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방송 한달째(4)
블럭으로 만든 테이블에 앉아 합방멤버들이 의자너머로 보였다.
구독자 30만, 20만, 70만, 그리고 90만, 40만.
하나같이 요즘 뜨는 스트리머들.
27000도 아니오, 2700도 아니고 하다 못해 270도 아닌 구독자 27따리가 과연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걸까.
실례아닐까?
내가 눈치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역시 거절했어야했나?
공포와 중압감으로 정신력이 깎여나가 손톱을 물었다.
안그래도 짧았던 손톱이 더욱 짧아졌고, 비릿한 맛과 향이 느껴질 무렵 스트리머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진짜 시작됐구나...
녹화를 시작한 듯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사그라들고 드래곤님의 목소리만 울려퍼졌다.
“자! 오늘 할 컨텐츠는 상황극이고요!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쾌하게 내뱉은 말.
시작! 이라는 말은 필요 없었다, 여기서 나를 제외한 모두가 프로 방송인들이었음으로 다들 각자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우습게 연기하기 시작했다.
"밥가져와!!!"
"내가 이놈의 집구석때문에 진짜!"
과장된 톤으로, 웃음소리를 섞어가며 진행되는 상황극에 나 혼자 블럭 3개로 된 개집에 앉아 있었다.
불편하거나 기분나쁜 것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동경하던 프로방송인들을 직관하게 되서 의미 모를 뿌듯함이 감돌았다.
그나저나…
“그런데, 무슨상황극이지...?”
나는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것이 급하게 섭외된 상태였음으로 상황극이라는 것 외엔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어두운 방, 의자위에 앉아 발을 휘적거리는 것으로 불안감을 나타내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우려였을 뿐.
드래곤님이 나가면서 다 떠날줄 알았던 시청자들이 몇명 남아 내 질문에 대답을 건네줬다.
-가족상황극으로 알고 있음ㅇㅇ
조용해진 채팅창에 올라오는 하나의 친절한 채팅.
나는 그것을 바라보면 끄덕였다.
“고마워요.”
떨리는 손으로 물을 한 잔 마시고는 심호흡하여 스트리머들이 나에게 눈치줄 때, 짖기 위해 신경을 바짝 세웠다.
분명하기 싫은 역할임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방송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무려 대기업 스트리머들과의 합방이다.
이것은 분명 어마어마하게 큰 기회임과 동시에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위기였다.
만약 여기서 끔찍한 실수라도 하게된다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 벌어지겠지...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끄응...”
“해피!”
어?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낼법한 귀여운 여자목소리.
“해피! 이리와!”
그 목소리가 누군가를 찾는다.
누굴찾는거지?
하시는 행동이 마치 개를 대하는 듯 한...
잠깐.
나는 인생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머리를 회전시켰다.
1. 스트리머중 해피라는 닉네임을 지닌 사람은 없다.
2. 해피는 보통 강아지에게 붙이는 이름 아닌가?
3. 그리고 이 상황극에서 내 역할은 뭐지?
개!
“멍!”
상황극이라는 생각은 버렸다.
그저 한 마리의 개가 되어 짖었을 뿐.
개가 개짖은 소리를 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외쳤것만 반응이 늦는다.
내가 실수했나?
잘못했나?
사과해야 하나?
개답지 못했나?
어쩌지.
두려움에 떨며 입술을 질겅거리자 웃음기섞인 귀여운 목소리가 누군가를 향해 외쳤다.
“나 해피 산책시키고 올게!”
“굳이 돌아 올 필요 없어! 그대로 사라져!”
신경질적인 남성의 목소리.
나는 둘의 닉네임을 확인했다.
20만 구독자 아람님.
40만 구독자 가람님.
기분 탓일까.
뭔가 되게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자 해피!”
아이템 낚시대을 이용, 낚시바늘을 내 캐릭터에 투척해서 끌고 나가는 아람님의 모습에 조금은 기가 죽었다.
어,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끼,끼잉...”
필사적인 강아지흉내, 다만 내 감정을 말하고 싶어서 어떻게는 표현해보려 애쓰자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내가 진짜 무슨 큰 잘못 저지른건 아닐까...
볼을 긁적이며 무심코 채팅방에 시선을 돌리자 시청자가 무려 12명이 들어와있었다.
와! 많이 들어와 있다!
헤실헤실.
아마 다른 방에서 나를 보고는 호기심에 들어온 모양.
근데 뭔가 좀 이상한데...?
눈을 비비적 거리고는 다시 바라보자 12명이 아닌 120명.
“어, 어?!”
믿을 수 없는 시청자의 숫자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놀람.
이내 실수 했다는 생각이 들어 빠르게 개의 언어로 표현했다.
“멍...멍!”
-개 역할이라고 진짜 개소리만내넼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말을 해요ㅋㅋㅋㅋㅋㅋ
-개니까 개소리를 내는데 무슨 문제라도?
-ㄹㅇㅋㅋ
-아ㅋㅋ 근데 귀여우니까 된거 아닐까?
...
말 해도 되는거 였어...?
시청자들의 놀림.
붉게 달아올라 뜨거워진 얼굴.
나는 조심스럽게 아람님에게 속삭였다.
“그... 말 해도 되는거 였어요...?”
“아, 네!”
아람님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그, 그 개역할 이라는 소리가 진짜 개를 뜻하는건 아니라...”
아하핳 거리는 특유의 웃음소리를 낸 아람님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아까부터 미묘한 침묵은 내가 진짜 개소리를 내서 당황하셨던 거구나!
하지만 나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드재님이 그, 눈치주면 ‘멍‘ 소리만 하라고 했는데...”
“어... '눈치주면'이요... 평범하게 말할 때 말고...”
“아앗...”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걸까.
죽고싶어졌다.
좀, 진심으로…
이 사람들은 도대체 날 어떻게 봤을까.
초면부터 개짖는 소리를 내는 여자애라니.
첫 인상을 시작부터 조지고 들어가는 상황에 고개를 푹 숙였다.
쪽팔린다, 아니 그보다 죽고 싶다.
흐어엉...
소리내어 울어버리자 아람님이 당황하며 나를 달래려 들었다.
“아니아니! 그, 귀여웠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아, 진짜 죽고 싶다.
아람님은 진심이라는 듯, 목소리에 힘을 주며 어필할수록 오히려 더더욱 커다랗게 다가오는 자괴감과 수치심.
어째서인지 조금 더 서러워졌다.
“흐어어엉-...”
누군가를 탓할 일은 아니었다.
나 혼자 이상한 짓 한 것에 불과했으니까.
“끄윽...”
“뚝!”
“뚝...”
쪽팔림과 수치심을 한숨으로 내보내고는 씩씩하게 마우스를 움켜쥐었다.
“진정됐어요...!”
“와! 장하다!”
뭐지, 애 취급하는거 같은데 기분 탓일까?
아람님의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 같았다.
아람님의 마이크는 내가 사용하는 중고마이크와 다르게 분명 비싼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거친 숨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래도 저런 숨소리는...
“조금 부담스러운데...”
혼자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
나 혼자 시청자 없이 방송하던 때에는 아무런 문제 없는 행위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려 130명가량 되는 시청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으며 내 중얼거림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영상으로 추출되어 아람님의 방송에 전달되기 까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리에라님! 제가 부담스러우신가요!?”
“네? 아니요! 전혀요! 전혀 안 부담스러워요!”
“해명해해명해해명해명해해명해!”
뭐를 해명해야 하는 거지...?
어느샌가 상황극이라는 컨텐츠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는 나를 향한 추궁이 시작됐다.
상황극이 이어지지 않자 우리를 찾아온 가람님과 드래곤님, 그리고 그 외의 스트리머들이 우리를 보고는 웅성거렸다.
“상황극보다 저쪽이 더 재밌어보이지 않아?”
“상황극 안해?”
“드래곤이 만든 상황극이 언제 제대로 흘러간 적이나 있어? 그냥 그런갑다 하는 거지”
마지막으로 드래곤님을 팩트로 후드려패는 가람님의 말에 채팅창이 ㄹㅇㅋㅋ와 해명해로 순식간에 도배되기 시작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최고시청자수 7명인 나에게 너무나 곤욕스러운 상황임은 틀림없다.
이런 관심 받아본 적이 있던가?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던가?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던가?
비스무리한 상황이라면 떠올랐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도움되지 않는 방법들 뿐이었다.
이분들이 나에게 적의를 지닌게 아니잖아.
머릿속에 과부하가 걸려버렸고.
하여 렉이 걸려버린 내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은 겨우 옹알이 뿐이었다.
“아우...우에...으에...”
“말을해!”
“부담스러운가요!”
가람님과 아람님의 합공.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나는 자폭을 시도했다.
“그, 그으... 컨텐츠는 안하나요...! 저 잘 짖을 수 있어요! 멍멍!”
“도망치지마 맞서 싸워!”
불발되었다.
“으아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요!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서 한 말이었어요! 죄송해요! 살려주세요! 죄송해요! 미안해요! 멍멍멍멍!”
키보드에 머리를 박아버리며 쾅쾅소리를 내며 사죄하자 오히려 스트리머분들이 기겁하며 나를 달래주었다.
“하지마! 하지마!”
“이제 우리 항목에 논란/사건사고 생긴다, 진짜로”
“하꼬스트리머 괴롭히는 인기스트리머의 갑질 정도로 적히겠지”
-벌써항목생김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 불쌍하긴 했어
-해
-명
-해
-해
-명
좆 된 채팅창에 좆 된 상황.
또 실수를 해버린 걸까.
살짝 까진 듯 이마가 따끔거렸지만 내가 이 컨텐츠를 망쳐버렸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역시 거절했어야 했다.
눈치 없게 끼어들어서 이게 뭔 상황이란 말인가.
“흐어어어...”
컨텐츠 시작하고부터 27분.
내가 컨텐츠를 망쳐먹은 시간이었다.
“괜찮아요! 그, 제가 제대로 설명안한 탓이니까!”
드래곤님이 어떻게든 수습해보겠다면 분전해봤지만 아람님은 그런 드래곤님에게 단 한 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쓰레기!”
“아앗...”
드래곤님의 침몰.
아람님은 '흥'소리를 내며 드래곤님을 뒤로한 채 나에게 다가와 질문을 몇 개 던졌다.
“어차피 컨텐츠는 망했으니, 신입소개나 들어보자! 몇 살이야?”
“어...어?”
신입? 1회용으로 잠깐 불려온거 아니었나?
불안감과 의문.
그래도 대답은 해야 했기에 나는 순순히 질문에 대답을 건네줬다.
“17살이요...”
“와, 진짜 쓰레기... 17살 여자애보고 개처럼 짖으라고 시킨거야?”
“쓰레기네.”
“쓰레기지.”
“와 형 진짜 그렇게 안봤는데...”
“드래곤이요? 그게 누구요? 전 모르는 사람입니다.”
어라?
혼란스럽던 채팅방의 도배내용이 ‘쓰레기’로 바뀌었다.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이모티콘인 죽창모양이 간간히 올라간다.
“아니, 시발 이게 내 잘못이야?!”
드래곤님이 발버둥쳤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고 아람님과 스트리머들이 드래곤님의 캐릭터에 달려들어 죽여 버렸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드래곤이 죽었다! 해산!”
아람님의 승리선언에 모두가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쳤고 이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나뿐이었다.
“이렇게 끝나는거에요?!”
“다음 합방때 보자! 드래곤이 헛소리하면 부담스럽겠지만 나 부르고!”
“롤할 사람있음?"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
아람님의 말이 조금 걸린다.
다음 합방이 있을까?
이렇게나 망쳐버렸는데?
슬퍼져서 눈가를 옷소매로 꾹- 꾹- 누르고 있자 드래곤님이 리스폰 되었고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저지른 죄를 어찌 모를까
몸을 잘게 떨며 한껏 움츠리고 바라보자 드래곤님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늘 수고하셨어요!”
“어... 괜찮나요?”
“뭐가요?
“제가 상황극 망쳐버린거 같은데...”
“그게 대숩니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죠”
미치셨나?
“무엇보다 그런 상황극보다는 지금 상황이 조회수 더 나올꺼 같아서요, ‘17살 여고생에게 개처럼 짖어보라 했습니다’, ‘여고생을 울려보았습니다’ 어그로 잘 끌리지 않겠습니까”
-ㄹㅇㅋㅋ
-그건 맞지ㅋㅋㅋ
“그, 그런가요?”
“예 신경쓰지마세요! 오히려 기분좋으니까요, 다음합방때도 부를테니까 잘부탁드려요."
대기업과의 친분.
다신 없을 기회!
나는 걱정을 떨쳐내고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잠깐만... '다음 합방'이라니, 다음에도 나를 불러주겠다는 소리일까?
5초간의 침묵 끝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니터에 연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 그러면 끝!”
드래곤님도 로그아웃하고 혼자남은 게임속, 나는 채팅방을 바라봤다.
시청자들이 많이 빠져나가 29명 밖에 안남았지만 이것만 해도 내 구독자 수보다 많다!
오늘은 진짜 운이 좋은 날.
헤실거리며 웃고는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방종할께요!”
-?
-???
-?????
-?
갈고리를 수집하고는 방송을 끝냈다.
몸도 피곤하고, 배고프고, 졸리다.
하지만...
“청소해야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는 방을 둘러보았다.
온갖 쓰레기, 정리되지 않은 옷, 끈적거리는 바닥.
‘나중에 할까’ 하는 약한 마을을 뺨을 가볍게 두드리는 것으로 떨쳐내고는 슬리퍼를 신었다.
쓰레기봉투부터 사와야 한다.
나는 아직 몰랐다.
이 방송의 여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