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방송 두 달째(5)
내가 시무룩 한 것을 눈치 챈걸까.
시청자 하나가 꽤나 긴 장문의 도네이션을 보내줬다.
[붕이님이 1,000원 후원]
-패턴도 단순하고 HP만 무식하게 높은거, 몇시간동안 후들겨 패는거 무슨재미로 봄? 게다가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해야해 혹시 미침?
아앗...
-패턴이 화려하던가, 복잡하기라도 하면 보는 맛이라도 있지 저건 지루함
-평범하게 플레이하자ㅇㅇ
-ㄹㅇㅋㅋ
-입 잘털어서 4시간동안 안지루하게 할 자신 있으면 ㄱ
내가 시청자들을 신경쓰지 못했구나...!
특히 마지막 말이 너무 아프다.
나는 아직 어리숙했다.
아직 배운 것 보다 배울 것이 많았다.
4시간동안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시청자들을 재밌게 하는 방법따윈 모른다.
그런 방법을 알고 있으면 애초에 하꼬도 아니겠지.
“으응...”
아쉽지만 별 수 없네...
그럼 저건 나중에 따로 혼자 녹화해서 유튜브로 올려야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가능 할 것 같았다.
가능한 것을 그냥 넘어가기엔 무척이나 아쉽지 않은가.
안그래도 유튜브의 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난장판이 된 댓글창도 진정되는 모양세에 접어든 순간.
새로운 화력이 필요했다.
최근에 올린 것이라곤 아이잭과 다시보기 풀영상뿐.
시청자들을 잡아두기엔 많이 부족했다.
"응..."
일단 그러면 그건 그렇게 정하자.
물을 한모금 마시고는 채팅창을 한 번 훑었다.
“음음! 그런데 저 방금 진짜 잘하지 않았어요?”
패턴이 단순하긴 했지만 나름 잘 피한거 같은데!
입술을 씰룩거리며 우쭐! 어깨가 올라갔다.
"이것이 재능인가요?"
스컬소울 어렵다고 많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별거 없잖아?
내 무릎에 잠을 청하는 고양이를 격하게 쓰다듬어주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애옹- 힘없게 울고는 다시 잠을 청하는 고양이.
마치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해준거 같았다.
“히히...”
-ㅈㄹㄴ
-네 다름 특성 재빠른
-좆사기 특성고르고 그것도 안되면 네, 좀, 네
-시작도 안했는데ㅋㅋㅋㅋㅋ
-그 시발 돈이 없어서 뭐라고 못하겠네
-리에라 울기까지 10분 전.
내가 운다는 채팅창에 반발하였다.
“저 이제 안울어요!”
그도 그럴 것이 가람님이 너는 울면 되게 못생겼다고 말하셨다.
얼마나 못생겼으면 그 착한 가람님이 그런 말을 하셨을지 두렵기 까지 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상상이상으로 내 생김세가 최악인가보다.
“응, 절대 안울어!”
-아ㅋㅋㅋ안울겠냐고
그때였다.
=암령 'iIliIlIll'님이 침입했습니다.=
상단 중앙에 떠오른 검붉은 글씨.
“어?”
-?
-??
-뭐임
-?
“저 혹시 온라인상태였나요?”
-그걸 왜 저희한테 묻죠?
-???
암령, 즉, 다른 플레이어가 침입했다.
아직 첫 번째 보스도 못잡았는데!
오프라인으로 플레이 한다는 것을 까먹었다.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싸워야지
그래 멍청한걸 물었다.
싸워야지!
질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난 방금 패배이벤트로 내 재능을 깨달은 상태!
컨디션은 가히 최고!
"이길 수 있어요!"
-팩트)지금 플레이 시간이 1시간도 되지 않았다.
플레이 시간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데!
설마 유저가 보스보다 어렵겠는가!
난 지금 벌써 수십가지 제목이 생각나고 있었다.
'뉴비가 고인물을 잡아보았다!', '스컬소울 재능충 스트리머!' 따위의 망상들.
스컬소울은 내 유튜브에 불씨를 가져다 줄 것이 분명했다.
"후헤헤..."
-기분나빠;
-ㄹㅇ
우쭐거림도 잠시, 내 행복한 상상은 금방 끝났다.
끝나버렸다.
암령이 모습을 보였다.
충격 그자체의 모습.
보랏빛 피부, 기괴하다못해 불쾌하기까지한 비율, 최대한으로 확대한 공포심을 자아내는 눈동자.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저 바코드 닉네임때문에 확인할 방범이 없었지만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이었다.
전작도, 전전작도 저것과 똑같은 커스텀마이징으로 모든 보스 노히트 맨손 격파한 사람.
사람?
사람인가?
사람이라기보단 망령이나 악령에 가까웠다.
-왜 조용해짐?
[흰색팬티님이 1,000원 후원]
-이기면 만원
"저걸요...?"
-자신감 으디갔누?
-아 우쭐거려보라고ㅋㅋㅋㅋ
-ㄹㅇㅋㅋ
-쫄?
"그, 그래요 저 사람이 진짜일리 없잖아요?"
워낙 유명한 분이다 보니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 침입해온 암령또한 마찬가지일터.
벌써 부터 겁먹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상대는 사람이었다.
패턴을 굳이 볼 필요가 없었고, 눈치게임에 가까웠다.
"끄앗!"
괴상한 외침과 함께 휘두른 손톱.
바코드닉네임의 암령, 통칭 아오오니는 내 손톱을 옆으로 한발자국 옮기는 것으로 가볍게 피해냈다.
우연일까?
다시 달려들며 공격해보지만 구르기를 사용하지 않고 뒤로 조금빠지는 것으로 회피했다.
이게 말이 돼?!
스태미너가 다 닳도록 달려들어봤지만 단 한번도 적중시키지 못했다.
-거리재기보소
-찐같은데?
-ㅈㄹㄴ
-걍 얘가 못하는거 아님?
내 캐릭터가 스태미너가 고갈나, 못움직이는 것을 보고도 공격을 하지 않는다.
그저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것이 나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혹시 방송 보고 계세요…?"
그러지 않고서야 굳이 이런 행동을 할리가 없잖아.
"보고 계시다면 한번 죽어주시면 5000원 드릴게요!"
나름 큰마음을 먹은 제안이었는데 애초에 내 방송을 보고 있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듣고도 못들은 척 하는 것인지 연신 나를 농락할 뿐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나를 압살했으면 '엄청 잘하시는구나' 하고 말았을 것을!
"으으으...!"
-ㅋㅋㅋㅋ
-ㅋㅋㅋ
고의적으로 나를 농락하는 모습에 약이 바짝올라 스태미너가 회복되자마자 다시 달려들었다.
나름 머리를 써가며 예측 경로를 틀어막아보기도 하고, 벽쪽으로 밀어붙이며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라고 해야할까.
한대도 허용하지 않고 유유히 피하는 아오오니.
"이익...!"
4분
"뉴비를 괴롭히지마...!"
7분
"나한테 왜이러는거야!"
9분
"이, 이럴꺼면 차라리 죽여요!"
전투 시작으로 부터 13분이 지나자 마우스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채팅창은 이게 재밌는지, 연신 깔깔거렸지만 나는 속이 말이 아니었다.
어떻게 단 한대도 못 맞출 수 있지?
저 사람이 잘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못하는 건가?
우쭐거림은 씨알만큼도 남지 않았다.
자신감이 가득 차올라 있던 자리는 자괴감이 대신 했고 목소리에 물기가 차올랐다.
눈물을 참아보려 뺨을 두드렸다.
아, 안되는데.
울면 못생겨지는데!
…
본판이 별로니까 상관없는거 아닐까?
잠시 헛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떨쳐내고는 채팅창에 시선을 주며 최대한 가녀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강제종료 할까요…?"
-ㄴㄴ
-추함
-ㄹㅇㅋㅋ 이겨보라고
-자신감을 가져! 도망치지마! 맞서 싸워!
"저…걸 어떻게 이겨요…"
흐어어어…
한이 섞인 울음.
저런걸 도대체 어떻게 이길까.
계속 상대해봤자 정신만 피폐해질 것 같았다.
이 짧은 인생을 살면서 느낀 것중 하나가 있다면 세상에는 두가지 종류의 일이 있었다.
1%의 가능성이라도 존재 하는 것과 가능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그리고 지금 이상황은 명백히 후자에 속했다.
공격하면 피하고, 도망치면 쫓아온다.
어떻게 하라고 이걸!
-얘운다ㅋㅋㅋ
-안운다몈ㅋㅋ
-아ㅋㅋㅋㅋㅋㅋㅋ
"안울거든요...?"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아직은 괜찮다.
"...에이씨"
나는 방금 전에 주운 쓰레기를 투척했다.
역시 피했다.
"이건 좀 맞아주지...!"
자신을 맞추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는 듯 가볍게 피해버렸다.
"진짜 너무해!"
설움을 담아 외친 말.
아오오니는 그런 내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화딱지가 나는 건 내 성격이 이상한 탓일까.
날 죽일 생각이 없으면 그냥 좀, 죽어주지...
아니, 이제와서 봐주면 그건 그것대로 화날것 같긴 한데......
아, 모르겠다.
키보드위로 얼굴을 문대었다.
아무렇게나 눌린 키보드탓에 이상한 곳으로 나아가는 캐릭터.
"아니, 잠깐만...잠시만요?"
-???
키보드에서 얼굴을 때고는 나는 아오오니를 바라봤다.
갑자기 든 생각.
얘는 나를 때리지 않는다.
나는 쟤를 죽일 수 없었다.
이상황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
1. 내가 그냥 절벽으로 몸을 던져 자살한다.
암령의 승리로 암령은 사라질 것이다.
다만 시청자들의 반응이 걱정되었다.
2. 강제 종료하고 오프라인으로 다시 시작한다.
편하게 게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역시 시청자들이 싫어한다.
그렇다면.
"굳이 죽일 필요 없잖아요?"
-?
-???
내가 생각해도 명답이다.
우중충한 마음이 살살 펴졌다.
생각할 수록 마음에 드는 방식.
나 똑똑해!
손을 올려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아무래도 그건 조금, 이상해.
어쨌든.
"얘는 저 죽일 생각이 없는거 같은데 그냥 이대로 플레이 하죠 뭐…"
이러다 지루해지면 날 죽이던가 알아서 나가겠지.
무엇을 선택해도 애매할때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선택이 된다.
"그럼 게임 이어서 할게요!"
이제부터 너는 내 펫이다 아오오니.