들었소. 어찌 되었든 이번에는 우리 쪽에서 실수한 것이나, 무겁지 못한 그쪽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 아니오?]
실수한 자의 태도가 심히 오만했다. 물론 그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지는 일은 없었다.
“최 대표님께서는 굉장히 특이한 사고방식을 가지셨군요. 저희 하 이사가 세노스 김대영 과장에게 레인슈즈 기획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극히 사적인 자리에서였습니다. 무겁지 못한 책임이라면……. 그 말씀은 대학 동기가 기획을 훔쳐 갈 거라는 의심을 처음부터 해야 했다는 말씀이군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렇게 따지고 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대가 퍽 자연스러운 노인이었다.
“전달한 서류는 다 읽어 보셨을 테니 길게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세노스에서 출시한 레인슈즈 기획인 ‘섬머 레인데이’ 명칭부터 시작해, 선공개 미공개 버전으로 나뉜 것, 마지막으로 잡지 지면에 싣고자 했던 광고 스케치가 윰이 준비해 두었던 것과 거의 동일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양사(社)의 분란을 바라지 않는바, 이번 일을 수면으로 드러낼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원하는 게 있을 게 아니오.]
말이 통하는 노인이라 처리가 훨씬 수월할 듯했다.
“기획자에게 합당한 처벌만 내린다면 윰에서는 이번 일을 불문에 부치도록 할 생각입니다.”
[합당한 처벌이라……. 이미 김 과장에게 징계를 내린 데에 대해선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오.]
“…….”
수화기를 든 채로 의자에 앉았다. 구겨진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동안 상대방은 침묵했다.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으니 한 가지 이유나 좀 들어봐도 되겠소?]
“말씀하시죠.”
[혹시 김 과장에게 개인적인 악감정이라도 있으셨던 겐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웃음을 담아 대답했다. 원칙대로라면 세노스와 전면전을 펼쳐야 했다. 그런데 기획자만 처벌해 달라고 했으니 당연히 의아했겠지.
[허허, 그 멍청한 친구가 잘도 거미줄에 걸렸나 보구만……. 진 대표, 참 무서운 사람이구려.]
“과찬이십니다.”
수십 년간 브랜드를 지켜온 대표답게 눈치가 제법이었다. 세노스 대표와의 전화를 끊고 나서야 잠가 두었던 책상 서랍을 열었다.
팩스로 받아 보았던 석 장의 사진을 꺼내 들었다. 사진 속 두 인물을 손으로 툭 튕겼다. 굳이 이것까지 사용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준비하느라 제법 애먹은 사진이건만…….
김대영과 남자가 얽혀 있는 사진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사용하지 못함에 생겨난 아쉬운 마음은 따로 달래야 했다.
차가운 물로 입을 축이고 메신저 창을 열었다.
[박석연]
접속자 목록에 떠 있는 이름을 눌러서 대화창을 띄웠다.
[박석연, 사람 보는 눈 참 없어.]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도착하는 답신에 웃음이 나왔다. 박석연만큼 나를 들뜨게 만드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까 퇴짜를 놓으라는 허튼소리나 했겠지.]
[제발 부탁인데 지나간 일은 좀 잊어버려 주시죠.]
이번 답신은 족히 2분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장님께서 테니스 경기에 참가하는 건 직원들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 같습니다. 꼭 상금 때문은 아니니 오해 마시고요.]
[일해.]
대화를 단절시킨 내 답신에 부루퉁하게 튀어나왔을 입술이 눈에 선했다. 그러다 곧 행복한 얼굴로 양갱을 먹는 모습 또한 그려졌다.
‘진여원, 네 인생에 사랑 한 번 안 찾아오겠니?’
재차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찾았지. 그것도 너무 늦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