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방송 두 달째(4)
스컬 소울, 예전에는 컴퓨터 사양이 되지 않아 시작조차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트리머들의 가호를 받은 컴퓨터가 있었으니까.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오래된 컴퓨터 책상에는 크기가 맞지 않아 따로 빼놔서 다리가 조금 불편했지만 감내할 수 있는 정도.
나는 자신있게 스컬 소울을 실행했다.
한달 전에 보았던 화면이 익숙하게 모니터에 비췄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기괴한 찰흙인형들은 온데간데 없다는 점.
그리고 컴퓨터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비명소리를 내지 않는 컴퓨터라니, 신세계아닐까?
수직상승한 컴퓨터의 사양만큼 자신감도 수직상승.
지금의 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저는 예전의 제가 아니에요!”
-님 버러지같은 실력은 똑같을꺼 같은데
“...패, 팩트밴...!”
물론 장난이었고 진짜로 밴을 하진 않았다.
나도 요즘 느끼고 있지 않던가!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아니, 일반적으로 형편없는 것을 넘어 벌레와 같다는 것을.
“그래도, 그래도! 열심히 해볼게요!”
자신감이 올라갔다 한들 역설적이게도 내 자신을 알게된 지금, 그때와 같이 자신있게 켠왕선언은 못하겠다.
그랬다가는 드래곤님 처럼 48시간 노방종을 하게될테니까.
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골랐다.
캐릭터는 웨어울프, 특성은 재빠름.
“시작할게요!”
시작을 누르고 5초, 로딩이 끝났다.
빠르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로딩이 이렇게 빠르게 끝나다니!
세상에!
와아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감탄사.
재빠르게 입을 양손으로 가려봤지만 내 감탄사는 마이크를 통해 방송에 울려퍼졌다.
-로딩빠르다고 감탄하네 아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왜 감탄하는지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이 섞인 기묘한 반응.
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게임에 집중해야 한다.
안그래도 인간이하의 실력, 집중까지 안한다면 어떤 기괴한 꼴을 보일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게다가 이 게임, 어렵다고 소문이 자자하지 않던가.
이 앞으로 얼마나 험한 꼴을 보일지 두려우면서도, 시청자들의 반응 기대가 된다면 너무 변태같은 걸까.
으-쨧 이상한 기합소리와 함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폐허가 된 건물 내부, 분위기가 스산한 것 외엔 특별한 것은 없어보였다.
이런 곳에 굳이 이상함을 찾자면 바닥에 늘러붙은 핏자국.
그것을 가까이 가서 상호작용키를 눌러보자 [이 앞 너 있다.]라는 텍스트를 표시해줬다.
다른 유저가 남긴 메모.
...?
이 앞에 내가 있다고?
무슨의미일까?
나는 그 글에 따라 앞으로 직진.
건물잔해 속 반짝이는것을 발견했다.
아이템이잖아?
"오..."
냉큼 주워먹은 아이템의 이름은 [쓰레기]...
"쓰레기가 왜 아이템이에요...?"
-그거 던질수 있음
-던질수 있으면 아이템이지 ㄹㅇㅋㅋ
-아ㅋㅋㅋㅋ
뭔가 속은 것 같았다.
아니, 이 앞에 너 있다에 앞에 있는게 쓰레기만 나보고 쓰레기라는거잖아.
속은 것 같은게 아니고 그냥 속았다.
"으으... 그냥 갈게요."
적도 없었고, 더이상 눈에 보이는 핏자국이나 아이템도 없었다.
하긴, 뭘 이해하기도 전에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것은 예의가 아니진 하지.
아무리 어려운 게임이라 한들, 일반적인 게임의 룰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 듯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온다ㅋㅋㅋㅋㅋㅋㅋㅋ
뭐가 온다는 거지?
이상한 시청자들의 반응에 나는 캐릭터를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역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으음...?”
-진행ㄱ
내가 시작지점에서 두리번 거리고만 있자 참다 못한 시청자의 한마디.
나는 어째서인지 그 말에 깃든 악의를 읽어낼 수 있었다.
내가 확인 안 한 곳이 있었나?
벽은 샅샅이 훑어보았다.
바닥도 혹시 무슨 레버같은 것이 있을까, 살펴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단순한 착각일까?
그 생각이 드는 동시에 본능적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누군가 천장에 서있었다.
붉은 망토, 거대한 체격을 뒤덮은 고풍스러운 검붉은 갑옷, 그리고 붉은 안광.
어느 누가 보아도 평범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기사'
...
구르기 키가 뭐였지?!
무작정 F키를 연타했다.
웨어울프는 바닥을 굴렀다.
0.4초의 무적시간.
아니, ‘재빠른‘ 특성의 효과로 0.5초의 무적시간.
내가 믿을 것은 그것뿐이었다.
천장에서 그대로 추락하는 기사.
쾅-!
기사가 낙하하며 만들어낸 충격파가 웨어울프의 작디작은 HP를 갉아먹었다.
-나를 눈치챈건가?
“눈치 못챘어요!”
시청자들이 눈치를 줘서 알아냈을 뿐이었다.
누가봐도 강해보이는 기사의 모습.
나는 다급히 채팅창을 읽어보았다.
-최종보스ㅎㅇ
-아ㅋㅋㅋ
-패배이벤트임ㅇㅇ
-그걸 왜 알려주는데 씨발
최종보스!
-필히 보통 놈은 아닐터, 지금 이 자리에서 숨통을 끊어주마
“저, 저 약한데요! 무지 약한데요!”
-보통놈이 아니긴함 ㅈㄴ못하잖아
-보통이 아니긴 해ㅋㅋㅋ
“이거 껏다 키면 이이벤트 안볼 수 있어요?”
-노잼
윽.
그래, 어차피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지 않던가.
그리고 패배이벤트라고 했다.
말 그대로 무엇을 하던 질 수 밖에 없는 이벤트.
어차피 지는 이벤트라니, 내가 진다 한들 나를 손가락질 할 사람이 없다는 소리 아닌가!
이런 것이라면 부담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손놓고 얌전히 죽어주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심호흡하고는 마우스를 다잡았다.
게임은 못하지만 이것저것 찾아보는 것은 취미였으니, 이 경우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패턴 파악.
나는 기사와 거리를 벌렸다.
기사가 작아졌다.
그만큼 멀리 떨어지자 기사의 선공이 시작되었다.
검을 내지르는 돌진!
“악!”
무작정 F를 연타해서 굴렀더니, 우연인지 피해졌다.
분명 멀리 떨어져 있던 것 같은데 기사가 내 앞으로 도달하기 까지 2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횡베기.
검에서 붉은 기운이 세어나와 주변을 빨갛게 물들였다.
피하지 못했다.
그대로 직격 당했고, HP바의 2/3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렸다.
추락할 때 받았던 피해까지 합치면 이젠 스치면 죽는다!
-그냥 빠르게 죽고 겜이나 하자
신경을 긁는 말.
나는 그 말에 오기가 들어 눈을 부라리며 기사를 바라봤다,
처음 다가올 때, 그리고 갑작스러운 기습에 놀랐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빨리 자살ㄱ
온다, 온다, 온다!
거리가 멀어졌다.
다가온다!
검을 세워 날아오는 기사, 나는 정확히 F키를 눌렀다.
피했다.
이어지는 횡베기.
이건 뒤로 돌면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피했다.
빠르기만 할 뿐 패턴은 단순했다.
“피, 피했어요!”
반격의 차례!
공격키를 두 번, 양손으로 기사를 할퀴는 웨어울프의 손톱.
그리고 드러나는 기사의 hp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걸 어케잡누
시청자들의 말대로 저걸 어떻게 잡을까.
“와... 이건 무슨...? 그... 없네요...?”
-뭐가 없는 건데ㅋㅋㅋㅋㅋ
-그... 없나?
“으음... 전 없긴 해요.”
-아앗...
키보드에서 손을 땠다.
고작 두 번 공격하고 포기했다 욕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너무 막막했다.
모니터를 꽉 채운 hp바, 분명 공격에 성공했음에도 표시가 나지 않았다.
“제가 모두 피하고 모두 공격한다 하더라도 4~5시간은 걸릴 것 같아요...”
다른 약점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모르겠다.
기사를 찾기 전 맵을 모두 훑어보았지만 무언가 이용할만 한 것은 없었다.
그야말로 정석적인 패배이벤트.
...?
“그런데 제가 여기서 얘를 발견 못했으면 어떻게 되요?”
패배 이벤트 없이 게임이 진행됐을까?
-저거 발견 못하고 넘어가도 결국 만나게 되있음ㅇㅇ
무엇을 해도 결국 만나게 된다는 소리.
나는 키보드에 손을 올려 기사의 공격을 피하고는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얘 잡은 사람 있겠죠?”
패턴은 쉬웠다, 데미지가 무식하게 쌔고, HP가 엄청나게 많을 뿐, 되게 단순했다.
내찌르고 베고, 손을 들어 빛의 창 따위를 날린다.
그게 끝이었다.
-있긴 할껄요?
-저걸 굳이?
-저건 도전과제도 안 만들어놔서 잡을 이유가 없음ㅇㅇ
해석 해보면 거의 하지 않는 행위라는 것.
대다수 일반인이 기피하는 선택지란, 자고로 스트리머들이 좋아하는 선택지였다.
아무도 하지 않는 것, 남들은 안하는 것.
하여 특별함을 사람들에게 각인 시키는 것.
나 또한 스트리머 였음으로 이런 것을 놓칠수는 없었다.
“그럼 이거 제가 잡아볼게요!”
-ㄴㄴㄴㄴ
-ㄴㄴㄴㄴㄴㄴㄴㄴ
-하지마!!!
-ㄴㄴㄴㄴㄴ
-개 좆 씹 노잼
“어... 하지마요?”
격렬한 시청자들의 반응.
솔직히 부추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거친 반응이 쏟아져나와 나는 시무룩하게 키보드에서 손을 때었고, 기사가 달려들어 내 웨어울프를 분쇄 했다.
그리고 암전되는 화면.
검은 모니터에 내 얼굴이 비친다.
툴툴거리는 얼굴이 못나 보인다.
잡을 수 있을 꺼 같았는데...
사람들이 내게 바라는 것은 이게 아닌 것 같았다.
"우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