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방송 한달째(8)
바로 다음날, 오전 11시 40분.
퀵으로 몇 개의 박스가 도착했다.
드래곤님에게, 아람님에게, 가람님에게, 네모미님에게.
총 4개의 박스.
설마 정말로 보낼 줄이야.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들을 품에 한가득 끌어안고는 방으로 돌아와 식칼로 박스를 개봉했다.
그래픽카드와 램, 쿨러, cpu.
그리고 마이크...?
다른 것들 도 어안이 벙벙하긴 마찬가지지만 가람님이 보내준 비싸 보이는 마이크는 예상치도 못했다.
“잘못 보내신 걸까?”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가 이내 주섬주섬. 받은 것들을 모조리 바닥에 깔아두었다.
잘 받았다고 사진이라도 보내드려야지.
-찰칵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호의를 보내는 걸까.
나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평범하다기에도 거리가 먼, 조금 덜떨어진 사람이었다.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런 강한 호의는 솔직히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내가 뭐라고...
뒷머리를 긁적이며 부품을들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어쩌지?
습관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으며 본래 있던 컴퓨터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조립해야겠지...?”
컴퓨터에 대한 지식은 그야말로 기초적인 것 외엔 아무것도 모르는데 괜찮을까?
조립비용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사분을 부르는 편이 안전하고 빠르지 않을까?
“으음...”
아니야.
애써 약해지는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예전에 본 글에 의하면 레고를 조립하는거랑 비슷하다고 했는데.
내가 지레 겁먹고 있는 건 아닐까?
"응"
그래, 시작하기도 전에 겁먹지 말자!
나는 컴퓨터 앞으로 기어가 끙끙 거리며 낡아빠진 컴퓨터책상에서 본체를 끄집어냈다.
순간적으로 먼지가 날려 기침이 올라왔고, 그것을 억지로 참아내느라 눈물이 찔끔 흘렀지만 이정도야 내가 받은 선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약한 소리할 수 없지!”
씩씩하게 혼잣말을 크게 중얼거리고는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사람들이 나에게 해준 것이 얼마나 많은데 먼지 좀 나고 겁이 난다고 포기 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먼지에 얼룩진 손을 내려다보는 것도 잠시, 나는 본체의 나사를 모두 풀고는 본체의 내부를 관찰했다.
“어... 그러니까...!”
먼지가 눈처럼 쌓여있어 잘 구분이 가지 않아 손으로 먼지를 쓸어내린 후에 다시 봐도 여전히 모르겠다.
“아!”
바닥에 깔아두었던 그래픽 카드를 하나 쥐고 되돌아와 본체에 있는 것 중 가장 비슷 한 것을 찾아보았다.
“이건... 아니고...이것도...아니, 이건가?”
볼을 긁적거리자 먼지가 볼에 묻었지만 그런 것을 하나하나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으으... 빨리 조립해서 자랑하고 싶은데...”
고맙다고도 하고 싶고, 돈쓰게 해서 미안하다고도 하고 싶고, 또...
전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뭐가 됐던 컴퓨터를 조립한 후에나 가능한 이야기.
“인터넷찬스...!”
휴대폰을 가져왔지만, 옆집의 와이파이엔 비밀번호가 걸려있었다.
“아앗...”
들켰나보다.
“몰라... 이렇게 된 거 막 해보자...!”
본체에 꽂혀 있던 그래픽 카드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분해했다.
얼마나 먼지에 찌들었던 건지 폴폴거리며 날아다니는 먼지들.
“청소한지 얼마 안됐는데...”
조금은 억울한 마음.
이럴 줄 알았으면 나중에 청소할걸.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 후에 드래곤님이 보내준 그래픽카드를 끼우려 하자,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안들어가?”
어째서!
분명 이 자리가 맞을 텐데...!
휴대폰의 후레쉬를 킨 후, 본체를 다시 한번 확인하자 그래픽 카드를 뽑아낸 자리가 부러져있었다.
분명 방금전에 뽑아낼때 빠득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설마 부러졌을 줄이야!
“아, 안돼...!”
급하게 본래 사용하던 그래픽카드를 다시 끼워맞춰보지만 들어갈리가 없었다.
무식하게 힘으로만 뽑아낸 결과였다.
“이제 어쩌지...?”
부품까지 받았는데 연락도 안되고 방송도 안키면 먹고 튄걸로 생각하지 않을까?
미움받는거 아니야?
떨리는 손으로 지금 상황이라도 알리고자 디코를 열었지만 데이터가 끊겨있으니 작동 될리 만무했다.
식은 땀이 흘러 등이 축축해진다.
“우그읏...”
나는 외투를 뒤집어 쓰고는 무작정 근처 상가로 달렸다.
"케이스…! 케이스…!"
컴퓨터 케이스만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돈이 조금 들더라도 기사님에게 맡기자...!
"아, 맞다...!"
거리의 공용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오늘 방송 늦는다고 공지도 적어야한다.
최대한 오해를 사지 않게!
네모미님이 끊으라고 하셨지만 어제 방송종료후 커뮤니티를 확인했었다.
아람, 드래곤, 네모미님의 갑작스러운 중고부품 구매에 내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빠른 시청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 내가 공지도 없이 방송을 안킨다?
무슨 욕을 먹을까 두렵기까지 했다.
"헥…헥…"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숨이 찬건지.
상체를 수그려 개호흡을 하고는 비틀거리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때, 주머니에서 들리는 알람소리.
어젯밤에 만들었던 서버.
데이터가 끊겨 밀려있었던 대화와 알림이 와이파이가 연결되자 일제히 울린 것이었다.
ㆍ
ㆍ
ㆍ
-도착했다고 문자 받았어요!
-나도
-조립중?
-오
순서대로 네모미님 드래곤님 가람, 아람님.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해서 사실대로 이야기할까…?
그럴리는 없겠지만 줘도 못 쓴다면서 욕하시면 어쩌지…?
물론 욕 먹을만 하지만...!
뜀박질을 멈췄다.
이 이상 벗어나면 공용와이파이가 끊길 것이다.
디코서버에 나는 솔직하게 말하자고 생각하면서도 마른침을 삼켰다.
제발 미워하지만 말아주세요…!
-조립하다가 그래픽카드 끼는 곳이 부러져서 케이스 사러나왔어요… 죄송해요! 금방 조립할게요!
-그리고 택배는 잘 도착했어요! 정말정말정말 진짜 고마워요!
-[사진]
읽음 표시가 나타났음에도 4분간 아무런 말이없었다.
더 빌까? 죄송하다고 해? 미안한 마음이 부족했던 걸까?
온갖 생각이 떠오르는 영원같은 4분.
그 시간 끝에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드래곤님이었다.
-리에라님
드래곤님이 나를 불렀다.
"네, 네!"
-네!
육성과 채팅을 동시에 하며 발을 동동굴렀다.
-현실합방가능하세요?
"네?"
-네?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합방이라니.
갑자기?
현실에서 만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록 만난지는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드래곤님이라면, 아람님 가람님 네모미님이라면 믿을 수 있었으니까.
-가능하긴해요!
하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왜? 어째서?
아, 혹시…!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 못생겼어요…!
-그런거 아니야!
그런게 뭘까.
어쨌든 혼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긴장감이 풀리며 안도감이 몰려와 헤실거리며 웃자 길거리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힐끔힐끔 쳐다본다.
그것을 눈치채고는 뺨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무표정을 연기했지만 오히려 더 시선이 쏠린 것 같았다.
"뭐 묻었나...?"
소매로 얼굴을 닦자 시커먼 먼지가 묻어 나왔다.
"아앗!"
이거때문이었구나!
급히 양소매로 고양이 세수하듯 얼굴을 문대고는 다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합방장소는 너희집, 나만가는게 아니고 아람이도 갈 예정, 물론 너희 부모님에게 허락은 구해야지.
어…?
부모님이라는 말에 나는 조금 시무룩하게 채팅을 쳤다.
-부모님 안계세요!
-? 17살에 벌써 자취야?
-두분 다 돌아가셨어요
읽음 표시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침묵은 10분간 지속되었고 이내 드래곤 님이 말을 건네왔다.
-미안.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순식간에 달라붙어 드래곤님을 쪼아버리는 다른 사람들.
그모습에 우중충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런데 현실합방은 왜요?
-제목은 여고생집에 찾아가봤습니다.
-네?
-쓰레기
-넌 좀 닥쳐봐!
-어쨋든 컨텐츠는 그냥 네 컴퓨터 조립해주고 노가리까는거야
가람님에게 화를 내면서도 합방 목적이 내 컴퓨터의 조립임을 알려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까지' 라는 생각을 몇번이나 하는걸까.
하지만 이런 생각이 계속 드는 것도 별 수 없었다.
누가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정상적인 상황이던 비정상적인 상황이던, 내가 여기서 내뱉을 말은 정해져있었다.
-천사다…
이게 과연 사람의 착함일까?
솔직히 이정도면 흔히말하는 호구가 아닐까?
-아니, 나도 조회수 잘나올꺼 같으니까 하는거지 뭐, 물론 얼굴이나 주소는 특정당하지 않게 주의할게.
-쓰레기
-너 차단한다,
-그리고 케이스는 사지마, 내가 사갈테니까.
나는 거절하려다 방금의 부모님 질문에 대한 사과의 표시라는 것을 깨닫고는 입을 닫았다.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고 오히려 미안해 해야할 것은 내쪽이였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상황에서 내가 해야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고마워요!
-내일 오후 1시즈음 간다ㅇㅇ
-네!
갑작스레 현실 합방일정이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